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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의 의미 2013. 09. 29.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4장 27절)
왕이 마을에 찾아오자 온 마을은 기쁨으로 들떴습니다. 모두가 왕 앞으로 몰려왔고, 이윽고 왕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제자 열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게 합당한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도 다 떨쳐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엄숙히 언약하거니와 나의 제자가 되어 나를 섬기는 사람은- 내 성에서 나와 함께 왕 노릇하며 살도록 해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왕의 말을 열광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왕의 제자가 되겠노라고 자원하고 나섰습니다. 왕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엄선하여 열 명을 선택하느라 꼬박 하루를 보냈습니다.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은 슬픔에 젖고 풀이 죽었습니다. 제자로 선발된 이들은 즉시 왕을 따라 항구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그들을 왕의 성으로 데려다줄 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발된 이들 가운데 요밥이라는 사람이 왕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전하, 잠시 마을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작별 인사하는 것을 깜빡 잊었지 뭡니까? 금방 다녀오겠습니다.”요밥은 이렇게 말한 다음, 왕의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발길을 급하게 돌렸습니다. 그는 연인의 집에 당도하여, 자신이 왕의 제자로 뽑힌 것을 말하고 다시 데리러 오겠노라고 급하게 말하고, 잽싸게 발걸음을 돌려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항구에 당도한 요밥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의 삶이란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믿는다는 것, 그것이 곧 그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제자란 스승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스승의 사상과 행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제자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였는데,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것입니까?
오늘은 제자도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원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4장 18-20절 말씀을 보면, 맨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던 상황이 나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느니라.”는 기록을 보시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셨던 이유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다시 얻고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를 원하신 것입니까? 곧 잃어버린 영혼들을 다시 찾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구원을 받은 우리를 통하여, 다른 영혼들을 구원코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이 일이- 바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추수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영혼구원은 시대와 환경을 뛰어 넣는- 절대불변의 교회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고 있지 않으면, 그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 교회들이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 것입니까? 영혼구령보다 돈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가 돈을 버리는 이유도, 그 목적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다 무익하고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목표!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우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어떻게 반응했었습니까?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느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곧 사람 낚는 어부가 되시려면, 주님을 따른 제자들처럼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지불된 곳에는 항상 열매가 맺히고, 거기에는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사도행전 4장 13절을 보시면,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는 기록을 보게 되면,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많은 군중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그들이 본래 학문 없는 범인이었는데, 기탄없이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과 마침내 같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4장 25-27절과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세,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갔지만, 주님은 이들이 끝까지 따라올 제자로는 보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수많은 무리에게서 돌이키시며 끝까지 따라오는 제자가 되려면, 우리가 치러야할 대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웃 사랑을 강조하신 주님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제자에게 있으면-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 친족들이나 친구들을 거론하시지 않으시고, 가까운 가족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 중심이 바뀌기 않은 사람은, 곧 그 본성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집안 식구라도 원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10:36).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혈육은 가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우리 사랑의 1순위이지만, 0순위인 주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방해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목숨입니다. 여기서 자기 목숨이란 혼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영으로,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장 심각하게 막아서는 원수는 옛 자아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의 원수는 옛 사람의 사고방식입니다. 옛사람은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기억과 생각은, 옛사람에게 길들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이 살려고 하니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7절과 8절을 보시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나로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막아서는 원수는 변화되지 않은 내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옛 자아(혼의 생각)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데 가장 방해 되는 것은 자기 고집(혼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질적인 악습인 것입니다. 이것을 못 박지 않으면, 결코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센 놈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입니다. 만몬 귀신입니다. 그래서 33절에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재물은, 이 땅에서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하나님과 주인자리를 경쟁할 만큼 막강한 파워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간을 망하게 했고, 엘리사의 후계자였던 게하시를 넘어트린 놈이 돈귀신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가끔 주일 예배를 빠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돈이 아닙니까? 직장이 아닙니까? 모두가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는 재물의 종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 어떤 것도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 거침이 되거나,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는 사랑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하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6장 46절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이란 말의 의미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어찌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알렉산더 대왕을 잘 아실 겁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전략으로, 많은 땅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한번은, 아주 적은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한 도시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곳의 왕을 직접 만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그 도시의 왕은, 제아무리 명성을 떨치는 알렉산더지만 그 적은 군대로 무슨 전쟁을 할 수 있겠냐며 항복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자신과 그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겠노라고 공언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군대를 일렬로 세워서 낭떠러지를 향해 행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모두가 일렬로 낭떠러지를 향해 행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 도시의 왕은, 저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도자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들이라면, 제아무리 강한 요새도, 큰 군대도, 견뎌내지 못할 것임을 알았고 즉시 항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낱 인간을 따르는 군대에서도- 목숨을 건 담대한 순종이 있었는데, 그런데 하물며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명령을 우리가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한국에서 G-12 비전으로 부흥을 경험한 제주 열방 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군대처럼 순종하는 것이 그 교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목사로서 그 간증이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교회도 처음부터 순종하는 교회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성방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분도 저희와 같은 시기에 셀 교회로 전환해 보려고 나름대로 백방으로 노력을 기우려 보았지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교인들도 지칠 때로 지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목사님이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자주 거짓말을 한, 양치기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이 목사의 말에 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미국에 있는 친구 목사님으로부터 보고타에 있는 세자르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거기서 <바로 이것이다>는 확증을 얻게 되어서, 그곳에서 도와달라고 매달렸지만, 처음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배우고자 했을 때, 거기서 아시아 코디네이터로 있는 싱가포르의 로렌스 콩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분이 맨 처음에 요구하셨던 것이 바로 <순종>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면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셨답니다. 