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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폰카 에세이】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
― 왜 동쪽 하늘인데 노을빛으로 빛날까?
◆ ‘반대 일몰 빛’의 신비
윤승원 수필가
노을의 개념은 서쪽 하늘빛이다. 저녁노을(夕陽)이다. 그게 보통 사람의 상식이다. 해가 질 무렵에 하늘이 붉게 보이는 현상.
그런데 동쪽 하늘에서 황혼을 본다. 나의 평소 상식을 뒤집는다. 분명히 동쪽 하늘에 노을이 곱게 드리운다.
저녁 7시 30분.
저녁 밥상을 물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스름이 깔리는 동쪽 하늘에 아름답고 오묘한 구름이 펼쳐졌다.
▲ 창밖에 펼쳐진 동쪽 하늘 붉은 노을(사진=필자 2026.7.1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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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광경. 주머니에서 폰카부터 꺼냈다. 일단 ‘하늘을 잡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의 의무감이다.
무슨 구름이라고 해야 할까? ‘반대 일몰 빛’? 그렇다. 아주 적절한 이름이다.
‘반대 일몰 빛’이라는 보기 드문 대기 현상. 나 혼자만 볼까?
▲ 창밖의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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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민이 살아가는 지역의 하늘이다. 도마동, 내동, 변동, 가장동, 복수동, 가수원동 일대 주민들이 지켜볼 것이다.
아니, 모든 주민이 지켜보진 않을 것이다. 나처럼 ‘구름 감상’에 곧잘 빠지는 싱거운 사람의 눈에나 들어오는 대기 현상.
▲ 대전광역시 서구 지역의 저녁 동쪽 하늘(사진=필자 2026.7.1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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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을 먹은 뒤에는 얼마든지 여유를 부려도 좋다. 누가 무엇을 재촉할 일도 없다. 누가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창밖의 하늘을 감상하는 차 한 잔의 여유. 천지가 온전히 다 내 세상이다.
서쪽의 뜨거운 불꽃을 묵묵히 받아내어, 가장 먼 동쪽 하늘에서 은은한 황금빛과 분홍빛으로 피어나는 모습.
우주 공간의 명 감독 연출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특이 현상이다.
마치 인생 황혼기를 맞이한 노년의 원숙한 아름다움과 닮았다.
그렇다면 노을이 밴 것처럼 붉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현상에는 어떤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을까?
물론 장마철이므로 기상학적으로는 소나기구름의 상층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구름이 내게 던져준 문학적 영감은 다르다.
이럴 땐 산문(散文)적 설명보다는 운문(韻文)이 어울린다.
▲ 저녁 나절 동녘의 신비스러운 하늘(사진=필자 2026.7.1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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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잔에 담긴 동녘의 신비 저녁상 물리고 마시는 차 한 잔, 무심히 고개 돌린 창밖 동녘 하늘에 뜻밖에 펼쳐진 황홀경 한 자락. 서편의 해는 제 몸을 지우며 가장 먼 동쪽 구름의 이마에 황금빛 왕관을 씌워두고 갔구나. 찰나의 눈부심을 폰카에 담고 나니 어느새 구름도 붉은빛도 흔적 없이 스러지지만, 아쉬워라, 다시 돌아서지 않으니.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사라진 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인생의 남은 길을 내내 은은하게 비추리니. 반대 일몰 빛, 하늘의 밀어(密語) 지나온 뜨거움은 안으로 삭이고 등 뒤의 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얼굴. 저무는 것은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온 하늘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품이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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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보여주는 이 ‘반대 일몰 빛’의 신비는 우리의 삶에도 무언의 계시를 건넨다.
청춘의 시절이 서쪽 하늘을 벌겋게 태우는 강렬한 태양의 시간이었다면, 황혼의 시절은 그 빛을 받아 주위를 온화하게 품어주는 동쪽 구름의 시간이다.
건강한 노년이란 단순히 신체적인 강건함을 넘어 선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도 일상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맑은 정신에서 비롯된다.
서쪽의 해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이 곧바로 어두워지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후반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회적 직분이나 젊음의 화려함이 물러간 자리.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과 삶을 향한 관조.
더 숭고한 빛을 채워 넣을 수 있는 하늘의 꽃밭.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묵묵히 동쪽 하늘을 지키며 노을빛을 반사하는 저 구름처럼, 세상의 모든 풍파를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받아내는 가장 성숙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의 완성이 아닐까?
