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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탐욕 (1) 성경에서 말하는 탐욕
탐욕의 자화상
단테는 13세기의 유럽 사회 안에서 탐욕이 음욕이나 탐식보다 심각한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파괴를 가져온다고 했다. 이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비롯해 우리의 가정과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뿌리 깊은 혼란의 원인이 진정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제대로 보도록 초대하는 듯하다.
▶ 가정을 파괴하는 탐욕 - 노부부가 이혼 법정에서 설전을 벌였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경제적인 인색함이었다. 한 상가 건물의 건물주로 경제력이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한겨울에도 찬물로 빨래를 시켰다. 세탁기는 물을 많이 써야 하고, 따뜻한 물은 보일러를 돌리거나 가스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방에서도 두터운 점퍼를 입은 채 보일러는 켜지 않았고, 방에서는 전등이나 텔레비전을 켜지 못하게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일일이 보고한 뒤에 돈을 타야 했고 산 물건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했다.
참다못한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 요구에 거세게 저항했다. 위자료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 과시와 허전함을 채우는 수단, 탐욕 - 40대 직장 여성 김 아무개 씨는 여기저기 모임이 많지만 늘 허전했다. 그 허전함을 쇼핑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옷이나 구두, 가방 등을 사며 스스로를 꾸미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처음에는 한 번 쇼핑하면 한 달 정도 행복했지만 점점 쇼핑하는 횟수와 액수는 늘어나고 만족을 느끼는 시간은 짧아졌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을 구매한 뒤 집에 돌아오면 금세 후회가 밀려 왔다.
▶ 어떤 모습의 탐욕을 살고 있는가 - 오늘날 우리는 더욱 탐욕스러워지지 않으면 삶에서 뒤쳐지는 듯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듯하다. 일부 경제인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고 사기나 횡령 등 각종 범법 행위를 가리지 않는다. 그 벌 또한 돈으로 해결한다.
정치인들은 또 어떠한가? 정치라는 이름 앞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짓말’과 ‘탐욕’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탐욕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더러는 부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탕진하면서도 탐욕을 합리화하는 이들이 있다.
가진 자들만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일까? 부동산 투기에 열광하는 자들, 돈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자들,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며 자신의 소유물을 남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인색한 자들,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거나 음식점 계산대 앞에서 유독 작아지는 자들.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초기 수도승들은 탐욕을 중대한 죄로 여겼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탐욕은 부정적인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필요한 미덕으로까지 자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탐욕은 무엇인가? 죄인가? 아니면 필요한 미덕인가? 가치 혼란의 시대를 틈타 탐욕은 한층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하다. 우리들 각자의 삶 안에서도 그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움직임을 그리스도의 빛과 함께 들여다보자.
탐욕이란
칠죄종에서 말하는 ‘탐욕’(Avaritia)은 재물을 탐하는 욕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그 욕구를 충족하고자 나오는 인색과 탕진(낭비)의 태도를 뜻한다. 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제한하는 태도로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이웃과 나누지 않는 죄’이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탐욕은 단순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믿음의 대상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 사랑에 위배되고 나아가 우상 숭배로까지 이어지는 중대한 죄가 된다.
그래서 많은 수도승과 교부가 “교만과 탐욕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대한 악인가?”를 물을 정도로 죄의 큰 뿌리로 여겼다. 실제로 성경의 많은 부분이 탐욕을 소개하고 있으며 초기 수도승들과 교부들 또한 이러한 탐욕을 경계하면서 이에 저항하려고 엄격한 생활 방식을 실천했다.
성경이 소개하는 탐욕
성경은 탐욕과 관련된 많은 인물과 사건을 다룬다. 탐욕은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에 위배된중대한 죄로, 그 안에 이미 벌을 간직한다고 소개하면서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탐욕을 주의하도록 경고한다.
▶ 탐욕의 무서움 - 탐욕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성경이 소개하는 대표적인 예는 ‘아합 왕의 탐욕’이다. 아합 왕은 나봇이 소유한 포도원을 탐하여 거짓 증거들을 동원하고, 그를 죽게 한 뒤 그것을 빼앗았다(1열왕 21,1-6 참조).
한 나라의 왕으로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도 탐욕에서 제외되기는커녕 오히려 쉽게 노출된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탐욕은 거짓을 동원하고 사람을 죽이며 강탈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게 한다.
