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사의 현장 >
도량청정무하예 (道場淸淨無瑕穢)
도량과 법당 가꾸기에 온 힘을 쏟는
필라 화엄사 법장스님
글 | 김형근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아시아 사람들의 이민이 많아지면서 모든 아시아 전통불교 국가의 스님들은 이민자들의 뒤를 따라 미국에 오게 된다. 사찰들은 대개 조그만 집을 세를 얻어 몇 년 살다가 조금 더 큰 장소로 월세 혹은 구입하여 이전을 한다. 이곳에서 또 몇 년 지내다가 더 큰 장소로 이전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국 나라 전통 사찰을 건립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기존의 건물을 개조해서 법당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개조하는 경우는 아시아 전통 사찰들의 법당처럼 네모반듯한 법당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필라델피아 화엄사의 경우이다. 1985년 5월에 뉴욕으로 입국한 법장스님은 뉴욕시에서 포교활동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원각사, 콜로라도 주 덴버 용화사에서 포교활동을 한 스님이다. 이런 경험을 10년 넘게 한 후에 최후로 정착한 곳이 현재 필라델피아 시 외곽지대에 있는 화엄사이다. 1996년 10월에 개원식을 하였다. 로스엔젤레스나 뉴욕 같이 한인들이 많은 지역보다는 한인들이 적어서 포교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화엄사는 원래 농기구나, 수확한 농산물을 저장하고, 일하면서 잠시 쉬는 농막(Ranch-Style house)인 건물이었다. 법장스님이 이 농막을 사서 수리하여 사찰로 용도를 변경한 것이다. 농막이기 때문에 차가 일 층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로 된 건물이었다. 일층 가운데에 설치된 계단을 이용하여 이층으로 올라가면 이층에 부엌이 있는 구조였다. 스님은 이 계단과 이층의 부엌을 없애고 이층에 있던 계단입구를 메워 법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리고 일층에서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건물 한쪽 옆으로 새로 만들었다. 이층은 원래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는데 그 카페트를 걷어내니 나무로 된 마루가 나와 이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닦아서 현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처음 카페트를 걷어내자 수많은 부러진 칼들이 나왔다고 한다. 원래 카페트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작업하면서 부러진 칼날을 그냥 카페트 밑에 놓고 덮은 것이다.
법장스님이 이 화엄사를 개원하기 전에 한국에 나가 초산큰스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초산스님은 미국에 잠시 다녀간 스님이었다. 법장스님이 인사를 가자 초산스님은 “미국에 법당이 있는가 ?”라고 책망하듯이 법장스님에게 물었다.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초산스님은 “법당 위층에서 하수도 물이 내려오는데 그게 무슨 법당이냐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법장스님은 “예, 저는 잘 하겠습니다. 큰스님!”. 하고 미국에 돌아와 화엄사를 개원하였다.
개원 당시 화엄사 법당 개조 작업은 신도들이 돈을 내고 신도 중에 한국에서부터 목수일을 하던 사람이 있어 그 목수가 맡아 하였다. 신도들은 일층이 이층보다 넓으니, 일층에 법당을 하자고 하였지만 법장스님은 초산스님과의 대화를 생각하면서 좁지만 이층을 법당 장소로 정했다. 법당을 꾸미는 작업은 신도들이 돈을 내고, 그 목수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스님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조 작업을 할 때 이층에 있던 부엌을 뜯어내자 천정을 받칠 대들보가 필요했다. 그런데 목수가 대들보 치수를 잘못 계산하였다. 부처님 앉아 계시는 머리 바로 위로 대들보 기둥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더해 기둥 길이를 잘못 계산하여 그 길이가 조금 짧았다. 그래서 대들보 기둥의 짧은 부분을 받쳐주는 기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뒤 부분에 기둥을 세우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사각형이 되지 않아 이상한 형태의 법당이 되었다. 좁은 공간에, 네모나지 않은 법당이라 법장스님은 전혀 만족할 수 없는 법당이었지만 신도들이 돈을 내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뭐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미국의 농막(Ranch-Style house) 개조해서 만든 법당이기 때문에 한국식 사찰 구조로는 어색한 점이 많은 화엄사였다. 법장스님은 항상 이 구조를 어떻게 하면 잘 개조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화두처럼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러면서 법당 장엄불사를 하기 보다는 먼저 밖 도량을 정비하여 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큰 바위돌과 자갈을 구입해오고 나무를 사와 도량의 조경을 산사 분위기와 수행처 분위기가 나도록 몇 년을 걸쳐 시간 나는대로, 틈나는 대로 혼자서 작업을 하였다.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불사금으로 내는 돈은 받았지만신도들에게 돈 얘기는 먼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당 곳곳에 자갈을 깔아 지반을 다지고, 무거운 바위 돌도 대부분 혼자서 도량 곳곳으로 옮겨 운치나게 조성하였다. 그리고 연못도 만들고, 명상 터도 만들었다. 스님은 이렇게 조성하는 근거로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高嶽峨巖 智人所居 碧松深谷 行者所捿(고악아암은 지인소거요 벽송심곡은 행자소서니라)를 들었다. 높은 산 바위 솟은 곳은 지혜로운 이 살 곳이요, 푸른 솔 깊은 계곡은 수행자들이 깃들 곳이라는 뜻이다. 법장스님은 “경전 말씀대로, 큰스님 말씀대로 나는 살려고 하니까, 지금의 화엄사를 이런 분위기를 내도록 하려고 한다”고 했다. 스님이 도량을 이렇게 가꾸는 것은 그냥 이런 큰스님들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한다는 것이다.
