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6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택화 미술관이 다시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달간의 휴식기를 거쳐 오픈했기에 더 기대 됐던 전시. 꽤 오랫동안 미뤄진 탓에 기다리기 지쳤던 찰나. 이 소식은 내게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아직은 조금 어수선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모를 포근함이 더 컸던 김택화 미술관에서의 추억. 그 이야기를 오늘 나눠보고자 한다.
김택화 미술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로 1
김택화 미술관은 2019년 12월 16일 개관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 사립 13-2019-2호] 1종 미술관이다. 일평생 제주의 풍경을 고집스레 그렸던 화가 故 김택화(1940~2006)의 예술세계와 삶의 여정을 담아낸 공간으로 미술관은 자료실, 제1 전시실, 제2 전시실, 아트숍 [화방 스토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김택화 화백의 10-300호에 이르는 유화 작품 122점이 펼쳐지며, 도민과 국민들에게 친숙한 한라산소주 [하얀색]의 패키지 그림 원화와 1990년대 한라일보에 연재했던 4.3 항쟁 소설 '한라산' 삽화 등의 자료도 공개한다.
김택화 화백의 발자취를 따라
향수를 그리는 화가 1940~2006
김택화 화백, 그는 제주의 화가. 단순히 제주 태생의 화가가 아닌 제주 풍광에 철저히 빠져버린 화가라는 뜻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사진가로선 김영갑이 있다면, 화가로선 김택화가 있다는 말이다. 같은 대상을 몇 번이고 화폭에 담는 것이 그의 특징인데, 같은 대상일지라도 모두 다르게 표현한다. 그의 감정, 그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 하나의 풍광을 가지고 철저히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의 욕망이 작품에 드러난다.
향수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왜인지 모를 그리움과 향수가 느껴진다. 어느 마을이건 한라산이 감싸고 있는 제주.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초가집이 서로 이웃해 있고, 오래된 팽나무가 세월을 짐작하게 해주는 곳. 지금은 비록 없어진 고향이라 해도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향수의 뿌리를 김택화 화백은 찾아다녔고, 여전히 찾고 있다.
홀로서기
김택화 화가 자신의 그림 인생은 '홀로서기'와 다름이 없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 중 현대미술을 공부한 최초의 인물이 그이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사람이 현대미술에 종사하는데, 그 첫걸음의 발자국을 '김택화' 화백이 남긴 것이다. 그의 미술의 시작은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림의 소질을 발견했고, 제주 북초등학교 시절 그림 그리기가 좋아 시작한 그림을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며 미술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4.3과 6.25한국 전쟁으로 어수선한 시기였지만, 야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는 그림 인생의 스승 한 분을 만나며 완벽한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됐다.
홍종명 선생과의 만남, 상경과 귀향
제주로 피난해 온 당대의 화가 홍종명(1922~2004) 선생을 만난 그는 홍종명 선생 밑에서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며 그림을 배웠고, 그러다 김택화는 오로지 그림 공부를 위해 서울로 상경을 한다. 그리고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한끝에 제주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홍익대학교에서 미술 전공을 하게 된다. 홍익대 미대 재학 중 1962년 국전 서양화 부분에서 특선을 차지하며 그는 이름을 알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알려진 그의 실력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과 상황에 밀려 미대 졸업을 앞두고 귀향하게 된다.
* 제주의 미술사에 홍종명 선생은 꽤 많은 역할을 했고, 등장도 많이 한다. 제주 도립미술관에서 기획전을 할 때면 만날 수 있는 홍종명 화백의 그림은 실로 대단히 느껴진다.
제주도에 빠지다
제주 시내 사립여고에서 미술교사를 지내던 그는 70년대 초반 마침내 제주 풍광에 빠지게 된다. 그때까지 그가 고수하던 추상화를 버리고 구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재발견한 제주의 매력은 그를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붙잡았다. 그동안 제주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가장 제주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제주스러운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버티어 온 제주의 풍광만이 그의 화폭 전체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가장 제주적인 풍광. 그것은 세월 앞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고향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가 화폭에 남기고 싶은 건 '향수'인 것이다.
김택화 미술관을 나오며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지는 미술관. 이 표현이 '김택화 미술관'을 표현할 가장 알맞은 말 같다. 옛 모습 그대로의 제주를 담고 있는 그림들. 그 모습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슬픔, 그리움, 더불어 동경하는 마음까지 느껴진다. 그날의 제주, 그곳의 제주가 이곳 김택화 미술관에 있다. 나는 김택화 미술관을 여행할 때, 자꾸만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가 떠올랐다. 그 이유를 곱씹어 생각해 보니 제주를 끔찍이 사랑했던 사람. 한 명은 사진으로, 또 한 명은 그림으로 제주를 표현한 것이다. 만약 김택화 미술관을 여행한다면, 꼭 김영갑 갤러리도 가보라 말하고 싶다. 제주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서로 오버랩 되며 제주를 더욱 짙게 만들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