테너 김성호(33)씨가 최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BBC Cardiff Singer of the World ’(BBC 카디프) 가곡부문에서 우승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가곡 부문에서는 의무 조항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이 자국(自國)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전통이 있다. 그는 이날 슈만·본 윌리엄스·라흐마니노프 등의 가곡들과 함께 결선에서는 <동심초>(김억 역시. 김성태 곡)를, 예선에서는 <고풍의상>(조지훈 시, 윤이상 곡)을 불렀다.
우승 소식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것은 그의 의상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회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노래를 불렀다. 주최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두루마기(Durumagi)를 영문으로 표기한 뒤 “많은 관객들이 그의 회색 한복에 그려진 한국 전통 문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나타냈다”고 전했고. SNS 상에는 그가 입은 한복을 확대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서양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주로 부르는 해외 콩쿠르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복은 자칫 불리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 클래식(K-Classic)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리는 기회가 되고, 관객들에게도 좋은 추억이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1차 예선에서 <고풍의상>을 부를때만 한복을 입으려고 했었다. 그 곡이 한복을 묘사한 곡이어서 한복을 입으면 관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결선까지 입었다”고 말했다. 한복을 입은것도 용기었지만, 외국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한국색 짙은 노래말로된 곡을 선택한 그의 용기가 더 놀라웠다.
<고풍의상>의 노래말이 외국인들에게 완벽하게 전달될 수 없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곡을 택해 예선을 통과했기에 필자 또한 기쁨이 컸다. 한국인들이라면 <동심초(同心草)>의 가사(중국 당나라 기생이자 여류 시인인 '설도'가 지은 '춘망사(春望詞)' 세 번째 절을 시인 김억이 번역)는 대부분 알지만 조지훈의 <고풍의상(古風衣裳)>의 가사는 모르는 분들이 많기에 이 기회에 여기에 소개한다.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끝 풍경(風磬)이 운다 /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 아른 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蝴蝶) / 호접(蝴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줄 골라 보리니 / 가는 버들인양 가락에 맞추어 흰손을 흔들어지이다 “
이 시는 소재자체가 한국적이고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다. 전통 고택(古宅)과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를 예스런 말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보여주며, 우아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전아(典雅)한 우리말을 사용하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전통미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사라져 가는 풍물과 전통적인 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애수를 노래한 시이다.
노래 마지막을 추임새 “조오오타아~!”로 마무리 하여 관객들의 흥을 이끌어 낸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청명하고 서정적 고음이 돋보이는 리릭(lyric)테너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뛰어난 성악가이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했던 조수미씨를 떠올린다.
조수미씨는 워너뮤직 산하 에라토 레이블과 전속계약을 맺고 1994년 앨범을 발매하기 전, 자신의 앨범에 우리 가곡 ’보리밭‘을 반드시 넣고 한글로 ‘보리밭’이라고 쓰는 조건을 내세워 관철시킨 바 있다. 그녀는 세계무대에서 애국심과 자긍심으로 언제나 당당했다. 그녀는 언젠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 스스로를 “내 부모의 딸이 아니라 ’대한의 딸‘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피력하여 감동을준 바있다.
조수미씨에 이어 김성호씨가 ‘대한의 아들’로 세계적 문화스타로 우뚝섰다. 이들은 성악가로서 한국문화의 줏대를 굳건히 세우며 K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크게 넓혔다. 모쪼록 이들이 아름다운 한국문화 전도사로서 오래오래 세계인의 사랑을 받길 기원하며 김성호의 우승에 뜨거운 갈채룰 보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을 다시한번 실감하면서.
<부연(附椽)> : 긴 서까래 끝에 덧얹는 짧고 네모진 서까래. 며느리서까래. <풍경(風磬)> : 처마 끝에다는 경쇠. 작은 굴 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에 쇠로 붕어 모양을 만들러 달아서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어 소리가 나게 함. <주렴(珠簾)> : 구슬을 꿰어 꾸민 발. <호장> : = 회장(回裝); 여자의 저고리 깃, 끝동. 겨드랑이 같은 곳에 댄 여러 빛깔의 장식용 헝겊. <동정> : 옷깃 위에 조붓하게 덧꾸미는 흰 헝겊오리 <운혜(雲鞋)> : 지난 날, 여자가 신던 마른 신의 한 가지. 신발 앞코에 구름무늬를 수놓았음. <당혜(唐鞋)> : 우리 깊고 코가 작은 여자 가죽신의 한 가지. 앞뒤에 당초문(唐草紋-덩굴무뉘) 따위를 새김. <호접(胡蝶)> : 호랑나비 <아미(蛾眉)> : (누에나방의 눈썹처럼)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