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3장. 말하는 시체 08/22 22:49 332 line
3. 말하는 시체
고명원은 광주리 밖에 나와 있는 창백하고 조그만 손을 바라보며 무
한한 감개에 젖었다.
그는 자기가 젊었을 때 마교 제일 고수라는 명예를 얻게 됐던 사실
을 생각해 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사문이니 좌도니 하고 그를 기피했
지만 그는 기공(奇功) 이예(異藝)로 무림에 커다란 명성을 떨칠 수 있
었다.
그가 삽십세 때, 그는 감히 혼자서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무림
제일 고수 일대검성(一代劍聖) 매화노인에게 도전했다. 물론 그는 매화
노인의 검 아래 패배했지만, 그의 명성은 그로 인해서 무림을 진동시
키게 되었다.
그 때 화산에서 일전을 벌리는 동안 그의 처가 원수에게 사로 잡혀가
게 되었다. 고죽대사(苦竹大師)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너무 시달림을 받
은 후유증이 남아 아들을 대막의 빙천설지에서 낳자마자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그와 같은 전갈을 받고 화산에서 대막으로 달려가 고죽대사로부터
어린애를 받았을 때, 그 비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원수들을 모조리 추살했지만 어린애의 다리는 영영 불구가 되었다...
과거지사는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측은해져서 어린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다.
[얘야,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고검남은 어리둥절해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직히 말했다.
[아버지, 제 두 다리가 불구라서 아버님께 심신 양면으로 고생을 시켜
드리고 있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검남이 아버지께 누를 끼친 것이지
요.]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 늙은 애비는 목숨을 걸고 네 다리를 치료해 놓겠다. 자, 준비하자.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상청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는 아들을 위해 서방에서 나는 한천지죽(寒泉之竹)을 캐어다가 광
주리를 엮고, 그 속에 호피를 입히고 아들을 그 안에 넣어 두었다. 뚜
껑을 안에서 닫아 걸고 자물통을 채우면 그야말로 하나의 별천지가
되었다. 고검남이 어릴 적부터 다리가 불구였기 때문에 그는 아들의
내장으로 한기가 스며들까 봐 장백산으로 찾아가 일대교장(一代巧匠)
인 공치우생(公治羽生)에게 부탁해서 아들을 위해 연갑(軟甲)을 만들어
입혀주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 홀로 무당산 상청궁으로 뛰어들면 반드시 싸움이 격렬
해질 것을 알고 자세히 대광주리를 살폈다.
[검남아, 뚜껑을 닫아서 열지 못하도록 할래?]
고검남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아버지가 크게 위풍을 떨쳐 그 나쁜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해서 도망치는 꼴을 보고 싶어요.]
고명원은 웃었다.
[바보 같은 녀석. 너는 너의 아비가 대영웅호걸 천하무적인 줄 아느
냐? 빨리 뚜껑을 닫아라. 나는 사천당문의 독을 묻힌 암기가 무척 무
섭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못되어 너에게 상처를 입히면 야단 아니
냐!]
고검남은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 나중에 사천당문의 사람이 나타나면 저에게 한마디 해주세
요. 그러면 제가 즉시 뚜껑을 닫아 걸도록 하지요. 괜찮지요?]
고명원은 아들의 얼굴을 보고 귀여워서 그의 조그만 코를 살짝 비틀
었다.
[이 녀석, 네 말대로 하마.]
그는 대광주리를 받쳐들며 말했다.
[얘야, 그 한 알의 주과와 설련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
고검남은 대답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이미 연갑 안에 갈무리했어요.]
고명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 생각에 너는 미리 그것을 먹어 두는게 좋겠구나.]
고검남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현천 노도장께서 구전속명금단을 먹기 직전에 설연과 주과를 함께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 당장 복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요.]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이제 산 위로 오르자.]
그는 한 손으로 대광주리를 들고 천천히 정자에서 나와 산 위를 향
해 나는 듯이 치달았다.
