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된 지난 몇 달 동안 전국적으로 수많은 돼지가 포획, 살처분되었다. 얼마나 많은 돼지가 죽임을 당했는지 더 묻을 곳이 없어서 사체를 쌓아놓았고, 그 피가 임진강 지류까지 흘러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간의 입장에서도 비극으로 와 닿는 이 이야기는 동물의 입장에서 ‘학살’ 그야말로 ‘대학살 사건’이다. 전염성 바이러스로 인한 가축의 대량 살처분은 오늘 처음 보는 낯선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구제역으로 인한 동물 살처분은 끊임없이 반복되어왔으며 2011년 구제역 사태 때는 350만 마리의 돼지와 소가 살처분 당했다. 대다수 생매장이었다.
돼지들의 집단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고 돼지를 찾아 나선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를 제작한 황윤 감독이다. 그녀는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 없다’는 물음을 시작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의 현장과 산골농장을 찾아가 돼지의 삶을 영화에 담았다. 영화는 더없이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돼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돼지들을 둘러싼 잔혹한 환경이 교차된다. 이 영화는 결국 그동안 좋아했던 돈가스, 고기를 더 이상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된 가족의 딜레마를 담는 데까지 나간다.
이 가족이 겪었던 딜레마는 점점 우리 사회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비극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인 현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5년 전 돼지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영화 감독이라면, 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도 알고 있지 않을까?
―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어떻게 만들어진 영화인가요?
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2011년 구제역 살처분이었어요. 매장되는 저 많은 돼지와 내가 먹는 ‘고기’들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돈가스를 굉장히 좋아했음에도 그동안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우리 가족이 먹고 있는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한 손에는 카메라를,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돼지를 찾아 길을 나선 거죠.
― 저도 생각해보니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는데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돼지를 생각해보니까 몇 가지 모순점이 보이더라고요. 첫 번째 모순은, 돼지가 흔한 동물인데 막상 우리 주위엔 보이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 모순은, 우리가 돼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돼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 가령, 자연스러운 환경에서는 어미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볏짚으로 둥지를 짓는다거나, 돼지가 잠 자는 곳에는 절대 배설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깔끔하고 영리한 동물이라는 걸 저도 몰랐고 대다수 사람들도 잘 모르지요. 세 번째 모순은, 사람들이 돼지를 먹어서 돼지가 자신의 일부가 되는데도 돼지를 혐오한다는 점이에요. 탐욕스럽고 더럽고 미련한 사람에게 ‘돼지 같다’고 말하죠. 아무도 기분 좋은 칭찬으로 여기지 않고요. 사실 알고 보면 돼지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영리하고 깨끗한 동물인데, 세상에서 가장 많이 오해 받고 억울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장 큰 모순점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더 잘 대해주거나 미안하게 생각하기보다 제도적으로 학대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공장식 축산은 돼지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스템인데 제도적으로 당연한 것이 되어 있죠. 이런 모순점들을 인식하게 된 순간, 돼지를 꼭 찍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돼지를 캐스팅했죠. 섭외는 어려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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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장면들. (이하 사진: 시네마달 제공) |
― 실제로 만난 돼지의 모습은 어땠나요?
돼지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그 디테일한 감정을 보여주기만 해도 영화는 성공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어미돼지들은 새끼들의 온갖 응석을 받아주는 인내심 많은 엄마들이어서 초보 엄마인 제가 배울 것이 많았어요. 또, 새끼가 위협에 처했을 때나 거세를 당할 때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새끼를 지키려고 해요. 그리고 젖을 떼기 위해서 새끼랑 억지로 떼어놓으면 얼마나 슬퍼하는지 몰라요. 사람 엄마인 저와 다르지 않았어요. 새끼 돼지들은 제 아기처럼 호기심이 넘치고 장난을 좋아했어요. 생태적으로 돼지를 키우는 산골농장 ‘원가자농’에는 열 마리 정도의 어미돼지들이 있었는데 모두 제각각 성격도 다르고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 다큐를 보면서 저도 돼지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강연을 했는데, 아이들이 “도영이 오빠 부러워요” 그래요. 왜냐고 물으니, “돼지랑 놀았잖아요, 저도 돼지랑 너무 놀고 싶어요” 그러는 거예요. 영화에서 제 아들 도영이가 돼지들에게 볏짚도 주고 밀밭에서 숨바꼭질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나 봐요. 누구든 실제로 돼지랑 교감해보면 강아지랑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 영화에서 본 돼지의 눈이 마치 사람의 눈처럼 보이더라고요. 동물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성이랄까요.