또 천수경 도량찬에 나오는 도량청정무하예 (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 (三寶天龍降此地)처럼 항상 도량을 청정하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도량청정무하예 (道場淸淨無瑕穢)란 '도량이 깨끗해져서 티끌과 더러움이 없어진다'는 뜻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량이 깨끗해진 것은 천수경 중에 도량찬 앞 부분에 나오는 <다라니>를 통해서 즉,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과 자비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 천수경 경전의 흐름으로 한 해설이다.
필자가 오랜 기간을 걸쳐 관찰한 경험에 의하면 법장스님을 비롯하여 뉴욕 원각사 지광스님, 백림사 혜성스님, 뉴욕 한마음선원 스님들, 뉴욕 대관음사 대륜스님, 미주금강선원 범휴스님, 조오지아 불국사 선각스님 등을 비롯하여 많은 스님들이 이 도량찬 구절과 같이 도량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작업을 손수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도량을 청정하게 가꾸고, 초산스님이 미국의 법당에 언급한 것을 생각하면서 법당을 격식에 맞게 하는 것. 이것을 법장스님은 항상 마음에 담고 살고 있다. 그러나 미국 건물을 개조해서 하는 불사는 녹록하지 않다. 화엄사 법당의 중앙에 부처님 모시는 불단 탁자를 뉴욕의 사는 목수가 짜 가지고 왔는데 크기와 높이가 법당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도 또한 문제였고, 후불탱화는 서울 정릉의 보암사에 있던 오래된 탱화다. 법장스님 도반으로 보암사 주지스님이 새로 후불탱화를 조성하고, 이 고탱화를 스님에게 기증하여 화엄사로 오게 된 것이다.
화엄사 주불과 좌우 협시불은 한 사람에게 제작한 것이 아니다. 주불을 먼저 모시고 법회를 하다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범경스님이 고려사 주지 시절 2003년 고려사 이전을 기념하는 이진형 작가의 불상 전시회를 하였는데 이 때 지장보살과 미륵반가상을 모시고 왔다. 삼존불을 한 곳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삼존불이 앉는 단을 스님이 손수 제작하였다. 그런데 이 불상들은 동으로 제작한 것이어서 매우 무거워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스님은 “부처님 내려 오십시오” 하고 불단 밑으로 이동시키고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는 작업을 마치고 “부처님 이제 오르십시오”라고 이 불상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면서 혼자서 불단 위로 또 올렸다. 보통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스님에 의하면 “삼매에 들어 무아의 상태에서 혼자서 했다”고 한다.
원래 법장스님은 매우 건강하고 체력도 매우 좋은 상태였는데 지난 2018년 8월에 죽염과 땅콩을 함께 먹고 배탈이 나고 몸에 이상이 생겼다. 당시에 스님을 본 한의사는 죽기 아니면 반신불수가 된다고 할 정도였다. 한동안 중풍환자처럼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 스님 스스로 침도 놓고 치료를 하여 이제는 거의 완치가 되었다. 신도들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한다. 이제는 건강을 회복했다고 해도, 동으로 만든 무거운 불상을 혼자 힘으로 불단 밑으로 올리고 내리는 것은 어쨌든 예사 일은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잠시 건강에 이상이 왔지만 그 후로 더욱 더 건강에 신경을 써서 이제는 군살이 전혀 없는 몸으로 변했으며 또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한시를 짓는 능력도 생겼다. 근래에 한시가 터진 것이라고 한다. 북방불교권의 한문불교경전은 천년을 넘는 시간에 걸쳐 천재적인 사람들에 의해 다듬어진 글이다. 그래서 역대 조사들은 한결같이 한문으로 오도송과 열반송을 짓고, 조사 어록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에는 한문으로 된 게송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시절 출가하여 한문으로 된 경전으로 공부한 법장스님은 한시를 짓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도 한시가 나오지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한시가 터졌다고 한다. 한시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100여 편의 한시를 지어 놓았다. 이 한시들을 모아서 출판을 할 예정이다.
면모를 일신한 법당
6월초 오랜만에 들려 본 화엄사는 2020년 화엄사와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일층에 모셔져 있던 일천 지장보살 불상이 이층의 법당 뒤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삼존불불상 뿐만 아니라 천개의 지장보살 불상을 일층에서 이층으로 옮기는 작업도 법장스님 혼자서 다 했다고 한다. 이런 성물을 이동하는 일은 스님들이 해야 하고, 보통 사람들이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법장스님의 지론이다. 방문 당일에도 법당 마루를 정비하는 작업을 스님 혼자서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불단 앞면에 색칠을 하고, 마루도 니스 칠을 손수 하여왔다. 이런 노력으로 법당 구조가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매일 같이 꾸준하게 도량청정무하예를 하는 법장스님. 1969년도에 서경보스님이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서 한국불교와도 인연깊은 필라델피아. 이 필라델피아 시 근교에 있는 화엄사에 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져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서원한다.
주소: 10 Layle Lane Doylestown, PA 18901
Tel : 267-272-9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