한 산벼랑을 돌아 올라가니 앞줄에 도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열 두명의 도사들은 모두 장검을 지고 걸음도 날렵하게 달
려 내려오고 있었다.
고명원은 그들을 마주 향해 걸어갔다.
도사들은 좌우로 나누어지더니 길옆에 서서 고명원을 바라보았다.
앞에 선 중년의 도사가 허리를 구부리며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혹시 혈수천마 고시주가 아니신지요?]
고명원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맞았소. 노부가 바로 혈수천마라고 하는 사람이오.]
그는 열두 명의 도사들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노부에게 무슨 볼일이 있소?]
중년 도인은 대답했다.
[빈도는 현해(玄海)라고 하며 장문인의 명을 받아 시주를 산 위로 모
시려고 합니다.]
고명원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아! 장문인이라니...]
현해는 대답했다.
[현청 사형을 장로들이 공동으로 추대했기때문에 이미 제십이대 장
문인이 되었소.]
[현청?]
고명원은 입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장문인은 어째서 노부를 산 위로 맞아들이려는 것이오? 조금 전 노
부는 해검암 앞에서 오랫동안 장문인의 명령을 기다렸으나 산으로 오
르지 못한다는 대답이었소.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산 위로 맞아들이라
고 했소?]
현해의 등뒤에 있던 한 명의 도사가 입을 열었다.
[고시주께서 산 위로 오르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상청궁에 가려던 참이었소.안내해 주시
구려.]
고명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가운데 음모가 없다면 현청이 어째서 이랬다 저랬다 하겠는가? 이
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모든 증거를 없앴거나, 내가 다시 산 위로 오
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게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내려
보내 노부를 산 위로 데려가지 않았으리라...)
이 때 현해는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폐파에서는 장문인을 추대하고 있었소. 본 파의 장로들 외에
외부의 사람은 상청궁으로 들어가지 못했소. 그래서...]
고명원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알고 보니 그랬구려. 도장께서 잘 안내해 주시구려.]
현해는 몸을 돌려 산 위로 치달았다. 고명원은 조금도 쳐지지 않고
뒤따라 상청궁 쪽으로 올라갔다. 그의 등뒤로 다른 열한 명의 도사들
이 두 줄로 늘어서서 따라왔다.
그들은 여러 관원(觀院)의 앞을 지나게 되었다. 모든 산문은 꼭 닫혀
있었고 나와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고명원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현해 도장, 무당의 도사들은 천여 명이나 되는데 지금은 어째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소?]
현해는 냉랭히 대꾸했다.
[오늘 아침 전임 장문께서 수도귀진(修道歸眞) 하셨기에 현청 장문께
서는 본파의 제자에게 유시를 내려 각기 도관 안에서 사흘간 묵도를
올리도록 했지요. 그래서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없게 된 것이오.]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현청이란 자는 무섭구나. 이 사흘 안으로 그는 얼마든지
증거를 없애는 짓거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푸른 나무들이 수없이 자라 온 세상을 파랗게 물들여 놓고 있는 가운
데, 한 채의 금벽휘황(金碧輝煌)한 도관이 가파른 벼랑 앞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들어왔다.
그 파란 유리 기와는 햇살 아래 번쩍번쩍 광채를 번뜩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무당산의 상청궁이었다.
그 웅장한 건축과 널따란 마당은 보기에 심히 웅장했다.
백여 년 동안 무당은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무당의 무술은 사대 정종 검파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혔다. 비록 삼십
여 년 전, 일대검성 매화노인이 무당파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수석
자(漱石子)를 격패시켰지만 무당 검술은 역시 천하 무쌍이라고 공인받
고 있었다.
고명원은 이미 자기가 무당파의 한복판에 와 있음을 알고 자연히 마
음이 무거워졌다.
현청도인은 상청궁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다섯 명의 늙은 도사들
을 보며 나직히 말했다.
[아! 장문인께서는 몸소 영접을 나오셨소.]