네. 정말이에요. 영화에 돼지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자주 나와요. 이 영화를 통해 공장식 축산을 ‘고발’한다기보다, 돼지가 고기이기 이전에 생명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들도 인간처럼 사랑과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자유롭고 싶어 하고, 죽음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돼지의 눈동자가 사람과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까만 동공에, 쌍꺼풀지고 속눈썹이 긴 눈. 지그시 눈 감고 잠든 모습을 보면 제 아기와 다를 바 없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돼지라고 하셨는데요. 동물권, 동물의 권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가자농’ 농장주 원중연 선생님께 ‘돼지의 기본권’이 뭐냐고 즉흥적으로 물어봤어요. 그때 선생님은 1초도 고민 없이 직관적으로 이렇게 답하셨어요. “마음대로 먹고 자는 거지. 기분 좋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말보다 가슴에 확 와 닿았어요. 원 선생님은 돼지를 키우면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같은 책을 탐독하실 만큼, 축산과 육식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셨어요. 고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기농 밭을 거름지게 만들 퇴비를 얻기 위해 돼지를 키우셨고 식사도 거의 채식 위주로 하셨고요.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으면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고, 돼지들이 “마음대로 먹고 자고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애쓰셨어요. 공장식 축산의 돼지나 닭의 삶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전혀 기분이 좋을 수 없지요. 햇빛과 바람이 들지 않는 밀폐된 곳에서 수천수만 마리가 악취 속에 살아가니까요.
― 공장식 대량 축산에서 본 돼지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SF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암퇘지 하나하나가 자신의 몸 크기와 비슷한 철제 틀에 갇혀 있었어요. 일명 ‘스톨’이라 불리는 ‘감금 틀’인데요. 이 안에서 돼지는 앉고 일어나고 눕는 동작만 가능해요. 몸을 한 바퀴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해요. 충격적인 장면이었죠. 암퇘지는 스톨에 갇힌 채 인공수정으로 임신되고, 역시 분만용 감금 틀에 갇힌 채 출산해요. 수퇘지라 해서 나을 건 없지요. 스트레스로 동료를 무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와 송곳니를 잘리고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하지요.
― 그들이 느끼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죠. 하지만 눈을 감고 단 몇 초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당연히 돼지들이 더 고통스럽겠지만, 공장식 축산 현장을 직접 보는 사람도 그 고통을 느낄 것 같아요.
국가의 명령으로 살처분에 동원되었던 공무원의 인터뷰가 영화 속에 나와요. 이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공장식 축산이 단지 동물들에게만 가혹한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고통과 폭력으로 돌아온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살처분에 동원됐던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요.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한 공무원과 수의사들은 4명 중 3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였고,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과로나 자살로 숨진 분들도 적지 않아요.
―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직접 보지 못하는 사람도 그런 죄의식의 영향을 받을까요?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과 원망 속에 길러지고 죽어간 동물들의 기운이 사라질까요? 또, 살처분의 폭력이 생매장 현장에만 머물까요? 저는 그 기운과 에너지가 우리에게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잖아요. “먹는 것은 곧 우리 자신”(We are what we eat)라는 말이 있지요. 현대인들이 우울하고 불안하고 공격적인 것이 육식과 관계있다고 보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섭식’이라는 뜻의 책 《월드 피스 다이어트(World Peace Diet)》를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는데요. 저자인 영성 수행자 윌 터틀은 이 책에서 이렇게 썼어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최대 공적 중 하나에는 ‘그림자 원형’ 이론 정립이 있습니다. 그림자 원형이란 자아가 부정하고 억압하는 내면의 음침한 어둠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억압돼도 이 그림자는 언젠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알아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현실에 자신을 투사합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삼아 학대하는 행위는 단연코 우리 문화 최대의 그림자입니다. 우리의 집단적 죄의식은 우리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학교 폭력, 군대 폭력, 성폭력, 묻지마 살해, 약자에 대한 통제 불가능한 폭력은 우리 사회가 비인간 동물들, 특히 식용으로 사육하는 동물들에게 가하는 일상적이고 제도화된 폭력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요. ‘욱’ 하는 사회는 고통스럽게 죽어간 동물의 ‘화’를 먹는 것과 과연 무관할까요?
