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는 흔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잃은 상태를 말하는 신조어입니다.
보통은 ‘멍하게 있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시각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멍 때리는 행동에서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 때가 많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헤론 왕으로부터 자신의 왕관이 정말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목욕탕에서 우연히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곤 너무 기쁜 나머지 옷도 입지 않은 채 ‘유레카’라고 외치며 집으로 달려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도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짤 때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멍하니 있을 때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때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발명 관련 연구기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약 20%는 자동차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뉴스위크는 IQ를 쑥쑥 올리는 생활 속 실천 31가지 요령 중 하나로 ‘멍하게 지내라’를 꼽기도 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이 ‘멍 때리기’가 유행한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인 멍 때리기(Hitting Mung)가 유행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의 멍 때리기 현상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WP는 한국 사회에 대해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치솟는 부동산 가격, 길고 고된 업무 시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변화 속도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 뒤 “한국에서 제대로 된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피난처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인이 선택한 피난처가 바로 멍때리기다. WP는 ‘멍’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속어라고 설명하며, ‘멍때리기’는 업무 등 일상에서 일종의 도피를 하는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WP는 한국인들이 즐기는 멍 때리기의 종류로, 요즘 같은 가을에 나무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숲멍’이나 모닥불을 쳐다보는 ‘불멍’, 물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물멍’ 등이 있다고 전했다.
멍 때리기를 목적으로 생겨난 공간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서울 성동구의 서울숲 근처 한 카페는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일인용 좌석을 띄엄띄엄 배치해뒀다. 혼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일인석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숲을 멍하니 바라보다 돌아간다. 이곳을 자주 찾는 손님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필라테스나 요가를 해봤는데, 그것 또한 스트레스였다”면서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머리를 비운채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나니 굉장히 개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단골손님은 “회사 일이 끝나면 집안일을 해야 한다. 잠시 휴식 시간이 생기면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게 된다. 실제 수면 시간은 1시간 남짓일 때가 많다”며 “항상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지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는데, 이곳에 오면 그저 휴식을 취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카페가 ‘멍때리기 좋은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부산에는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 모닥불의 영상을 틀어놔 ‘불멍’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카페에 손님이 몰리고 있다.
강화도의 한 카페에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거울멍’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뒀다. 강화도 카페를 방문한 김다정(32)씨는 WP에 “혼자 한적하고 여유롭게 경치 구경하고 커피 마시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며 “머릿속에 꽉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사라지자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긍정적인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중앙일보, 박형수 기자
솔직히 저는 이런 ‘멍 때리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그런 강박 증세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인데 이게 쉽게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014년 10월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는 누가 더 멍한지를 겨루는 ‘제1회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 대회가 끝난 뒤에 전국에서 대회 개최 요구가 밀려들기 시작해 2회 대회부터는 시기를 앞당겨 전국 각지를 돌며 열기로 했고, 멍 때리기는 중국에까지 진출해 2014년 11월 18일 중국 청두(成都)시에서 중국 최초의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끊임없는 자극이 뇌에 밀려드는 시대에 ‘멍 때리기’는 효과적인 휴식 방법이라면서 멍 때리기를 예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멍 때려라』의 저자로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동원은 멍 때리기는 효율적인 뇌의 재정비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멍 때리기 예찬이 지나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푹 자야할 때 잠깐만 조는 것으로 피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뭐 저야 이런저런 얘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의 멍 때리기가 그들의 활력을 돕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멍 때리기는 이도저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일이, 자식들의 일이, 내 삶이 너무 고달파서 ‘멍-’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고령층의 고뇌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멍 때리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겁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