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불교혁신 운동과 불교가사의 관련 양상
- 鶴鳴의 가사를 중심으로 -
金 鍾 眞
Ⅰ. 머리말
Ⅱ. 근대불교혁신운동과 불교가요의 전개양상
Ⅲ. 鶴鳴의 禪農並行運動과 가사의 창작
Ⅳ. 학명 가사의 문학적 특성
1. 이원적 주제의 조화 - ‘나’의 중층적 의미 |
|
2. 노동과 가창 리듬의 조화
3. 禪詩的 표현 기법의 활용
Ⅴ. 鶴鳴 가사의 문학사적 위상
Ⅵ. 맺음말 |
Ⅰ. 머리말
본 연구는 1900년에서 1920년대 말까지 전개된 근대불교혁신운동과 불교가사의 관련양상을 고찰하되, 특히 鶴鳴禪師(1867-1929)의 활동과 그가 창작한 가사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고려말 나옹화상의 <서왕가>에서 그 형식적 가능성이 실현된 歌辭는 조선전기에 사대부들의 정서를 담아내는 장르로 발전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의 가사가 주로 산출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서정적, 서사적, 교술적 성격을 극대화한 가사가 산출되었는데, 특히 18,9세기에 이르러 각 종교마다 교리를 전파하는 주요 포교수단으로 가사를 활용함으로써 교술적 가사의 외연이 가장 두드러지게 확장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이전의 가사문학사에서 주목되는 양상은 천주가사의 본격적 전파와 동학가사의 등장이다. 천주교는 이미 18세기 말부터 교리를 가사형식으로 만들어 교리 전파의 주요 매체로 활용하였다. 동학은 西學인 천주교를 대타적으로 인식하고, 천주가사에 상응하는 동학가사를 지어 경전으로 활용하였다. 천주가사에 담겨있는 불교에 대한 비판, 동학가사에 담겨있는 천주교에 대한 비판 등은 이 시기에 가사를 통해 전개된 종교운동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1)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종교가사의 전통적인 형태와 기능은 각 종교가 처했던 현실적인 여건의 변화와 함께 변모하였다. 그러나 각각의 종교가사가 변모하는 양상은 각 종교의 위상과 외재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천주가사는 1850년대에 崔良業에 의해 교리해설과 전도에 필요한 일련의 가사가 창작2)되어 유통되었는데,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얻은 이후(1886)에는 가사의 내용이 교리의 직접적인 해설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1906년에 <경향신문>과 <경향잡지>가 창간되면서 천주가사가 인쇄된 형태로 발표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가사는 각종 기념식이나 경축식 때 불렀던 축가들이 포함되었으며, 형식적으로도 분절되거나 4.4조의 4음보의 율격이 변형되는 등, 가사형식의 변모 내지는 해체현상을 보여준다.3)
1860년대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동학의 교리를 가사를 통해 다듬었고 이를 대중들에게 전파하였다. 그러나 창도와 함께 이어지는 교주의 체포, 동학혁명으로 인한 박해, 교단의 분파 등으로 인하여 동학은 천주가사처럼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내는 가사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또한 동학은 다른 종교와 달리 가사가 곧 유일한 경전이어서 가사의 내용이나 형식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동학의 경우 여전히 교리를 체계화하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는데, 1920년대에 김주희가 창작한 동학가사는 그 활용도나 분위기 내지는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전 시대의 교조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천주가사와 마찬가지로 불교가사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창작된 불교가사의 성격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지속적으로 강조되던 염불신앙이 고조되면서 19세기에는 염불을 권장하는 가사가 널리 구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경전의 내용이나 체제를 원용한 가사가 창작되었다.4) 이와 달리 20세기 초엽에는 참선을 권장하거나 禪 혁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가사가 창작되어 불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킴으로써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불교계의 변화를 주도했던 인물로는 경허(鏡虛. 1849-1912) ․ 용성(龍城. 1864-1940) ․ 학명(鶴鳴. 1867-1929) ․ 만해(萬海. 1879-1944) 등이다.5) 이들은 한국불교에 오랜 기간 잠복해 있던 禪을 부흥시켜 근대불교계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였으며, 근대불교혁신운동의 이상을 우리의 시가 장르를 활용하여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전 시대와 다른 공통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특히 鶴鳴禪師가 창작한 불교가사는 이 시기의 근대불교혁신운동의 이념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가사를 불교혁신의 매체로 활용하는 면에서 전례 없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학명의 가사는 근대전환기의 불교가사의 변모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가 남긴 불교가사는 <涅槃歌(일명 圓寂歌)> <解脫曲> <參禪曲> <往生歌> <新年歌> <望月歌> <禪園曲(일명 禪院曲)> 등 7편이다. 이들 작품은 선사의 遺稿인 ‘白農遺稿’에 필사된 것으로, 이 중 <禪園曲>을 제외한 6편은 선사 입적 후 佛敎紙(1929. 9~1930. 3)에, <禪園曲>은 一光6) 제2호(1929)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圓寂歌> <往生歌> <新年歌> 세 편은 대표적인 불교의식집인 釋門儀範7)에 다시 수록되었다.
