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카일라스 산의 산-돌이(Kora) 순례
* 바깥쪽 '산-돌이’, ‘바꼬라(Out Kora)'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쏟아졌지만 출발을 더 늦출 수 없기에 우리 연합순례단은 짐을 실은 야크 떼와 몰이꾼을 앞세우고 길을 떠났다. 순례의 베이스 캠프인 다르첸을 기점으로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자인나 교도는 시계방향 쪽으로 뵌뽀교도는 그 반대방향으로 산을 한 바퀴 도는 순례인 산-돌이 1)즉 ‘꼬라’ 또는 ‘파리끄라마’를 떠난다.
성스러운 산을 한 바퀴 도는 순례행위는 옛부터 힌두교를 비롯한 4대 종교에서 신성한 의식으로 인식되어 내려왔다. 불교 또한 예외일 수 없어서 이번 생에서의 업(業, Karma)을 정화하는 방법론으로 권장되었다. 그리하여 한 번의 꼬라는 이생에서의 죄를 소멸시킬 수 있고 세 번을 하면 전생의 업까지 정화시킬 수 있어서 108번의 꼬라는 이생에 해탈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생기게 되었다.
총 53km의 전 여정을 대개는 2박3일 또는 3박4일로 잡기에 그간의 식량과 숙박에 필요한 장비는 직접 지고 가든가 아니면 야크를 세내어 지고 가게도 한다. 이곳은 산소가 평지의 절반 밖에 안되기에 초심자들은 빈 몸으로 걷기도 힘들기에 만만치 않은 중량의 짐은 무리이다. 그래서 대개는 야크의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예비용으로 만약 고산병이 심해 운신을 못할 경우는 짐 대신에 본인이 얹어지는 사태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이 카일라스 산의 특징 중의 하나는, 히말라야산맥의 봉우리들은 서로 인접하게 붙어 있어서 높지만, 높아 보이지 않는 반면, 광활한 고원에 떨어져 홀로 솟아 있는 이 산은 산 밑까지 다가갈 수 있어 거기서, 눈앞에서 아니 코앞에서 2천m의 단일 봉우리를 올려다 보기 때문에 더욱 거대해 보인다. 그렇기에 근대 삼각측량법에 의한 확인 전까지는 세계의 최고봉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수미산설 은 시작되었었겠지만….
또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점이다. 중간의 될마 고개(5,620m)만 제외하고는 계곡길을 따라 걷는 평탄한 길이기에 고소적응만 된다면 누구나(?) 꼬라를 할 수 있기에 정화론(淨化論)의 설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신심이 독실한 티베트인은 이 전 과정을 오체투지로 순례를 하는데, 그 중 일부는 도중에 정말로 몸을 바꾸는 해탈을 하여 중간에 있는 천장장(天葬場)에서 독수리 먹이로 화하기도 한다.