한국에 많은 목사님들이 책을 통해 G-12 원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성방 목사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방 목사님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고민하고 고통을 당해 봤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계약서까지 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로렌스 콩 목사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수없이 싱가포르에 갔다 왔고, 콩 목사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콩 목사님도, 수만 명을 섬기는 매우 바쁘신 분인데도, 수십 차례 제주도에 오셨고, 인 카운터 수양회를 비롯해서‘성공의 사다리’라는 전 훈련 과정을 직접 그 교회 리더들을 훈련을 시켜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훈련 코스인, 셀 리더 대학(S O L) 2학기까지 마친 사람들이 78명이었는데, 그 때 콩 목사님이 마지막 강의는 일정이 너무 바빠서 싱가포르에서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놀랍게 78명 전원이 거기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애기 엄마도 있었고, 회사의 중역들도 있었는데, 전원이 S O L 3학기를 마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주 열방 교회가 지금 큰 부흥을 경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78명 전원이 순종하는 것을 보고서, 콩 목사님은 제주 열방교회를 아들 교회로 인정하셨고, 정말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에 국제 컨퍼런스를 하는데, 싱가포르 FEBC 교회가 1억 원을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G-12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철저하게 요구하면서, 사랑하고 순종하는 관계를 G-12 정신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코디네이터가 된 이성방 목사님도 한국 교회 목사님들에게 자신이 훈련 받은 그대로 순종을 맨 처음 요구하셨습니다. 그대로 순종하면서 따라오면 모든 것을 도와주시겠다는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 자신이 콩 목사님이 도와주신 그대로 아들 교회의 리더들을 직접 훈련시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는 12월 둘째 주 목,금,토에 있을 인 카운터 수양회를 기점으로 <성공의 사닥다리> 전 과정을 일정을 만들어서 직접 훈련시켜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저도 온전히 순종함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여러분들도 저희 부부와 함께 준비된 리더들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흥분하며 말하는 것은, 저와 함께 셀 교회로 전환되기를 꿈꾸면서 함께 연구모임을 했던 제가 아는 몇 분의 목사님들이, 제가 크리스 목사님 교회를 만나서 배우는 동안, 먼저 1기 2기로 과정을 마치신 분들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들의 간증을 들어보았는데, 이성방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하기만 하면, G-12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교회들도, 모두가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저희도 그대로 순종하고자 하는데 함께 순종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까?
요한복음14장 15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가 먼저 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시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저희더러 ‘나를 따르라’고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 가운데로 걷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어둠이 짙은 곳에서 홀로 길을 찾아 걸어 본적이 있는 분은 무슨 의미인지 아실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소경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빛은 말씀의 계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보여 주시지 않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판단이, 내 분별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 보아도 길이 아니면, 한 번뿐인 인생을 고생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두운 죄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잘못 가본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의 안내를 받아 가는 것이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발의 등이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도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한 셀 교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그 길을 찾아 연구해 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많은 노력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먼저 그 길을 가보신 분들의 안내를 받아서, 겸손히 순종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곧, 방황의 끝이라고 믿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을 보면,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줄 아십니까? 주님을 그대로 따르는 자를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따라 순종했던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늘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천사 장 가브리엘이 예수님을 만나 여쭈어 보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수께서 하신 일이 너무 제한된 지역에서 되어 진 일이라서 만백성을 구원하기에는 미흡한 것 같은데,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분명“다 이루었다”하셨으니, 정말 다 이루어진 것이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다 이루었다고 대답하셨는데, 그래도 가브리엘은 걱정스러워서“천사들을 보내어서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 부탁해 놓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가브리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통치 않으니 다른 길이 없겠느냐고 다시 재촉했는데, 이 때 예수님은 “됐다. 나는 그들을 믿고 있으니 다른 계획은 없다”고 잘라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기와 함께 했던 제자들을 믿었기 대문에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복음이 우리에게 까지 전달 된 것은, 각 시대 시대마다 충성된 자들에게 이 복음이 맡겨져 오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이 복음이 전해져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의 횃불을 지금 누구에게 맡기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누구일까요?
어느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 사원을 뽑기 위해서, 입사 지원자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그것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알려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 회사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서 컴퓨터에 인물 분석을 의뢰해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질 만큼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며, 이들은 어머니를 앞세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했던,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사는 매우 이기적인 자이다. 도마는 매사에 너무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고 실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이다. 안드레는 너무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속도가 늦고 추진력이 떨어진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서 회사로서는 채용하기에 좀 위험한 존재이다. 세리 출신인 마태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독선적인 사람이다. 제자들 중 가장 이상적인 신입 사원을 뽑는다면 가룟 유다이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닌 자로서 그의 판단은 가장 현실적이다.”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 난 제자들이었습니다. 세상적인 판단으로는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였지만 그는 오히려 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몰라보고 구세주인 스승을 팔아넘긴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비록 인간적인 약점이 있어도, 자기를 따르는 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하게 되면, 누구나 사람 낚는 어부로 능히 변화되어 하나님께 귀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대문입니다.
성 프란시스에게 어느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행적에는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선생님을 보면 성자 같은 인격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그러자 프란시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간단한 거지.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내려다보시고 사람을 찾고 계셨어. 가장 추한 사람이 누군지, 가장 불결한 사람이 누군지, 고통 가운데 고민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장 병든 인생이 누군지 찾고 계셨어. 그 하나님의 눈길이 곧 나에게 머물렀어. 그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난 후에‘바로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을 붙들어 내가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줘야겠어!’라고 생각하시고, 나를 선택하신 거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이 땅에서 뛰어나고, 아름답고, 잘못이 없는,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야곱을 찾으십니다.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자, 오직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따르기로 작정한 바로 그 사람을 부르셔서- 그 사람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만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조만간 사람 낚는 어부로- 또, 준비된 리더로- 세워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함께 주님만을 따라가는 충성된 제자들이 되어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