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 날씨: 따사로운 가을 날 놀기 좋고 책 읽기 좋다.
택견-리코더불기-수학(선그리기, 머릿셈)- 우리말 우리글 공부-점심-청소 -헤엄-마침회-6학년 영어-교사마침회,책읽기 연수-기타연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1학년 선생님이 누구인지 알아요?]
아이들과 자치기 한 판 하다 택견 선생님이 와서 택견을 하는데 규태가 다리가 좀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럼 다리는 쓰지 말고 팔만
움직이라고 했더니 좋아하네요. 그리고 평상에 앉아있곤 하는 규태가 부러워 한주도 다리가 아프다고 해요. 학교 들어올때 자치기 하는 아이들보고 막
달려오는 걸 봤기에 아닌줄 알지만 어디 아프냐 묻는데 그냥 아프다고 합니다. 택견하다 아프면 쉬라고 했는데 택견 조금 하다 규태랑 같이 평상에
앉습니다. 이번에는 그모습이 부러운지 알찬샘 3학년 동엽이와 종민이가 택견하라고 아이들을 잡아끌어요. 선생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야 그만두는데
여전히 부럽고 질투나나 택견에 그리 정성을 들이지 않습니다. 한 시간쯤 하는 택견 품밟기 동작이 잘 안될 때는 그렇게 몸을 써도, 택견놀이 할
때는 아주 신나게 하는 아이들이라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선생도 택견하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양파망을 대나무에 엮어 홍시따는 도구를 만들어서
마당에 있는 감나무 홍시를 서너 개 땄는데 갯수가 작아 교사실 선생들에게 가져다줫어요. 그런데 감나무가지와 홍시 한 개가 잘 어울리게 붙어있어
그림용으로 교실에 걸어놓고 나왔습니다. 그릴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가을이 그냥 좋습니다.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들은 글 잘 쓴다고 자랑하지만 한글 쓰는 차례와 맞춤법도 그렇고 홑소리 닿소리 글자쓰기를
천천히 해서 강산이가 글을 익히도록 돕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쓰고 싶은대로 쓰고, 글쓰기 시간 빼고는 틀린 글자도 크게 잡아주지
않았지요. 본디 2학기 밑그림대로 공부를 시작하네요. 모두 알다시피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옛부터 문맹이냐 아니냐 판단
기준이지요. 그렇지만 1학년들에게는 참 어려워요. 정성을 들여 쓰지 않으면 글씨가 비뚤빼뚤하고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맞지 않아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도 없는 때가 자주 있어, 1학년 선생들과 부모들, 맑은샘 식구들은 그 어려운 아이들 글을 읽어내는 마술사가 됩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다 쓰고 막힘이 없습니다. 강산이는 그동안 자기가 아는 글자가 많다고 자랑을 하는데 독후감상문을 쓸 때나 수학 문제를 같이 읽을 때는
선생을 찾습니다. 이제 슬슬 한글을 깨칠 때가 되었습니다. 이세상 모든 사람이 글을 안다면 이 세상 나무는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말한 위대한
간디도 있지만,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는 재미를 오롯이 느끼고, 하고 싶은 말과 글을 마음껏 쓰는 기쁨을 누릴려면 자랑스러운 한글을 익혀야
합니다. 유네스코가 문자없는 나라에 보급하는 한글의 우수성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살아납니다. 많이 읽고 소리나는 대로 자꾸 쓰다보면 익히기 쉬운
걸 보면 우리말과 글이 참 고맙습니다. 오늘은 홑소리 쓰기를 하고 낱말을 만들어 써봅니다. 아주 쉬운 단계라 아이들이 후딱 마치고 쉽다
그래요. 그러고나서 여덟 낱말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해봤다고 모두 자신있어 해요. 모두가 100점을 받으니 정말
좋아합니다. '여우'와 '아이'로 글월과 이야기를 만드니 웃느라 바쁘지만 야무지게 글을 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천년먹은 '여우'랑 정우가 결혼을 해서 강산이란 '아이'를 낳았지. 그리고 강산이가 다시 백년먹은 '여우'랑 사랑을 하게 됐어."