안개 속을 뚫고 몇 시간을 가다 보니 산의 서쪽면의 넓은 계곡이 나타나고 산의 입구를 알리는 강니탑2)과 거대한 높이의 기둥, ‘다르포체’3)가 수 많은 오색의 깃발, 다르촉에 휩싸여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바로 ‘수미산설’에 의하면 사천왕중의 하나인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지키고 있는, 루비보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서쪽세계의 시작인 곳이다. 정말 바위의 색깔 들이 붉은 루비 색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자, 이제 여기서부터 불보살의 세계인 것이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처음으로 산의 정상, 즉 제석천의 얼음궁전을 볼 수 있다지만 오늘은 안개가 온통 산허리를 감싸고 있어 산 정상은커녕 중턱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안개 속 어디에선가 눈이 넓은 광목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이방인들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으스스함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해마다 성대한 ‘사가다와’4) 축제가 열린다. 불교의 4대 기념일 중에서 3개가 몰려 있는 티베트력의 4월은 ‘불살생의 달’로 지정되어 설역고원은 온통 축제분위기이다. 그중 불탄일인 4월 15일의 행사는 가장 성대하다. 특히 말띠 해는 더욱 요란하다 한다. 붓다가 태어난 띠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직접 참관 못한 아쉬움을 현대의 베스트셀러 여류작가의 참관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매년 티베트 달력으로 4월15일은 불탄일(佛誕日)이다. 이날은 신산(神山)의 경번(經幡)을 새로 다는 날이다. 금년은 말띠 해여서 특별히 성대하게 치러졌다. 올해에 산을 한 바퀴 돌면 다른 해의 12배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다르첸 마을에는 아름다운 천막이 5, 6백 개가 쳐져 마치 무슨 성읍이 새로 생긴 것처럼 굉장하다. 이때는 본토뿐만 아니라 몽골, 청해, 사천 등지에서 트럭이나 도보로 일 년씩이나 걸려 5, 6천명이나 모여든다. (중략) 라마승이 나팔을 불고 북과 징을 두드리며 진행하는 법회는 26미터나 되는 큰 기둥에 새로 인쇄한 경문을 달고 여러 곳에서 기증한 경번을 묶어서 그 거대한 기둥을 많은 장정들이 몰려들어 땅에다 세운다. 이때 라마승은 성수(聖水)와 술[靑棵酒]를 뿌리며 길상을 기도한다.”5)
초파일 행사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날짜가 4월 15일 이라는 것과 샤머니즘에서 쓰는 오색깃발을 높은 당간지주(幢竿支柱)에 다는 것과 술을 뿌리는 것도 그리고 말띠 해를 강조하는 것도 그렇다.
이는 불교에 뿌리내린 융둥뵌뽀교의 영향에서 기인한다. 흔히 ‘뵌뽀의 불교화’라고 표현하지만 반대적으로 해석하면 ‘불교의 뵌뽀교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티베트 불교의 특색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해동의 나그네의 목적, 물론 성산의 순례 말고도 또 다른 나만의 작업이 있었다. 바로 내가 그림을 도안하고, 파고, 찍은 다르촉을 이곳에 거는 설치작업이었다. 그 일 년 동안 티베트대학 작업실에서 직접 오색천에 찍은 1,080장의 작품이었다. 현대 예술론으로 본다면 일종의 ‘행위예술’이나 ‘설치작업’이지만 나는 이것을 현대 쪽 보다는 “원시예술의 재현행위”라는 개념을 갖고 이 일을 추진하였다.
“오색 깃발은 바람을 부른다.” 하였던가…
그 깃발에 나의 소망을 담아 저쪽 너머의, 피안의 세계로 날려 보내려는 것이다. 이미 내 뜻을 이해한 일행들의 도움으로 서둘러 108장 단위로 줄에다 묶은 10다발의 1,080장의 깃발을 다르포체에 연결된 줄에다 마침내 걸게 되었다. 그러자 마자 역시 바람은 달려와 주었다. 그 깃발들은 마치 영원의 세계속으로 날아갈 듯 세차게 펄럭였다.
그러나 뒤 따라서 콩알만 한 우박까지 따라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념촬영도 할 사이도 없이 마치 ‘굿 망친 선무당처럼’ 두려움을 안고 일행을 뒤 쫓아 가면서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애썼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티베트대학 한 구석 좁은 작업실에서의 일 년이란 시간은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뒤 돌아보니 내 영혼이 담긴 다르촉은 열심히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그것들에 쏟았던 시간들을 쫓아가려는 듯이, 그렇게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길은 융단 같은 초원 속으로 북으로 뻗어 있었다. 온통 붉은 색의 거대한 바위들이 양쪽에서 도열한 넓은 계곡 사이로 길은 ‘신의 시냇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추’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이 신성한 이름의 물은 산 아래의 호수에 모였다가 다시 분출하여 동서남북으로 흘러 4대강을 이루게 된다. 그 개울에 아름다운 외나무다리가 걸쳐 있는데 역시 오색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다.
“어서 오십시오. 해동에서 온 순례자여!”
