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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결혼
『고사기』나『일본서기』로 대표되는 일본 역사서에 기록된 신화 중에 나오는 국가탄생의 신을 이자나기, 이자나미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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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주위는 전부 바다뿐이었는데, 그 바다를 창으로
휘저어 그 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굳어져 오코로토 라는 섬이 생긴다. 이 섬 위에 야히로전 이라는 궁전을 세우고 신노미하시라(心の御柱)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이 두 신이 주위를 돌아 일본 최고(最古)의 결혼식이 거행된다.
이 때 먼저 여신인 아자나미가 서약을 하고, 이어 남신인 이자나기가 서약을 한다. 이리하여 일본 최고의 성교합이 이루어진다. |
그러나 이 결과 태어난 히루코라는 아이는 3년 3개월이 지나도 일어서지를 못해 결국은 바다로 실려간다는 비운을 맞는다.
그리하여 국가탄생의 두 신은 아마츠가미(天神)가 있는 다카마가하라(高天原)로 가서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결혼을 할 수 있고, 올바른 국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답변은 여자 쪽이 먼저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결혼이란 남자 쪽에서 먼저 청혼을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자나기, 이자나미는 기둥을 다시 돌아 남신이 먼저
말하고 주고받음으로써 이 결혼이 성사되어 여러 섬들과 신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결혼의 형태
2, 3세기의 결혼형태는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의하면 상류계급에서는 4∼5명, 하류계급은 2∼3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데, 여성은 음난하지도 않고 질투도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일부다처혼이기 때문에 자연 부부별거제였다. 남편이 아내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성생활을 하는 사이쇼콘(妻所婚)이었다. 이 원시적인 일부다처혼은 7세기 중반에 성립된 고대천황제에도 이어져 제도화되어, 천황은 비(妃) 2명, 부인 3명, 빈(嬪) 4명을 두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귀족사회에서는 그 후에도 일부다처의 통혼이 일반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결혼 형태는 처가로 들어가 결혼하는 무코이리콘에서 남편을 따라 출가하는 요메이리콘으로 이행된 것이라 볼 수 있다.
● 무코이리 혼(妻所婚)
혼인이 성립되기 이전에 특정의 남녀 사이에 연애나 성관계가 인정되어 통혼하는 것으로, 범위는 마을 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남녀 사이에 이미 자주적인 의사로 결정된 부부관계를 하나의 의식을 통하여 공적일 것으로 한다는 점에 중점이 놓여져 있기 때문에 공적인 결혼성립 축하식은 극히 간소하게 치러진다.
결혼이 성립되어도 바로 아내를 남편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친정 또는 친정이 마련해 준 주거 혹은 요메슈쿠나 네슈쿠(寢宿)에 기거하고 남편이 그곳을 찾아옴으로써 비로소 부부생활이 이루어진다는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방혼(訪婚)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의 처소를 방문하게 되는 기간은 지방에 따라 다른데, 수개월에서 20년에 이를 때도 있다. 아내가 시댁으로 옮겨가는 시기는 시부모와 자신들 부부와의 별거생활이 전제가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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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와는 완전히 따로 살기 때문에 재산도 음식도 달리하고, 고부간의 관계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 부재기간에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책임하에 양육되고, 경제적인 부담도 어머니 친정에서 맡는다.
● 고대 츠마도이 혼(古代妻訪婚)
하츠무코이리(사위가 장인, 장모와 대면하여 친자맹세를 하는 의식)로 혼인이 성립, 이후 일정기간 동안 처가쪽에서 혼인생활을 갖는 일시적 통혼이다.