한복판에 늙은 도사가 기다란 수염을 나부끼며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얼굴은 달덩이 같았고 머리에 우뚝 솟은 도관(道冠)을 쓰고 있었으며
몸에 팔괘풍화도포(八掛風火道袍)를 걸치고 손에는 한 자루의 불진을
들고 있었다.
그 늙은 도사는 상청궁 앞 돌계단 위에 서더니 계수(稽首)를 했다.
[무량수불, 고명원 시주가 아니신지요?]
고명원은 약간 허리를 굽혔다.
[노부는 고명원이오. 삼가 장문인에게 인사드리오.]
[감당할 수 없구려. 고시주께서 이토록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것은 무
슨 볼일이 있어서인지요?]
고명원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노부는 다섯 달 전 현천도장에게 오늘 방문할 것을 약속했었소. 그런
데 뜻밖에도 현천도장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비통하고 유
감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소.]
현청도장은 말했다.
[본파의 도형들은 모두 폐파의 고장문인을 애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조금 전에 고시주의 비위를 거슬렀나 보오.]
고명원은 껄껄 웃었다.
[하! 하! 하! 오히려 노부가 잘못했겠지요.]
그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노부는 현천도장을 기련산에서 처음 만났으나 즉시 막역한 사이가
되었소. 그 분은 제 아들놈에게 한 알의 구전속명금단을 주겠다고 약
속하셨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현청도장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작고하신 장문인께서는 빈도에게 그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폐파는 삼년 전에 마지막 남은 한 알의 속명금단을 곤륜왕(崑
崙王)께선물했지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파에는 속명금단은 없지만, 아직 벽나단(碧蘿丹)이 남아 있지요. 그
것이 자제분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구려.]
[노부는 삼가 장문인의 은혜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오.]
고명원은 인사부터 하고 옆을 돌아보았다.
[검남, 장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고명원은 대광주리 안에서 머리를 내밀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장문인, 고마워요.]
현청은 시선을 고검남의 얼굴에 던졌다.
[자제분은 정말 인중룡(人中龍)이군요. 빈도는 평생 자제분처럼 준수하
고 총명한 아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고시주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한
알의 백나단이 뭐가 대수롭겠습니까?]
고명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자식놈의 잔질(殘疾)은 귀파의 백나단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불초는 도장의 호의에 감사하오. 노부는 다만 현천도장의 유
용(遺容)을 한번 배알하고 이대로 산을 내려가고자 하오.]
현청은 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시주께서 원하시니 잠시 편전(偏殿)에서 차를 드시며 기다려 주시기
바라오. 고시주, 가시죠.]
고명원은 현청도인을 따라 상청궁 안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진무대전(眞武大殿) 안으로 들어서자 고명원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무대전 앞에는 향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등불들이 높
다랗게 걸려 있었다. 불문(佛門)의 정전(正殿)과 다른 점은 신상(神像)
이 비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 안이 더욱 넓어 보였
다.
그는 대전에 모셔 놓은 삼청교주(三淸敎主)의 신상을 대하자 자기도
모르게 엄숙해졌다.
진무대전이라는 글자를 쓴 커다란 편액을 바라보며 그는 물었다.
[소문에 의하면 귀파에는 진무대제(眞武大帝)가 몸소 주석을 단 도덕
경해(道德經解)가 소장되어 있다고 하던데...]
현청도장은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시주, 진무대제께서 직접 주석을 단 것은 모산(茅山) 상청궁에 있으며
본관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와 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일행은 정전에서 편전의 복도로 들어
서게 되었다. 난간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니 대전의 앞쪽은 넓은 마당인
데 마당 한복판에서 검기(劍氣)가 춤을 추고 있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무당 제자들이 그곳에서 검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고명원은 검술을 연마하고 있는 도사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당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말 무
시할 수 없겠구나.)