▶ 탐욕의 벌 - 성경에서 탐욕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는 엘리사의 시종 게하지이다. 그는 엘리사가 문둥병에서 치유된 나아만의 제물을 거절하자 그를 쫓아가 거짓말을 했다가 자신과 자손 모두 벌을 받게 된다(2열왕 5,20-27 참조).
성경에서는 탐욕이 거짓말과 자주 연결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나고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의 큰 벌을 받게 된다. 당장 벌을 받거나 훗날 받기도 하지만 언제든 반드시 벌을 받는다. 집회서의 저자는 그 벌은 현세에도 이미 시작되는 것으로 건강을 잃고(31,1 참조) “그릇된 길”(31,5), 곧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 우상 숭배의 근원 -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불안을 해소하려고 눈에 보이는 대상에 의존(금송아지 사건, 탈출 32,1-6 참조)하고 급기야 이방의 신을 섬기며 우상 숭배에 빠졌던 역사를 소개한다(1열왕 18장 참조). 특별히 판관기의 저자는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가나안 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가까이하고 섬기라는 유혹을 받았음을 전한다(2,1-12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섬긴다는 것은 재물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탐욕 때문이었다. 그래서 탐욕은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근원’이 된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며 탐욕을 우상 숭배나 다름없이 여긴다.
그래서 탐욕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진노와 동일하다고 보면서 이를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에 위배되는 것으로 지적한다(콜로 3,5-6 참조).
▶ 악마의 방법 - 신약 성경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 장면(마태 4,1-9 참조)에서부터 탐욕을 소개하면서 탐욕이 전형적인 악마의 방법임을 강조한다. 탐욕의 정체를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특별히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청하는 사람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3-21 참조)를 들려주시며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악마는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그것을 믿도록 만든다.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한다.
▶ 사람을 더럽히는 것 - 예수님께서는 탐욕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고 우리 안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신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1-23).
▶ 모든 악의 뿌리 - 바오로 사도는 탐욕에 빠진 자들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며,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사로잡혀 파멸과 멸망의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탐욕(돈을 사랑하는 것)을 ‘모든 악의 뿌리’라고 일컫는다(1티모 6,9-10 참조).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탐욕 (2) 종교적 가르침과 심리학으로 본 탐욕
탐욕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을 듣고 이에 더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수도승들과 교부들은 탐욕을 교만에 결코 뒤지지 않는 중대한 죄로 여겼다.
언뜻 보면 탐욕은 수도승이나 교부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탐욕은 인간을 영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성덕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는 죄’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도 탐욕을 경계했다.
▶ 근심과 슬픔의 원인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승들에게 탐욕이 그들을 어두움에 살게 하고 슬프게 하며 근심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수도승들에게」, 18항, 57항 참조).
말씀을 더욱 철저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 안에서도 탐욕이 끈질기게 활동하고, 그 방법도 더욱 교묘해졌다. 그러면서 수도승들을 파괴시킬 수 있고 신앙인들에게 복음의 기쁨 대신 근심과 슬픔, 어둠에 머물도록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탐욕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실리오 성인은 설교를 통해(「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탐욕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바실리오 성인은 탐욕스러운 사람을 “충분한 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충분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 탐욕이 낳는 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탐욕으로부터 배신과 사기, 거짓, 위증, 불안, 폭력,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정이 나오는데 이를 탐욕의 ‘일곱 딸’(「욥기 주해」 참조)이라고 소개한다. 이 일곱 죄는 탐욕이 자주 사용하는 수단이며 서로 연합하여 탐욕을 섬긴다.
▶ 사랑의 무질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탐욕을 모든 죄의 원인이며 뿌리로 여기면서 이를 오직 재물에만 국한된 욕망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절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욕망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 욕망은 ‘사랑의 질서’를 깨트린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이 참된 성덕으로 나아가려면 ‘사랑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의 질서를 ‘향유’(frui)와 ‘사용’(uti)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따르면 사랑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향유해야 할 것을 향유하고, 사용해야 할 것을 사용하는 데 있다. 향유의 대상은 하느님이어야 한다.
그 반면, 사용의 대상은 시간과 역사 안에 있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것들이다. 만일 반대가 될 경우 사랑의 질서가 깨지고 불행해진다. 결국 탐욕은 사용해야 할 대상을 향유로 여기는 혼란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덕에서 멀어지고 불행해지게 한다(「그리스도교 교양」 참조).