불․보살의 나라 첫 다리를 건너자 앞의 산 중턱에 제비집 같이 붙어있는 넨리곰파6)가 올려다 보인다. 순례로의 첫 사원이다. 그 길가에 연꽃 동굴 과 ‘코끼리 동굴 이 나타난다.
이곳도 음유시인 밀라래빠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이지만,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는 넨리곰파 밑에서 우리는 야크똥을 연료로 물을 끊이고 있는 순례자들에 섞여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일단의 원주민들에 섞여 길을 재촉하였다. 신의 냇물 라추를 따라 얼마를 오르니 오른쪽으로 거대한 붉은 바위가 하늘 가득 솟아 있다. 힌두교 교리체계에서의 파괴의 신 시바를 상징하는 삼지창 또는 금강저 모양의 마하깔라봉(Maha Kala峰)이다. 시바교도는 이마에 흰 물감으로 삼색선 또는 삼지창문양을 그리는데 이는 이 봉우리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힌두교도에게는 시바신(Shiva)은 죽음의 두려움 그 자체이면서 또한 창조의 열쇠를 가진 이중적인 신격으로 인식되어 있다. 시바신은 최고의 3신중의 하나로, 이 카일라스 산정에 살면서 때로는 출가수행자의 수호신으로, 때로는 순례자의 길벗으로, 때로는 요가행자(Yoga)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화현한다고 한다.
또 그는 사원 안에서는 링가(Linga,男根)형태로 안치되어 힌두교도들의 숭배를 받는데, 이는 창조의 원리와 다산의 의미이기도 한다. 그래서 시바신을 숭배하는 힌두교의 한 갈레인 시비즘(Shivism)에서는 카일라스는 남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링가를 숭배하는 것이다. 이곳에 직접 와서 시바신을 참배할 수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링가를 만들어 대신 숭배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사실 꼭 잘 생긴 남근처럼 생긴 카일라스의 생김새에도 그 근거가 있지만, 그보다도 카일라스에서 우주의 정액이 흘러나와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창조론에 더 비중이 실린다. 그 정액의 한 방울이 바로 우리 곁을 흐르고 있는 시냇물인 ‘라추’이고 그 정액이 모여든 곳이 바로 눈 아래 스와스티카[卍] 평원 저 너머에 보이는 창조의 에너지 즉 ‘요니’인 마나사로바(Manasarovar, 瑪旁雍錯, Mapan Yongcuo)7) 인 것이다. 불경속에서 ‘아뇩달지(阿耨達池)8)를 말한다. 물론 뒤에 이 신비의 호수 편에서 다시 창조론의 근거논리를 이야기하도록 하고 우선 남근신앙을 마저 살펴보도록 한다.
인도에는 유명한 석굴군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 엘로라(Ellora)9) 석굴군에는 카일라사나타(Kailasantha)10)라는 석조굴(石彫窟)이 있는데, 이 사원의 배치도가 실제 카일라스와 거의 같다. 또한 사원 깊숙한 곳에 거대한 ‘링가[링감]와 요니’ 라는 다소 거시기한 물건이 있는데, 그것들은 시바신의 남근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다시 바꿔 말하면 바로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호수인 것이다. 그것들은 한 눈에도 남녀의 성기가 삽입되어 있는 결합의 모양새여서 유교권 가치관이 뼈 속까지 배어 있는 우리 눈에는 사뭇 황당하고 해괴하게 보이지만, 힌두교 시바교파에서는 이를 시바신의 상징으로 인식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며 우주 창조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비단 엘로라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 전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퍼져 있다. 여기서 엘로라의 것을 거론하는 것은 그 비교적 7세기라는 이른 개창연대과 그 거창한 규모 때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원래 카일라스산의 주인은 브라만교의 최고의 창조신이며 번개의 신인 인드라신(Indra)이었는데, 브라만교가 후에 힌두교에게 그 자리를 내주자 인드라는 불교의 판테온으로 들어와 제석천신으로 변화하였고 대신 힌두교 측 그 자리는 시바신이 차지하게 되었다.