학명의 가사에 대한 국문학계의 관심은 이상보가 한국불교가사전집8)에서 <선원곡>을 제외한 6편의 가사를 소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동일은 한국문학통사 4권에서 학명가사의 특징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인상 깊은 표현으로 신앙심을 일깨우면서 세간의 얽힘을 일거에 부정하지 않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했기에 그동안 많이 볼 수 있었던 상투적인 불교가사와는 다른 경지에 이르렀다.”9)는 평가를 내렸다. 최근에 김종진은 <禪園曲>을 발굴, 소개하였고10), 최영희는 <白羊山歌> 등 불교지에 소개된 학명의 한시 10수를 학계에 보고한 바 있다.11) 그러나 김종진의 경우에는 <禪園曲> 한 작품에 국한하여 논의를 전개하였고, 최영희의 경우에는 가사와 한시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을 위주로 하고 있어, 학명가사의 전체성을 부각시키는 데는 각각 일정한 한계를 보인다. 현 단계에서는 근대불교혁신운동의 흐름 속에서 학명 가사의 위상을 점검하고,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에서 학명가사의 내적인 특질을 검토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Ⅱ. 근대불교혁신운동과 불교가요의 전개양상
이 시기에 전개된 근대불교혁신운동은 禪의 부흥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시기는 고려의 普照知訥(1158-1210)이나 太古普愚(1301-1382), 懶翁惠勤(1320-1376)과 조선시대의 淸虛休靜(1520-1604)으로 이어져 온 看話禪(話頭禪)의 전통이 거의 끊어져, 참선의 실천적인 면모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허선사는 해인사(1899)와 범어사(1902-1903)를 비롯한 여러 사찰에서 僧俗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참할 수 있는 참선결사운동(參禪結社運動)을 전개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전국 각지에 禪院과 禪室이 개설되었고, 새로운 선수행의 풍토가 조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12) 경허는 禪수행에 있어 이론적인 면을 추구했던 19세기의 경향에 반기를 들고, 看話禪을 수행할 것을 권함으로써 새로운 시대 변화를 이끌었다. 그가 승려를 포함하여 대중을 위한 선원을 마련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민속불교의 他者로서만 존재했던 일반 대중의 위치를 참선수행과 결사의 주체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경허에 의해 촉발된 참선의 기풍은 그 위세가 자못 커서 전국 각지에 선원과 선실이 개설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1910년대에 이르면 참선의 부흥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참선 풍토의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 조선의 사찰은 외로운 암자나 쇠잔한 절을 제외하고는 절치고 禪室이 거의 없는 곳이 없는 형편이니 어찌나 그리도 선의 풍조가 떨치는 것이겠는가. 그러나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면 반드시 모두가 선을 일으키는 본의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혹은 선실로 절의 명예의 도구를 삼기도 하고, 혹은 선실로 이익을 낚는 도구로 삼는 곳도 있어서 이런 종류의 것이 함부로 나오는데 따라 선실이 차차 많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진정한 禪客이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아주 희귀한 현상을 빚어냈다.13)
한용운이 1913년에 펴낸 조선불교유신론에는 ‘절치고 선실이 거의 없는 곳이 없는’ 상황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1910년대의 선의 대중화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경허에 의해 주도된 참선결사운동의 결과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만해는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禪學館을 건립하여 禪客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14) 만해의 주장이 현실화된 것은 ‘禪學院’과 그 후속기관인 ‘禪友共濟會’을 통해서다. 선우공제회는 당시의 불교계가 ‘禪風을 진작시킬 청정비구 학자들이 수행하기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임을 지적하고 그 타개책을 제시하기 위한 단체였다. 용성, 학명, 만해는 이 두 기관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서서 선의 부흥과 혁신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용성은 1921년에 창설된 禪學院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학명은 1922년에 禪友共濟會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1924년 이후에는 萬海가 선우공제회의 이사로 참여하게 된다. 이처럼 만해와 용성과 학명은 일제치하의 현실에서 선의 부흥과 혁신 및 자립불교의 시대적 과제를 위해 창설한 선학원과 선우공제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 전통의 선풍을 계승하고 혁신하는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 이들은 상호간 교류를 통해 그 이념을 공유하고 실천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15)
한편 만해는 다른 글(「승려의 인권회복은 반드시 생산에서」)에서 ‘수백 년 이래 승려들은 대단한 압박을 받아 사람이면서 사람취급을 못 받았는데 놀면서 입고 놀면서 먹은 것도 그 한 대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근대불교의 혁신은 생산과 포교의 겸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였다.16) 이 같은 만해의 제안은 용성과 학명에 이르러서 ‘禪農佛敎’ 혹은 ‘半禪半農運動’으로 구체화되었다. 용성은 1911년 ‘他宗敎의 포교활동에 자극을 받아’ 서울 도심에 大覺寺를 건립하고 禪會를 개설하여 도시에서의 禪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17) 또 일만 일을 기한으로 참선수행에 정진하는 ‘萬日參禪結社會’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19세기에 건봉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에서 전개한 ‘萬日念佛會’와 대응되는 것으로서, 19세기 염불신앙의 흥성과 대비되는 20세기 초반의 선의 부흥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국불교의 계율파괴와 선의 몰락을 우려하여 자신의 근거지인 大覺敎堂을 임시사무소로 정하고 결사회의 취지를 불교 14호(1925.8)에 게재하여 불교계에 널리 알렸으며,18) 1927년부터 10여 년 간 경남 함양의 백운산과 중국 간도의 용정에서 華果院과 禪農堂을 설립하여 선농불교를 실천에 옮겼다.19)