『고사기』,『일본서기』,『만엽집』 등과 같은 고전에서 엿볼 수 있는 당시의 혼인형태는 거의 남편이 밤마다 아내한테 가는 츠마도이(妻訪い)식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니러 오는 부부별거의 형태로, 부부는 각자의 씨족안에서 생활하였다. 이러한 혼인형태에서 아내는 오로지 찾아오는 남편을 기다릴 뿐인 존재였다. 남편의 경우 아내에게 계속 애정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다니러 오지만, 일단 애정이 식으면 발길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10세기 헤이안 중기가 되면, 부부생활의 초기에만 남편이 아내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마침내는 상주하게 된다. 카마쿠라시대가 되면 처가 쪽에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시가로 처자를 맞이하는 혼인상태가 이루어진다.
일시적으로 상주했던 츠마도이콘과 같은 혼인풍습이 동북지방의 벽촌에서 근년에까지 볼 수 있었다. 연기서(年期斷)풍습이다. 3년 내지 5년의 일정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 동안에 사위는 처가 쪽에 들어가 일하고, 그 기간이 다 끝나면 아내를 데리고 간다는 혼인형태이다.
● 아시아레 혼(足入婚)
이 혼인방식은 혼인성립 축하가 요메이리콘(嫁入婚)과 마찬가지로 시가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간단한 혼인성립 축하의식을 행한 후 바로 시가쪽으로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호적에 올리지 않을 때도 있고, 며느리의 피로연을 뒤로 미루든가 생략하는 일도 있다.
혼인형식상 무코이리콘에서 요메이리콘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생긴 방식으로, 며느리의 신분은 아직 친정에 속해 있는 것이다. 혼인생활은 일시적 츠마도이를 전 단계로서 수반한다. 이즈(伊豆), 도시마(利島)의 경우는, 시가쪽에서 혼인성립축하를 치른 후 며느리는 낮에는 시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친정으로 침소귀가를 한다. 남편은 처가로 다니게 된다. 며느리의 침소귀가가 끝나는 것은 시부모가 사망 또는 은거할 때이고, 동시에 며느리가 그 집안의 주부가 되는 때이기도 하다. 며느리의 재물도 이를 기점으로 비로소 처가로 옮겨지게 된다.
● 요메이리 혼
혼인성립축하는 시가에서 주로 하고, 며느리를 맞이함으로써 혼인이 성립, 또한 혼사(婚舍)도 시가에 두는 혼인형태를 가리킨다. 무로마치 이후 주로 무사계급 사회에서 형성되어 지배적인 혼인형태가 된 이후, 근세에 들어와서는 이상적인 결혼형태로 서민들에게 수용되었다. 메이지, 다이쇼시대에는 거의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가장 표준적인 혼인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요메이리콘에 있어서는 결혼 전의 연애와 성관계는 혼인윤리체계에 벗어난다 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구속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있어 배우자 선택의 자주성은 상당히 약하다 할 수 있다.
혼인성립을 계기로 며느리는 자기 소유물과 함께 완전히 시가로 옮긴 후, 계속해서 시가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인데 지방에 따라서는 약간 다른 곳도 있었다.
▶ 며느리양도식
시집가는 날 신부측에서는 친척, 친지들을 초대하여 송별연이나, 신부맞이 하례객을 위한 향연을 여는 곳도 많다. 신부가 집을 나설 때 그 흔적을 쓸어내거나, 집 입구에서 그릇을 깬다든가, 백지 바른 장례식용 등불을 다는 등 각기 그 지방의 장례식 때의 출관과 흡사한 모습을 흉내내는 지방도 많다. 이는 이혼당하여 다시 친정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바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 입가식 (入家式)
입가식의 형태는 지방에 따라 다른데, 신부는 곧바로 안채로 들어가지 않고 도마(土間)를 거쳐 들어가는 풍습이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또는 이로리(圍爐裏)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는 곳도 있다. 관동지방에서는 친자술잔 이라 하여 시어머니가 건네준 잔을 받아 친정에서 가져온 물을 섞어 마시고 찻잔을 깨버린다. 후쿠시마현, 사가현 등에서는 며느리가 시가로 들어갈 때 사초삿갓, 솥뚜껑, 냄비뚜껑을 씌우는 풍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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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권한 양도
주부의 권위는 이로리의 가타자로 상징된다. 가카자인 주부자리를 며느리에게 양도하는 것을 ‘주걱’을 건네준다고 한다. 이는 음식 분배권을 양도한다는 의미이다. 주부가 시집 온 며느리에게 가카자와 부엌지배권을 양도하는 시기는 가장이 대를 이를 아들에게 가장권 내지 가독을 양도하는 시기에 수반된다. 이와테현(岩手縣)에서는 주부의 권한을 상징하는 것이 밥주걱과 냄비뚜껑이라고 한다. 주부가 부득이한 외출 혹은 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며느리에게 맡기는 일 이외에는 이 두 가지의 물건에는 그 누구도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
‘주걱양도식(杓子わたし)을 치룬 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이어 가카자에 앉는 주부가 된다. 이 의식을 한 후에 친천, 친지들을 불러 성대한 피로연을 갖는다.