다음에는 아이들이 배운 글월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야지요.
머릿셈 뺄셈도, 선그리기도 야무지게 합니다. 논다고 하더니 금세 들어와서 하자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신기하기도 해요. 택견하고
10분쯤 자치기 한다음 줄곧 교실에서 리코더 불고 수학 공부를 하고, 우리말우리글 수업을 하는데도 지쳐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그러지는 않지만 마음껏 놀고 맛있게 먹는 작은학교가 주는 큰 힘이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자치기로 숫자 세기와 자치기 점수 더하는 셈
계산이 교실로 들어와 정리되고 다시 마당에서 풀어내고 바깥활동과 교실 활동이 어우러지고 이어지는 흐름과 어떤 것이든 통합교과로
끌어내는 작은학교의 매력에 아이들과 선생들 모두 푹 빠져 사는 가을입니다.
점심 먹고 마루에 나가니 마루쪽 쪽마루에 놓인 바닥깔개에 4학년 소현이가 누워서 햇살을 맞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자치기하느라
시끄러운데 소현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롯이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쬐며 편안한 점심 시간을 즐기고 있어 저절로 선생도 소현이 따라
바닥깔개에 누었어요.
"우리 소현이가 제대로 가을 햇살을 즐기네.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해요."
"그렇군. 소현이는 자치기 안해?"
"별로요. 저는 책읽기가 가장 좋아요. "
한참을 소현이랑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태인이가 오더니 소현이 옆에 누워서 둘이 뒹굴며 장난을 칩니다. 참 예쁜 아이들입니다.
1시 10분, 청소 시간이 되자 곳곳에서 놀던 아이들이 저마다 맡은 곳으로 가서 청소를 해요. 종민이는 순돌이 청소인데 윤영이 누나가 없어서
혼자 다 한다고 투덜대지만 끝내 혼자 순돌이 똥도 치우고 물도 주고 그래요. 마당 정리 하는 거 돕고 마당 밖 창고쪽에서 물건을 찾는데 큰 밤이
위쪽에 보입니다. 지난번 푸른샘 아이들과 한 번 둘러본 마당 옆산 밤나무 아래에 밤이 잔뜩 떨어져 있어요. 한 개 두 개 줍다보니 바지 주머니가
가득 찹니다. 마당에 있던 규태와 종민을 불러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금세 와서 같이 밤을 주워요. 셋이 잠깐만에 모두 새참이 될만큼 밤을
주웠습니다. 어제도 먹었는데 오늘도 먹고 날마다 밤을 먹는 재미가 좋습니다. 부엌으로 가서 씻어 놓은 다음 조한별 선생에게 오늘 새참으로 쪄달라고
부탁하고 헤엄하러 나가는데 역시 종민이가 밤 많이 달라고 해요. 내일도 뒷산 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헤엄마치고 돌아와 마침회를 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선생 칭찬을 합니다.
"너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이 누구야?"
"전정일 선생님이지."
"나도 그래."
"선생님,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1학년 선생님이 누군지 알아요?"
"글쎄. 선생님이 좋아하는 이오덕 선생님, 임길택 선생님이 생각나긴 해."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1학년 선생님은 전정일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는데."
"와 어머니 아버지들이 선생님 칭찬을 진짜 많이 했네. 정말 고마운데."
"진짜예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1학년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낮부끄러워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는데 참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스승을 높이고 아이들이 스승을
믿을 수 있도록 교육의 중심을 잡아주시는데 과연 나는 그런 선생으로 살아가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훌륭한 부모님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부족한 선생 칭찬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스승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새삼 부모된 자로 자세와
태도를 가다듬습니다. 나는 내자식에게 스승 칭찬과 믿음을 그렇게 쏟아부었는지 곰곰히 되돌아보니 우리 푸른샘 부모님들만큼은 아닌 것 같아 참
부끄럽습니다. 칭찬이 독이 될 때도 있지만 굳건한 믿음을 담은 따듯한 말이 그 사람을 세워줄 때가 많은 삶입니다.
첫댓글 ㅎㅎ 선생님~~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