시바신화에 의하면 그의 신전은 바로 이 카일라스 산의 수정 봉우리 위에 있다 한다. 시바신은 그 수정신전에서 깊은 선정에 들어 있다가 때때로 산을 내려와 조용한 산기슭이나 마나사로바 호수가에 앉아 조용히 요가 수행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의 두 부인인 우마 또는 파르바티 여신과 함께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그의 부인이 호수에서 목욕하는 것을 바라본다고 한다. 시바신의 모습은 푸른 몸에 장발의 요가수행자로서의 용모 때문에 그는 티베트의 실존 인물인 밀라래빠와 동일시되어 많은 설화에서 혼동되어11) 묘사되기도 한다.
다시 계곡을 급하게 얼마쯤 오르니 계곡은 좀더 좁아진다. 서서히 날이 개이니 시야가 훨씬 넓어 진다. 왼쪽의 건너편에는 타라․아미타․비자야 봉 등이 차례로 솟아 있고 고개를 들어 오른편을 치켜다 보면 그 유명한 파드마삼바바의 또르마12) 봉(Torma峰)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이 이상하게 생긴 붉고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두고 4대종교는 각기 입장의 차이를 드러낸다. 시바교에서는 죽음의 상징으로 보지만, 불교에서는 16나한봉으로 인격화되었고 뵌뽀에서는 신장으로 보고 있다는 식으로 각기 그 이름과 역할이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또르마 바위 뒤에서, 눈부신 광선이 두 눈을 찌르는 듯 내리 꽂히며 안개가 순간적으로 걷히며 문득 거대하고 빛나는 대포알 같은 봉우리가 하늘로 솟아오르듯 나타나고 있었다. 순간 우리 일행 모두가 마치 현기증이 일어난 듯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그 숨 막히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 바로 카일라스의 주봉이 솟아오르듯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점은 바로 이 성스러운 산의 바로 밑 부분, 즉 시바신의 남근 뿌리부분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바로 눈 앞에 2천m나 되는 단일 봉우리가 솟아 있는 모양새이기에 가시거리 상으로 하늘을 거의 가리기 때문에 허리와 고개를 완전히 젖히지 않으면 정상 부분을 바라다 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목에 쥐가 나도록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그 장엄한 광경에 빠져들어 갔다.
이윽고 그 거대한 수정 봉우리 옆에서부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병풍이 처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하늘이 열린다’라고 부를 만한 그런 광경이었다. 그것은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신성이 화현하는 그런 세계였다. 우리가 보았던 것은 바위와 얼음으로 만들어진 자연물이 아니라 신격(神格)을 모두 갖춘 한 분의 눈부신 ‘창조의 신’ 이었다.
이 산에서, 아니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한 명의 티베트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의 한 명은 음유시인 밀라래빠와 쌍벽을 이룰 수 있는, 흔히 구루 린뽀체 또는 연화생(蓮華生)대사라고도 불리는 인물로 이 밀교성자는 설역고원에 처음 딴뜨라 불교를 전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고하고 이름을 비롯한 기타 인적사항이 그리 선명하지 않다. 단지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13) 즉 연꽃 속에서 태어난 자 라고만 불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천2백 년전 토번의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38대 티송데첸(Trisong Desten)의 초청으로 설역고원으로 들어와 불교를 전하고 티베트 최초의 쌈예사원을 창건하였지만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은 것을 간파하고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은거하며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마치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와 같은 궤도를 겪게 되었다고나 할까.
빠드마는 어느 동굴 속에서 ‘죽음 뒤의 세계[바르도 퇴돌]’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는 이 책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여러 동굴14) 속에 감추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가 지정한 그의 환생자들이 태어나 그 책들을 찾아내어 세상에 내놓게 안배를 하였다. 그들이 바로 테르퇸15)이라 불리는 굴장사(掘藏師)들이다. 이 이렇게 시작된 삶과 죽음을 연결한 ‘고서찾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찾아낸 책 중의 하나가 유명한 일명 <바르도 퇴돌>16) 즉 <티베트사자(死者)의 서(書)>이다.