鶴鳴은 1923년에 내장사를 중건하고 內藏禪院을 운영하면서 반선반농운동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覺皇敎堂(지금의 조계사)의 布敎師로서 각황교당을 禪院으로 변경하여 서울 도심에서부터 禪風을 일으켰다.20)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20세기 초엽의 근대불교혁신운동은 경허, 만해, 용성, 학명에 의해 그 이념이 제시되고 구체화되었다. 경허는 대중들과 함께 참선수행의 결사운동을 전개하여 근대불교혁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만해는 선부흥의 결과로 파생되는 결과에 대해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용성과 학명은 각각 ‘禪農佛敎’와 ‘半禪半農運動’으로 화답하였다. 동시에 주목되는 것은 이들은 자신의 禪적인 정서와 불교혁신의 이념을 서로 다른 장르의 시가에 담아 운동의 매체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鏡虛는 참선결사를 하면서 일반 대중을 위한 가사(<參禪曲> <可歌可吟> <法門曲>)를 지어 참선의 요체와 당부의 내용을 가사에 담아 표출하였다. 萬海는 선시의 표현을 현대시로 승화시켜 고도의 시적인 성취를 얻어내었고, 龍城은 불교혁신의 궁극적인 지향으로 ‘大覺敎’를 창설하고 대각교의 의식을 체계화하는 가요로서 1행 4음보의 두 줄이나 석 줄을 하나의 장으로 하여 分聯해 나가는 창가(<往生歌> <勸世歌> <大覺敎歌> <世界起始歌> <衆生起始歌> <衆生相續歌> <入山歌>)를 지어 직접 작곡한 곡조에 담아 불렀다. 이와 달리 鶴鳴은 반선반농운동의 현장성을 담은 가사를 창작했으며, 수행의 한 방편으로 이를 구연하였다. 그리고 그 표현에 있어서도 가사라는 형식적 제약 내에서 다양한 표현법을 구사함으로써 문학사 영역에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가사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 그 독특함이 있다.
Ⅲ. 鶴鳴의 禪農並行運動과 가사의 창작
학명은 1923년에 거의 퇴락한 상태에 놓여 있던 내장사를 중건하였고, 산 입구 황무지에 良畓 수십 斗落을 개척하여 어려운 사찰 경제를 직접 극복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탁발과 시주에만 의존하던 기존 불교계의 관습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노동과 참선을 병행하는 반선반농운동을 주창한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21) 반선반농운동의 구체적인 양상은 강유문이 1928년 5월에 내장사를 방문하여 남긴 글에 소개되어 있다.22)
1.禪院의 목표는 半禪半農으로 변경함
1.禪會의 主義는 自禪自修하며 自力自食하기로 함
1.회원은 新發意나 新出家를 모집함. 단 久參衲子도 勤性이 有한 이는 還入함.
1.日用은 오전 학문, 오후 노동, 야간 좌선 삼단으로 完定함.
1.冬安居는 坐禪爲主 夏安居는 학문과 노동위주로 함. 단 安居證은 3년 후 수여함.
1.梵音은 時勢에 적합한 淸雅한 梵唄를 학습하며 또 讚佛 自讚 回心 還鄕曲을 新作하거나 唱하기로 함.
선원규정에 따르면 학명은 기존 선원의 풍토에 대해 사뭇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회원으로는 새로 출가한 이를 대상으로 하면서 기존의 승려 중에서는 부지런한 성품이 있는 자에 한해서 가입을 허락했다는 규정은 기존 수행 풍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규정에는 또 학문과 노동과 좌선을 병행하는 ‘반선반농운동’의 양상이 명시되어 있다. 아울러 학명은 지향하는 바를 가사를 통해 적극 표출하였고, 선원의 규칙으로 삼을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범음과 가사를 “時勢에 적합”한 것을 가려 뽑아 학습하고, 또 새로운 노래를 창작하여 부른 것은 반선반농운동이 시대적인 변화에 발맞춘 혁신운동이기에 그의 이상을 구현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가사가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대, 즉 불교계도 당면한 혁신의 요구에 적합한 노래, 나태와 은둔의 노래가 아니라 진취적인 기풍이 느껴지는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학명의 내장선원에서 노래는 운동의 전개와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인용문 중, ‘讚佛’은 찬불가를 뜻하며 그가 새로 창작한 여러 편의 가사를, ‘自讚’은 불교 65호에 소개된 학명의 한시를, ‘回心’은 기존에 전승되던 불교가사 <回心歌>나 <回心曲>을 가리키며, ‘還鄕曲’은 箕城大師의 한문가요인 <念佛還鄕曲>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학명의 반선반농운동은 당시 불교계에 매우 참신하고 혁신적인 불교운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는 碧蓮庵에서 십여 년간 보금자리를 치고 반농반선주의로 때로는 禪園曲을 부르며 호미자루를 들고 김을 매기도 하고, 때로는 해탈곡을 부르며 把定도 하며, 때로는 明月曲을 부르며 看月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23)
내장선원을 내장 승계에 세우고 순진한 소년을 모아 禪理를 보이고 敎學을 가리키며 농업을 힘쓰게 하되 歌舞까지 있어 일하면서 글월을 읽으면서 선을 연구하면서 몸과 마음이 쾌활 쾌활케 되었으니 실로 斯界에 最新案 試業인 동시에 理想的 禪院이라 하겠다.24)
김소하와 강유문의 기사를 통해 내장선원의 지향이 실천을 통한 선의 혁신이었으며, 그러한 이상을 가사 속에 적극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몸과 마음을 쾌활하게 하는’ 새로운 선혁신운동이 1920년대 후반에 불교교단에 상당히 참신한 기풍으로 소개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인용문에 소개된 <禪園曲>과 <해탈곡>은 가사이며, <明月曲>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가사 <望月歌>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해탈곡>과 <망월가>는 모두 16구의 단형의 선시적인 응축미가 압권인 작품으로, 인용문에 소개한 대로 ‘把定’과 ‘看月’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선원곡>은 ‘호미자루를 들고 김을 매기도’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소개된 166구의 유장한 노래로서 학명의 불교혁신운동의 요체가 가장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다.
