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저 한 마디 말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만큼 이 악랄하기 짝이 없는 책은 내 머릿골을 후벼파고 멘탈을 충분히 박살낼 만큼 강력했다.
어느 날, 그러니까 아직 미국과 소련이 서로들 우주정복을 겨루고 있을 그때, 지구에 외계인이 침입한다. 아니, ‘침입’보다는 ‘방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아무런 전투도, 아무런 피해도 없이 왔다가 약 140년 뒤 ‘아주 조용하게’ 떠났으니까.
단 한 권의 책 속에서 장장 140년간 이뤄진 종말의 서사. 주인공은 여러 번 바뀌며 이 숭고하고 잔인한 역사를 읊어 나간다. 그렇게 그들이 파르테논 신전의 여사제들처럼 자신들이 보고겪은 충격적인 미래를 덤덤한 문체로 들려줄 때 그 공포와 아이러니는 더욱더 극대화된다.
지구를 ‘침공’한 (그래, 결국 멸망시킨 건 맞으니) “오버로드”들은 자신들의 부진한 미래가 두려워, 그들을 위에서 지배하는 “오버마인드”들의 명령에 따라 인류를 급속하게 진화시키고는 떠나버린다. 그런데 그 진화과정이란 게 참 요상하다. 오버로드들이 온 이후, 지구에는 놀랍게도 평화가 찾아온다. 오버로드들이 더 이상은 오락적인 살생이나 전쟁이나 환경파괴를 비롯하여 인간 사회에 만연한 차별이나 혐오까지도 쌍그리 깡그리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학은 오버로드들의 도움 아래 급속히 성장했고, 경제는 최상급으로 좋아져 전 지구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가 되었다. 인류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의 욕망을 제한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오버로드들이 왜 자신들이 우주로 진출하는 걸 막는지 궁금해했고, 안락과 쾌락에 찌든 대부분의 사람들을 떠나 문화와 이성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인류가 자신들을 보전하려는 것도 잠시, 인간 아이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꿈을 이용해 전 우주를 총망라하는가 하면, 초능력을 발휘해 주변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 3억 명의 아이들이 전부 이러한 상태, 흡사 괴물과 비슷한 상태로 도달하자, 오버로드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진실을 말한다. 이렇게 인류 최후의 세대들을 생산하는 것이 자신들의 목적이었다고. 자기들도 명령에 따라 이러는 거라고.
오버로드들은, 인간은 이미 육체적 진화의 완성판에 봉착했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단계인 정신의 진화를 이룩할 수 있는 종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세대, 많은 후손들이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지구를 일시적으로 유토피아로 만들고 자신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만든 뒤, 진화가 일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찰하며 동시에 지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년기의 끝’을 맞은 아이들, 그러니까 진화한 신인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진화가 일어나며 그들은 먼저 구인류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그들을 두려워했으며, 자신의 아이들이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다. 신인류들은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오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고, 텔레파시가 발현되어 서로가 동화되고 있었다. 오버로드들은 진화가 진행되자 신인류들을 전부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옮긴 뒤 그들의 진화를 계속 진전시킨다. 진화는 날이 갈수록 더 괴상해졌고, 더 신비로워졌다. 신인류들은 육체를 거의 탈피하였고, 단합력은 더욱 강해져 완전히 하나가 되었으며, 달의 자전축을 마음대로 뒤집는 ‘장난’까지 치기 시작한다. 구인류들이 후손들을 잃은 슬픔과 공허함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 끝내 거의 자멸해 버린 뒤, 오버로드들이 지구를 떠나자, 신인류들은 ‘진짜 힘’을 발휘한다. 신인류들은 이제 지구의 자전을 통제하며 힘을 시험한다. 그리고 오버로드들이 완전히 지구를 뜨자마자, 그들은 오버마인드의 일부가 되어 지구를 떠난다. 전 지구에 오로라처럼 빛나는 구름 막을 치고는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승천한다. 완전히 지구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외부에서부터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 지구의 원자를 해체한다. 그리고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한 지구는, 결국 폭발한다.
1898년 허버트 조지 웰스가 지구상 최초로 외계인들의 침공을 다룬 이래, 숱한 매체에서 지구는 기상천외한 외계인들의 탐욕의 성배가 되어 영원히 고통받아 왔지만, 이 작품만큼 독창적으로 기괴해지고 전위적으로 파괴된 적은 없었다. 상상해 보자. 이 작품이 1953년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수많은 작가들에게 주었을 상상 그 이상의 충격을.
작가 아서 클라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도입부에 명시되어 있듯이 아직 소련과 미국이 냉전을 치룰 때였고, 서로의 고집으로 똘똘 뭉친 두 고래 사이에서 작은 국가들이 언제 등이 터질까 하며 눈치를 보던 시대였다. 러시아와 미국 상공에 눈 깜짝할 사이에 오버로드들의 우주선들이 덮이듯, 충격적인 지구의 결말을 제시한 이 책은, 웃기게도 외계인들의 눈으로 보아야 이해가 된다.
오버로드들은 진화가 정체된 상태였다. 그들의 행성에는 오버마인드들이 출몰하고, 그들을 압박하고 부린다. 작중에서 오버로드들은 고도의 지능과 기술을 지녔는데도 불구하고 오버마인드들에게 지배당하는 걸 보면, 오버마인드들은 그보다 더한 초고도지능과 기술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여튼 오버로드들은 이들의 명령 아래 우주를 누비며 오버마인드들과 같은 초월체로 진화시킬 종족들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진화의 과정에서 사라진 각 행성들의 문호의 산물들을 자기들 행성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고와서 보관한다. 작중 인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도의 지능과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더 이상 문화의 발전이 없어진다. 오버로드들이나 인간들이나 두 가지 길이 주어진다. 하나는 진화를 하되, 각각의 개성과 독자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선에서는 진화가 정체되게 된다. 스스로 자멸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버로드들의 현 상태가 그러했고, 오버로드들이 오기 전의 인간들이 그러했다. 다른 하나는 개체의 독자성이나 개성을 모두 잃는 대신 하나의 초지성체가 되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버로드들의 존재가 특별한 점이 이것이다. 사실상 이 작품의 진주인공들이 오버로드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진화가 진행되지 않아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지만 초지성체들의 명령에 따라 타 종족을 초지성체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일평생을 바쳐서 말이다. 대신 그들은 진화의 잠재력이 풍부한 타 종족들에게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한다. 정작 인간들은 오버로드들이 조장한 가짜 평화에 심취하여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지만 말이다.
책의 마지막은 지구가 폭발하고 오버로드들이 태양계를 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게 아마 우주가 우리를 생각하는 감정이리라. 인간들끼리 고군분투하는 것마저 우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다행히 이 우주에는 오버로드들이나 오버마인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가 우릴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매우 작고 허무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헛된 대립이나 헛된 살육이 없도록. 오버로드들의 도움 없이 우리들 나름의 ‘진화’를 거치도록.
그렇게 유년기를 끝내고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첫댓글 어렵다 어려워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