요메이리콘은 후에 중매 결혼, 맞선 결혼이라는 다른 명칭이 붙여진다. 맞선결혼은 에도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맞선은 건너뛰고 곧바로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맞선 결혼은 대부분이 하급무사나 초닌, 농민들 사이에서 행해졌으며 쇼군, 귀족, 다이묘 등은 맞선 없이 곧바로 결혼을 하였다.
결혼 절차
일본의 중매 결혼의 경우 맞선에 해당되는 말에 '미마이(見舞 い)'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중매장이와는 다른 의미의 나코오도라는 역할이 있는데, 나코오도는 중매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결혼을 보증하고 상담 역할까지 하는 것으로 우리의 주례와 같은 기능까지 포함한다. 맞선은 나코오도의 집에서 양가 부모와 신랑 신부 후보가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애 결혼의 경우 맞선은 볼 필요가 없지만 나코오도를 부탁하여 정해두어야 한다. 결혼 대상이 정해지면 유이노를 주고받는다. 유이노의 방식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관동 지방은 남녀 쪽에서 서로 주고받는 와복형(和服-일본 전통의상)이고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는 남자 쪽에서만 보낸다. 유이노는 나코오도가 예물을 상대방 쪽을 방문하여 전해주게 된다. 한국의 함과 비슷하나 나코오도가 정중하게 예를 갖춰 쌍방 모두 전달하는 것이 다르며 내용 또한 다르다. 유이노 비용은 월급의 2,3배 정도를 적당한 선으로 본다. 돈과 예물과 함께 장수, 백년해로, 발전, 건강 등을 상징하는 장식품을 함께 보내게 된다. 유이노를 위한 전문 상점에서 판매하는데 값은 결코 싸지 않다. 목록과 함께 보내면 받는 쪽에서는 받았다는 수령서를 보낸다. 여자 쪽의 경우 남자 쪽의 반 또는 1할 정도 선에서 답례를 한다.