方便비러 道에든者 古今天下 멧멧인가
時機라 變하니 鶴鳴手中 農器로다
야야우리 農夫님네 農夫되기 닭업다
高樓巨閣 閑逸터니 田中勞力 왼일인가
俗風라 農業하니 外道知見 이아닌가
야야우리 스승님네 僧侶되기 닭업다
終日토록 閑談하고 밤새도록 잠자기네
재조적이 잇다하나 佛法信心 全혀업고
四敎大敎 마첫스나 佛法知見 망연하네
新式文學 갈처스나 山鷄野鶩 되고만다
아하우리 農夫님네 밋친이내 말삼듯소
佛祖소(穴+巢)窟 처부수고 寺刹廢風 改良하세
勞働하고 運動하니 身體라 健康하다
精中工夫 그만두고 요(鬪+市)中工夫 하여보세
인용 단락은 이 작품의 핵심 단락으로 자신의 반선반농 운동도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따른 권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가하게 고루거각에 노닐면서 일하지 않고, 수도한답시고 하루 종일 잠만 자며, 신식 학문을 배웠어도 앵무새 놀음이나 하는 禪家의 弊風을 폭로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과 함께 하는 참선의 소중함을 말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해야 그것이 참노동임을 말하였다. 인용문의 앞 단락에서는 33祖師를 비롯한 많은 조사의 가르침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과 또 조사마다의 權變은 절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님을 역설하였는데, 인용 단락은 이러한 전제에 이어 제시된 결론으로서, 기존의 관습적 수행에 안주하려는 당시의 불교계를 향한 강한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학명의 불교혁신운동에 불교가사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활용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학명의 가사가 불교혁신운동의 매체로서 지니는 의의에 상응하는 문학적인 성취를 보여주는가에 대해 검토할 차례이다.
Ⅳ. 학명 가사의 문학적 특성
1. 이원적 주제의 조화 - ‘나’의 중층적 의미
학명의 가사에는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가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그 의미망을 확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원적가> <왕생가> <신년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원적가>는 열반에 즈음한 화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쉬워하는 대중들에게 그 차별상에 얽매이지 말고 “진실사업”을 행하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惡心毒心 모진사람 날보아서 解放하소
貪欲心이 만흔사람 날보아서 그만두소
利己生活 하는사람 날보와서 操心하소
相愛心이 적은사람 날보와서 同情하소
我慢心이 만은사람 날보와서 改良하소
無常心이 업는사람 날보아서 發心하소
名利場에 허댄사람 날보와서 自覺하소
酒色界에 浮浪子는 날보와서 回心하소
衣食으로 拘束된者 날보와서 心得하소
舊式으로 구든사람 날보와서 革新하소
新式으로 밝은사람 날보와서 詐欺마소
宗敎心이 업는사람 날보와서 發信하소
丈夫心이 업는사람 날보와서 勇斷하소
社會心이 업는사람 날보와서 團結하소
公德心이 업는사람 날보와서 養成하소
奴隸心이 만흔사람 날보와서 獨立하소
慈悲心이 업는사람 날보와서 向上하소 <원적가>
여기에서 ‘악독 악심 모진 사람’, ‘탐욕심 많은 사람’, ‘이기생활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 화자 자신, 즉 “나”를 보아 반성하고 깨우치라는 당부의 말을 간곡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단순히 현상적인 화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노예심이 많은 사람 날보아서 독립하소’의 내용을 “작자가 만년에 일제 치하에서 살면서 이 민족을 깨우치려는 정성의 발로”25)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나”를 단순하게 현상적인 나, 즉 열반에 즈음하여 가르침을 전달하는 화자로만 본 해석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사실은 ‘불성을 가진 나’, ‘본래의 진면목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참된 불성을 보지 못하고 미망에 사로잡혀 있게 마련인데,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本地風光”을 “淸風明月”처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생사의 차별상에 담긴 그 의미를 깨우친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원적가>는 열반하는 화자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반성하라는 의미 외에 불성을 갖춘 나, 본래의 진면목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하기를 당부하는 가사라고 할 수 있다.