한번 가만히 상상해 보자! 전생에서 스승한테서 받은 유촉을 잊지 않고 이생에서 기억해 내고는, 그 것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어둠의 동굴 속에서, 스승의 손때 묻은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을 찾아내는 모습을…….
얼마나 신비스러운 광경인가!
그 역사적인 동굴들의 하나가 지금 이 해동의 나그네 눈 앞 솟아 있는 또르마 바위 어디에 있다는 것이다. 어찌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겠는가?
음유시인 밀라래빠, 이런 곳에서 어찌 한 수 읊지 않았으리.
붉은 바위는 명성이 드높아 세상 사람들이 멀리서 칭송하네.
거대한 바위는 보석을 쌓아 놓은 것 같도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평원에 우뚝 솟은 장엄한 바위 봉우리.
붓다께서 이미 예언하셨네. 비제산맥의 큰 바위 검은 능선이라고 (중략)
붉은 바위는 빛나는 보석덩어리 천상의 성자들이 사는 궁전이네
여신들의 축복받은 수행자들이 사는 곳 성취한 수도자들이 은둔하여 명상하네
강물이 산을 에워싸고 흐르는 이곳은 세인들에겐 금지된 적정처
이보다 아름다운 은둔처 어데 있으랴
이보다 경이로운 적정처 어데 있으랴!
신비한 매장경전 <바르도 퇴돌>삼매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음영이 유난히 짙은 산그늘이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빠르고 그리고 무서웠다. 그 그림자에 쫓겨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서두른 탓에 다행히 깜깜해지기 전에 길을 잃지 않고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디라북곰파 마당에는 순례단들이 피워놓은 모닥불들이 여러 곳에서 타고 있었는데 그 연기는 멀리에서도 생명의 등대불 처럼 반가움의 대상이었다. 만약 그 화톳불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길을 잃었을 생각을 하니 더 더욱 따듯하고 아늑하였다.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의 사원으로 알려진 에베레스트 산 밑의 롱북곰파 보다도 더 높은 곳 해발 5,210m에 위치한 이 디라북 곰파는 13세기 까규파 종파에 의해 창건되어 순례자의 숙박지로서 이용되어 내려왔다. 디라북의 의미는 ‘암 야크의 뿔의 동굴’이란 뜻으로 동굴 천장에 야크 뿔 자국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객실로 쓰는 헛간 같은 방 두 채는 이미 인도팀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노숙을 하여야만 했으므로 하늘만 겨우 가리는 텐트를 빌려 잠자리를 마련하고는 저녁 준비에 부산하였다. 우리 팀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은 나와 일본 친구뿐이어서, 우리는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한끼 챙겨먹어야 한다고 의기투합하여 일단 주위에서 끓는 물을 얻어서 일본친구가 가져온 ‘알파인쌀’ 봉지에 부어 간단히 밥을 만들고 둘이 꺼낸 몇 가지 비상용 통조림 반찬을 꺼내놓고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사원 앞마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비록 고도 때문에 물이 제대로 끓지 않아서 꿀꿀이밥이 되었지만, 영원이 잊지 못할 인상적인 디너파티였다.
그리고 야크똥으로 피운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티베트 전통 수유차(酥油茶)17)를 얻어 마시며 노닥거리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우모침낭 속으로 파고드는 냉기와 텐트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밤하늘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었다.
달도 없는 그믐이었지만 주위는 어둡지 않았다. 하늘은 역시 어제처럼 오색영롱한 별들이 뿌려져 있는 별의 벌판이었다. 더구나 한 줄기 은하수가 바로 머리 위로 지나갔기 때문에 하늘은 마치 달밤처럼 밝았다. 그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영겁의 시간과 광대한 우주 속에서의 하루살이 같은 우리들의 한 평생이 무상해지기 시작한다.