결혼식 당일에는 집에서 신랑 신부 예복을 차려 입고 각자의 부모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한 뒤 식장으로 향한다. 결혼식에는 신전 결혼식이나 불교식 기독교식을 막론하고 식장에 참여하는 것은 양가 가족만 참가한다. 식이 끝난 다음에 피로연석으로 향하는데 일반 하객은 피로연회장에 축의금을 들고 모이게 된다. 단 피로연장에는 좌석에 이름이 모두 적혀 있어서 미리 통보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피로연석에는 본인의 회사 직원이나 가까운 친지 친구들만 초청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50명에서 100명선이 일반적이다. 피로연석에서는 나코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인사와 연회가 중심이고 도중에 이로나오시(色直 し)라고 하여 신부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전통의상으로 식을 올린 다음 도중에 서양식 드레스로 갈아입고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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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
여성 |
1 2 3 4 5 6 |
인품, 성격(94.1%) 용모(79.6%) 혈족(친족)관계(44.2%) 직업(39.3%) 학력(29.8%) 경제력(26.7%) |
인품, 성격(97.3%) 경제력(88.7%) 직업(78.0%) 용모(67.7%) 혈족(친족)관계(62.3%) 학력(54.6%) |
나코오도
요메이리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코오도라 불리우는 중매인은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다. 배우자의 선택이 개인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고 문중에서 선택하는 귄리를 가진다. 그리하여 문중에서는 ①후보자를 찾아 ② 상대 집안과의 교제 ③맞선 ④약혼 ⑤유이노 ⑥혼례식 등을 비롯하여 이후의 부부문제, 고부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의 역할을 나코오도에게 의뢰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를 위하여 오야카타(親方)라든가 그 외 유력자를
중매인으로 하여 나코오도오야(仲人親)로서 관계를 영속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혼 후에도 후견인의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큰 변화는 없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세 번은 나코오도를 해봐야 할 것」,「나코오도는 돈을 주고라도 해볼 만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나코오도 의뢰를 받는다는 것이 그만큼 그 부부가 신뢰·존경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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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코오도를 해줄 만한 친지가 없을 경우에는 결혼상담소를
이용하는데, 최근에는 기업에서 사내에 결혼상담실을 설치한다든지, 몇 십개의 회사가 그룹으로 결혼상담 사업을 하거나 한다. 연애결혼의 경우에도
회사상사 등에 혼례식 때의 나코오도를 부탁하는데 이를 타노마레나코오도(賴まれ仲人)라 한다.
미아이(맞선)
자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맞선사진을 찍게 한다. 상반신, 전신 모두 찍는 경우도 있지만, 전신사진만을 찍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친지에게 돌려 좋은 배우자를 부탁하는데 이 때 이력서와 가족내역서, 건강진단서 등을 첨부한다.
부탁받은 사람은 주위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결과 서로 마음이 있으면 맞선을 보게 된다. 맞선 장소로서는 오늘날은 호텔 커피숍이나 조용한 레스토랑을 이용하는데, 메이지 시대에는 극장이나 음악회를 이용하는 것이 성행했었으며, 에도 시대에는 여자쪽 집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토치기현 아시카가(足利)시 부근에서는 맞선자리에 내놓은 차를 마시는 것은 승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남자 쪽에서 승낙을 나타내는 경우에 부채 등 소지품을 놓고 가거나, 내놓은 다과를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여자쪽 집에서도 승낙하면, 나코오도는 준비한 술과 차등을 내놓고 여자 측 부모와 함께 마시면서 결혼을 약속하는 의식을 올린다
유이노오
유이노오는 결혼의 최종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서양식으로 약혼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 전통적인 것은 유이노오를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된다. 이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 일본에 전래된 것이다.
● 변천
새로이 친척으로서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음식을 함께 하는 의식이 필요한데, 이 때 남자는 술과 안주를 준비해 여자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녀 양가가족이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두 집안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을 축하했던 것이다. 이 때의 술안주를 「유이노모노」라 했는데 이것이 사투리화 되어 유이노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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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양가의 인연을 맺기 위한 술안주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이 유이노였다. 후에는 술안주 외에 여러 가지를 첨부하게 된다.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유이노를 주고받는 것이 비로소 결혼을 성립시키는
의미로서 받아들였다.
시대나 계급에 따라 유이노의 품목 등도 바뀌면서 적어졌는데 오비만은 반드시 넣었다. 그러다가 오비 대신 「온오비료(御帶料)」라고 써 금전으로 대신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혼약서를 주고받지 않는 대신 유이노에서 유이노킨(結納金)으로 바뀌면서 그 금전의 수령증이 혼약성립의 증거물이 된다. |
● 절차
결혼이 결정되면 나코오도는 남자집에서 받은 유이노를 여자집으로 가져간다. 고풍적인 요메이리콘을 행하고 있는 지방에서는 사위가 직접 가지고 간다. 유이노를 가져가는 것은 혼례전날이 대부분인데 결혼식 당일에 가지고 가는 곳도 있다.
