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키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여자가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미팅 같이 나가면 완전 몰표 받는 녀석이 있었는데 키가 한 184cm 쯤 됐나? 그거 순 바람둥이에 솔직히 능력이고 뭐고 없는데도 다 그쪽으로만 몰리는 거 보면 여자들한테 짜증나기도 하고, 보는 눈이 그렇게 없나 싶어 불쌍하기도 하고.” (강창O, 26)
“키 작은 사람 중에 여자친구 있는 애가 별로 없고, 30대도 여자친구 없는 사람들 보면 대개 다른 건 별 문제가 없는데 키가 작은 사람들이 많은 듯.” (안국O, 32)
“자기가 작으면 자기가 작으니까 큰 남자가 좋다고 하고, 자기가 크면 또 자기가 크니까 큰 남자가 좋다고들 하니 대체 키 작은 남자는 어쩌라고?” (배규O, 32)
여자들이 제일 선호하는 키는 보통 178~180cm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발표된 한국소아발육표준치에 따르면 성인이 됐을 때 남녀의 평균 키는 남자 173㎝ 정도. 실제로 군 입대 시 실시하는 징병 검사 결과를 봐도 171~175cm가 제일 많아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현실을 들어 남자들은 여자들의 ‘키 큰 남자 선호’ 취향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격하게 모자라는 일이라고 말한다.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는 여자에게는 헛바람만 들었다고 질타를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원초적 본능?
보통 여자가 키가 큰 사람을 선호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원시 수렵 사회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수렵 사회에서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는 건 사냥을 좀 더 잘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잘 먹어서 크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능력과 재력을 동시에 알 수 있는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21세기는 창 던져서 식량을 구하는 그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현재의 연구 결과 역시 키가 능력과 연관된다는 우울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2004년 플로리다 대학의 티모시 저지 박사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대니얼 케이블 박사 팀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지도자의 자질은 키 큰 사람에게 많이 부여된다고 한다. 키 큰 사람들이 소속집단을 보호할 능력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예 키와 연봉의 연관관계를 수치로 나타내기도 했다. 키가 1인치(2.54센티미터) 차이 나면, 연봉이 789달러가 더 많다는 것이다. 특히 그 차이는 사람을 대하게 되는 관리직과 영업에서 컸다.
여자들의 변 - "사실과는 달라"
“남자가 가슴 큰 여자 좋아하는 것 같은 거죠. 크면 좋지만 작아도 어쩔 수 없는. 키 큰 남자 좋은 건 그냥 이상일 뿐이지, 그렇다고 다 키 큰 남자 사귀지 않아요.” (배민O, 24)
“남자는 예쁘면 다른 거 다 용서된다고도 하지 않나? 여자 중에는 얼굴보다 키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이국O, 28)
“나보다 작지만 않으면 돼요. 다만 적어도 내가 하이힐을 신어도 될 정도를 생각하다보니 말로 할 땐 수치가 좀 올라가는 거지.” (임제O, 21)
“제가 바로 180cm 이하는 연애 대상으로도 안 봤던 사람인데, 모임에서 정 든 남자가 키가 170cm예요. 나랑 똑같은 키라서 처음엔 신경도 안 썼는데 인간성에 반해버리고 나니 키고 뭐고 안 보여요.” (김민O, 29)
“진짜 잘 생기고 키 큰 그야말로 킹카랑 사귀어보기도 했는데, 외모 진짜 한때예요. 같이 다니면 뿌듯하고 그런 건 있었는데 이건 뭐 말이 통해야지. 키 큰 거 여전히 좋긴 하지만, 다른 게 하나도 안 맞는데 키만 보고 사람 좋아하진 않아요.” (이지O, 32)
“키 너무 크면 눈높이가 안 맞아서 올려다보기도 힘들어요. 사람이 눈을 보고 말해야지. 내려다보느라 올려다보느라 둘 다 피곤해요. 무조건 키 큰 게 좋은 게 아니라 전 저보다 10cm 정도 큰 남자가 좋더라구요.” (장경O, 25)
“뭔가 듬직하지 않나? 안겨도 폭 감싸 안기는 게 기분도 좋고, 같이 걸어가면 든든하고요. 정장 입으면 아주 제대로죠.” (박아O, 22)
그저 ‘기왕이면 다홍치마’
무조건 키 큰 남자를 좋아할 것이라는 남자들의 생각과는 현실은 좀 달랐다.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키 큰 사람이 더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키가 큰 것만으로 좋아하진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것. 키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키도 큰 남자 - 키만 작은 남자 - 키만 큰 남자 - 키도 작은 남자> 순이라는 얘기다.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듬직하다, 멋있다, 같이 섰을 때 보기 좋다, 나중에 유전적으로 좋을 것 같다 정도. 하지만 눈에 콩깍지가 쓰이면 키고 뭐고 안 보인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자신이 키가 작아서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키만 탓할 것이 아니라 능력을 키우고 인간성으로 여자를 사로잡는 편이 빠르다. 무조건 키가 커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는 눈 없는 여자라면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매력 있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남자는 키가 작아도 여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키가 관건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남자들의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위에서 소개한 키와 연봉 관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박사의 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한다.
“키 큰 사람이 관리직과 영업 협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신체크기가 관건이었던 원시시대의 산물로 보인다. 또 키가 크면 자신감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실적이 좋아지는 측면도 있다.”
* 사진: 영화 <슈렉>, <두 사람이다>
글/ 젝시인러브 임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