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얼마전 상금에 눈이멀어 nbc여성시대 방송에 보냈던 원고입니다. 상금받으면 형제들과 잔치하려 했는데 아쉽게 입선도 못했네요 상을 받으면 공개할수 없는데 하느님에 뜻인지 보기좋게 떨어졌네요 아마도 종교적 색체가 너무 가미되어 안된 듯 합니다. 애초에 cpbc 가톨릭 평화방송에 연말 신앙체험에 내려다가 마감되어 못내게 되었어요 형제들과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여성시대 애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참고로 저희가정은 천주교를 믿는 가정입니다. 아무런 믿음이 없었던 저희부부가 하느님을 믿게 된 동기는 아들이 장애아임을 알고부터 였습니다. 아들의 병명은 진행성 근 이영양증으로 점차 근육의 힘이 소멸되어 나중에는 심장의 약화로 호홉 곤란으로 사망하게 되는 치료약이 없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처음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기에 이런 사실을 몰랐던 저희부부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당시 저희부부에게는 잘 걷던 아이가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느날 갑자기 잘 걷지 못하고 이방 저방으로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아들을 꼭 안고 눈물로 슬픔을 달래는 것이 전부 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방황의 시간 끝에 누구에게도 의지할곳도 기대곳도 없던 저희부부는 어느 분의 권유로 우리가족 4식구 모두 똑같은날 한꺼번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세례후 우리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울하고 어둡기만 했던 우리가정이 하느님에 말씀 안에서 점차 웃음을 되찾게 되었고 아들의 장애가 서로의 탓으로 돌리던 것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김으로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던중 딸아이 교육문제로 송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집도 넓고 해서 아들은 참좋아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잘 살아오던중에 남편의 사업이 어렵게 되어 송현동에 있는 빌라 집을 정리하여 논공에 남편이 공장을 세 얻을 당시 있던 허름한 주택을 남편이 서툰솜씨로 도배도하고 바닥에는 판넬도 깔고 리모델링을 해서 따로 사시던 시어머님과 함께 또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사 가기전 그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관계로 온갖 벌레와 지네 그리고 쥐들이 살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이사하던날 가지 않으려는 아들에게 저는 설명을 해야 되는데 난감했습니다.
아빠공장이 망해서 간다 소리도 못하고 사실은 아들보다도 제가 더 가기가 싫었거든요. 차마 아이에게 엄마는 더 가기 싫다고 말할수도없고 정말 난감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아이에게 거기에 가면 들판도 있고 산도 있고 연못도 있고 공기도 좋고 더 좋은 건 아빠도 더 많이 볼 수 있고 아빠와 함께 있을 시간이 더 많다는 말에 아들은 말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아들은 논공으로 이사한지 4개월 만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이사한집 바로 위에는 주물공장이 있어서 밤이면 악취가 풍겨 창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당시 아들은 산소 발생기를 통하여 호홉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아를 키우기에는 너무나 좋지않은 악조건이었습니다. 이사하던 날은 매우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밤이라 아이를 재우기 위해 판넬에 스위치를 넣는 순간 어디선가 전선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재빨리 뛰어가서 스위치를 모두 내렸습니다. 화재가 발생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남편은 전선이 너무 약하다고 하며 당황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보! 어떡하지 판넬이 이렇게 전기가 세게 먹히는줄 몰랐네 하며 전기를 모두 내려야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날밤은 아들을 휠체어에서 내리지 못하고 아들을 꼭안고 양쪽에서 체온으로 감싸 안고 밤을 꼬빡 새워야 했습니다. 하느님! 지금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아들이 이 밤을 잘 견디어 낼 수 있게 힘을 주세요. 하며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날 밤은 너무나 길고 긴 밤 이었습니다. 그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손가락만한 제법 큰 지네가 나타나 깜짝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자다가 온 식구가 일어나서 그 지네를 잡아야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지네에게 물리면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자다가 몇 번 물려 봤는데 물린 부위가 오랬 동안 딱딱해지며 벌겋게 부어오르다가 곧 낳아졌습니다. 저희부부는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아들을 한가운데 눕혀놓고 잤습니다. 행여나 호홉기가 빠지지는 않는지 숨은 잘 쉬고 있는지 늘 지켜보며 깊은 잠을 이루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잘 견디어 내는 줄 알았던 아들은 꽃피고 봄이 오면 가족 나들이 가자고 약속했건만 그해3월에 더 이상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나던날 저녁 저와 남편은 아들이 그렇게 쉽게 떠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들이 호홉을 가다듬으며 한 마지막 한말은 엄마! 