○ 유이노를 맞이할 준비로서 남성측은「유이노품목」,「가족신상서」,「친족신상서」를 흰 나무쟁반에 담고, 작은 비단보로 싼다.
○ 당일 도코노마에 꽃을 꽂고 「학과 거북이」,「일출」등 경사를 상징하는 것이 그려진 족자를 걸고 나코오도부부를 기다린다.
○ 나코오도는 우선 남자집을 방문한다. 나코오도를 집안으로 맞이해서 그 날에 어울리는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의식적인 내용인 소위 딱딱한 인사말을 하며 허심탄회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어 유이노품목, 가족소개서 등을 나코오도에게 건네준다.
○ 유이노 전달식을 끝낸 후, 경사날에 마시는 사쿠라유나 다시마차로 나코오도를 접대한다.
○ 나코오도는 남자집을 나와 이번에는 여자집을 방문한다. 여자집에서는 나코오도를 집안에 맞아들여 인사말을 나눈 뒤 나코오도로부터 유이노품목을 받아들고 수령증을 건네준다.
○ 축하상을 내어 나코오도를 접대한다. 최근에는 축하상으로 접대하는 대신 후에 나코오도에게 사례로서 현금 등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 나코오도는 다시 남자집을 방문하여 여자집 쪽에서 받은
수령증을 건네준다.
○ 유이노품목 내용
요즈음은 형식적인 목록과 금전만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남성측에서 여성측에 보내는 유이노킨의 포장 위에는 「온오비료」라 쓰고, 액수는 남성측이 보낸 금액의 반을 넣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측 금액의 5분의 1정도이거나 기념품으로 대신해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이노 품목의 형태는 동일본과 서일본으로 큰 차이가 있다. 동일본식은 기본적으로 모든 유이노 품목을 하나의 나무판에 가로로 늘어놓은 형태로, 미즈히키(水引)장식도 평면적이다. 서일본식은 한판에 한 품목(一合一品)이 기본으로 품물의 형식에는 제약이 없고 미즈히키장식도 입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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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 |
표기 및 의미 |
1 2 3 4 5 6 7 8 9 |
노시(のし) 부채(扇子) 삼베실 다시마 오징어 가다랭어포 술 금전 목록 |
長慰斗, 장수를 상징
스에히로(末廣), 자손번성을 의미 도모시라가(友志良賀), 부부의 강한 인연을 상징 곤부(子生婦), 경사스러운 일에 사용 스루메(壽留女) 카츠오부시(勝南節) 야나기타루(家內喜多留) 긴포(金寶), 結納金 |
결혼식과 피로연
「현행민법」상의 친족이란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 3촌 이내의 인척을 가리킨다. 현행법률에서도 3촌까지의 친족간의 혼인은 금지하고 있다. 사촌간의 혼인도 간혹 있으며 법률에서 이를 금지하지 않는다. 결혼 연령은 중매결혼의 경우 남자 32.0세, 여자 28.0세가 평균이고, 연애결혼의 경우 남자 28.2세, 여자 25.4세가 평균연령으로 나타났다(1992). 결혼식에는 신도식 결혼식, 기독교결혼식, 천주교결혼식, 불교결혼식, 인전(人前)결혼식등이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은 신도식결혼식이다.
산와(三和)은행이 1994년에 행한 조사에 의하면, 신도식이 1982년에는 90%를 차지했지만, 94년 조사에서는 58.4로 줄었다. 반면 기독교식은 5.1%에서 36.8%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신자가 급증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결혼식의 형식과 자신의 종교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있어 결혼식이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인생에 있어 커다란 이벤트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좋다.
보통은 신앙과 무관하게 식을 올리므로 같은 식장 안에 두 개의 제단이 준비되어 있을 경우, 분위기 있는 기독교식을 택하는 커플이 많다.
이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채플을 만드는 도시형 호텔이 속속 생기고 있다.
