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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에서도 요셉이 애굽에서 수난을 당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애굽의 두 관원장이 왕에게 범죄하고 요셉이 갇힌 감옥에 들어와, 꾼 꿈을 해석을 못하여 근심하다가 요셉과 의논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섭리는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본문 서두에 ’그 후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앞의 39장 후반부 내용을 이어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옥중에서도 형통케 되어 간수장으로부터 모든 일을 위임받아 모든 일을 처리하는 자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갇혔으나 자유한다는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이어서 성경은 요셉이 머무는 그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왕에게 범죄하여 새로 들어온 자들을 소개하십니다. 그들이 바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입니다.
애굽의 바로가 그 두 관원장에게 노하여 ’요셉이 갇힌 곳‘인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둡니다(2,3절). 여기서 두 관원장은 고대에 왕이 절대 권력을 가지는 전제 국가에서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술 맡은 자‘는 ’왕에게 술을 따라 드리는 자‘이며 ’떡 굽는 자‘는 ’왕의 식사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이 이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 갇혀 있게 되었다는 것을,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3절)는 말씀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서 “친위대장이 애굽인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게 합니다. 간수장을 넘어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두 관원장을 가까이에서 섬기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처에 의해 감옥에 갇힌 것이나, 간수장에 의해 감옥 안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나, 두 관원장을 직접 가까이에서 섬기도록 친위대장의 명령을 받은 것 모두입니다.
그리고 그들 두 관원장이 옥에 갇혀 요셉과 함께 여러 날이 지났을 때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릅니다(5절). 그리고 일상처럼 요셉은 아침 일찍 저들을 섬기고자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6절).
이 ’근심‘에 대해 다른 번역본에서는 ’크게 근심하더라‘, ’슬퍼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7절) 묻게 됩니다.
이들은 요셉에게,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라고 할 때에 요셉은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하고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8절).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요셉이 감옥에 들어간 것이나 두 관원장이 왕에게 범죄하여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힌 것이나 그리고 이들이 꿈을 꾼 것 모두 여호와의 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을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라는 말로 자신의 모든 삶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그리고 또한 두 관원장에게도 꿈을 꾸게 하셨으니까 그 꿈에 대한 해석 또한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당시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 방편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꿈으로 주어진 계시는, 하나님만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두 관원장에게 꿈을 말해 보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당시 꿈에 대해서 애굽인은 신이 주시는 미래에 대한 초자연적인 징조로 보았으며, 이로 인해 애굽에는 이 꿈을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두 관원장 스스로는 자신들이 감옥에 갇혀 있으므로 저들이 꾼 꿈에 대해 해석해 줄 지혜자가 없음을 알고 슬퍼했습니다(8절).
9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은 요셉이 해몽하여 술 맡은 관원장의 복직을 말하여 주는 내용입니다.
그때에 요셉이 저들에게 말해 보라는 권유를 하였고 이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이 꾼 꿈을 고하는데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먼저 말하고(9~11절) 이에 대해 요셉이 해석해 줍니다(12,13절).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꿈에 대해 해석해 주신 것처럼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14,15절)라는 말을 그에게 전합니다.
애굽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꾼 포도나무에 관한 꿈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 관원에게 계시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은 그 꿈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이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그 술 맡은 관원의 복직이 그 꿈대로 분명히 이루어질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에게 자기의 신분과 죄가 없었음을 밝히고 감옥에서 건져내어 주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요청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적인 행위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의 행위라고 이해됩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면서 어쩌면 고향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꿈으로 계시하여 주신 내용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꿈대로 복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16절에서 23절 말씀은 요셉이 해몽하여 떡 맡은 관원장의 죽음을 말하여 주는 내용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이 좋은 것을 본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에 대한 것을 말하며 해석을 요청합니다. 이에 요셉은 그에게 머리가 끊기게 될 것을 말하여 줍니다(16~19절).
이 꿈은 불길한 것이었으나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이 구체적으로 그 꿈을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해석을 듣는 당사자인 떡 굽는 관원장이 듣기에는 비참한 해석이지만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그대로 드러내어 밝혀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길몽이요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흉몽입니다. 19절의, ‘지금부터 사흘 안’이라는 것은 이어지는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제 삼 일은 바로의 생일’이다는 말씀이 해석입니다. 곧 두 사람이 바로의 생일에 생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떡 굽는 관원장이 나무에 달려 새들로 살이 뜯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20절부터의 내용은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에 대하여 해석하여 준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려 죽게 되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꿈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이 해석하였기 때문에 그 해석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할 리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관원장에게 계시하신대로 ‘제 삼 일’에 바로의 생일에 잔치가 열리고 두 사람은 바로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합니다(20절).
당시 애굽의 바로는 신처럼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생일은 거룩한 날로 여겨졌고, 이날을 기해 죄인들의 사면 또는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는 이러한 전례를 따라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부르고 한 명은 복직시키고 다른 한 명은 처형하였던 것입니다(21,22절).
20절에서 ‘머리를 들게 하니라’는, 요셉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면서 말한 것과 똑같이 되어 성취되었음(13절,19절)을 말해주는 표현입니다.
요셉이 해석한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였고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리게 됩니다(21절). 여기서 ‘손에’는 손바닥을 가르키며 이는 바로가 손을 펴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서 잔을 받는 모습을 그림 그리듯 묘사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요셉이 13절에서 해석한대로 그대로 되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 굽은 관원장은 매달렸으므로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한 대로 되었습니다(22절).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그는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얼른 듣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그의 꿈을 해몽하여 준 후에 겨우 삼일이 지나서 그가 복직이 되었는데, 그가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아주 적절한 시기에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도 되살려 놓으십니다(41:9~13). 하나님께서 기억할 수 있는 환경을 주어서 반드시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능력으로 잊어버리게도 하시고 기억나게도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사를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만일 두 관원장이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다면 요셉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한 감옥에 있게 하시고서 그들을 섬기게 하셨고, 또 그들로 꿈을 꾸게 하셔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어 그 꿈을 해석하게 하시고, 또 그 해석대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기억이 나도록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대로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언약하신대로 모든 것을 주권가운데 운행하시며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였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