힘들어! 그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힘들어 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인 제가 해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들에 손을 꼭잡고 예수님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너를 건강한 아이로 낳아 주지못해 미안하구나’ 엄마 아빠는 너를 많이 사랑한다. 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어려움을 직감한 저희부부는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희부부가 항상 앞자리에서 미사참례 해왔고 최근에는 호홉기를 착용할때도 가끔있었던터라 많이 힘들어 하는걸 잘알고 있습니다. 전화로 신부님! 아들이 오늘은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울 것 같아요. 했더니 곧바로 신부님께서 와주셨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함께 기도 하는가운데 아무런 어려움없이 평온한 얼굴로 아들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렇게 크다란 고통 없이 숨을 거두는 아들을 보는순간 저는 하느님께 감사의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느님 감사 합니다.아들을 고통 없이 잘데려가 주셔서 하고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아들은 살아 있으면서 호홉곤란으로 많이 힘들어 했거든요. 그렇게 많은분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아들의 장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들에 흔적은 저에게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매일 아들을 등하교 시키면서 휠체어에서 오르내리며 아이의 몸무게를 감당못해 바닥에 안떨어 뜨릴려고 허리로 떠받치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와서 병원에서는 척추 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걸음걸이는 다른사람보다 조금다르다는걸 느낄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보내고 난뒤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마음의 불안한증세로 오랫동안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자는등 건강에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아들 떠나보내고도 몇 년을 그집에서 더 살았습니다. 남편의 몸은 호전되지 않고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였습니다. 남편은 생각 끝에 도저히 안되겠다고 하며 이사를 가자고 하여 1년전에 그곳에서 이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준비를 마치고 이사나오는날 남편과 저는 시어머니에게 함께 나갈 것을 설득 하였지만 시어머니 생각은 완강하였습니다. 저와 남편이 “어머니 저희와 나가서 함께 살아요, 하며 몇일을두고 시어머니를 설득 했지만 어머님은 됐다. 고마 너희들 마음은 고맙데이 하지만 너희들 아들 때문에 얼매나 고생 많이 했노 이제는 아무 거리낌없이 편한대로 마음껏 재미있게 잘살아봐라 나는 혼자 사는기 편하고 더 이상 너희에게 짐이 되기는 싫타 하시며 한사코 거절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저희 세식구만 대구 송현동 아파트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사 나온 뒤에도 한동안 남편과 저는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남편에 마음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되찿았고
아들에 누나인 큰딸은 지금은 특수학교 교사로 합격해서 선생님으로 김해에서 근무하고있습니다. 딸은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엄마아빠를 도와 동생 키우는데도 많은 도움을준 착한 딸 이었습니다. 딸은 집에오면 엄마 아빠에게 지금가르치는 아이들 이름을 이야기하며 자랑합니다. 누구누구는 어떻고 저떻고 하며 동생처럼 아이들을 대하며 많이 사랑하는 착한선생님이 된것같습니다. 얼마전 착한 청년을 만나 결혼식도 하여 김해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가끔 시어머니를 뵙기 위해 그집을 방문하면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공기가 좋지 않아서 주물공장에 사정도 하고했는데 몇 년전부터 새로 사장님이 바뀌고 난 뒤 크게 시설공사를 하고부터는 공기가 아주깨끗해 졌습니다.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졌습니다. 끝으로 17년간 장애아를 키워온 엄마로써 여성시대 가족 모든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저는 아들이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았기에 평생 서있는 모습을 단 한번만이라도 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공부 좀못하면 어떻습니까. 건강하게 잘자라 주는데 만족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해서 내소유가 아님을 명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으로 잘키웁시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 복은 타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귀여운 우리아이 많이많이 사랑해 줍시다. 아들 엄마 보고있지! 씩씩한 모습으로 잘살게 사랑한다 (송현성당) 가족여러분 모두 사랑 합니다.
*여성시대 이사에 얽힌사연을 보고 몇자적어보냅니다.
담당자 양희은 서경석님 사랑해요 행복하세요
전화 010-8586-1679 진곤이 엄마 배남숙 대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