가봅시다 가봅시다 조흔國土 가봅시다
天上人間 두어두고 極樂으로 가봅시다
極樂이라 하는곳은 온갓苦痛 전혀업서
黃金으로 이되고 蓮으로 臺를지어
阿彌陀佛 主人되고 觀音勢至 補處되야
四十八願 세우시고 九品蓮臺 버리시사
般若龍船 내여보내 念佛衆生 接引할제
八菩薩이 護衛하고 引路王菩薩 櫓를저며
諸天音樂 가진風流 天童天女 춤을추며
五色光明 어린곳에 生死大海 건너가서
蓮胎中에 化生하고 無量福樂 受用하며
너도나도 差別업시 畢竟成佛 하고마네
壯하도다 우리兄弟 同共發心 大願으로
虛送歲月 하지안코 하로밧비 阿彌陀佛
唯心淨土 어데이며 自性彌陀 누구런가
千念萬念 無念으로 返照自性 間斷업시 <왕생가>
<왕생가>도 단순하게 극락에 왕생하자는 내용으로 읽을 것이 아니다.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의 48대원으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권염불의 관습적인 주장이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있으나, 마지막 행에서는 마음이 정토이고 자성이 미타임을 깨달아 자신의 본원을 구명하는데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虛妄하고 無常하다 人間歲月 르도다
정든해는 간곳업고 새해다시 도라왓네
묵은해는 가도말고 새해亦是 오도마소
어린아기 少年되고 少年으로 靑年된다
靑年부터 老人되고 老人되면 될것업서
富貴貧賤 强弱업시 멀고먼길 가고마네
다시엇기 어려워라 金쪽갓흔 이내몸과
틀님업는 이내마음 새해부터 나아가세
독긔들고 山에들면 덤불처서 개량하고
광이들고 돌밧파면 荒蕪地가 沃土된다
우리밧헤 보리싹은 눈속에도 푸러잇고
우리새음 물줄기는 소래치고 흘러간다
부질부질 나아가면 새천지를 아니볼
정신잇는 우리사람 사람중에 사람되세 <신년가>
<신년가>는 새해를 맞이하여 반선반농운동의 기치를 올리고 정진하자는 당부를 담은 가사이다. ‘도끼 들고 산에 들면 덤불 쳐서 개량하고 괭이 들고 돌밭 파면 황무지가 옥토 된다.’는 표현은 노동을 통해 수행을 하는 실천적인 면을 직접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돌밭과 황무지는 단순한 외적인 의미와 더불어, 온갖 탐욕과 미망에 덮여 있어 깨닫지 못하는 본연의 ‘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 덤불을 쳐 개량’하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나를 발견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선원곡>의 결구에 보이는 “갌자갈 돌소리는 아조생긴 石佛인가 土佛石佛 두어두고 나의眞佛 무엇인가 空山夜月 杜鵑새는 그저故國 不如歸라 勞働上에 나못보면 그저勞働 거짓勞働”에서도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나’를 발견하자는 주장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학명의 궁극적인 지향은 ‘나’를 찾기 위한 수행을 하자는 것이다.
학명 가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처럼 외적으로 표현된 주제 안에 ‘나’를 찾아가는 수행을 권장하는 이면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상적 화자 ‘나’는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학명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로 읽히기도 하고 본래의 불성을 함유한 내면의 보배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돌밭을 캐는 것이 내장사 선원의 야산을 개간하는 표면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표출함과 동시에 미망에 갇힌 나를 찾자는 이면적인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학명의 가사는 ‘나’를 찾아가는 노력, 즉 내 안의 보배를 발견하는 치열한 禪的 구도의 행각을 현상적인 화자인 ‘나’와 내장선원의 현장성을 담고 있는 ‘돌밭’으로 표현해 내었다. 이는 唯心淨土 自性彌陀라는 선불교적인 지향성을 현장적인 구체성과 절묘하게 결합한 시적인 성취를 보이는 면모라 할 수 있다.26)
2. 노동과 가창 리듬의 조화
학명의 가사는 선원에서 밭을 매면서, 혹은 把定을 하면서, 혹은 看月을 하면서 구연된 노래이다. 내장선원에서의 수행과 노동이, 그리고 여기에 가사가 어우러지는 선원의 모습이 당시 불교계의 이상적인 실천운동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앞 절에서 살펴본 바 있다. 더 나아가 학명의 가사는 가사의 리듬과 노동의 리듬이 하나가 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解脫이네 解脫이다 우리마음 自由롭다
世間榮辱 다바리고 雲水生涯 걸림업네
肉體拘束 받지말고 精神修養 더저두소
時間따라 使用하고 處所따라 遊戱하니
時間處所 나의自由 自由부터 解脫이다
孃生袴子 훨신벗고 灑灑落落 뛰어보세
뛰다마다 나의自由 自由解脫 그끗업네
그끗업시 解脫인가 解脫까지 解脫이다. <해탈곡>
<해탈곡>의 전개 과정을 보면, ‘世間榮辱에 얽매이며 肉體拘束을 받는 단계’에서 ‘시간과 처소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경지’를 제시하고, 나아가 ‘자유해탈에 대한 의식마저 놓아버리는 경지’를 궁극의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집착을 여읜 완전한 자유, 해탈을 깨우치는 선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이러한 주제가 경쾌한 가락에 실려 있는 것이 이 시의 또 다른 묘미이다. “해탈이네 해탈이다.” “시간처소 나의자유 자유부터 해탈이다.” “뛰다마다 나의자유 자유해탈 그끗업네 그끗업시 해탈인가 해탈까지 해탈이다.” 등에 보이는 것처럼 동어반복과 연쇄적인 어휘의 나열을 통해 가사 자체에 경쾌한 리듬감을 살리고 가사를 속도감 있게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선원곡>에서는 자신의 불교 혁신 운동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결구를 보면 그가 주장하는 불교혁신과 노동의 즐거움이 노래를 통해 하나가 되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야우리 동무님네 파면서 노래하세
