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와징후』 2024 겨울호/김부회
묘사/ 김부회
불 켜진 방과 꺼진 방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켜진 방 하나는 켜진 채 있다
꺼진 방이 불을 켜고
실루엣들이 분주하도록 켜진 채
그는 어둠공포증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오징어일지도 모른다
안개가 흐드러지게 핀 날 그가 바다로 떠오른 것을
이웃 주민이 목격했다고 한다
어둠을 뭉쳐놓은 먹물을 뿜으며
미지의 당기는 힘에 대항한들
내장이 쑥 빠진 채 바람에 말라비틀어질 삶
피데기 냄새를 맡은 경찰이 오고
강제로 열린 덕장에 그가 널브러져 있다
밀린 월세와 흔적을 지우느라
공영 장례와 집주인의 흥정이 시작되고
오징어가 불에 구워졌다
무연고자는 그렇게 가는가 보다
바짝 마른 몸을 억척스럽게 비틀다 둥그렇게
말아진 다리부터 떼 주는 것
누군가를 묘사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묘사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닮은 꼴끼리 닮아가는 것
오징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오징어를 구워 질겅질겅 소주에 섞어 먹다
무연고자끼리 서로 연고자가 되어주는 것과
고작, 세상에 먹물 한 번 찍 뿌려보다
안개처럼 흩뿌려지는 것
낚, 시詩2
불빛을 좌판처럼 펼쳐놓은 바다 그 속으로
갯장어 타는 냄새가 뛰어든다
구겨진 물빛을 게워내는 어둠의 모서리
달의 해상도가 낮아진 바닷가
과장된 과거가 화톳불을 뒤적거렸고
이내 조금 더 과장된 오늘이 잔불을 덮었다
집어등에 이끌려 다가온 포구
등대가 눈을 굴린다
해묵어 덜 풀린 생의 몇몇 실마리들이
날생선처럼 퍼더덕 수면 위로 뛰어오를 것 같다
변명이라도 낚을 듯 노려보다 문득
초릿대 끝에 찌를 묶어두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어쩌면 낚이러 온 것일지도 모를
뒤엉킨 발자국이 밀물의 끝자락을 지그시 밟는다
아랑곳하지 않는 달 그 아래
물비린내 포말이 하얗게 향기를 피운다
온통 검은빛으로 채색된 문장이 청각을 두드린다
어둠은 늘 낮은 곳에서 선명하다
한 줄기 바람이 해무 속으로 사라진다
안개에 섞인 내가
희끄무레한 음색으로 고요를 뱉는다
벗어놓은 구두 속으로 태평양이 들어왔다
오래전 정착한 모래 알갱이가 행간이 될 때쯤
비문非文투성이 어제가 실종됐다
바다는 끌어당기기만 하고
늘 낚이는 것은 나였다
김부회 프로필
2011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 『러시안 룰렛 』평론집 「시는 물이다」 외 다수, 중봉문학상 외 다수 수상, 계간 문예바다 편집주간, 김포신문 시 전문 해설위원, 사색의 정원 편집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