현청은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폐파의 일대 조사께서 정한 규칙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지요. 본파
의 검도를 연마한 제자들은 모두 이른 아침 공복시에 양기응신(養氣凝
神)하여 검술을 연마하도록 되어 있소. 이것은 전통적인 규칙이기 때
문에 현천 사형께서 돌아가셨다 해도 그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요.]
고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파는 내식(內息)이 긴 것을 장점으로 삼고 있소. 검술이 정순(精
純)한 것은 이미 무림에 알려진 일인데 오늘 보니 정말 틀림없군요.]
이때 대전 바깥쪽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리자 그 제자들은 검을 거두
더니 마당 오른쪽에 있는 한 줄의 방사(房舍) 쪽으로 걸어갔다.
현청은 설명했다.
[제자들이 밥을 먹을 시각이오.]
복도를 지나자 현청은 한 채의 방사 앞으로 가서 말했다.
[시주는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도록 하시죠. 빈도는 시주를 위해
아침상을 대령하겠소.]
고명원은 사양했다.
[그럴 필요 없소. 노부는...]
[시주께서 아침을 들지 않는다 해도 자제분은 배가 고플 것입니다. 그
러니까 우선 아침밥을 드시지요. 그런 후에 빈도가 현천사형의 유용을
뵈올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고명원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현청 역시 그 방으로
들어왔으며 나머지 네 늙은 도사는 바깥방에서 기다렸다.
고명원은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암습에 대비했다. 그러나 실내에는
한 명의 나이 어린 도사가 그릇과 젓가락을 놓고 있을 뿐, 다른 사람
은 없었다. 그는 교의(交椅)에 앉아 대광주리를 곁에 놓고 사면의 벽을
살펴보았다. 벽에는 몇 폭의 서화가 걸려 있었고, 나지막한 왜탑(倭榻)
위에 몇 권의 실로 꿰맨 두터운 책들이 쌓여 있었다.
현청은 그릇과 젓가락을 들더니 그 나이 어린 도사에게 말했다.
[고시주와 고공자에게 죽을 담아 드려라.]
그는 고개를 돌렸다.
[고시주, 산속이라 좋은 반찬이 없구려. 양해하십시오!]
고명원은 쟁반에 놓여 있는 반찬과 맑은 죽을 바라보았으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남과 함께 안심하고 죽과 반찬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난 후에 현청도장은 입을 열었다.
[시주께서 일부러 찾아오셔서 우리 사형의 유용을 뵙고자 하시니 응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제 빈도를 따라 오시지요.]
고명원은 물었다.
[현천도장의 영구(靈柩)와 유체(遺體)는 지금 어디에 모셔 놓고 있는지
요?]
현청도장은 대답했다.
[폐 사형은 어젯밤 단실에 조용히 앉은 채 서거하셨기에, 폐파에서는
아직 옮겨 놓지 않고 있지요. 빈도를 따라 가시지요.]
고명원은 대광주리를 받쳐 들고 현청을 따라 편전 뒤에 있는 단방(丹
房)으로 갔다.
그는 바깥방에 있던 늙은 도사들이 이미 물러가고 없는 것을 알아
차렸으나 그 점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현청도장의 태도에서 조
금도 빈틈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혹도 점
점 사그러 들었다.
단방에 이르자 현청도인은 석문(石門)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짙은 약 냄새가 왈칵 코에 스몄다.
고명원은 높이 여덟자의 정로(鼎爐) 옆에 한 구의 관이 놓여 있고 관
뚜껑이 닫혀져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급히 관 앞으로 다가갔다. 기다란 수염이 가슴팍까지 드리워졌고
서리처럼 허연 눈썹이 뺨까지 내려오는 노전진(老全眞)은 편안하게 누
워 있었다.
그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대광주리를 내려놓고 허리를 깊이 굽혀 절
을 했다.
[도장의 선영(仙靈)이 계시다면 이 못난 아우가 이곳에 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미약한 음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노제 왔는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걸음 늦었네.]
고명원의 움찔 놀라 관속에 누워 있는 현천도장을 바라보며 생각했
다.
