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융화, 원시적 순수의 원형
- 오영수의 <갯마을>에 나타난 바다 공간을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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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바다는 환경인 동시에 문화다. 바다를 함께 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일부분이고 도전과 응전 속에서도 경외와 적응 속에서 삶의 순리를 따르기도 하였다. 미래로 가고 있는 문학 속에서 바다는 중대한 화두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 물의 총합으로 표징되는 바다, 생명의 원천으로 화합과 끌어안음의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하거나 주요 대상물로 하는 해양문학은 사람도 등장하지만, 주역을 담당한 바다라는 무대에 내포된다. 일찍이 문덕수는 “해양문학의 빈곤은 우리 문학사의 맹점이다. 삶의 무대로서의 바다를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우리나라도 반도의 삼면이 바다를 끼고 있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바다를 읊은 노래가 많다. 우리 시가의 최초 작품이라고 말해지는 ‘구지가’나 ‘공무도하가’가 바다 또는 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여기서 한국소설은 그 동안 멀리 해온 ‘바다’ 소재의 접근성을 요구받는다고 하겠다. 위의 측면에서 경남 울주 출신 향토작가인 오영수가 ‘자연과 인간의 융화, 원시적 순수의 원형’의 상징으로써 ‘바다’를 내세우면서 ‘바다’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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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1950년 단편「머루」로 신춘문예 당선하여 문단에 나와, 총 150여 편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전형적 단편작가로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이나 서정의 세계에 집중하였다. 소설집으로 『머루』『갯마을』『명암』『메아리』등이 있다. 오영수의 작품세계는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세계를 그리거나, 인정세태를 따스하게 그리면서 현실을 고발하거나, 자연 혹은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크게 세 경향으로 대별된다. <갯마을>은 인간은 태어난 본향을 잊지 못하는 법이며, 그 근원적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영수의 소설은 한국의 소박한 서정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1953년 12월 <문예>에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인 <갯마을>은 인간의 회귀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그 밑바탕에 한국적 서정이 짙게 깔려 있고, 해순이 상수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운명을 따르는 한국여인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다 공간1
- 원시적 순수를 지향하는 원형
이 작품의 배경인 ‘바다’는 이 소설의 특징을 인간의 본원적 순수성을 빼앗아 간 현대 물질문명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추구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을 배경으로 어촌, 바다에 대한 사랑을 지닌 ‘해순’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갯마을 사람들의 애환과 서민적 정취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의 특징은 한마디로 서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정성에 사회적인 문제나 윤리의 문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진솔한 모습과 인간으로서 버릴 수 없는 순수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상수’와 잠자리를 한 후에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그를 따라 산골에 갔던 해순은 결국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과 함께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해순’에게 바다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이름이 의미하듯 자연의 일부이자, 순수한 인간의 원형이다. 즉, 작가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융합하는 주인공 해순의 모습을 통해 원시적 순박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모두 바다로만 보이는’해순의 바다를 향한 집념은 곧 고향 혹은 자연에의 강한 회귀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는 자기 변화를 부단하게 추구하면서도 원래의 정체성을 지켜 가는 존재이고, 닫힘에서 열림으로, 맺힘에서 풀림으로 나아가는 출구이며 떠남과 벗음의 자유를 가르쳐주는 역동적인 언어이다. 바다가 문학의 소재가 되는 이유도 생존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실존이 바다와 관련되어서다. 그렇다면 바다의 존재가 삶의 순수와 관련을 맺는 것은 당연하다.