호미잡고 한번파니 一生參學 이아닌가
호미잡고 두번파니 二八靑春 조흔다
호미잡고 세번파니 三生因緣 반가워라
호미잡고 네번파니 四大色身 虛妄하다
다섯번재 파고나니 五瑚烟月 行脚하세
여섯번재 파고나니 六根淸淨 아니될가
일곱번재 파고나니 七顚八到 닷시할가
여덜번재 파고나니 八識風浪 고요하다
아홉번재 파고나니 九天明月 닷시본다
열번파고 쉬엿스나 十十無盡 나아가세
(중략)
훔처잡은 호미자루 리업는 木佛인가
맛는 쇠소리는 變치안는 鐵佛인가
뭉뭉 흙덩이는 다험업는 土佛인가
갌자갈 돌소리는 아조생긴 石佛인가
土佛石佛 두어두고 나의眞佛 무엇인가
空山夜月 杜鵑새는 그저故國 不如歸라
勞働上에 나못보면 그저勞働 거짓勞働
결구는 ‘호미자루를 들고 김을 매기도’ 할 때 반복되는 동작에 따라 부르기 좋은 내용과 표현법으로 되어 있다. “호미잡고 -번 파니”의 반복과 대구는 노래 율동의 흥겨움을 조장하고, 기억을 용이하게 하며 “一生參學” “二八靑春” “三生因緣” “四大色身”에서 “九天明月” “十十無盡”에 이르는 숫자의 연쇄적 나열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노동과 수행의 조화로운 만남을 의미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맛는” “뭉뭉” “갌자갈” 등의 의성어의 사용은 우리말의 감각적인 감칠맛을 한껏 높여주는 구실을 하면서, 노동을 통해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흥겨움을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이처럼 노동을 통해 참된 ‘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노래가 수행의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학명의 가사는 노동과 수행이 조화롭게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과 수행의 조화로운 만남은 이상에서 살펴본 우리말 노래의 구비적인 특징과 맞닿아 있다.
3. 禪詩的 표현 기법의 활용
이상에서 학명이 가사를 통해 불교혁신의 요체를 드러냈으며 그러한 이상을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비적인 표현에 담아내었고, 그 결과 노동과 수행이 조화롭게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학명 가사의 또 다른 특징은 17세기의 枕肱이나 20세기 초의 鏡虛등 기존의 禪僧들의 불교가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禪詩적인 독특한 표현을 구사하여 가사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ㄱ) 半月이네 半月이다 人間에는 半月이다
圓月이네 圓月이다 天上에는 圓月이다
ㄴ) 半月되면 圓月되고 圓月되면 半月되니
半月부터 圓月이며 圓月부터 半月이냐
半月恒時 半月이며 圓月恒時 圓月이냐
人間半月 滿月되면 天上圓月 殘月되니
圓月도로 半月되고 半月도로 圓月된다
ㄷ) 圓月이냐 半月이냐 圓月半月 實相업네 <망월가>
<망월가>를 시상의 전개에 따라 세 단락으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첫 단락에서는 인간세계에서 바라보는 반달이라는 것은 사실은 지구의 그늘에 가려졌을 뿐 그 실상은 원만함 그대로인데, 인간세상에서는 그 실상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반쪽이 실상인 것처럼 현혹되는 것을 말하였다. 저 달의 본연의 실상은 항시 원만 충족을 구비한 것이다. 둘째 단락에서는 ‘半月이 圓月 되고 圓月이 半月 되는’ 현상을 그대로 나열한 후, 그 현상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였다. 셋째 단락에서는 지금까지 전개한 가르침을 일거에 부정하면서 반달과 보름달 그리고 우주는 변하는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밝혔다.
<망월가>는 연쇄적인 어구의 반복과 도치를 통해 깨달음의 실상을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작품으로 기존의 불교가사와 다른 느낌을 주는 한 편의 示法詩, 혹은 悟道詩로 읽혀진다. 반달이 보름달이라는 표현은 서로 다른 차별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라는 의식마저도 초월할 것을 깨우치는 이 가사는, 모순어법을 구사하는 禪詩의 방법론적 특징27)과 같은 선상에 있다. 학명의 가사는 선시의 표현방식을 가사에 원용하여 참신한 표현을 개척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28)
한편 불교 86호 <권두언>에 실려 있는 한용운의 산문시는 학명이 가사에 새롭게 선보인 불이적인 표현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어 동시대의 시로서 불교시가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ㄱ)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사ㄴ것이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고요한 것은 죽은 것이다.
ㄴ) 움직이면서 고요하고 고요하면서 움직이는 것은 제 生命을 제가 把持한 것이다.
ㄷ) 움직임이 곳 고요함이요 고요함이 곳 움직임이 되는 것은 生死를 超越한 것이다.