(이 분은 정말 해침을 당했구나.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고...)
고검남은 부친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보자 부친의 놀라고 의아해 하
는 시선을 따라 관속을 바라보았다. 현천도장의 서리같이 하얀 수염이
미미하게 흔들거리고 두쪽의 메마른 입술이 몇번 달싹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대협, 놀랄 것 없소. 빈도는 악당들의 암산을 받아 온몸의 경맥이
모조리 잘려지고 말았구려. 고대협은... 한 걸음 늦었소...]
고명원은 가슴속으로 격한 감정이 끓어올라 몸을 굽히고 오른손을
뻗쳐 현천도장의 심장이 아직도 뛰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의 손이 막 현천도장의 도포에 닿았을 적에 갑자기 현천도장의 왼
손이 불쑥 뻗쳐 나오더니 그의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고검남은 머리를 대광주리 밖으로 내밀고 그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
었는데 그의 시선이 현천도장의 불쑥 뻗쳐 나온 왼손에 멎는 순간 그
는 경악해서 크게 부르짖었다.
[아버님! 현천도장이 아니에요!]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관속에 있던 그 사람은 상반신을 벌
떡 일으키더니 오른손을 재빨리 휘둘러 고명원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돌연 일어난 일이고 쌍방의 간격이 그토록 가까워 예사 사람이라면
그 음모에 걸려들어 독수에 당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고명원은 본능적인 반응과 고검남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즉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오른팔을 휘둘러 그가 명성을 떨친 혈수인을 펼쳐 상
대방을 단번에 쳐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손을 휙 뒤집어서 공력을 미처 내쏟기도 전에 팔이 얼얼해지
면서 공력을 돋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고명원이 대경실색하여 약간 어리둥절한 순간 그 관속에서 재차 일
장이 뻗쳐나와 어느덧 번개처럼 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퍽!
하는 둔탁한 음향이 울려 퍼지고 몸안의 기혈이 한차례 끌어 올랐으
며 몸뚱이는 마치 쇠망치에 얻어맞은 듯,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
냈다.
핏물이 뿜어져 관속에서 달려 나오던 현천도장의 얼굴에 쏟아져 일
시 눈을 뜰 수 없었다.
고명원의 반응은 얼마나 신속한가! 현천도장이 눈을 감고 머리를 흔
드는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서 그는 전신의 진기를 돋구고 목숨을 건
일격을 가했다.
일성을 대갈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에 든 대광주리로 맹렬히 아래를
향해 내리 찍었다.
현청도장의 상반신이 미처 관속에서 벗어나기 전에 대광주리가 밑으
로 떨어졌다.
관 속에 있던 그 사람은 두 눈에 공포의 빛을 떠올리며 호통을 내지
르더니 두 손을 비스듬히 쳐들어 아래로 떨어지는 대광주리를 밀어내
려고 했다.
펑!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가 뻗쳐낸 손은 커다란 바위를 후려
친 것처럼 두 팔이 부러지게 되었고 상반신이 뒤로 벌렁 쓰러지면서
다시 관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대광주리는 마치 한 떼의 커다란 산처럼 곧장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참나무로 만들어진 관이 중간이 부러지면서 나무 부스러기
가 날랐다.
[으악!]
나무 조각들과 핏물이 튀는 가운데 한마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대광주리는 그 사람과 관을 단번에 짓뭉개고 말았다. 핏물
이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고명원이 오른발을 가볍게 걷어차자 대광주리는 위로 날아올라 그의
왼손 위에 떨어졌다. 그는 홱 몸을 돌렸다.
그가 일장을 얻어맞고 뒤로 물러서서 광주리를 휘두른 동작은 번개
같았다. 그 무서운 기세에 문가에 서 있던 현청도장은 안색이 확 변했
다. 그는 고명원이 암습을 당한 후에도 아이를 담은 대광주리를 무기
로 삼아 우세를 차지한 상대방을 격살해버리자 경악하고 말았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즐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