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성공과 변신에 관하여
“여기 먼지가 있잖아”라고 소리치면서 손으로 가리키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이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는 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고유한 방법으로 문질러서 반짝이게 만드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창작도 그렇다. 창작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꾸준히 창작을 하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일에 눈을 돌리지 않고 창작에 전념하려면 최소한의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하고, 전작에 못 미친다는 가혹은 비평과 한물갔다는 세간의 빈정거림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자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창작자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으리라.
어떤 이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되어 뭇사람들의 추앙을 받더라도 밤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별처럼 홀가분하게 살기를 원할 테고, 어떤 이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 성공과 성취를 이루는 삶을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성공이라는 건 개인의 노력과 절박함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 성공은 노력, 기회, 관계, 유행, 시대정신, 특히 운 따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 우연히 다가오는 것일지 모른다.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노력 여부가 성취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시대가 아니다.
더욱이 한 번 크게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보다 남은 에너지와 비용을 확인해가면서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자책하거나 스스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기보다 힘을 아껴가며 담담히 때를 노려봄 직하다.
“이번에는 운의 문턱을 넘지 못한 건지로 몰라…”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켜가면서.
어떻게 하면 창작자로서 대중의 인정을 받고 나아가 성취를 거머쥘 수 있는지, 여전히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창작물들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마다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곤 한다.
우선, 우선 억지로 꾸민 흔적이 없이 자연스럽다. 어느 분야든 내공이 있는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에 대중의 가슴으로 흘러가는 데 막힘이 없다.
또한 창작자와 감상자가 작품을 매개로 하여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표현 방식이나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두 요소가 적절히 깃든 창작물에 개성이라는 날개가 돋아나면 그 작품을 마치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대기권을 벗어나는 우주선처럼, 대중의 마음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날아가기 마련이다. 입소문과 함께….
문제는 대중의 시선에서 ‘낯섦’ 쪽에 위치하던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소비되다 보면 서서히 ‘익숙함’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자칫 작품이 지닌 신선함과 독특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편성이 개성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일식이 이러날 때 달이 내챵의 일부나 전부를 삼켜버리는 것처럼.
그러면 대중은 자연스러움, 보편성, 독창성 등의 적절히 균형을 이룬 또 다른 창작물을 찾아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대중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창작자는 고개를 숙이며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래, 변신할 때가 됐어, 과거의 나를 버리는 거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마. 아, 잠깐, 가만 보자. 지나친 변신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어. 어렵게 쌓아 올린 나만의 기법을 허물어버리면, 내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부터 날 아껴주던 소중한 사람돌과 멀어질지도 몰라.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나 역시 작가로 살아오면서 내 글의 문체를 고수할지, 돌연 변신을 꾀할지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두 길을 모두 걸어갈 순 없었다. 선택해야 했다. 다만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급작스러운 변신과 둔갑은 지난 세월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지난날 나를 스치듯 지나간 것들을 애써 붙잡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도는 좋지만 달라지려고 너무 애쓰지는 말자. 과거의 영광과 운에 미련을 두지도 말자. 일시적인 건 본디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하나의 중요한 생각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평생 몸부림치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니 그동안 써 내려온 문장을 틈틈이 들여다보면서 지나온 삶의 여정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희망과 가능성의 요소를 발견하자. 그걸 추동력 삼아 계속 걸어가자. 운이 좋으면 언젠가 같은 길 위에서 대중과 다시 마주칠 수도 있을 테니….’
―이기주, 『마음의 주인』, 말글터, 2021.
첫댓글 많이 공감되는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