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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독 자손, 제사장들에 대해 하신 말씀
천영대
성경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 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 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베 바지를 입고 땀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그들이 바깥 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찌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케 할까 함이니라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 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겔 44:15~22)」
죄악 된 길을 가지 아니함
사독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인 아히둡의 아들이며, 아히마아스의 아버지이다(삼하 8:17, 18:19, 대상 24:3). 다윗왕 때에 아비아달과 사독이 주된 제사장으로 활동을 했는데, 다윗의 말년에 왕위 계승의 때에 아비아달은 다윗의 살아있는 아들들 중 장자인 아도니아가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던 반면에, 사독은 선지자 나단과 함께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함께 했다. 사독은 다윗왕의 명령 하에 선지자 나단과 함께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했다(왕상 1:32∼35). 이후 이스라엘 왕이 된 솔로몬은 아비아달의 제사직을 박탈하고 사독에게만 주어 그와 그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게 했다(왕상 2:26∼35). 이러한 사독은 다른 레위 자손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아니하고 주님 앞에서 합당한 삶을 살았다. 에스겔 44장 15절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주님을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성소의 직분을 지켰다고 했다. 그들은 세상을 좇아 가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라감으로 그들이 마땅히 가야할 주님의 길을 갔다. 에스겔 48장 8∼11절에서는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광이 일만척이라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 중에는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온 우주의 중심은 우리 주님이시다. 이 우주의 중심이신 주님이 계시는 곳, 성소가 있는 곳이 이스라엘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라고 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할 때에도 성막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진을 쳤다. 이렇게 에스겔의 성전이 세워질 때도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했다. 이스라엘 족속이 예물로 드리는 거룩한 땅의 중심부분을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들에게 돌리라고 했다. 그 이유는 사독 자손들이 이스라엘 족속들이나 레위 족속이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스겔 48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전체를 세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그 북편은 이스라엘 일곱 지파에게 할당 되었고(겔 48:1∼8), 그 남편은 이스라엘 다섯 지파에게 할당 되었다(겔 48:23∼28). 그리고 거룩한 땅인 중앙 부분은 제사장들을 위해 구별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할당 받은 땅은 세부분, 곧 북편과 남편, 중앙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그 중앙 부분이 사독자손 중에서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들에게 할당 되었다. 또, 그 부분의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주님과 가까이 있는 가운데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주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들, 곧 주님께 수종하여 그 직무를 잘 수행하는 자들이 주님이 계시는 성소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곧, 제사장들, 레위 족속, 일반 족속들의 순서로 성소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들이 주님의 성소 제일 가까운 곳, 곧 이스라엘 족속이 할당 받은 땅 중앙에서 생활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레위 사람들이 그릇행할 때에 그릇하지 않고 주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주님과 접촉하면서, 친밀한 교제의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았다. 이것은 참으로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신약시대에서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에 대해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5장 9, 10절에서는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고 했다.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주 예수님이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했다. 이렇게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분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독의 자손들이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의 사람들이 그릇 행할 때에 그들과 같이 그릇 행하지 않고 그들과 다른 행실의 삶을 살므로 특별한 은총을 받았듯이 우리 또한 일반 사람들과 분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우리는 이세대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본받아 그들과 같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육신을 좇아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지 않고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바로 알고 따름으로 그 뜻을 이루는데 함께 해야 한다.
베옷을 입음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그들이 주님의 성소에서 주님께서 맡긴 직분을 지켜 행할 때에 아무 옷이나 입지 말라고 했다. 에스겔 44장 16∼18절에서는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그들이 안 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 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베 바지를 입고 땀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그가 맡긴 직분을 지켜 행할 때에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으라고 했다. 양털 옷은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땀이 나게 한다. 땀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좋은 것이 아니고 저주를 받은 것이다. 창세기 3장 17∼19절에서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스러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그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살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수고와 노력으로 무엇을 이뤄 보려고 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이나, 은총 아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을 나타낸다. 레위기 6장 10절에서는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제사장이 성소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할 때에 땀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님과 접촉하고 그를 섬기는 일은 거룩한 것이고, 복된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땀을 흘리는 것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수고하고, 분투하는 것이다. 역대상 15장 27절에서는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라고 했다.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은 다 세마포 옷을 입었다고 했고, 다윗은 베 에봇을 입었다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수고하고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주님께서 공급하는 힘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종교적인 계명들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사 안식하게 하신다. 베드로전서 4장 10, 11절에서는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했다. 자신의 지혜나 능력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대로 하고,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했다. 우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수고하고 노력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라 말하고 행해야 한다. 골로새서 1장 27∼29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다. 사도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주님의 일을 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했다.
