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 2024년 5월 24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꽃그늘
허이서
동창회에 가면 입들은 행복이 넘친다
돈 자랑, 집 자랑, 차 자랑,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자랑들 식당 안에 뜨겁게 둥둥 떠다닌다
잉꼬부부 자칭하는 누군가 나서 우쭐대며 말한다
끼리끼리 만나 팔자대로 사는 거라고
자랑할 거 없어 구석쯤에 앉아 물만 마시던 나도
없는 자랑거리 만들어 더 큰소리로 합세하자
시끌벅적 자랑들로 둥둥 식당이 떠내려간다
늦은 밤 동창회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세상 하나뿐인 모양과 빛깔로
험한 골짜기 어렵사리 핀 나만의 꽃이
시들시들하더니 이내 꽃잎을 닫는다
그들의 입이 함빡 피어 올린 꽃그늘 아래서
♦ ㅡㅡㅡㅡㅡ 자존감과 자존심은 다르다.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은 ‘세상 하나뿐인 모양과 빛깔로
험한 골짜기 어렵사리 핀‘ 나만의 꽃으로 당당할 수 있지만, 자존심과 자부심은 비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약간의 허세를 곁들인 자랑꺼리로 말의 꽃을 피우는 동창회, 번번이 자존심이 구겨지는 여자들의 동창회다.
‘끼리끼리 만나 팔자대로 사는 거’라며, 돈 자랑, 집 자랑, 차 자랑,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자랑들이 꽃을 피우는
자리는 없는 자랑도 만들어 내세우게 만든다. ‘척’이라는 허영과 과시의 자기애가 발동하는 것이다.
장미꽃의 화려함이 제비꽃의 소박함을 비웃지 않듯이, 보도블록 틈에 땅꼬마로 박힌 민들레가 온실 속의 희귀
란(蘭)을 부러워 않듯이, 사람도 사람끼리 그렇게 살면 안 될까?
너는 너대로 너답게, 나는 나대로 나답게, 저마다의 자존(自存)과 자존(自尊)으로 피운 세상 하나뿐인 아름다운
꽃이기를......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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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 꽃그늘 - 허이서 - 서울매일
동창회에 가면 입들은 행복이 넘친다돈 자랑, 집 자랑, 차 자랑, 자식 자랑, 남편 자랑자랑들 식당 안에 뜨겁게 둥둥 떠다닌다잉꼬부부 자칭하는 누군가 나서 우쭐대며 말한다끼리끼리 만나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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