ㄹ) 움직임이 곳 고요함이요 고요함이 곳 움직임이어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둘이안이며 움직임은 곧 움직임이오 고요함은 고요함이어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한아가 안인것은 生死에 自在한것이다.29)
ㄱ)은 존재의 차별상에 얽매인 상태를 전제로 제시하였다. ‘산 것은 산 것이요,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ㄴ)과 ㄷ)은 ‘산 것이 곧 죽은 것이요, 죽은 것이 곧 산 것’이라는 깨우침을 얻은 경지를 단계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ㄹ)은 ‘산 것은 곧 죽은 것이요, 죽은 것이 곧 산 것이며, 나아가 산 것은 산 것이요 죽은 것은 죽은 것’이라는 궁극의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선 수행에서 제시되는 화두를 不二法門적인 표현 속에 용해함으로써 선시적인 전통을 새롭게 환기하고 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학명이 깨달음의 내용과 깨우침의 내용을 불이적인 표현으로 단형 가사에 담았다면, 만해는 이를 같은 방식으로 현대시에 담았다고 말할 수 있다.
Ⅴ. 鶴鳴 가사의 문학사적 위상
한 편의 작품이 생성되고 문학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에는 당대의 시대성과 사회적 관련성이 작용하게 된다. 이 글이 대상으로 하는 불교가사는 ‘불교’라는 한정어와 ‘가사’라는 본 개념이 결합되어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불교가사는 태생적으로 불교사의 흐름과 문학사의 흐름이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시기는 문학사의 맥락에서는 ‘근대로의 이행기문학 제2기’와 본격적인 ‘근대문학’에 걸쳐있는 시기30)이며, 불교사의 맥락에서는 근대불교의 형성과 관련된 혁신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이다.
1900년대 이후 불교계는 근대적인 불교의 제반 의식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도시화된 공간에서 다중의 신도가 모여 집회를 하는 전혀 새로운 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10년대 이후 등장한 불교계 잡지의 ‘회보’란에는 전국 각지에서 행해진 다양한 의식의 순서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 시기에 3대 불교의식으로 공인된 석탄일 성도일 열반일은 물론이고, 강당의 건립이나 집회의 기념식, 그리고 소년회나 학생회의 모임과 개인의 華婚式까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상에서 소개한 의식에서 ‘唱歌’ 혹은 ‘讚佛歌’는 대부분의 경우 필수적인 항목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는 기독교의 찬송가의 영향과, 창가를 학교교육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교육정책 등으로 인하여 창가가 널리 보급된 시기다. 이러한 상황에 ‘창가’ 혹은 ‘찬불가’는 불교계에서 공인된 의식가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장편의 불교가사도 창가의 분절형식의 영향을 받아 두 줄이나 석줄 정도의 장을 구분하여 소개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불교 35호(1927)에 소개된 장편의 <석존일대가>는 1행 4음보 두 줄 형식으로 분절되어 있으며, 大覺敎儀式(1927)에 소개된 <왕생가> <권세가> <세계기시가> 등의 龍城의 가사는 1행 4음보 두 줄이나 1행 4음보 석 줄을 한 장으로 하여 연결해 나가는 분련체로 기록되었다. 이와 달리 鶴鳴의 가사는 분절되지는 않았지만 <해탈곡> <망월가>의 경우는 16구라는 극히 단형의 가사로 표현되었다. 학명의 가사는 산중불교가 도시불교로 변화 되는 시기에 새로운 의식가요로 등장한 창가의 유행과 그 변화의 흐름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편 학명이 지은 가사는 禪詩의 표현방식을 가사에 원용하여, 기존의 선승들이 창작한 가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응축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망월가>와 <해탈곡>은 不二的인 표현방법을 구사하여,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이치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조동일 교수가 지적한 대로 ‘그 동안 많이 볼 수 있었던 상투적인 불교가사와는 다른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학명의 가사는 단순하게 교조적인 외침을 전달하는 가사를 넘어서 수행자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전달하는 매체로 불교가사의 성격을 변화시킨 의의가 있다.31) 요컨대 학명의 가사는 한국의 불교가 산중불교에서 도시불교로 변모하는 20세기 초에 그 변화의 양상을 반영하는, 불교계의 시대적 사명을 담은 혁신의 노래로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그가 선보인 단형의 불교가사는 문학사적으로 볼 때 창가의 확산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단형의 가사에 담은 시상은 교조적인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선시에서 볼 수 있었던 불이적인 시상을 응축된 표현에 담았다는 점에서 불교가사의 내용과 표현영역을 확장한 의의를 지닌다.
Ⅵ. 맺음말
본고는 1900년에서 1920년대 말까지 전개된 근대불교혁신운동과 불교가사와의 관련양상을 鶴鳴의 혁신운동과 그의 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여 결론으로 삼기로 한다.