머리털을 깍기만 함
머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또 그 머리를 덮고 있는 머리털 또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5∼15절에서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 …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 …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그리스도와 남자와 여자의 권위와 머리에 쓰는 것, 곧 머리를 덮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이 된다고 했고, 여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신에게 영광이 된다고 했다. 또, 머리를 미는 것은 부끄러움이 된다고 했다. 아모스 8장 9, 10절에서는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하게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범죄의 결과로 망하게 됨으로 그 날에 주님께서는 해가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그들의 절기를 애통으로 변하게 하고,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여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할것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고, 주님을 대적하고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곤고케 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곤고케하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미가 1장 16절에서는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찌어다 네 머리로 크게 무여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찌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미치게 됨으로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라고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욕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는 사람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고전 11:5),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그 영광이 떠나고 욕됨이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영광스럽게 되지 못하고 욕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적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요 8:44)가 사람을 미혹하여 사람을 타락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그 구속을 받은 우리가 그의 몸된 교회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그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다(엡 1:22, 23). 오늘날 우리 주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다. 아담과 하와가 머리이신 하나님 아래서 그에게 순종하고 보호함을 보았더라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에서 벗어나 자신 임의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 머리이신 주님께 불순종함으로 타락하게 되었다.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인간 모두는 하나님을 머리로 두지 아니하면, 주님의 몸의 지체들인 우리는 머리이신 주님을 머리로 두고 생활하지 아니하면 마귀의 미혹을 받아 넘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이 우리의 머리가 아니고 주님이 우리의 머리이신 것을 모든 천사들에게 나타내 보여야 한다. 이에 대한 표시로 우리는 머리털을 밀어서는 안되고 다만 깎기만 해야 한다. 에스겔 44장 20절에서는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 의하면 모든 머리카락을 미는 것은 주님의 머리되심을 부정하거나, 그에 대한 배역이 된다. 그러므로 머리에 일정한 양의 머리털이 있다는 것은 주님의 머리되심 아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긴머리는 아름다운과 영광을 나타낸다. 이렇게 남자에게 긴머리가 있다는 것은 그가 자기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자기 쾌락과 누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전11:14). 이러한 자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 만족을 위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어 머리이신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자기 임의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로서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이신 주님의 권위 아래 주님께 순종하므로 그를 높이고 섬기고 그의 뜻을 이루는데 함께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처녀와 결혼 함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레위기 21장 6, 7절에서는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것이며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의 결혼에 대해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고, 이혼 당한 여인도 취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제사장은 여호와께 거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레위기 21장 13∼15절에서는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제사장은 아무나 아내를 삼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으라고 했다. 처녀라 할지라도 이방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들 중에서 처녀를 취해 아내를 삼으라고 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그를 섬기고 일하는 자들 또한 그러해야하고 그와 하나가 되는 아내 또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겔 44장 22절에서는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라고 했다. 과부나 이혼한 여인과 결혼하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와 결혼하라고 했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과부나 이혼한 여자에게 장가 들지 아니하는 것은 사람들을 접촉하고 교제하는 일에 있어서 복잡하거나, 혼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1장 2, 3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다. 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믿는 자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약혼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전에 뱀이 간교하게 이와를 미혹한 것처럼 그들의 생각이 부패하여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처녀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이끌리지 않고 오직 약혼한 자만 생각하고, 사랑하고, 바라며 산다. 마음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지 않고, 오직 약혼자에게만 집중되고,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함께 한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는 한편에서는 왕같은 제사장이며(벧전 2:9),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약혼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뱀인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 있는 여러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단일한 마음으로 주님만 추구하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다. 우리는 단순히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로서의 삶만 사는 자들이 아니고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제사장이며, 왕으로 다스리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진실함과 깨끗함과 정결함의 처녀로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잔치에 참여 할 때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단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며, 대단한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