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43】 5
<12>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다
於諸世間에 普作饒益호대 一切智海善根所流로 悉能通達無量境界하야 已善成就淸淨施法하며
“모든 세간에서 이익을 두루 지으며, 일체 지혜의 바다는 착한 뿌리에서 흐르는 것이므로 한량없는 경계를 다 통달하고, 청정하게 보시하는 법을 이미 잘 성취하였느니라.”
▶강설 ; 또 장애 없는 삼매에 머문 보살의 공덕을 계속해서 밝혀 나간다. 이 보살은 모든 세간에서 이익을 두루 지으며, 일체 지혜의 바다는 착한 뿌리에서 흐르는 것이므로 한량없는 경계를 다 통달하고, 청정하게 보시하는 법을 이미 잘 성취하였다.
住菩薩心하고 淨菩薩種하야 能隨順生諸佛菩提하며 於諸佛法에 皆得善巧하야 具微妙行하고 成堅固力하니라
“보살의 마음에 머물러 보살의 종성을 깨끗이 하고, 능히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따라서 내며, 모든 부처님의 법에 다 교묘함을 얻고, 미묘한 행을 갖추어 견고한 행을 이루느니라.”
▶강설 ; 보살의 마음에 머문 이는 곧 보살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종성을 청정하게 해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따르는 등 그 공덕이 불가사의하다.
<13> 둘이 아닌 문[不二門]에 들다
一切諸佛의 自在威神을 衆生이 難聞이어늘 菩薩이 悉知하며 入不二門하고 住無相法하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자유로운 위엄과 신력을 중생은 듣기 어려우나 보살은 모두 알며, 둘이 아닌 문에 들어가 형상이 없는 법에 머물렀느니라.”
▶강설 ; 큰 사찰에는 반드시 둘이 아닌 문, 즉 불이문(不二門)이라는 것이 있다. 현상은 천만 가지로 차별하나 그 본성은 평등하여 둘이 아닌 이치를 깨달아 앎으로 비로소 진정한 불법에 입문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안다는 것은 곧 둘이 아닌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雖復永捨一切諸相이나 而能廣說種種諸法하며 隨諸衆生의 心樂欲解하야 悉使調伏하야 咸令歡喜하니라
“일체 비록 모든 모양을 아주 버렸으나 갖가지 법을 능히 연설하며, 모든 중생들의 좋아하는 마음과 욕망과 이해를 따라서 다 조복하여 기쁘게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장애가 없는 삼매에 머물러 모든 모양을 아주 떠났으나 그러나 다시 갖가지 법을 능히 연설한다. 일체 모양을 떠나지 아니하면 갖가지 차별한 것을 제대로 설할 수 없다. 또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즐겨하는 바와 욕망과 이해를 따라서 모두 조복하여 그들을 다 환희하게 한다. 큰 삼매에 머문 보살의 공덕의 힘은 이와 같다.
<14> 삼세(三世)를 널리 보다
法界爲身하야 無有分別하며 智慧境界를不可窮盡이며 志常勇猛하고 心恒平等하며 見一切佛의功德邊際하며 了一切劫의 差別次第하니라
“법계(法界)로 몸이 되어 분별이 없으며, 지혜의 경계를 다할 수 없으며, 뜻은 항상 용맹하고 마음은 항상 평등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 공덕의 끝을 보며, 일체 겁(劫)의 차별과 차례를 아느니라.”
▶강설 ; 장애가 없는 삼매에 머문 보살은 법계가 그대로 자신의 몸이다. 그래서 어느 것이 몸이다 몸이 아니다 라고 하는 분별이 없다. 지혜의 경계도 그 끝이 없으며 뜻은 항상 용맹하며 마음은 항상 평등하다. 모든 부처님 공덕의 끝을 다 보며, 일체 겁의 차별과 차례를 다 안다.