이 시기의 불교개혁운동은 1900년을 전후로 해인사와 범어사에서 전개된 鏡虛의 參禪結社運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허의 결사는 僧俗과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은 점에서 근대적인 혁신운동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경허의 결사가 기폭제가 되어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1913)을 저작할 당시에는 이미 선의 부흥을 넘어서 선의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한용운은 그의 논설에서 선의 혁신을 위해 禪學館을 지어 禪客을 수용할 것과, 조선불교의 혁신을 위해 재정적인 자립을 꾀하는 실천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만해의 주장은 1920년대 禪學院과 禪友共濟會의 창립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 용성과 학명과 만해가 이름을 나란히 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수행과 생산을 겸행하자는 만해의 제안에 대해 용성과 학명은 수행과 노동을 겸행하는 실천적인 운동을 전개하여 화답하였다. 용성은 萬日參禪結社會를 추진하고 禪農佛敎를 주창하였고, 이와 동시에 大覺敎를 창안하여 불교혁신의 기치를 올렸다. 학명은 내장선원에서 半禪半農運動을 실천하면서 선의 혁신과 조선불교의 자립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조화롭게 헤쳐나간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학명은 반선반농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가사를 통해 적극 표출하였고, 가사의 창작과 구연을 선원의 ‘규칙’의 하나로 포함시켜 활용할 정도로 적극적인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가 지은 가사는 모두 7편이 전하는데, 이 중 특히 <선원곡>은 내장사의 반선반농운동의 요체를 구비시가의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전개한 작품이며, 노동과 이념의 조화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학명의 가사는 단순하게 노동의 의미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단순하게 왕생을 표출하는 것으로만 해석될 수는 없다. <원적가>에 등장하는 ‘나’의 의미는 단순한 화자자신이라기보다는 ‘佛性을 가진 나’, ‘본연의 나’로 해석되며, <신년가>에서 ‘괭이 들고 돌밭파면 황무지가 옥토 된다’는 구절에서 ‘황무지’는 곧 미망에 갇힌 ‘나’를 함축하고 있다. 시의 함축성까지 가사에 담아내려는 학명의 시도는, 조동일 교수의 표현대로 ‘그동안 많이 볼 수 없었던 상투적인 불교가사’와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해탈곡> <망월가>는 16구의 단형의 가사로서 창가 형식의 찬불가가 다중의 신도들이 모인 다양한 의식에서 불려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불교가사의 형식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학명은 이러한 단형의 가사에 기존의 불교가사에서 볼 수 없었던 禪詩적인 표현법 즉, 不二的 표현법을 활용함으로써 불교가사 표현 영역을 확장한 의의를 지닌다.
주제어 : 학명선사, 경허, 만해, 용성, 근대불교혁신운동, 선농불교, 불교가사
참고 문헌
학명, 獨살림 法侶의게 勸함, 불교 71호, 1930.5.
한용운, 이원섭역, 조선불교유신론, 운주사, 1992.
한용운전집1, 신구문화사, 1973.
강유문, 내장선원일별(內藏禪院一瞥), 불교 46․7호, 1928.5.
김광식, 백용성 스님의 선농불교, 대각사상 제2집, 1999.
김광식, 용성, 민족사, 1999.
김광식, 일제하 선학원의 운영과 성격, 한국근대불교사연구, 민족사, 1996.
김소하, 남유구도예찬(南遊求道禮讚), 불교 63호․64호, 1929.9-10.
김영수, 천주가사의 갈래적 성격과 전개양상, 천주가사자료집․상,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0.
김종진, 학명의 가사 <선원곡>에 대하여, 동악어문논집 33집, 동악어문학회, 1998.
이상보, 한국불교가사전집, 집문당, 1980.
이성타, 경허선사-傳燈법맥 이은 근대선의 중흥조,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민족사, 1990.
이철교 김광식 편, 한국근현대불교자료총서, 민족사, 1996.
이형기, 현대시와 선시, 현대문학과 선시, 불지사, 1992.
임기중, 불교가사원전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0.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4, 지식산업사, 1994.
조동일, 가사에서 전개된 종교사상 논쟁, 한국시가의 역사의식, 문예출판사, 1993.
최영희, 학명선사의 불교문학 연구, 국어국문학 126, 국어국문학회, 2000.
안진호 편, 석문의범, 만상회, 1931.
※ 이 논문은 2004년 5월 30일 투고 완료되어
2004년 6월 18일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04년 7월 15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04년 7월 30일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게재가 결정된 논문임.
A Study on the relevance of modern Korean Buddhism
innovation and Buddhism Kasa
- Especially analyzing Kasa of HakMyeong -
Kim Jong Jin
The subject of this paper is a relevance of modern Korean Buddhism innovation and Buddhism song(Kasa). The representative people who insisted on a Buddhism innovation in Korea from 1900 to 1920's are GyeongHeo(鏡虛), ManHae(萬海), YongSeong(龍城), HakMyeong(鶴鳴). And they show the same trend in having written a Buddhism song.
I considered it on Buddhism innovative effort of HakMyeong and relation of a Buddhism song in this paper intensively. Innovative effort of HakMyeong is handed down for name called <Ban Seon Ban Nong>(半禪半農). He insisted that a monk must do labor and Buddhism training together, and he especially realized his ideal in his temple. And he embodied his ideal through a Buddhism song.
He shows two trend in his song. First he made a short formal song. The short formal song was affected by a hymn, and it is to reflect a breathing of the new times. And a style of the song of meditation in Zen Buddhism(禪詩) which Korean monks used during a long period was in his song. Beauty of a poetic connotation was put into his Buddhism song because of these. He wrote a new song to have affected in contents and a format of a historic Buddhism song and sang it.
Keywords : A Korean modern Buddhism innovation. A Korean Buddhism song. A song of meditation in Zen Buddhism.
출처: 동양학지
가우리블로그정보센터(G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