● 신도식 결혼식 오늘날의 신도식결혼식은 기독교식을 모방한 것으로 1900년에 시작된 것이다. 혼례식 당일에 신부는 우지가미나 절 등에 가서 참배하거나, 자신의 집의 카미다나나 일가의 조상신을 참배하는 일을 각지에서 행한다. 또한 신부측에서는 혼례당일이나 전날 이웃, 친척들을 불려 연회를 여는 곳도 있다 신도결혼식에는 신랑, 신부, 나코오도 부부, 가족, 친족만이 참석한다. 간누시가 신을 향해 노리토(祝詞)를 읽은 후, 신랑이 신에게 서약을 한다. 그리고 나서 신랑과 신부 사이에 「산산구도의 술잔(三三九度の杯)의식」을 행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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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동이 식장에 들어가 앉는다.
입장순서는 신랑, 나코오도, 신부, 나코오도 부인, 이어 신랑측 부모, 신부측 부모 ,신랑측 가족, 신부측 가족 순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식이 시작되면 전원이 기립한다. 간누시가 누사(ぬさ)와 다마구시(玉串)로액풀이를 하는 동안 가볍게 머리를 숙인다.
○ 신랑, 신부가 신전으로 인도되어 간누시와 함께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산산구도의 술잔의식」을 시작한다. 신랑은 가장 윗 잔을 양손으로 들고 미코가 따르는 술을 받는다. 이를 3번에 나누어 마시고 다음은 신부 다시 신랑의 순으로, 세 번째 잔은 다시 신랑, 신부, 신랑의 순으로 반복하여 모두 아홉 번의 술잔을 비우게 된다. 이로써 두 사람은 부부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 때 결혼반지 교환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신랑, 신부는 다마구시안 앞에 서서, 신랑이 신전을 향해 결혼서약서를 읽으면 신부는 마지막에 자기이름을 말한다. 다음은 각자 다마구시를 신전에 바친다. 두 사람은 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하게 되는데, 이 때 참석자 일동도 기립하여 두 사람에 맞추어 행한다.
○ 양가를 대표하여 나코오도 부부가 다마고시를 바친다.
○ '친족결합의 술잔의식'으로 옮겨져 일동이 함께 세 번에 나누어 술잔을 비운다.
○ 간누시가 식이 종료되었음을 알리고 일동을 향해 축사한다. 일동 기립하여 가볍게 한 번 인사하고, 신랑, 신부, 나코오도 순으로 식장을 나온다.
● 피로연
결혼식이 끝나면 피로연장으로 옮긴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집을 다닌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밋카요노모치(三日夜 のもち)」라 하여 두 남녀가 요 위에 정좌로 앉아 떡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식을 올렸다. 식이 올려지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가베시로(壁代)휘장을 연다. 그리고 주위에 가득 모여 있던 사람들이 축사를 보낸다. 이를 도코로아라와시(露顯)라 하는데 이는 부부가 함께 자는 것을 제3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자고 일어나 부부를 위한 술잔을 나눈다. 이것이 오늘날의 피로연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피로연의 평균 출석자는 80명 정도가 보통이다(1994년 산와은행이 행한 조사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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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과정 ○ 피로연은 나코오도의 인사로 시작되는데 이 때 참석한 이들에게 신랑, 신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다. ○ 주빈들의 축사, 건배 후 웨딩케이크를 자른다. ○ 식사가 시작되면서 친구들의 테이블 스피치가 이어진다. ○ 피로연은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피로연 도중에 신부가 자리를 떠나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다. 이를 오이로나오시(お色直し)라 하는데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다. 최근에는 한창 때에 비하면 오이로나오시를 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렇다해도 신부가 결혼식과 피로연에서 입는 의상은 평균2.8벌이된다. 대여임에도 불구하고 요금이 60만엔 가까이 든다. ○ 마지막으로 친족 대표가 하례객에게 답례인사를 함으로써 결혼식은 끝난다. 이 때 결혼식이 「끝났다」라고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미래가)「열렸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경사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에 끝, 자른다, 다시 등 파국, 종말, 끊어짐, 반복 등과 관련된 말이나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삼간다. ○ 하례객들은 「히키데모노(引き出物)」를 가지고 돌아간다. |
관혼상제 가운데 결혼축의금이 전교제비의 36%를 차지해 가장 지출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1994년 산와은행 조사). 일본에서는 결혼축하를 보통 현금으로 하는데. 피로연에 출석할 시 축하금을 보내는 사람이 형제, 자매, 조카인 경우에는 5만 엔, 이종사촌 그 외 친척은 3만 엔, 회사동료, 친구는 2만 엔인 경우가 많다. 평균 1회 3만 920엔이라는 결과가 나와 있다.
