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 3,14-17; 마태 13,18-23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입니다. 요아킴과 안나에 대해서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요, 기원후 170-180년 경 쓰인, ‘야고보 원복음서’라는 위경에 두 분이 등장합니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요아킴은 부유하고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부는 나자렛에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요아킴은 광야로 가서 단식하며 기도했고, 안나는 집 안에서 울며 탄식 기도를 바쳤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안나에게 나타나, 그가 잉태하여 낳을 아이는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안나는 그 아이를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요아킴도 광야에서 비슷한 환시를 보고 서둘러 집으로 출발하였고, 마중 나온 안나는 성문 앞에서 요아킴을 부둥켜안으며 외쳤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께서 놀랍게도 제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압니다.”
이후 부부는 딸을 낳았고, 안나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마리아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요아킴과 안나는 하느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자라도록 맡겼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위경에 수록되어 있지만 초대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안나와 요아킴을 기념하는 전례가 6세기에 동방교회에서 먼저 퍼졌고, 8세기에는 로마에 도입되었으며,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퍼졌습니다. 또한 6세기에 성녀 안나는 기념하는 성당이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에 건축되었고, 중세에는 안나 성녀에게 봉헌되는 성당이 급속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들었는데요, 남북으로 갈라져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점령되고 유배 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데려오시겠다는 약속을 예레미야는 전합니다.
이것은 두 번째 출애굽이라 불릴만한데요, 첫 번째 출애굽의 상징이었던 계약의 궤는, 예루살렘 성전이 여러 번 약탈 당하는 동안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늘 한으로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야훼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두 번째 출애굽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 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어 “그들은 예루살렘을 ‘야훼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야훼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두 번째 출애굽은 단순히 남왕국 유다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남북으로 갈라진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분단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간절한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바리사이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의 완고함 때문에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둘째,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군중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에 열광했지만,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자 돌변했습니다.
셋째,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부자 청년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여쭈었지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에, 울상이 되어 떠나갑니다.
넷째, “좋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열두 사도들 아니라, 교회의 2천 년 역사 동안 많은 열매를 맺은 수많은 성인과 의인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이 네 가지로 나뉩니다. 즉 내가 돌밭이나 가시덤불이라 한탄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좋은 땅으로 살아가며, 좋은 땅으로 말씀에 응답하며, 말씀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을 좋은 땅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오늘 당장 열매를 맺지는 않습니다.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열매가 하루 아침에 맺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보통 열매는 일 년이 걸리고, 내 삶의 열매는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 열매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이웃을 위해 바쳐지는 것입니다.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평생의 열매를 하느님께 바치셨고, 우리는 그 덕에 성모님을 얻었습니다.
알렐루야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지오또, 성문에서 만나시는 안나와 요아킴, 1305년 작.
출처: Joachim and Anne Meeting at the Golden Gate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