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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27장 9절~11절
제목 ▶ 풍랑이 주는 음성
오늘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풍랑이 주는 음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사건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교훈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가슴 아픈 일도 있고,
스스로 감당하기 힘겨운 일도 있고,
때론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삶에 얻어지는 교훈이 있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서 로마로 항해 하는 도중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배를 타고 가다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겨우 생명만 보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기도하는 과정 중에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바울아~지금 항해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
출항하지 않도록 사람에게 알려주어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배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선장과 선원, 그리고 백부장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바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며
배를 원래대로 출항하게 합니다.
물론 이 배를 출항하게 된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지금 배가 정박해 있는 이 도시에서는
추운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 날씨를 보니까
배가 출항해도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출항해도
괜찮다고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배를 출항시킴으로
배에 실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겨우 생명만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서
몇 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형편보다 믿음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자기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다가 배를 출항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 즉 기도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도시에서는 겨울을 지내기가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출항하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배를 출항하자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믿음의 말을 하고 있는데
백부장은 형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죠.
믿음이 앞설 것이냐? 형편이 앞설 것이냐?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형편이 앞서게 된 것입니다.
제가 부흥회를 다니면서 갈등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냐?
집회를 다니다 보면 여러 종류의 목사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깃발 들고 가는 목사님들입니다.
믿음만을 가지고 그저 앞으로만 전진을 합니다.
그럴 때 어떤 결과가 있냐면?
상처 받는 사람도 있고,
따라오지 못하는 낙오자도 생김으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교인의 형편을 세심하게 들여다봅니다.
그래서 깃발을 들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전진한다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교인들은 따뜻한 돌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크게 어려움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 옳은 것일까? 갈등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 장점을 이야기 하자면,
믿음으로 전진하는 목사님들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담대하게 해냅니다.
그리고 교회도 커다랗게 성장을 합니다.
하지만 형편을 살피는 목사님들을 보면
성도들이 비교적 상처를 덜 받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가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죠.
노회에서 목사님들을 뵙자나요.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너무나 착한 목사님들을 뵙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사님들의 교회는
대부분 크게 성장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제가 젊은 시절
노회 세미나 갈 때에 은퇴를 앞둔 목사님이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착한 목사님은 목회를 잘 못하고
조금 못 된 목사님들이 목회를 잘한다구요.
그때는 이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이 이해가 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분명하게 말하잖아요.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말씀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왜 배를 출항하느냐?
인간적인 형편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었고,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사람들이 출발하자고 자꾸만 보채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형편을 따르게 된 것이죠.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믿음이냐? 형편이냐? 이 두 가지 중에서
영적 싸움을 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편만을 생각하면
믿음으로 할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형편을 따지면, 십일조도 힘이 듭니다.
형편을 따지면, 주일성수도 힘이 듭니다.
형편을 따지면 기도와 섬김, 헌신도 다 힘이 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생각을 한다면
조금 불편함을 겪더라도
절대 손해 볼 일은 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룻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죠.
베들레헴에 흉년이 크게 들었잖아요.
형편을 따지자면 그곳을 떠나는게 맞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버티냐는 것이죠.
그래서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두 아들을 잃어버리는
가슴 아픈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것처럼 믿음이냐? 형편이냐?
갈등이 우리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사건이나 환경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똑같이 주어지고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을 결정할 것이냐?
아니면 믿음으로 결정을 할 것이냐?
이러한 갈등 속에서 결정을 잘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정을 하면
지금 당장은 너무나 힘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들레헴에
풍년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 결말이 너무나 좋습니다.
그리고 형편으로 결정을 내리면
대부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이 너무나 좋습니다.
하지만 그 끝을 보면 좋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배가 출항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얼마 못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자녀를 키워봤으니 알잖아요.
내가 자녀를 때론 편하게 해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불편하게 해줄 것인가 말입니다.
지금 당장 게임을 하게 둔다면
이 자녀가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런데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 자녀는 지금 당장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앞날을 보면
누가 과연 좋을 열매를 맺게 되냐는 것이죠.
이처럼 믿음이냐? 형편이냐?
이 두 가지가 배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선택하자고 말을 하고,
백부장은 형편을 선택하자는 것이죠.
결국 백부장은 형편을 선택하였습니다.
배안에 사람들은 처음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좋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환경과 형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믿음을 선택하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 순종할 때 풍랑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언이나 투시의 은사를 받지 않아도
사람의 미래가 보입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가 가만히 잘 살펴보면,
풍랑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없어도 충분히 미래가 보였다는 것이죠.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볼 때에
그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분명히 바울에게 말씀하셨잖아요.
이 배가 출항을 하면 풍랑을 만나게 된다구요.
그런데 만약에 이 배가 풍랑을 만나지 않고
끝까지 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헛것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언의 은사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에
우리의 인생을 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인생이
살길로 가게 되고, 풍성해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살게 된다면
우리는 거친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 삶에 다가오는 풍랑은
얼마든지 우리가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상황과 형편대로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피할 수 있는 풍랑도
피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본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분명히 타격과 많은 손해를 입는다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 하셨잖아요.
배에 탄 사람들이 이때 바울이 한 말을 들었다면
그들은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기회를 또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려 주셨다는 것은 무엇이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상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풍랑을 겪었던 사람들이 그대로 그 배에 타고
거꾸로 로마에서 배가 출항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오늘 본문처럼 다시 말한다면,
가자고 우기는 사람일 많을 까요?
아니면 가지 말자고 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물론 가지 말자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고 하는 사람은 꼭 있다는 것이죠.
지난번에 그랬어도 이번은 확실하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배를 타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지난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가
14일 동안 죽다 살아났는데
또 그 배를 타고 가겠냐는 것이죠.
그런데 또 가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말입니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겠냐고 말이죠.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봐요.
아마 그 다음에는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을 해요.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잖아요.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잖아요.
그럼요. 그 경고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재산은 잃어 버려도
열심히 일하면 다시 재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은 잃어버리면 끝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또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며
또 다시 인생의 풍랑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사건을 통해서
분명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으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깨달았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은 탕자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후속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면
탕자의 비유는 슬픈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 다음날 탕자가 또 줄행랑을 쳤더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형편보다 믿음을 선택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다시 주신 기회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준행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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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편이 아닌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 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