― 요새 육식 문화는 물론이고 먹방, 요리 방송이 인기입니다. 보시면 불편함을 느끼시겠어요.
불편하죠. 저는 구제역 살처분 때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어요.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사 모자를 쓴 돼지가 어서 자신의 몸을 자르고 구워 먹으라며 해맑게 웃고 있는 식당 간판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지를. 그전에는 한 번도 인지를 못 하고 살았어요. 마케팅이 심어놓은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다가, 살처분이라는 충격을 겪고서야 그 이미지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죠. 폴 메카트니는 이런 말을 했어요. “도살장의 벽이 투명한 유리벽이라면 사람들은 단번에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도살장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동안 소비자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도살장 안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바로 유튜브라는 창을 통해서 말이죠. 연예인을 검색하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면 이제는 공장식 축산과 도살장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전에는 감춰져 있던 공장식 축산의 진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채식 인구와 비거니즘 문화가 최근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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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동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육식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과 오랫동안 먹었던 음식을 거부하기 싫다는 생각 사이의 딜레마죠. 어떻게 이런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요?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관객들을 딜레마에 빠트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후에 쓴 《사랑할까, 먹을까》는 딜레마를 푸는 방법에 대해 쓴 책이에요. 산골농장에서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이 내 아기와 다를 바 없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알게 된 저는 더 이상 돼지를 돈가스로 볼 수 없었어요. 또, 공장식 축산에 힘을 보태지 않는 길은 소비자가 되기를 멈추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돼지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축산에 의해 지구가 얼마나 종말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됐어요. 이번 여름에만 축구장 420만 개 면적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어요. 소 방목과 사료용 작물 재배를 위한 벌목, 인위적 산불이 대형 화재로 이어진 거예요. 전 세계 15억 사람들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육류 생산에 엄청난 물이 사용돼요. 감자 1kg 생산에 280리터의 물이 사용되는데 같은 양의 소고기 생산에는 1만 5,400리터의 물이 소모되지요. 20억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데 소고기 한 접시 생산을 위해 콩과 옥수수 22인분이 소모되고요. 현재의 축산업은 환경파괴뿐 아니라 인권과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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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중인 황윤 감독. ⓒ복음과상황 김다혜 |
― 공장식 축산에 의한 지구 종말이요?
축산분뇨의 오염과 악취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요. 제주에서만 하루 2,800톤이 넘는 돼지 똥이 쏟아져 나와요. 2017년, 한국 땅 1,000만 돼지가 쏟아낸 분뇨는 무려 4,846만 톤이에요. 이 작은 나라, 이 작은 지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막대한 양이죠. 돼지 똥을 치우다가 죽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아요. 2017년, 양돈농장에서 정화조를 치우러 들어간 청년 노동자 4명이 분뇨의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어요. 무엇보다, 축산업은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의 큰 원인이 되고 있어요.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업에서 나오고 있어요. 지구 온도가 이대로 계속 상승하면 2050년에는 많은 지역이 생존불가능한 지역이 되고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예측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 말이에요. 이렇게 막대한 희생을 딛고 생산되는 육류와 유제품이 인간의 몸에는 유익할까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붉은 고기는 2군 발암물질, 소시지, 햄, 베이컨 등 가공육은 1군 발암물질에 속한다’고 발표했어요. 육류가 제초제, 담배, 석면과 같은 정도로 위험하다는 연구결과였지요. 이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되니, 동물을 먹을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채식이 인간의 건강에 훨씬 유익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저만 해도 어릴 때부터 평생 갖고 있던 아토피, 수년 동안 앓던 편두통, 위장병 등이 채식을 하면서 금방 완치됐고,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게 됐어요.