천문학적 지식에 의하면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저별들은 실제로는 ‘지금’이 아니고 먼 ‘과거’ 속의 물체들이라 한다. 가까이는 수 년 전, 멀게는 수 천년 전의 별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시간으로는 나와 별들은 현재이지만 실제로는 시간과 공간상으로는 이미 먼 과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별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인가?
영원이란 의미와 저 찬란한 오색 별들의 화두는 이렇게 불면의 밤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피곤함에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녁이 되어 잠깐 깊은 잠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주위의 술렁거림에 신경이 쓰여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무슨 일인가? 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반대편 산봉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마치 잔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아니 코앞에 눈부시게 빛나는 수정 봉우리가 구름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문 입술 사이로 옴(Aum)‘이란 만트라 진언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지구별의 중심 안테나가 우주의 새벽을 열기 위해서 천문대의 돔지붕을 벗겨내고 우주와 교신을 시작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할 정도의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마침내 창조의 신 시바가, 빛의 신 인드라가, 선정불(禪定佛) 뎀초그가, 법신불 비로자나불이, 제석천이, 그리고 빛의 신 환인(桓因)할배가 자신을 우리들 앞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여기 저기에 카메라 다리를 세워놓고 아침햇살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홀딱 벗은 장엄한 성산의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찍어대느라 겨를이 없었다. 이윽고 성스러운 자태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버리자 모두의 입에서는 회향의 숨소리 ‘훔(Hum)’18)이 흘러나왔다.
아침은 더없이 싱그러웠고 햇빛은 말고 투명하였다. 중세기 티베트의 밀교성자 밀라래빠는 당시 이 산의 연고권을 갖고 있었던 뵌뽀교의 대마법사인 나로뵌충과 이 산의 연고권을 걸고 누가 먼저 정상에 오르는 내기를 하였는데, 이때 나로는 마술의 북을 타고 날아올라 정상 근처까지 갔을 때까지 밀라는 선정에 들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승부가 뵌뽀교의 대펴선수 나로뵌충의 승리로 끝나려는 순간, 이때 아침 햇살이 성산에 비추자 불교의 대표주자인 밀라래빠는 일어나지도 않고 자리에서 그대로 앉은 채 순식간에 빛을 타고 공간이동을 해서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나로가 의기양양하게 정상에 도착해서 보니, 아 흰옷을 사람이 먼저 도착해 있는 것이아닌가? 그래서 너무 놀란 나머지 가지고 있던 북을 떨어트렸디. 그래서 지금도 이 산에는 고랑이 생겼다고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환각상태에서 깨어난 생활인처럼 다시 순례자의 일과로 돌아와 수유차를 곁들인 간단한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장비를 챙기는 등의 부산스러운 출발준비에 들어갔다.
그 때 해동의 나그네는 혼자 시냇가로 내려왔다. 될마라추 라는 이름의 맑은 시내였는데, 이곳에서 물은 남북으로 갈라져 한쪽은 인더스로, 다른 쪽은 갠지스라는 이름으로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말하지면 갠지스와 인더스의 발원지이며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해동의 나그네의 버릇이 된, 황하와 양자강의 발원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준비해간 연꽃초를 꺼내 불을 붙여 가만히 물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 지금 이 불꽃에다 내 영혼을 풀어 얹으리라! 그래서 너를 따라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리라. 그곳이 갠지스면 어떻고 인더스면 어떠하리…”
<계속>
▼ 카일라스 산의 꼬라 개념도 / 황색선이 바같꼬라/ 노란선이 안 꼬라이다.
▼ 불교, 자인교, 힌두교는 시계바늘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꼬라의 시작점이다. 강니초르텐과 거대한 기둥인 다르포체에 수없이 많은 깃발이 걸려있다. 날이 좋은 날이면 멀리 카일라스의 주봉을 볼 수 잇는 지점이다.