<15> 몸이 항상 일체국토에 충만하다
開示一切法하며 安住一切刹하며 嚴淨一切諸佛國土하며 顯現一切正法光明하며 演去來今一切佛法하며 示諸菩薩所住之處하며 爲世明燈하야 生諸善根하며 永離世間하고 常生佛所하니라
“일체 법을 열어 보이며, 일체 세계에 편안히 머물러 있어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며, 일체 바른 법의 광명을 나타내어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부처님 법을 연설하며, 모든 보살의 머물러 있는 곳을 보이고, 세상의 밝은 등불이 되어 모든 선근을 내며, 세간을 영원히 떠나서 항상 부처님께서 계신 데에 태어나느니라.”
▶강설 ; 보살이 장애가 없는 삼매에 머문 공덕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일체 법을 열어 보이며, 일체 세계에 편안히 머물러 일체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며, 일체 바른 법의 광명을 나타내어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부처님 법을 널리 연설하는 등이 있다. 삼매의 힘은 이와 같다.
<16> 지혜가 항상 밝다
得佛智慧하야 明了第一이며 一切諸佛이 皆共攝受하며 已入未來諸佛之數하며
“깨달음[佛]의 지혜를 얻었으므로 분명히 앎이 제일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함께 거둬 주심으로 이미 오는 세상의 부처님 수(數)에 들어가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지혜를 얻어 밝기가 제일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 함께 거둬 주신다. 그로 인하여 미래의 부처님 숫자에 이미 들어갔다. 즉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모두 다 원만하다. 삼매의 힘은 이와 같다.
從諸善友하야 而得出生하며 所有志求를 皆無不果하며 具大威德하야 住增上意하며
“모든 선지식을 따라 태어나서 구하는 일을 성취[果]하지 못함이 없으며, 큰 위덕을 갖추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려는 뜻에 머무느니라.”
▶강설 ; 모든 선지식을 따라 태어나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몸이 건강하고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한다면 가장 불행한 일이다.
隨所聽聞하야 咸能善說하며 亦爲開示聞法善根하야 住實際輪하며
“한 번 들은 것을 모두 잘 설하며, 또한 법을 들을 수 있는 선근을 열어 보이기 위하여 진실한 법륜(法輪)에 머무느니라.”
▶강설 ; 훌륭한 법문을 읽었거나 들었다면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설하여 널리 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2천 6백여 년을 지나 오늘에 이른 것도 세월을 거듭하면서 다시 설하고 또 다시 설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을 설하여 다시 듣게 하는 선근보다 훌륭한 선근회향은 없을 것이다.
於一切法에 心無障礙하며 不捨諸行하고 離諸分別하니라
“일체 법에 마음이 장애가 없어 모든 행(行)을 버리지 않고 모든 분별을 여의느니라.”
▶강설 ; 모든 행을 버리지 않고 다 행하면서 일체 분별심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일체 법에 마음이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가 없는 삼매에 머문 보살은 일체 법에 그 마음이 장애가 없다.
<17> 삼업(三業)이 끝이 없음을 얻다
於一切法에 心無動念하며 得智慧明하야 滅諸癡闇하며 悉能明照一切佛法하며
“일체 법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지혜의 광명을 얻어 모든 어리석음을 소멸하고, 일체 불법을 밝게 비춘다.”
▶강설 ; 일체 차별현상의 법들은 천변만화함으로 마음이 그 변화를 따라 움직이지만 삼매에 머문 보살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지혜가 밝으므로 일체 어리석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차별현상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캄캄하여 어리석음이 작용한다. 그래서 일체 불법을 밝게 비출 수 없다.
不壞諸有하고 而生其中하며 了知一切諸有境界가 從本已來로 無有動作하야 身語意業이 皆悉無邊하니라
“모든 존재를 파괴하지 않고 그 가운데 태어나서 일체 모든 존재의 경계가 본래부터 움직이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이 모두 끝이 없느니라.”
▶강설 ; 삼매에 머문 보살은 모든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며 그 속에서 생사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일체 존재의 경계가 본래로 움직이지 않는 이치를 분명하게 알아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끝없이 펼치며 중생들을 교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