결혼 전후
결혼 후 성씨는 법률상 남편성이든 아내성이든 상관없지만 현실적으로는 98.9%의 아내가 남편성을 따르고 있다. 또 같은 성끼리 결혼해도 상관없다. 결혼식 비용은 신도식의 경우 1만 7천엔, 기독교식의 경우 6만 2천엔인데(1989년 평균금액),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피로연이다.
1993년의 경우 결혼식의 총비용이 8백 34만 엔으로 지역별로는 도쿄가 가장 높고, 이어 긴키(近畿)지방이며, 낮은 곳은 훗카이도로 도쿄의 63%정도이다. 결혼지출항목 가운데 결혼식, 피로연이 42.1%로 가장 높고 이어 신혼생활준비금(35.3%), 신혼여행(11.8%), 유이노 혹은 약혼(10.8%)순이다.
신혼여행붐은 1960년 전후로 시작되었는데 1980년 전까지는 반수 이상이 국내를 선택하지만, 이후 해외로 가는 커플이 점점 늘어 1989년부터는 85%전후가 해외로 가고 있다. 해외여행지 인기 테스트 3위에는 1980년이전에는 하와이, 괌, 유럽순이었는데, 근래에는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유럽순이 되었다. 국내로는 규슈(九州), 오키나와등이 선택되고 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신혼여행을 겸해 해외에서 예식을 올리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분위기 있으며, 인간관계의 번거로움이라든지 옛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인기를 얻는 이유라 한다. 해외예식이 가능한 나라로는 하와이, 괌이 가장 보편적이며, 호주,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가능하다.
신혼부부의 70%가 시부모와 따로 살기 때문에 새보금자리를 물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는 전세라는 것은 없고 임대형식을 취하는데, 교통편이 괜찮고 목욕탕이 딸린 콘크리트집의 경우 보통 15∼20만 엔 정도이다.
게다가 입주할 때에는 사키킨(보증금),레이킨(사례금),등을 내야 한다. 근래에 나타난 현상으로 마스오 현상이 있다. 이는 처가와 동거하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만화「사자에산」일가가 딸부부와 부모와의 동거로, 사자에의 남편이름을 따 이렇게 불린다.
최근 딸부부와의 동거가 늘어나는 이유는, 1)· 대를
잇는다는 관습이 급속히 약해져 부모와 장남이 동거하는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 2)· 대도시에서는 지방에서 온 남자와 부모 곁에 사는 여성이
결혼하는 기회가 많다는 것 3)· 최근에는 주택구입이 어려워 처가에 의지해 버린다는 것 등이다.