▼ 꼬라를 시작하기 위해 순레자들과 야크들이 서쪽 계곡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 일단의 순례자들이 꼬라를 의해 출발하고 있다.
▼ 넨리곰파에서 바라보는 카일라스 주봉
▼ 신의 계곡의 시냇물 라추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바라본 주봉 / 바로 눈앞에 거대한 봉우리가 솟아 있기에 보통 렌즈로는 한 푸레임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 또르마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또르마봉의 웅자
▼ 카일라스 산위에 살고 있다는 시바신의 가족을 이미지화 그림이다.
▼인도 서남부 엘로라 동굴 제 16굴 카일라사나타 석조사원 원경
▼ 카일라스 산을 묘사한 카일라스 필라
▼ 엘로라 16굴 안의 시바신의 남근을 상징하는 '링가상(링감)'와 여성 자궁을 상징하는 '요니'상
/ 힌두인들의 숭배의 대상물이다.
▼ 시바신의 조소상
▼ 카일라스 북면 맞은 편에 자리잡은 해발고도 최고의 디라북 곰파
▼ 힌옷을 입은 은유시인이며 뛰어난 신통력을 지닌 밀교 성자 밀라래빠가 나로뵌충과 내기를 하는 광경을 묘사한 탕카
▼ 북면의 일출
▼ 북면의 웅자
1) 티베트어로는 바꼬라 또는 낭꼬라 라고 하는데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탑-돌이’ 에서 힌트를 얻어 ‘산-돌이’라고 번역하였다.
2) 카일라스의 지도에는 산의 정상을 볼 수 있는 전망대(View Point)를 표시해 놓고 있다. 첨부된 지도를 참조바람
3) 가운데로 사람의 통과가 가능한 강니탑은 성산의 입구를 의미하여 그 문을 통과하는 순간 성스러운 땅에 들어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주문에 해당된다. 당간지주(幢竿支柱)에 해당되는 다르포체는 다르촉을 거는 기둥으로 또는 샤머니즘에서의 신목(神木)을 상징하기도 한다.
4) ‘싸가’는 별자리 28숙(宿)의 하나이고 ‘다와’는 달을 의미하는데, 붓다가 싸가 별자리의 달에 태어났다 하여 티베트에서는 한 달 내내 축제기간이 이어진다.
5) 마리화(馬麗華), <走過西藏> 作家出版社, 1994, 그녀는 한족이지만, 누구보다도 티베트의 영혼을 사랑하엿기에, 뒤에 그녀와 비슷한 연배라고 이유로 친해져 그녀에게 많은 영적인 교감을 받았다.
6) 카일라스 꼬라 길의 첫 번째 사원으로 까규파에 속한 사원으로 산기슭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데 카일라스 정상의 전망대로 유명하다.
7) 티베트의 서남쪽 카일라스산 아래에 있는 호수로 남쵸, 암드록쵸 호수와 함께 티베트의 3대 ‘성호’로 불린다. 해발 4,556m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이다.
8) 아뇩달지는 아나바탑다지 또는 아나달지(阿那達)라고도 음역하고 무열뇌(無熱腦) 또는 청량(淸凉)이라 의역한다. 염부주의 4대하인 긍가․신도․박추․사다의 근원인데, 설산의 북, 향취산의 남에 있다. 혹은 히말라야 산중의 항하(恒河)의 수원을 가르키기도 한다. 티베트의 마나사로바호수를 말한다고도 하나 미상이다.
9) 장장 3백년 동안 조성된 엘로라 석굴군은 7~8세기에 가장 먼저 불교가 12개의 석굴이 조성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가 그 옆에 경쟁적으로 석굴을 10세기까지 조성했는데, 현재의 13~29번 굴이 힌두교 석굴이다. 8~10세기는 자인나교가 5개의 석굴을 남겼다. 각각의 종교들은 서로 경쟁하듯 더 크고 화려한 석굴을 만들었지만 상대방의 것을 존중하고 훼손하지 않았다.
