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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노의 저 밝은 미소를 내년 시즌에도 볼 수 있을까요? 남은 두 번의 등판에 많은 것이 달려있습니다. ⓒ민기자닷컴 |
그러나 미국은 모두에게 약속의 땅은 아닙니다.
지난 1991년 이래 적어도 135명의 쿠바 출신 야구 선수가 미국 프로야구 팀과 계약을 했습니다. 그 중에 빅리그를 밟아본 선수는 24명. 프란시슬리 부에노도 아주 짧았지만 빅리그 경험을 한 쿠바 출신 선수 중의 한 명입니다.
쿠바에서 미국과 도미니칸 공화국, 다시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게 된 부에노를 만났습니다.
-아직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다. 한국에 온 둘째 날인가 대전에서 장거리 캐치볼을 하는 것을 봤다.
▶이제 20일이 조금 넘었다. 장거리 캐치볼은 내가 좋아하는 훈련법이다.
-이름이 정확히 프란시슬리 트루에바 부에노가 맞나.
▶아니, 정확히는 프란시슬리 부에노 트루에바의 순서가 맞다. 부에노가 성이고 트루에바는 어머니의 성이다.
-부에노가 ‘좋다’라는 의미가 있지 않나. 그런데 성으로는 처음 듣는다.
▶그렇다, 부에노는 영어로 GOOD, 즉 ‘좋다’라는 뜻이다. 성으로는 아주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부에노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친척이다. 아주 드문 성이다.
-쿠바에서 야구의 인기는 상상 이상일 텐데.
▶남자아이들의 꿈은 모두 야구 선수다. 나도 9살 때부터 시의 팀에서 뛰었다. 1루수와 투수, 그리고 우익수도 봤다. 그리고 14살 때부터 주니어대표 팀에서 뛰기 시작했다. 쿠바에서 열린 팬암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쿠바에서 프로 생활도 일찍 시작했는데.
▶19세에 최강팀인 하바나 인더스트리알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애틀랜타에서 뛰던 유넬 에스코바, 카니살레스, 캔자스시티의 브라얀 페냐 등과는 어려서부터 함께 야구를 했던 친한 친구들이다.
-쿠바 프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가게 된 건가.
▶2004년 올림픽을 앞두고 사건이 있었다. 그 해에 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2승2패인가를 기록했고 대표 팀에서도 아주 좋았다. 25명 대표 팀 멤버로 뽑혀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쿠바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에서 뛸 수 있다는 대단한 영광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탈락한 건가.
▶탈락? 글쎄. 아테네로 떠나기 이틀 전에 갑자기 나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25명 중에 24명은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나는 쿠바에 남았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한 건가. 혹시 망명할까봐 그런 것 아닐까.
▶아마도. 그러나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쿠바를 사랑하고 쿠바의 야구 대표팀 선수로 뛰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지막 날에 대표팀에서 홀로 탈락하고 나니 막막했다. 화도 나도 너무 슬프고. 그래서 미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쿠바를 떠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보트를 탄 건가.
▶그렇다. 2004년 8월 초였다. 21명이 작은 모터보트에 타고 쿠바를 탈출해 플로리다로 향했다. 이틀간 배를 달렸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라니?
▶플로리다 근처까지 갔는데 미국 해안 경비대에 체포됐다. 모두 쿠바로 송환됐다.
-그런 일이 있어도 쿠바로 돌아가면 별 일이 없나?
▶5,6일쯤 수감돼 심문을 받고 그리고 풀려난다. 그러나 쿠바에서 야구와 관한 모든 것은 끝이었다. 더 이상 야구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럼 다시 탈출을 시도했나.
▶첫 실패 후 20일쯤 지나 다시 보트를 탔다. 10미터쯤 되는 보트에 이번에는 23명이 탈출했다. 나의 누나, 그리고 야구하던 친구들 4명도 함께였다. 이번에는 플로리다 남쪽에 있는 키 웨스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날이 2004년 8월 22일이었다. 바로 얼마 전이 탈출한 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 탈출한 다른 선수들도 메이저에서 뛰고 있나.
▶아니다. 나 혼자만 계약해서 미국 프로에서 뛰었다. 다른 친구들은 마이애미 쪽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뛰어난 선수였던 모양이다.
▶그건 아니다. 아주 좋은 선수들이었는데 운이 없었다. 쿠바를 탈출한 것도 그렇지만 결국은 살면서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 지금까지 5번 등판한 부에노는 아주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위와 제구력은 수준급이고 왼손 투수라는 강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
-사이닝 보너스는 많이 받았나.
▶전혀 아니다. (웃음) 아주 조금 받았다.
-2006년에 곧바로 더블A에서 미국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다가 더블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 해에는 17경기에 나서 3.59의 평균자책점을 보였지만 성적은 1승7패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더블A에서 시작해 트리플A에서 시즌을 마쳤다.
-빅리그 데뷔는 2008년이었다. 그런데 딱 한 경기뿐이었다.
▶2008년 8월이었다. 시카고 커브스와 더블헤더를 했는데 1차전에 구원 투수로 나갔다.
-그 경기에서 커브스의 소리아노와 사건이 있었고 코치와 함께 퇴장당하기도 했다.