근래의 결혼 동향
요즈음 일본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 남성과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반면, 연인으로서 교제하고 있는 남녀가 많다. 후생성 조사로는 이상적인 상대를 찾을 때까지는 결혼을 안해도 상관없다는 사람이 5할 전후나 된다고 한다. 이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왜 늦게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독신여성들은 「봉건적인 사고방식의 남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고, 남성들은「가정을 지켜줄 여성」, 즉 집안살림을 잘해줄 여성을 결혼상대로 찾고 있어, 남녀의 결혼관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미혼남녀 대부분이 독신생활에 「자유, 편안함」이나「넓은 인간관계」등 강한 매력을 느껴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한편 연애결혼을 동경하면서도 교제상대가 없어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모르는 고독한 젊은이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남성의 55.1%, 여성의 63.6%가 연애결혼을 희망, 연애지향은 강해지고 있지만 실제 교제상황을 보면 남성의 48.6%, 여성의 39.3%가 애인이나 친구등 이성교제 상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결혼적령기의 남녀중, 남성이 50만 명이나 더 많아 결혼난민의 시대가 되었다. 1990녀 중반부터 한때 「삼고남성(三高男性)」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결혼적령기의 여성이 결혼상대에게 요구하는 삼고의 조건을 갖춘 남성을 가리킨다. 삼고란「수입이 많을 것(여성은 남성에게 7∼8백만 엔의 수입을 바라고 있다), 학력이 높을 것, 신장이 클 것」이다. 단,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삼고의 조건을 갖춘 남성은 어울리는 결혼상대 여성을 스스로 찾아 결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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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요즈음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후생성이 조사한「결혼상대에 대한 조건」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일본인의 결혼 대상
흔히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일본의 결혼대상에서 아주 가까운
친인척끼리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헌법에서는 3촌 이내의 친족혼은 금하고 있다. 따라서 4촌간의 결혼은 간혹 있으며
물론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최근에 법률에서 제외된 우리의 동성 동본 금혼 제도와는 대조적인 부분이라 하겠다. 결혼시기는 중매 결혼의 경우
남자 32세 여자 28세 연애 결혼의 경우 남자 28.2세 여자 25,4세가 평균연령이다. 옛날의 일본에는 남녀가 성인이 되면 마을에 남녀 각각
젊은이들끼리만 기거하는 숙소가 있어서 그 곳에서 잔다. 모임을 통해 남녀가 눈이 맞게 되면 양가에 알려 결혼하게 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한
풍습의 영향인지 지금도 일본의 젊은이들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따로 나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결혼 관련 풍습
결혼식에는 가까운 친척만 참석하고, 피로연석에도 가까운 사람들만 한정하여 초대되므로 그냥 알고 지내는 정도의 사람들은 참석시키지 않는다. 대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엽서에 여행지에서의 사진과 함께 "결혼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인쇄하여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과 함께 여자는 남편의 성을 쓰게 되는데, 최근에는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경우 사회적으로는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선말 영친왕비를 '이방자 여사'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왕가에 시집 온 일본 황족 방자여사의 성을 일본식에 따라 이 쪽 성을 붙인 것이므로, 한국식으로 생각할 때는 옳은 명칭이 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법률적으로는 부모의 성씨 중 어머니 쪽 성씨를 따를 수도 있게 되어 있으나 대개는 부성을 따른다. 최근에는 여성들 족에서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에 대한 여성 차별을 들어 부부 별성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졸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 상대의 학력은 전문대 출신이 의외로 많다. 여성의 학력이 높을 수록 꺼리는 것은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 때문일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은 주로 호텔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호텔간 피로연 유치 광고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식 날을 받는데 주역을 이용하여 날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의 경우에도 다른 방법으로 날을 잡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는 길흉을 중심으로 한 6일간을 주기로 한 요일표가 따로 있는데 이를 '로크요'라 한다. 다이안이라는 날이 가장 좋은 날이어서 일요일과 다이안이 겹친 날은 결혼식장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브라이들(bridal)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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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부터 신혼여행, 새보금자리 준비 등에 드는 결혼의 총 비용이 8백 30만엔 정도라고 한다. (1993년) 이는 호텔에서 호화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은 해외로 가는 커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업화시켜 결혼식장에서 의상대여, 여행까지 대행해주는 회사들이 생겨났다. 이를 가리켜 브라이들산업 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미혼 남녀들을 회원으로 하여 각자의 기본적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시켜 이상적인 상대를 소개해주는 결혼정보 서비스업도 등장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
또한 결혼식의 내용, 예산에 맞는 요리, 답례품 등에 관하여 상담을 해주는 직업인 (bridal consultant)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