― 채식 외에도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있나요?
의식주 전반에서 동물을 이용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애써요. 가죽 제품을 좋아했었는데 더는 사지 않아요. 라쿤 털이 달린 자켓, 토끼털을 이용한 옷, 오리털 자켓도 사지 않죠. 〈나의 신상 구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가죽 구두의 생산과정을 쫓아가는데요. 구두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나 추적해서 현장까지 가보니 어린 송아지를 죽여서 만든 가죽이었어요. 모피 생산 과정은 더더욱 잔인하죠. 굳이 동물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이제는 웰론 같은 합성섬유로 얼마든지 따뜻하고 멋있는 옷들이 나오고 있어요. 또 일회용 컵,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요. 버려진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가서 거북이, 고래, 물고기, 새들의 뱃속에 가득 차고, 또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 몸으로도 돌아오기 때문이죠. 겨울엔 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담아 쓰는 핫팩을 이용하고 옷을 두껍게 입어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은 물론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 위기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채식인으로 산다는 것, 혹은 비거니즘(Veganism)은 ‘단 1g의 고기도 소비하지 않는 결벽증이나 완벽주의, 혹은 육식 혐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었던 동물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 이것이 비거니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주부터 편의점에서 100% 채식 도시락이 판매되기 시작했는데요.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봐야겠죠?
사실 제가 아들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게 거의 8년 정도 됐어요. 출장이나 바쁜 일이 많은 요즘은 정말 힘들죠. 도영이가 학교 급식에서 먹을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인 경우가 많아요. 고기가 들어간 반찬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밥만 먹거나 굶어야 하죠. 채식 선택권이 없는 학교, 군대, 병원 등 공공 급식은 불평등하죠. 이런 부당함은 없어야 합니다. 얼마 전 입대를 앞둔 비건 청년 정태현이라는 분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어요. 이제까지는 채식하는 사람들이 감내했지만 이제 용감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저도 올해 초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는 기해년 신년회에 다녀왔어요. 그날 메뉴로 떡국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을 고민했어요. 분명 고기가 들어간 떡국일 텐데, 물만 먹고 와야 하나 싶었죠.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초대를 담당한 부처에 전화했습니다.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채식 떡국이 가능한지 여쭤보고 정중하게 부탁드렸어요. 부탁은 했지만, 과연 제안이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고 행사장에 갔어요. 그런데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채식 떡국이 따로 30인분 정도 준비된 거예요. 너무 기뻤어요. 맛도 끝내줬습니다. 이후에 저와 통화를 했었던 그 담당자가 이번 사례가 좋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앞으로도 정부에서 주최하는 다른 행사에서도 다양성을 존중하겠다고 했습니다. 작은 용기를 낸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편의점 비건 도시락 출시는 꽤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봐요. 기업, 그것도 편의점에서 비거니즘 상품을 출시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소비자층을 생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 중인 비거니즘 문화가 한국에서도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기독교인은 인간도, 동물도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잖아요. 피조물들이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라고 만드셨지, 이렇게까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라고 만든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창조하셨고 그 인간이 동식물을 ‘다스리라’고 한 것이, 자연을 지배하는 권한을 주신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역할은 자연의 지배자, 약탈자가 아니라 ‘돌보고 보살피는 수호자’ 아니었을까요? 인간은 자연에서 얻는 공기, 물, 식물 등으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리석게도, 살아갈 터전 자체를 무너뜨리며 스스로 멸종을 초래하고 있어요. 창조주가 우리를 왜 만드셨는지, 피조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기독교인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이 이제 정말 깊이 성찰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이 ‘사랑’이라고 저는 알고 있어요. 창조주가 만드신 피조물을 인간이 사랑하고 있는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답은 나와 있다고 생각해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서 ‘먹는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일이 되었어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하루 세 끼 식사로 ‘투표’를 한다고 생각해요.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많은 존재들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이고, 영성을 돌아보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