바다 공간2
- 자연의 질서를 수용하는 통로
<갯마을>의 배경으로서 ‘바다’는 외적인 실제공간이면서 내적 공간이다. 여기서 실제공간은 우주적 자연 공간으로서 경험적 가시 공간으로 풀이될 수 있다. 소설 속의 갯마을은 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으로서 ‘징용’이라는 표지마저 없었더라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인 공간이다. 이처럼 작품의 배경인 갯마을은 번잡하고 소란한 문명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는 공간이며, 이러한 공간적인 특성이 그곳에 사는 인물들로 하여금 자연과 동화되어 꾸밈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게 한다. 즉, 갯마을은 작자의 의도에 따라 역사적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삶의 원형이 이루어지는 내적 공간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과 인물 설정을 통하여 자연이 주는 아픔 즉 폭풍에 남편을 잃는 아픔마저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간은 바다를 통해서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외적 공간을 대상으로 한 이 소설은 바다로부터 얻은 교훈이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바다는 삶의 원형적 공간을 제공해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영수의 「갯마을」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씌어졌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이는 문학과 자연의 반영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 소설의 바다는 바로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통로로서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바다’다. 해순이의 애정 문제는 결코 해순이의 삶을 이루는 중심이 아니다. 해순이에게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라는 부수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인 것이다. 바다가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바다는 그녀에게 삶을 지탱하는 종교와도 같은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순은 상수를 따라 산골 마을에 가지만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원시성이 살아 있는 바다는 해순의 이상향인 것이다. 원시 공동체와 이상향의 이미지인 ‘바다’인 것이다. 이와 같이 바다는 삶의 원천이라는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으며 갯마을 사람들을 품어 주는 모성 공간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바다 공간3
- 성격과 품성을 형성하는 요인
중요한 것은 ‘갯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순박하고 인정에 넘쳐흐르는 인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록 폭풍우와 함께 온 거센 파도가 성구를 빼앗아 갔지만, 생명이 넘쳐흐르는 바다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자연이 그들의 심성을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가는 이 작품의 배경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작품 <머루>에서의 산과 마찬가지로 바다는 그들의 삶의 터전인 동시에 그들의 성격과 품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작품 <갯마을>에서 바다는 해순이의 탯줄과도 같은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짙은 에로티시즘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컨텍스트는 물과 섹스가 다 함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상징적인 기능성은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고 난 후 해순이가 바다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에서도 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갯마을 사람들은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아름다운 바닷가의 갯마을에서 멀어지게 되었을 때 비극적이고 불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적인 힘은 억압적인 외부의 힘이나 불가사의한 자연의 힘이다. 폭풍우와 같은 자연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다는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순화시켜 주는 역할을 해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해순이를 포함해서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닷가에서 하나같이 따뜻한 우정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부닥친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다가 그들에게 아무리 무서운 시련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인간적인 힘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며 희망적인 순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어려운 자연 앞에서 서로간에 인간적인 결합을 하지 않는다면, 거친 자연적인 힘 앞에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폭풍우와 같이 무서운 시련을 가져다주지만 또 다른 한편 워즈워스가 주장한 것처럼 그들에게 착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근원이 된다. 즉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 세계는 갈등이 없는 화합의 세계, 문명적 요소가 없는 원시적 세계, 건강한 생명의 약동이 있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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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 년의 창작 활동 기간을 통틀어 150편 내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오영수의 작품세계는, 향토성, 풍자성, 해학성 등을 토대로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복원하면서 반근대적 원시성을 텍스트 내부에 기입하면서 동시에 낭만주의적 풍경과 인간주의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갯마을에서 ‘바다’의 상징성은 문명으로 훼손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본래적인 것으로 복원하려는 작가의 몸부림으로 이해된다. 소설이 다루는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삶의 절대적인 명제는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살아가면서 변화하는 것이다. 바다가 모성과 생명을 상징한다는 명제는 더더욱 고정된 것이 아니다.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체험 결과에 따라 그 의미의 파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다를 통해 자연이 베푸는 교훈, 그 경이로운 힘을 느낀다. 이 소설에서 ‘바다’는 해순에게 있어 구원의 장소요, 자신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신적 고향이다.
문학은 삶을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갯마을>의 바다 공간은 바다의 황폐화나 오염 상태의 고발이 아니라 실은 더 무서운 정신의 황폐화를 경계하는 치열하고 진지한 꿈을 계속 생산해 내라는 주문에 화답하고 있다는 데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삶의 진실은 반전이고 문학의 출발점은 ‘인식’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바다를 새로운 것으로, 낯선 대상으로 받아들인다면, ‘바다 공간’도 머잖아 해양도시 부산문학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