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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
쓰임 받은 사람들- 2 / 고신일 목사
할렐루야!
3월이 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부 예배를 마치고 제 방에 갔는데 어떤 학생에게 조그만 카드를 받았습니다.
여기 카드 속에 써 있는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멋진 선장님께...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중고등부 생활을 기둥교회와 같이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둥교회]라는 배는 너무 멋있는 섬들을 여행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배를 타고 끝까지, 영원히 그 영원한 목적지에 갈 것입니다.
Thank you, My Jesus. I always love you."
여러분도 이 학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손을 잡고(부부끼리, 형제끼리…등 잡아도 괜찮은 사이라면 잡으세요.)
함께 찬양합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평안한 3월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름이 없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름이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름이 두 세 개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이름, 집에서 부르는 이름, 호적에 있는 이름이 모두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름이 여럿 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 이름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을 어떤 사람이 알고 있고,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이름은 호적에, 주민등록증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신학교나 재학중인 학교에, 다니는 직장이나 다녔던 직장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부서에, 선교회에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혹 지명수배자 명단에 자기의 이름이 있는 분은 오늘 자수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돕겠습니다.
가끔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싣는 것에 시비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헌금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기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취급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행정적으로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 확인하고자 이름을 싣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교육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는구나. 감사헌금을 드리는구나."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좋은 곳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지금까지 아이들의 이름으로 매 주일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한 주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커서 자기가 벌어 감사헌금을 드릴 때까지 매 주일 헌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매 주일 주보에 나옵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름이 불려지느냐, 누구에게서 불려지느냐, 어떤 곳에 올려져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둥교회 부목사님들, 심방전도사님들, 교육전도사님들에게 조만간 테스트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과 부서의 성도들의 이름과 얼굴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급적 빨리 시험을 볼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든 못하든 그 결과에 따른 대가를 치루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역자들이 성도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누가, 어디에서 부르는가 하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름이 없이…, 이름을 밝힐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한 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작은 계집아이>로 소개된 사람을 중심으로 은혜를 받으려 합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
열왕기하 5장 1~3절에 보면 "나아만" 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아만은 주전 B.C. 860~841년경의 아람 나라 왕 벤하닷 2세 때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1절에 보면 그는 아람을 구원한 사람, 건진 사람,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를 건진 사람이었고, 왕에게 인정 받는 사람(크고 존귀한 자라고)이었습니다. 5절에 보니 엄청난 재산을 가진 사람이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문둥병을 앓는 환자였습니다.
<문둥병>은 나균의 침입으로 생기는 만성 전염병을 말합니다. 이 병을 한센이라는 사람이 발견했다고 해서 <한센씨 병(Hansens disease)>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눈썹, 뺨, 코, 귀에 도토리만한 크기로 도드라지는 결절이 생기고 손 발의 경우는 관절이 녹아 손가락, 발까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바늘에 찔려도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문둥병은 고통을 전달하는 신경을 마비시킵니다. 여러분, 꼬집거나 다쳤을 때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한 마디로 문둥병은 부끄러운 병이었고, 고치기 힘든 고질병이었으며, 전염이 심해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엔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많은 문둥병 환자들이있습니다. 그 문둥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국기독교 구라회>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 주일 드리는 헌금의 일부가 매달 그곳에 전해집니다. 특별히 성탄절에 드리는 성탄예물을 가운데 많은 액수를 기독교구라회에 전달합니다. 지난 해에 성탄절에 문둥병 환자들을 위해 어느 교회가 헌금을 얼마나 드렸는지 통계를 낸 결과 기둥교회가 전국의 그 많은 교회들 중 2위를 했다고 합니다. 1위를 한 교회는 서울의 아주 큰 교회인데 우리 교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우리 기둥교회가 1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곳을 돕는 일에 기둥교회가 앞장 서야 합니다.
문둥병은 전염이 심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있을 수가 없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사람들과 격리되어 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레13:45~46). 이렇게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 사람이 나아만 장군이었습니다. 나아만이 군대장관이면 무엇하며, 왕에게 인정 받고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이제 문둥병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릴 처지에 놓였습니다. 감추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아프지 않은 척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마침내 자기 집에 하녀로 있는 어린 계집아이에게도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은 작은 계집아이
열왕기하 5장 1~3절에 보면 나아만 부대의 병사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노예로 삼았는데 그 중에 작은 소녀 하나를 나아만 아내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에는 그 <작은 계집아이>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 왔다는 것과 어린 소녀라는 것, 그리고 나아만 아내의 종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가 자세히 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 지… 아무 기록도 없습니다.
