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5.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삼하 17:14
*제목; 사무엘하서강해(17) 넘어져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져라!
1. 하나님의 복기
바둑에 보면, 바둑을 다 두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둔 바둑의 내용을 다시 두면서 어느 부분이 잘했고, 어느 부분이 실수를 했는지를 살피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를 “복기”라고 합니다.
‘삼하 16~17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생을 복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어리석은 시절 하나님에 부족하고 부끄럽게 했던 부분들을 다시 그대로 살피시면서 다윗의 죄를 물으시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므이 사건’이 그랬습니다. 미갈과 그의 새로운 남편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었던 것이 “바후림”에서 그대로 시므이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후궁들을 백주에 왕궁 옥상’에서 범함으로 자신이 밧세바와 행했던 은밀 죄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이런 죄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철저히 밝히시고 혹독한 ‘광야학교’를 치루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고 부족하게 행하는 나를 모른 척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깨달고 돌이키도록 “광야학교”를 여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이 이 와중에도 잘 한 것이 있습니다. 광야학교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히 돌이키는 과정을 가지기도 했고, 또한 인생의 환란 속에서 넘어질 때 하나님 쪽으로 넘어진 것입니다.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고통과 환란가운데, 하나님 쪽으로 넘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광야학교는 희망과 미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넘어진 다윗을 하나님께서 친히 일으켜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삼하 17장’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여러분들도 넘어지더라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지십시오.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기 때문입니다.
2. 아히도벨과 후새의 계략 대결
그런데 아히도벨은 왜 다윗을 배신했을까요? 아무리 지략가이고, 대세를 잘 읽는다고 하지만, 다윗과 많은 시간과 전쟁들을 함께 했던 자인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를 배신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실을 알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아히도벨’은 사실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그의 손녀를 다윗왕이 권력으로 범하고, 그의 아끼는 손녀사위를 죽게 한 다윗에 대한 ‘앙금’이 늘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압살롬이 반역을 하자, 그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처절한 복수를 시행합니다.
그 첫 번째가 압살롬으로 하여금 백주 대낮에 왕궁 옥상에서 후궁들을 범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정치적 대세가 압살롬에게 넘어갔다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망가는 다윗을 추격하여 그 씨를 완전히 말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삼하 17:1~3)
참으로 옳은 의견입니다. 기세를 몰아 아예 추격하여 다윗 “만”을 죽여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다시 데리고 오자는 것입니다. 이 의견에 압살롬과 모든 장로들도 찬성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위장으로 잠입했던 ‘후새의 의견’이 ‘아히도벨의 작전’을 이긴 것입니다. ‘11~14절’입니다.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삼하 17:11~14)
후새의 계획은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화려하고 은혜가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다윗의 강함과 용맹함을 우리가 잘 아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락하여 모으고, 그의 사람과 그가 머문 성 자체를 멸절하자는 계획인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충분히 도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자는 것이고, 또한 ‘밧줄로 성 자체를 강에 끌여 들이자’고 그들의 교만을 자극하여 압살롬과 그의 무리들이 속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후새의 의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이깁니다. 후새의 말빨(?)로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이 일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 이 일에 개입하십니까?
물론 우리가 배운 대로,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삼하 15:31’입니다.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15:31)
어리석지만 자녀인 다윗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3. 오늘 사건이 주는 교훈
오늘 사건이 주는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넘어져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작은 미움이 큰 비극을 만듭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이 그랬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죄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인간의 탁월한 계략도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게 됩니다.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삼하 17:23)
이를 잘 기억하시는 여러분들 되셔서, 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승리하며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는 약해서 넘어질 수 있고, 또 넘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움에, 죄에. 그래도 넘어져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넘어져도 하나님 쪽으로 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쪽으로 넘어진다는 것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