10) 8세기에 세우진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힌두문화의 최대 백미로 꼽는 거대한 석조사원(石彫寺院)으로 바위산을 위에서 굴착하여 마치 돌을 쌓아 세운 것 같이 사원을 통째로 조각하였고 또한 그 내부를 뚫어 거주용 석실로 사용한 특징이 있다.
11) 시바신과 실존의 미라래빠는 그림상으로는 혼동될 정도로 흡사하게 묘사되고 있다. 둘 다 카일라스에 거처를 두고 있고 장발을 한 요가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후대에 밀라래빠의 이미지를 시바신의 그것으로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12) 똘마라고도 표기하며 사원에 올리는 공양물인데, 카일라스 서편의 한 붉은 바위가 꼭 또르마처럼 생겨서 명명된 것이라고 한다. 보리가루를 반죽해서 기본 구조를 만들고 버터를 이용하여 종교 문양이나 부처님, 호법신, 스승님 등의 모습을 정교하게 만든다. 크기와 모양과 색깔은 실로 다양하여 손바닥 크기에서 10m가 넘는 대형까지 있다.
13) 실존적인 빠드마는 인도인으로 탄트라의 대가로 신비과학에 정통한 스승으로서 인도 최고의 대학이며 당시 영적 탐구의 중심지였던 나란다 불교대학의 교수였다. 탄트라 불교를 부탄과 티베트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티베트에서는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 “두 번째 부처”로 숭배되기도 한다. 삼예 지방의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당시 토번왕, 티송데첸의 초청을 받아 티베트에 오게 되었는데, 당시 왕은 그가 오자 위대한 스승이 온 것이 기뻤던 나머지 라싸 근교까지 마중을 나가고 많은 금을 바치며 가르침을 구했으나, 그때 빠드마는 금을 모래로 만들고는 "나는 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후 모래를 다시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서 온 또 한명의 스승인 산타라크쉬타와 함께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쌈예사원을 세우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매장경전의 대표격인 <티베트사자의 서>의 자자로도 알려져 있다. 티베트불교의 고파인 닝마파의 시조로도 꼽힌다.
14) 매장경전으로 유명한 <티베트사자의 서>를 비롯한 65여권에 달하는 경전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동굴로 거론되는 곳은 여러 곳인데, 카일라스 서쪽 중턱의 또르마 바위와 함께 삼예사원 위의 침북동굴과 디굼티 사원의 인근의 티드름 그리고 제탕의 세르닥 토굴 등이 그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15) 이들은 타고난 신통력으로 어둠 속에서 고대의 경전을 찾아낸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르도 퇴돌>은 19세기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지방의 한 동굴에서 찾아졌고, 이후 히말라야 인접국가로 필사본과 목판본이 전해지다가 1919년 영국인 에반스 웬츠에 의해 발견되어 <티벳사자의 서>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6) ‘바르도 퇴돌’의 의미는 '죽음과 환생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영원한 자유의 가르침'이다. '바르도'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중간 상태'이며, '퇴돌'은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른다'는 뜻이다.
18) 여기서의 ‘옴’과 ‘훔’은 ‘옴 마니 빠드마 훔’의 그것으로 경계를 여는 시작의 진언인 ‘옴’과 경계를 닫는 ‘훔’, 즉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첫댓글 신비하고 경이롭습니다.
제 글재주가 모자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만....
디라북 곰파가 바꼬라의 중간쯤 되는군요.
거리상으로는 중간이 조금 못됩니다만,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디라북에서 하루를 자고 둘쨋날 해발 5천6백미터의 급경사 고개를 넘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꼬라의 완주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합니다.
★될마라추에 띄운 연꽃초는 지금쯤 어디에 가고 있을까요?
그곳에서 연꽃초를 띄워 본사람
이 과연 또 있을까요ᆞ
대단하신 발상이십니다ᆞ
벌써 바다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ㅎㅎ
북면이 더욱 장관입니다.
역시 명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