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순 씨
엄마!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잠잘 때 곁에 안 계셨어요.
제가 일어날 때도 곁에 안 계셨지요.
층층시하 대식구를 챙기느라 편히 누우신 모습 보지 못하고
항상 종종걸음치시며 애달픈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엄마는 떠나셔야만 했나요.
무엇이 그리 급하였는지, 대답 좀 해주세요.
효도 한번 하지 못하고 엄마를 보내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엄마의 소원대로 형제들 간에 서로 돕고 아끼고 사랑하며
그리고 아버지 잘 모시겠습니다.
엄마. 저희 곁에서 편안히 지켜봐 주시고 보살펴 주세요.
엄마, 미안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2024년 7월 29일 딸 삼가 올림
삼순 씨가 떠나는 풍경이다. 장례지도사가 성복제를 올리며 딸에게 추모사를 하라고 하여 훌쩍이며 읽던 글이다. 상주는 고인의 입관식을 보며 슬픔의 바다에 빠져서 하염없는 눈물을 보인다. 상복을 갈아입고 첫 제사를 지내고 지인들의 조문받느라 정신이 없다. 사흘이란 묵직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녀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까만 리무진 앞 좌석에 장손자가 영정을 들고 앉았다. 상주들은 커다란 버스에 올라서 눈물을 연신 훔친다. 생전에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한 채 헤어지게 되어서 후회막급한 게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생과 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붙어 있다. 얼마 전 아들딸 며느리 사위 손주 증손주가 다 모였다. 그녀의 구순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그 자리에서 백수하기로 약속한 게 무위로 끝났다. 저승사자가 착각한 듯하여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녀의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저녁을 함께하고 후식으로 복숭아를 깎아서 한 쪽씩 나누어 먹고 평소와 다름없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그는 거실에서 잠든 게다. 이른 아침 안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나서 그는 안심하고 논두렁에 풀을 깎으러 나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조반을 먹으려고 왔다가 기겁했다. 그녀가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다. 바로 구조구급대를 불러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여의찮아 경찰을 불러서 사체검안을 받아서 장례식장으로 옮긴 게다.
삼순 씨가 세상에 오던 모습을 톺아본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쌀과 온갖 곡식을 수탈해 가던 시기다. 너른 평야가 보이는 원적산 자락 광산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봄날 풋풋했던 시절은 수탈당하는 역사 속에서 견디어 내야 하는 고단한 삶이다. 더욱이 임금에게 진상하든 쌀 고장이라서 알곡은 모두 빼앗기고 쭉정이만 가지고 연명했다. 해방 후 어수선한 세상마저 순조롭지 않았다.
그녀의 봄은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했다. 수줍은 얼굴로 한 살 연하의 청년을 만났다.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이웃에 사는 강릉최씨다. 양가의 지인 소개로 만났으니 스스로 움츠리고 뛸 틈이 없다. 결혼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을 만들었다. 그길로 층층시하의 대가족과 마주한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모시고 삼 형제의 맏며느리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걸머졌다. 마치 작은 톱니가 큰 톱니바퀴에 끼어든 셈이다.
그녀는 고생하는 시대에 태어났고 일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끌려 들어갔다. 겨울이면 시아버지 지인들이 주야장천 몰려든다. 농사짓고 나면 겨우내 할 일이 없어서 마작하러 꾸역꾸역 오는 게다. 그녀는 숱한 이들의 먹거리를 조석으로 챙기느라 잠잘 시간이 없다. 딸아이도 한몫이다. 댓돌에 놓인 신발짝을 세어서 그녀에게 알려주는 일이다. 이뿐인가. 시동생 세간살이를 내주고 뒤치다꺼리하느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맏며느리로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고생은 이뿐 아니다. 자식이 애물단지다. 딸 하나에 아들 넷 다복하게 두었다. 온갖 정성 다 들여서 사랑했건만 걱정 눈물 한숨의 보따리다. 시집과 장가 보내면 한시름 덜 줄 알았으나 큰 착각이다. 자식에게 나누어 주려고 무더운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힘겨운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쌀, 콩, 참깨, 고춧가루뿐만 아니라 무 배추를 심어서 김장을 해주느라 쉴 틈이 없었다. 큰 며느리가 한마디 거든다. 촛불처럼 당신의 몸을 태워 가며 자식을 챙기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 온다고 눈시울 붉힌다. 그녀는 말없이 떠나지만,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한 여인의 희생은 산자의 가슴에 영원히 남으리다.
삼순 씨와 함께 한날이 화양연화였다. 오직 자신에게만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었던 아픈 삶을 안아 주고 싶다. 산자가 왜 떠나야만 했냐고 묻는 게 욕심이다. 그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판 다른 사정이 있었을 거다. 죽음은 영혼의 진화를 위하여 잠시 멈출 뿐이다. 이제 고단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편안히 영면하시길 사위가 손 모아 빈다.
길기만 한 인생도 돌아보면 한 장의 종이 안에 채우지 못하는 시간이다. 구순 잔치 날 내가 본 장모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
첫댓글 유병덕 수팔님
올려주신 수필 작품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