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3 : 16.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3 : 17. 기뻐하는 자
마 3 : 16.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그에게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오심을 보셨다.
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곧'(*, 유뒤스)은 '올라 오실새'(*, 아네베)에 속하는 말이다. 예수가 세례 받은 후 곧바로 물에서 나왔다는 사실 뿐 아니라 성령의 증거도 역시 즉각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은 성령이 임하실 때에는 그가 물속에 있지 않고 강둑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에서 올라 오실새'란 말을 근거로 예수의 침례설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례를 준다'는 뜻의 '배티조'(*)란 단어는 원래 '잠그다'의 의미뿐 아니라 '물로 무엇을 깨끗이 씻는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관용적으로 어떤 것에 충만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 막 7: 4 -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 딛 3: 5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러한 언어적 접근을 통해 예수의 수세를 침례나 세례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 자체가 지니는 영적 의미와 거룩한 정신을 외면한 채 세례냐 침례냐의 어떤 외적 의식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죄 씻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세례의 참 의미를 무시하는 형식주의적 독선이 될 수 있다.
'올라 오실새'는 비둘기같이 '내려'(*, 에르코메논)란 말과 연결되어 마치 땅과 하늘이 화답하는 것 같은 미묘한 대조를 이룬다.
2] 하늘이 열리고(*, 아네와데산 아우토)
이 구절은 성경의 환상들을 연상시킨다.
* 사 64: 1 -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 겔 1: 1 -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 행 7: 56 -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 계 4: 1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계 19: 11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고대 신화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표현은 '모든 의를 이루신' 예수께 대한 하나님의 비상(非常)하신 역사 개입이다.
어떤 사본들(에브라임, 베자)에는 이 부분이 '하늘이 그에게 열리고'로 표현되어 하늘이 예수에게만 국한되어 열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즉 그 누구도 아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였던 요한은 하늘의 열림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Olshausen). 그리고 대중들도 하늘의 열림과 하늘로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류의 조상이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창 3: 24) 극히 부분적으로만 열렸던 하늘이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열려 하나의 새롭고 신비한 교제(交際)가 가능케 된 사실을 강조해주고 있다.
3]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호세이 페리스테란)
여기 사용된 직유법은 성령과 비둘기를 명백히 관련시킨다.
이 말은 성령 강림의 방식이 비둘기 같다는 뜻도 되고, 성령이 비둘기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후자의 견해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형체로'(*, 소마티코 에이데이)가 첨가되어 있다.
성령에 관하여 이와 같은 유추적 표현이 나오는 구약성경은 창 1: 2 뿐이다. 탈무드(Talmud)에는 창 1: 2이 '하나님의 영은 비둘기같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로 해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어느 합리주의자는 비둘기 한 마리가 예수의 머리 위에 날개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환상적 장면이든 아니든 분명 성령이 신인(God-Man)이신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돕기 위해 예수 위에 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령의 적극적이고도 완전한 후원을 받으신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는 '예수의 참 인간으로써 합당한 은사인 성령을 받으심으로 공생애의 첫 발을 내디디셨다.
주관적으로 볼 때 신인을 연합시킨 성령이 육화(肉化)하신 말씀(예수) 위에 임하셨고,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계시되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Pulpit Commentary).
성경 문학적으로 비둘기는 성령의 교통하는 힘의 온유와 순결과 성령의 충만을 상징하고 있다.
*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창 1: 2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요 7: 37-39 –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들은 예수의 품성과 사역의 특질과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4]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
예수께 성령이 임하심은 시 45: 7에 예언된 관유(기름 부음)의 성취였다.
* 시 45: 7 -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율법으로도 흠 잡을 것이 없는 예수는 율법이 정한 30세에 공개적 절차를 통해 공식적인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우리의 선지자, 대제사장, 왕으로 취임하셨다(Luther).
* 민 4: 3 -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여기에서 물과 불과 성령의 삼각 세례가 완성되었다(Alford).