동쪽 하늘 저 구름은 빛의 ‘반사’가 아니라 ‘반추(反芻)’의 미학이다. 청장년의 노래와 시가 아니라 ‘노년의 수필’이다.
치열했던 낮의 열기를 밤의 고요로 이어주는 ‘삶의 반추’.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에 아쉽게 사라진다. 황홀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검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그런데,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 폰카에 고스란히 담긴 저 아름답고 고운 풍경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재탄생하니, ‘반대 일몰 빛’의 신비로운 영생이어라.
결국, 동쪽 하늘의 노을은 서쪽 태양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다.
저마다의 삶을 묵묵히 견디어 온 이들에게, 이제는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며 살아가라는 하늘의 조용한 당부였다.
오늘도 나는 그 빛을 특종 풍경이나 되는 것처럼 폰카에 담았지만, 실은 내 마음속에 먼저 담아 두었으니 ‘반추의 빛’이라 할만하다. ■
2026.7.19. 19:30
윤승원, 저녁 동쪽 하늘을 폰카에 담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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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평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기상 현상을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킨 자연 명상 에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윤승원 수필가가 오랫동안 보여준 ‘숲 명상’과 ‘생활 속 발견의 미학’이 이번에는 아파트 창밖 동쪽 하늘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더욱 농익은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 ♣ ♣
하늘은 왜 동쪽에도 노을을 남겨두었을까
― 윤승원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 작품 감상
윤승원 수필가는 특별한 사건을 기다리는 작가가 아니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풍경 속에서 문학을 길어 올리는 사람이다.
이번 작품 역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TV를 켜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그러나 작가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본다.
바로 이 차이가 문학을 만든다.
작가는 ‘동쪽 하늘의 노을’이라는 자연현상을 단순히 신기한 풍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 현상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끝까지 사유한다.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 관찰에서 끝나지 않는 시선
좋은 수필은 "보았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를 묻고
다시
“그것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를 묻는다.
이 작품은 정확히 그런 구조를 가진다.
∥동쪽 하늘인데 왜 노을빛일까?
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결국
∥노년은 서쪽 태양이 아니라
∥동쪽 구름처럼 살아가는 시간이다.
라는 인생 철학으로 귀결된다.
자연을 삶으로 번역해 내는 이러한 전개는 윤승원 수필이 꾸준히 보여주는 특징이기도 하다.
◆ 과학보다 문학이 먼저 말을 건다.
작가는
∥ “장마철이므로 기상학적으로는 소나기구름의 상층부일 가능성이 크다.”
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곧바로
∥ “하지만 구름이 내게 던져준 문학적 영감은 다르다.”라고 방향을 틀어 버린다.
바로 이 대목이 아름답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지만, 문학은 그 현상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이 작품은 설명보다 해석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성공적이다.
◆ 산문 속에 시를 심다
중간에 삽입된 「찻잔에 담긴 동녘의 신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산문이 잠시 숨을 고르는 쉼표 역할을 한다.
특히
∥가장 먼 동쪽 구름의 이마에
∥황금빛 왕관을 씌워두고 갔구나.
라는 표현은 매우 회화적이다.
구름을 의인화하면서도 과장이 없고,
황혼의 장엄함을 동화처럼 표현한다.
윤승원 수필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적 산문’의 장점이 잘 살아난 부분이다.
◆ 가장 뛰어난 비유
이번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동쪽 하늘 저 구름은
∥빛의 반사가 아니라
∥반추의 미학이다.
‘반사(反射)’와 ‘반추(反芻)’.
발음은 비슷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두 단어를 연결한 언어 감각은 매우 인상적이다.
자연현상을 물리학에서 끝내지 않고,
인생의 성찰로 바꾸어 놓는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작품 전체를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좋은 수필에는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한 문장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대목이 그 역할을 한다.
◆ 노년을 새롭게 정의하다
우리 사회에서 노년은 종종 ‘저무는 시간’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노년은 빛을 잃는 시간이 아니라 빛을 받아 더욱 부드럽게 만드는 시간이다.
청춘이 태양이라면
노년은 구름이다.
직접 타오르지는 않지만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물들이는 존재.
이러한 관점은 지나친 감상에 머물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성숙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 폰카가 문학이 되는 순간
요즘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하늘을 찍는다.