탐욕의 특징
다양한 종교적 윤리적 가르침(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과 현대 심리학에 따르면 탐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만족이 없다
탐욕을 의미하는 라틴어 ‘avaritia’는 “재물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란 뜻이다. 결코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본질을 지닌 인간은 저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조금 더’를 외친다.
바실리오 성인이 일컬은 대로 탐욕스러운 이들은 ‘충분한 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정작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고 욕심이 가득하다. 라틴어 ‘miser’는 ‘비참한’ 또는 ‘불행한’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로 오늘날 영어권에서 ‘구두쇠’(miser), 곧 쩨쩨하고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결국 구두쇠처럼 탐욕스러운 사람은 비참하고 불행하다.
▶ 누구나 탐욕의 대상이 된다
단테는 「신곡」 ‘연옥편’에서 탐욕의 벌을 받고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한쪽은 재물을 탕진한 자들이고, 다른 한쪽은 재물을 손에 쥐고 남에게 베풀지 않은 자들로 서로 비난한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쪽 모두 이 땅의 재물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집착으로 사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성경과 인류 역사에서 보듯이 왕이나 시종, 열심인 신앙인이나 비신앙인, 재물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누구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 불안과 열등감이 탐욕의 통로가 된다
탐욕은 불안과 열등감을 통해 작용한다. 첫 번째 탐욕의 통로는 불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직장에서 해고될까, 하던 일이 잘못될까, 건강을 잃게 될까, 노인이 되면 어떻게 할지, 동료와 가족이 떠나가면 어떻게 하나 등을 염려하며 만성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사회와 경제적 상황, 불안을 자극하는 다양한 상업적인 마케팅은 우리에게 미래를 대비하도록 더욱 더 보이는 돈에 집중하도록 부추긴다. 탐욕은 그 불안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움직이는 신을 창조하고 섬기도록 만든다.
두 번째 탐욕의 통로는 열등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돈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부족하고 낮다고 여기는 열등감은 돈에 대한 광적인 몰입과 집착을 부른다. 하지만 그 열등감은 더 높은 대상을 향할 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 죄에 무감각해진다
탐욕은 끝이 없다. 그래서 자주 정상적 경계를 훨씬 넘어선다. 조금 더 갖고 싶은 욕망은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위험을 동반한 행동까지도 감수하게 만들어 거짓과 배신뿐 아니라 폭력, 도둑질, 사기, 횡령, 살인과 같은 불법까지도 저지르게 한다.
하느님 백성의 법이며 살 길인 ‘십계명’은 인류 역사 안에 이러한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도록 두 계명(9계명과 10계명)에 걸쳐 강조한다.
▶ 이미 벌을 받고 있다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에 빠진 사람은 종종 더 열정적이고 활력이 있으며 행복한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좌절, 우울함, 외로움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탐욕의 벌이면서 동시에 탐욕으로부터 도주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특별히 탐욕스러운 자는 인간관계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벌을 받는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한 명도 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쩌면 은퇴 이후에 많은 이가 이러한 속담을 경험했을 것이다.
재물과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늘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인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인지에 따라서만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이익’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그들은 공동체와 대사회적인 역할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해진다. 그러한 삶은 자신만의 세상을 더 공고히 만들고 혼자만의 섬에 고립되게 만든다.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탐욕 (3) 탐욕의 심리와 치유제
탐욕과 심리
▶ 탐욕, 항문기 고착 –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색한 이들은 ‘항문기 고착증’이다. 부모가 대소변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아동은 ‘항문 보유적 성격’이 발달하여 강박적이고 인색하게 된다. 돈을 모으기만 하는 성격이 된다. 반대로, 배변을 훈련하지 않은 아이는 ‘항문 폭발적 성격’이 되어 아무 때나 배설하게 되는데 훗날 돈을 낭비하는 성격이 된다.
▶ 돈과 인간의 정서 - 돈과 관련한 연구가 드물었던 심리학 영역에서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연구자들은 돈에 대한 신념과 태도, 감정, 대인 관계 안에서 역할, 병적인 유형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골드버그와 루이스는 돈에 대해 개인이 가진 정서를 안전과 힘, 사랑, 자유 등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곧 돈은 불안을 줄이는 주요 방법(안전)이고 자신의 가치와 우위, 통제를 얻는 방법(힘)이다. 또한 애정의 표현과 대체(사랑),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수단(자유)이다.