◆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는 소녀
그런데 그 작은 소녀는 무서운 전쟁 중에 적국의 병사들에게 잡혀가 하녀로, 노예로 살고 있었지만 소녀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조상의 하나님,자기가 믿었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집트로 팔려갔던 요셉은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던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목회기도 할 때마다 군대에 나가 있는 믿음의 아들들을 위해, 외국에 나가 있는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기둥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무리 객지에 나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묶인 삶을 산다 할지라도 어느 곳에 가든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게 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소녀는 문둥병을 앓고 있는 주인에게 자신있게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3절에 보면 소녀는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엘리사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소녀는 노예로 잡혀 오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라면 자기 주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누가복음 4장 27절에 보면 그 당시에 엘리사가 문둥병을 고친 적도 없었고, 엘리사 때 문둥병을 치료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라"(눅4:27).
그러나 그 소녀는 엘리사가 문둥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녀인 소녀, 종의 신분인 소녀는 잘못되면 죽임을 당할 수 있음에도 당당하게, 자신있게…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을, 하나님의 능력을 소개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될 때도 선배들이 술을 먹이고 담배를 피우게 할 때도 꿋꿋하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못합니다"라고 당당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은 계속 올무에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야, 웃기지마. 예수 믿는 사람도 먹더라. 뭐 내가 아는 어떤 집사도 피고, 내가 아는 권사도 마시던데 뭘 그래."라고 해도 "나는 아닙니다. 못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다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국의 노예로 잡혀가서 하인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밝혔던 이름 없는 여자아이처럼 우리들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밝히고 살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대하는 온유함
예수 믿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한 소녀처럼 원수에게도 선대하고 사랑으로 대하 는 온유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말해 보통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소녀에게 있어서 나아만은 자기를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게 하고, 고향에 살지 못하게 하고, 친구와 헤어지게 하고, 원수의 나라의 군대 장군 집의 노예로 서글픈 삶을 살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원수가 문둥병에 걸렸으니 인간적인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얼마나 고소하고 잘 된 일 아닙니까? 그러나 소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 소개하는데에는 특별한 대상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외로움과 괴로움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하고, 원수 같은 아니 원수에게조차도 그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들으십시오. 창세기 12:3, 출애굽기 23:22, 레위기 26:3, 8, 시편 44:5 등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면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1:4~6, 이사야 9:11 등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적의 편, 원수 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혹 원수가 생겨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 원수가 갚는 것을 자기가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도 미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애걸 복걸하여 결혼했어도 때로 죽이고 싶도록 미운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살다보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원수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함께 성경을 찾습니다. 모두 찾으세요.
로마서 12장 17~21절에 보면(257면)
- 17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도모(圖謀)'하라는 말은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하는 것을 말합니다.
-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은 구약 성경 신명기 32장과 시편 94편에 보면 "하나님은 보수 하시는(보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 20절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는다"라는 말은 잠언 25장 21~22절의 인용인데 유대지방 과 아랍 지방에서 고통을 표시하는 일반적 표현입니다. 원수를 사랑함으로 그 가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느껴 회개하게 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노예와 같은 삶, 눈물과 한숨나는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름 없어도 비록 유명한 자로 박수 받고 인정 받지 못해도, 교회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록키 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하나 같이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이나 첼로는 바로 이 무릎 끓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힘들고 어려운 것 때문에 오히려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만들어 내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견뎌낸 사람을 하나님이 더 크게 쓰십니다. 하나님은 이방나라 아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시거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방나라에 노예로 끌려간 이름 모를 어린 소녀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높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돈 많은 사람, 힘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둥교회가 지금의 모습을 이룬 것도 이름이 드러나고 얼굴 드러내는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이름없이 빛없이 한 구석에 앉아 말없이 기도하고,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예물을 드린 수많은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기둥교회로 성장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습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십니다. 이름도 없는 여자 아이를 쓰셨던 것처럼 우리도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 말씀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분명히 밝혔던 여자아이 처럼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사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버리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속에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