마 3 : 17. 기뻐하는 자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그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여기에 삼위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오시고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친 음성으로 증거하셨다.
헬라어 원문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감탄사 '보라'(*, 이두)가 문두에 있다. 이 '이두'는 어떤 사건의 중요성. 시급성을 강조하거나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본문에서는 위의 두 기능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1]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에 관해 어떤 학자들은 랍비 문학과 연관시켜 해석하려 한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였던 영(靈)과 예언자가 잠잠해진 400년 동안의 침묵기에 하나님의 영의 소리를 반영해 전달해 주는 수단을 히브리어로 '바트콜'(*)이라 불렀는데, 번역하면 '소리의 딸'이란 의미이다.
그 수단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본문을 단순한 '바트 콜', 즉 지금까지 있어서 왔던 평범한 하늘의 계시 정도로만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본문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이보다 더 강력하다.
'소리'(*, 포네)는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침묵을 깨뜨리시고 다시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시는 계시이다.
이것은 메시야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분명한 징조요, 그것을 공적으로 입증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소리였다.
2] 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말은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 일컬어지는 사 42: 1을 반영하고 있으며, '너는 내 아들이라'고 노래한 시 2: 7의 변형구로 볼 수 있다.
* 사 42: 1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시 2: 7 -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따라서 예수의 사역이 시작되는 시점에 들려진 하늘의 소리는, 그를 '고난받는 종'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내 아들이요'라는 말은 예수 주위에 있는 어떤 다른 사람도 하늘의 증거를 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무리가 있었는지 모른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태의 주관심사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내 아들'로 부르심으로 2: 15을 확인하고 있고 다음 장에서 사탄에 의해 즉시 사용된다(4: 3, 6).
이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존재론적인 아들로 공적 인준을 받고 신격의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확증된다.
여기서 성부와 성자, 성령, 성 삼위의 거룩한 해후(邂逅)가 이루어지며, 성부의 음성은 변화 산상에서와 수난 기간에 다시 들린다.
* 마 17: 5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요 12: 28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영지주의자들(Gnostics)은 예수가 세례를 받고 성령 강림이 있은 후 위와 같은 하나님의 공적인 인준이 있기 전까지 육체에 속한 자연인에 불과했다고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인준으로 신적 본질을 가지게 되었지만, 십자가상에서 성부 하나님의 버리심을 고백할 때 그 신성이 벗겨졌다는 주장을 한다.
* 마 27: 46 -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요일 4: 2-3 –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는 예수의 영원 현존성과 영원하신 신성을 간과한 이단적 견해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가페토스)는 질적인 측면을 강조한 '유일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뻐하는'(*, 유도케사)이 초시간적인 부정과거인 점으로 보아 이 '사랑하는'이란 용어는 심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선택'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직역하면 '내가 그를 선택함으로 인해 기뻐하였던 자'이다. 이는 메시야를 시간이 있기 전, 곧 영원 전에 선택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예수의 영원성을 강력히 나타내 주고 있다.
요단강에 성육신(Incarnation)하여 우뚝 서 계신 아들의 영원한 신적 선택의 위대한 역사적 사실이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선포된 것이다.
정녕 아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 아버지께서는 감추어진 방법으로 그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백성들의 대표자이며, 고난받는 종으로 동시에 나타내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오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이 있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구원의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협력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시작까지의 예비적 증거들 중 마지막 증거이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증거인가?
메시아의 공적 사역의 시작 때 이런 확신이 예수 자신에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보다 더 필요한 자들은 믿고 따르기에 연약한 우리 인간들이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의 시작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일곱 가지의 증거들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구약성경의 증거이다.
1: 1의 증거대로, 그는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이다.
둘째는 천사의 증거이다.
1: 21의 증거대로,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하셨다.
셋째는 동방박사들의 증거이다.
