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향하고 있는 야곱에게 돌아온 것은 따뜻한 환대가 아닌 형의 분노였다. 형이 400명을
거느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는 사실을 들은 야곱은 두려웠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야곱은 형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선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형을 위한 선물로
염소와 낙타와 나귀 등 많은 가축들을 준비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자식들, 모든 선물이 먼저 강을 건너가게 한 야곱은 혼자 남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세기 32장의 위태로운 야곱의 모습, 인생의 위기에 빠져있는 나루터의 야곱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인생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걸 다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고독과 불안의 밤을 맞은 야곱의 모습은 첨단 산업과
인공지능으로 무장했으나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 야곱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한 가지였다. 야곱은 이미 자신의 힘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었기에 자기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참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야곱을 이런 상태로
버려두시는 것일까? 홀로 밤을 새우며 고뇌에 빠져있던 야곱은 누군가와 사력을 다해 씨름하게
된다. 씨름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승부는 무승부로
결론이 지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야곱과 씨름하던 그사람은 자신이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탈골 시킨다.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도뼈 부위의 힘줄을 먹지 않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야곱은 힘이 급격히 떨어져 씨름에서 패자가 되는 상황이 되는 위기에서 자기의 환도뼈를
부러뜨린 사람에게 자기를 축복하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난데없이 달밤에
씨름하는 것도,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온 사람도, 씨름하다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는 상황도,
허벅지 관절이 어긋난 야곱이 자기 뼈를 어긋나게 한 사람에게 축복해달라는 이상한 부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야곱과 씨름을 하던 사람은 야곱이 자신을 놓아주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
드디어 야곱과 씨름하던 그 사람의 정체가 밝혀졌다. 야곱과 씨름하고 야곱의 환도뼈를 친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야곱과 씨름하셨을까? 씨름을 통해 야곱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야곱아, 지금까지 너의
기민한 머리와 능력으로 살아왔던 날들을 되돌아 보거라. 지금 너의 모습이 어떠하냐?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미움을 사고, 지금은 도망자 신세에 그치지 않고 있지 않느냐? 이제 너를
의지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으로 너를 초대한다. 내가 다스리고, 내가 통치하며, 내가
싸우는 그 삶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는 언제나 승리자다."
우리는 나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원인과 결과의 삶에 익숙한 나머지 나의 힘과
능력을 다해 모든 것을 하려는 삶의 패턴에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 가운데 실패한
적이 없었는가? 대부분은 실패의 쓴 잔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바꿔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개인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왔던 날들을
뒤로한 채 하나님을 통해 이기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십대들이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속삭이신다.
"내가 이룬 승리를 너에게 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나의 통치 가운데 들어오기만 하면
된단다." 우리 인생을 바꿔놓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변화된 삶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가?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그 인생으로 초대하신다.
- 사랑의 교회 간, ‘목마르거든’에서 유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