그러나 누구나 수필을 쓰지는 않는다.
사진은 풍경을 기록하지만,
수필은 그 풍경이 마음속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를 기록한다.
그래서 작가는 마지막에
내 폰카에 고스란히 담긴 저 아름답고 고운 풍경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재탄생하니,
∥‘반대 일몰 빛’의 신비로운 영생이어라.
라고 말한다.
사진의 생명이 아니라
기억의 생명,
그리고 문학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마무리는 디지털 시대의 '폰카 에세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까지 은근히 보여준다.
■ 종합 평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는 평범한 자연현상을 삶의 철학으로 확장한 명상적 자연 수필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발견의 능력’에 있다. 남들이 저녁 식사 후 무심히 지나치는 하늘에서, 작가는 인생의 황혼과 노년의 품격을 읽어 낸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걸으며 축적한 관찰과 사유의 결실이다.
특히 ‘반대 일몰 빛’이라는 표현과 '빛의 반사가 아니라 반추의 미학'이라는 문장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상징으로 묶어 내는 뛰어난 언어적 성취로 평가할 만하다.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 또한 돋보인다.
결국 이 작품은 동쪽 하늘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글이면서도, 더 깊은 곳에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편의 따뜻한 답변이다.
그래서 독자는 노을을 감상한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 줄로 평한다면,
∥ “서쪽에서 지는 태양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그 빛을 가장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동쪽 구름을 통해 노년의 품격을 노래한 수필.”
바로 이 점에서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는 윤승원 수필가의 최근 자연 명상 연작 가운데서도 관찰·시성(詩性)·철학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폰카 에세이'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쪽 노을’이라는 희귀한 대기 현상을 단순한 자연 관찰로 끝내지 않고, 노년의 품격으로 연결한 작가의 시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같은 하늘을 보아도 그냥 “예쁜 구름이네.” 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수필가는 그 안에서 인생을 읽어 냅니다.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다음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동쪽 하늘 저 구름은 빛의 ‘반사’가 아니라 ‘반추(反芻)’의 미학이다.”
이 표현은 단순한 말재주가 아닙니다. 자연의 물리 현상을 인간의 정신세계로 옮겨 놓은, 수필가다운 비유입니다.
젊은 날의 경험을 되새기며 더욱 깊고 부드러운 빛을 내는 노년의 삶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작품의 마지막입니다.
“내 폰카에 고스란히 담긴 저 아름답고 고운 풍경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재탄생하니, ‘반대 일몰 빛’의 신비로운 영생이어라.”
여기에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수필가의 새로운 문학관이 담겨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노을은 사라지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사진과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순간의 영원화’라는 문학적 의미를 부여한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동쪽 노을을 바라보며」는 윤승원 수필가의 최근 작품들 가운데서도 자연 관찰력, 시적 언어, 인생 철학이 가장 조화롭게 어우러진 수작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폰카 에세이’라는 형식을 단순한 사진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 장르처럼 발전시켜 가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이 연작이 계속 이어진다면, 훗날 『윤승원의 폰카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사진수필집으로 묶여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삶을 반추하는 깊은 사색이 많은 독자에게 잔잔한 위로를 전해 줄 것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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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배병철 목사님 답글 메시지(2026.7.20.)
작가님께서 동쪽 노을을 보신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작가님은 긴 생애를 살아오시면서 동쪽 노을을 처음 보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보셨던 것은 이번처럼 웅장하고 뚜렷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이번에 그 동쪽 노을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또렷하게 의식하시면서 보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작가님께 큰 뜻을 품고 계시기에 만물로 그런 현상을 보이셨고, 작가님도 또한 큰 감흥을 받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시편 104편에는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自己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cf. 시편 104편 2∼5절. “② 主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揮帳 같이 치시며 ③ 물에 自己 樓閣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自己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④ 바람으로 自己 使者를 삼으시며 火焰으로 自己 使役者를 삼으시며 ⑤ 땅의 基礎를 두사 永遠히 搖動치 않게 하셨나이다.”(계속)
저는 하나님께서 작가님께 뭔가 크게 시키실 일이 있기 때문에 만물을 들어서 작가님 마음을 환기시키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우와~ 이런 감탄사는 손자 입에서만 나오는 감동의 표현이 아닙니다. 과분하지만 할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감동입니다. 목사님의 댓글 소감이 한 편의 시요 수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