2장에 증거한 대로, 먼 동방에서 온 이 이방인들은 탄생한 메시아가 유대인의 왕임을 증명하였다.
넷째는 별의 증거이다.
아기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린 이 별은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인 징조의 별이었다.
다섯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증거이다.
그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을 입증하였다.
그들은 성경에 박식하였다. 그들의 증거는 성경적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들은 탄생한 메시아를 만나 볼 마음을 갖지 아니하였다.
여섯째는 세례 요한의 증거이다.
요한은 오실 메시아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자요 마지막 날에 불로 심판하실 자라고 소개하였다.
일곱째는 하나님의 친 음성의 증거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명하셨다.
3]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 마 3: 16-17 )
예수님의 탄생 이후, 12세 때의 예루살렘 방문 외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30년 사생애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위한 준비를 하시면서 보통의 평범한 인간으로 사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수세 사건은 그의 사역에서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사생활을 마감하고 공생애를 시작하는 분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가 세례를 받고 난 후 나타난 본문의 신적인 현시는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제 이러한 신적 현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하늘이 열렸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 위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나타난 신적 현시는 하늘이 열리는 일이었다. 우리는 하늘이 열렸다는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① 죄로 인하여 막혔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무너졌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위해 막혔던 담을 허는 일이었다. 그는 닫혔던 하늘의 계시를 우리에게 열어주셨고 끊어졌던 다리를 놓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이 둘로 찢어지는 사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렇듯 그는 화목을 위해 오셨고 그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화목을 요구하고 계신다.
② 예수님만이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 9)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힘주어 강조하셨다.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이런 가르침을 왜곡되이 받아들이며 부인하는 자들이다.
(2)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셨다.
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예수님 이전 구약의 여러 사건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그의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성령이 임하셨다거나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을 행하실 예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어디서든지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일하셨으며 예수님 역시 무슨 일에든지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수세 후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됨을 알리는 상징이다.
②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하는 사역임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전 인류의 공통적인 평화의 상징이다. 성령께서 이러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모양으로 임재하셨다는 사실은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 예수님의 사역이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원수 관계가 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사역이라는 의미다.
* 롬 5: 10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이 힘과 권력등을 의지하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온유와 겸손의 위에 평화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 이처럼 평화를 목적으로 하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하여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인간 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편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증언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하는 것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비로소 공생애의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전파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무장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②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을 증언하셨다.
'내 기뻐하는 자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기뻐한다. 하나님께서도 이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돈이 많다거나 얼굴이 잘 생겼다거나 혹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시는 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본 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회개해야 하고 또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어야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전파했다. 후에 예수께서도 같은 내용을 전하셨다.
* 마 4: 17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죄악 된 삶을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
* 눅 24: 47-48 –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사도 바울도 자신의 전도사역을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고 요약하였다.
* 행 20: 19-21 –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죄악 된 삶을 청산해야 하고 그 회개는 실제로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증거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의식주(衣食住)는 검소해야 한다.
세례 요한의 복장과 음식이 검소하였다.
성경은 값진 옷이나 호화로운 단장을 금한다.
* 딤전 2: 9-10 –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 벧전 3: 3-4 –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또 성경은 검소한 식생활을 교훈한다.
* 잠 23: 20-21 – 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 딤전 6: 7-10 –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장차 올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 이 세상에서는 전도와 구제를 사명과 임무로 여기는 그들은 검소한 복장과 식생활을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한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께서 성령으로 세례 주시는 자이시며 또 장차 불로 심판하실 자이심을 증언하였다.
성령의 세례는 중생(重生)의 은혜를 가리키며, 이것이 주께서 주시는 구원이다. 또 주께서는 마지막 날 의인과 악인을 나누시며 천국과 지옥으로 이끄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친 음성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셨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께서는 비둘기같이 그에게 임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로부터 친 음성으로 그를 증거 하셨다.
그는 친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고 사랑하며 사모하고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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