▶투수와 타자, 팀과 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후로는 알폰소와 잘 지내고 있다. (소리아노가 8회에 부에노에게 깊숙한 플라이를 치고는 홈런을 친 것으로 알고는 느릿느릿 뛰다가 공이 담장에 맞고 떨어져 단타에 그쳤습니다. 홈런을 치고는 상대 팀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깼고, 게다가 홈런도 아니자 다음 이닝 부에노의 공이 소리아노의 머리 뒤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러자 양 벤치에서 뛰어나오고 결국 부에노는 퇴장 당했습니다. 3경기 출전 정지도 당해 만약 빅리그에 복귀한다면 이 벌칙을 받아야 합니다.)
-그 후론 빅리그 기회가 없다가 올해는 멕시코에서 뛰었다, 어떻게 된 건가.
▶작년에 트리플A에서 뛰었고(33경기 5번 선발 4승1패 3.13) 올해 스프링 캠프에 갔는데 마지막 날에 40인 로스터에서 빠졌다. 그래서 익스텐디드 캠프에 좀 있다가 구단에 떠나겠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마이애미로 가서 개인 훈련을 하다가 5월 27일부터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다.(4승2패 4.36)
-그러다가 한화로 오게 된 건가.
▶작년부터 한화가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애틀랜타가 풀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멕시코 리그에서 뛸 때 다시 연락이 됐고,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다. (애틀랜타는 부에노를 미국 내의 다른 팀에서는 뛸 수 없다는 보유권을 교묘히 계약서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멕시코리그로 갔다가 한화로 오게 됐습니다. 내년에는 다시 FA 자격이 생깁니다.)
-한국 야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올림픽 결승전 때 처음 봤다. 물론 나는 쿠바를 응원했지만 (웃음) 정말 대단한 경기였다. 두 팀 모두 정말 멋진 경기를 했다.
-미국에서 봤겠다.
▶그렇다, 트리플A 있을 때였고 콜럼버스 원정 때 클럽하우스에서 봤다. 정말 인상적인 경기였다. 한국팀은 정말 잘 했다.
-쿠바 팀에 친구도 많았겠다.
▶물론이다. 2004년에 함께 뛰던 친구들이 거의 다 있었다. 나도 정말 그들과 함께 뛰고 싶었는데....... 나는 쿠바를 사랑한다, 다만 쿠바 정부가 싫을 뿐. 참 아름다운 나라이고 재즈 뮤직도 그립다.
-결승전 9회에 심판이 엉망이었다.
▶와우~. 99번(류현진)이 스트라이크를 정말 많이 던졌는데 계속 볼! 볼! 했다. 99번은 정말 대단한 투수다.
-류현진이 미국에 가면 어떨 것 같은가.
▶아, 20승도 거둘 수 있다. 양키스나 레드삭스나 좋은 팀에 가면 정말 많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 부에노는 밝고 활달한 성격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7번의 등판으로 충분한 검증이 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민기자닷컴 |
-내년에도 한국에서 뛰고 싶은가.
▶나는 꼭 뛰고 싶다. 내가 풀 시즌을 뛰면서 14, 15승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한국에 와서 몇 경기를 던졌는데 기복이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 타자들은 강하다. 그러나 이 스타일의 야구와 타자들에 적응해가고 있다. 남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 내년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고 주어진 기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한국 음식은 잘 적응하나.
▶밥이 너무 맛있다. 예전에는 날리는 쌀만 먹었는데 한국 쌀밥은 최고다. 그러나 김치는 너무 맵다. 한국이랑 멕시코는 음식이 아주 맵다.
-가족들은 함께 있나.
▶아니 (체류 기간이)너무 짧아서 혼자 있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마이애미에 있고, 부모님은 도미니카에 사신다. 탈출한 후에 도미니카 영주권을 받고 부모님을 모셨다. 만약 내년에 한국에서 뛴다면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남은 시즌, 그리고 남은 야구 생애 동안 행운을 빈다.
▶고맙다. 살면서 행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팀을 위해 좋은 피칭을 하고 싶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큰 벽이 항상 존재합니다.
그들의 어떤 상황에서 입국을 하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됐는지, 그리고 얼마큼의 능력을 지녔는지 상관없이 즉각 좋은 결과를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적응해서 납득할만한 좋은 결과를 보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생소한, 문화도 언어도 음식도 그리고 야구도 전혀 다른 곳에 와서 빠른 적응을 요구한다는 것이 무리지만, 그래도 큰돈을 주고 데려오는 외국인 선수라면 모든 역경을 딛고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에노의 경우는 그 기회가 좀 너무 짧다는 느낌입니다.
이제 남은 시즌 동안 2번 정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말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면 내년을 기약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에게 주어진 등판 기회는 총 7번 정도, 과연 그것으로 부에노의 진짜 능력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급한 것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실정이지만, 때론 너무 근시안적인 결정이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에노도 그런 풍토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왼손 투수라는 장점에 구위나 제구력도 뛰어난 편이고 성격도 원만합니다. 나이도 만 29세니까 체력적으로나 경험 면에서도 전성기로 가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리그에 가도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투수로 보입니다.
첫 쿠바 출신 투수의 코리언 드림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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