인간은 돈에서 안전과 힘, 사랑, 자유를 정서적으로도 체험한다. 결국 돈은 인간의 심리와 정신 활동과도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병적인 행동 유형 - 포먼(Forman)은 돈과 관련하여(벌고 쓰고 모으는 과정) 나타나는 병적인 행동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행동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구두쇠(Miser) 유형. 자신이 천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돈을 잃는 것에 큰 공포를 느끼며 남을 믿지 못하고 돈의 혜택을 누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둘째, 낭비가(Spendthrift) 유형. 강박적으로 소비하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특히 우울하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 더 그렇다. 소비하면 짧은 시간 만족감을 느끼지만, 곧 죄책감을 느낀다.
셋째, 돈을 버는 것에만 몰입하는(Tycoon) 유형. 권력을 얻고 지위와 인정을 받는 길은 돈을 버는 것으로 생각한다. 돈이 많을수록 세상을 통제할 수 있고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넷째,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지나치게 찾는(Bargain Hunter) 유형. 강박적으로 할인 판매를 찾아다닌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도 그렇다. 싸게 사면 우월감을 느끼지만 정상 가격으로 사거나 깎을 수 없을 때는 화가 나고 우울해진다.
다섯째, 도박꾼(Gambler) 유형. 내기 같은 모험을 할 때 흥분하고 이겼을 때는 권력감을 느낀다. 권력감 때문에 돈을 잃더라도 중단하기 어렵다.
현재 정신 의학에서는 강박적 소비나 중독(쇼핑, 도박 등)을 제외하고는 위에서 언급한 유형들을 정신 질환에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에서 위에서 언급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이러한 행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탐욕의 치유제
▶ 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 지니기 - 성경은 우리에게 재물을 쫓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코헬 5장; 잠언 23장)인지를 알려 준다. 예수님 또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들은 종종 재물을 가치 없는 것,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 이원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실제로 신앙인 가운데는 재물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돈에 집착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는 우리에게 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도와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재물은 ‘소유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하며 ‘유익’하고 ‘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물이라는 도구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돈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35쪽 참조).
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 삶을 채우는 다양한 가치 안에서 그것의 적절한 자리를 찾게 하는 데 가장 필요하다. 재물이 어디서 온 것이고 자신이 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기 - 바오로 사도는 당시 믿음의 공동체가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디모 6,8)라고 당부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교부는 진정한 부자는 재물을 많이 모은 사람이 아니라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이며, 정말 가난한 자는 재물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탐욕이 가득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부자」 참조).
그리스도인은 탐욕의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소유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가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지금’이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이는 감사하게 된다.
▶ 가진 것을 나누기 - 초대 그리스도교가 복음을 실천했던 구체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는 ‘공유’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함께 공유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4).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주는 행동이 아니라 ‘재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믿음의 표지’다. 또한 자신이 ‘재물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소비해야 할 항목이 점점 늘어가지 않는가? 어느 것 하나 뺄 수 있는 것이 없어 숨이 막히고 마음은 점점 각박해진다. “뭣이 중헌디!”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돈을 사용해야 할 우선순위가 혼란스러워진다. 그게 어디 개인뿐이겠는가? 사회와 정부, 교회도 그럴 수 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기득권층의 고삐 풀린 사치와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제대가 금으로 된 잔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리스도(=가난한 사람)께서 굶주림으로 돌아가신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먼저 배고픈 이들을 충족히 채워 주고 난 다음 그 나머지 것으로 제단을 장식하십시오. … 살로 된 성전이 돌로 된 성전보다 훨씬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마태오 복음 강해」, 50).
소비의 우선순위가 혼란스러워지면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기 쉽다. 그 우선순위의 끝이라도 가난한 이에 대한 나눔을 넣고 흔들리지 않는 틀이 되게 하자.
▶ 재물 다스리는 훈련하기 - 클레멘스 교부는 부자 청년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소유물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청년의 영혼에서 재물에 대한 애착, 지나친 욕망, 병적인 불안, 걱정, 생명의 씨앗을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세속적인 삶의 가시를 떨쳐 버리라는 명령이라고 말했다(「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30쪽 참조).
‘돈을 지배하지 않으면 돈이 당신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돈을 절제 있게 사용하고, 누군가와 나누며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 법, 의미 있게 사용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노예의 삶에 익숙해지지 말자. 하느님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삶의 주도권을 내어 주어선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