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병원 진료받는 횟수가 잤다. 심혈관에는 심장, 신경과에는 뇌, 무호흡 등 이곳저곳 몸이 고장 난 곳이 많다. 약 8년 전 협심증을 진단받고부터 시작되었다. 어지럼증은 이명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후에도 가끔씩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하게 아파 왔지만, 협심증을 계속 치료하고 있었던 터라 그러려니 생각하며 지냈다.
근래 들어 어지럼증이 더 잦고 간혹 눈도 침침해서 신경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는 동작을 시켜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해 보더니 뇌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MRI 촬영 후 일주일 뒤 다시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께서 뇌 사진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더니 뇌경색이 두 번이나 지나갔는데 몰랐느냐고 묻는다. 시기는 언제였는지 사진으로는 알 수 없단다.
미니 뇌경색인데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며, 앞으로 재발 가능성이 높고, 재발하는 경우엔 손상이, 크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머리가 땅하고 쓰러질 것 같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최근에 어지럼증이 심해서 응급실에 한번, 실려 간 것 외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뇌 영양제와 혈전 제를 처방해 주며 다음 진료 날짜를 잡아 주었다.
컴퓨터에 들어가 뇌경색에 대한 정보를 보고 또 보았다. 협심증에 대한 정보도 보았다. 내 경우는 뇌경색이 심장으로부터 온 거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심장에서 뇌로 보내는 혈류가 잘 흐르지 않아서 뇌경색이 오는 경우의 비율이 50%가 넘는단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조금 무서웠다. 몇 해 전부터 기억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근래에는 이해력이 많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치매인가 싶어 치매 테스트를 해 보니 치매는 아닌 걸로 나왔다. 책을 읽어도 그때뿐 줄거리가 잘 기억되지 않는다. 대화를 할 때도 이음을 놓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치료를 잘해도 위험을 안고 있는 병이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음식을 가려 먹고 운동을 하고 숙면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응급실로 가야한다... 등의 주의사항을 들으니 언제 어디서? 라는 생각으로 초조하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일정표를 달력에 또렷하게 적어두고 전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 체크한다. 그것도 잊을 때가 간혹 있다. 어느 날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오늘 모임인데 왜 안 오냐고 한다. 약속 날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왜 그러냐며 치매 검사를 해 보라고 한다.
이러한 병에 걸린 것에는 생활 습관도 있지만 내 성격도 한몫 차지한다. 나는 내가 잘못했거나 해결되지 않는 일에 부딪히면 해결될 때까지 신경을 쓰며 몰두한다. 잘 풀리지 않으면 화가 일어나고 소화도 잘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라고 하는데 화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기본이 아닌가.
결혼해서 여러 가지 일들에 수없이 부딪히고 치르다 보니 어느새 내 성격도 적당한 선을 긋고 대충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반대로 남편의 성격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세심하고 잘못한 일에 화 잘 내고, 빈틈없는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허투루 하는 일에 간섭을 잘하고 참견을 한다. 찬찬하지 못하고 덜렁대다가 그릇을 깨지 않았냐, 당신 생각이 그것밖에 안 되네 등....처음에는 맞서다가 요즘에는 그랬구나 하고 지나간다. 화도 때론 나잇값을 하나 보다.
남편은 자를 잰 듯 정확하다. 본인이 쓰는 수첩이나 노트를 보면 감탄을 할 정도다. 마치 인쇄한 듯 적어 놓는다. 기억력도 엄청 좋다. 나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남편은 칠순에 들었는데도 어떤 문제를 보면 중학교 몇 학년 무슨 과목 몇 단원 심지어 페이지까지 기억해 낸다. 그러면서 나보고 당신은 아냐고 묻는다. 모르는 게 정상 아닌가. 하며 남편을 또 핀잔한다. 요즘에는 일본 드라마 영화에 심취해 있다. 물론 일본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런다는 것도 안다. 일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일본에 대한 인식도 나와는 다르다.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 술을 자주 마시고 술맛 또한 달 달 하다고 하니 그런 애주가도 없다. 한의사인 친구와 단짝이 되어 주말이면 함께 등산을 가서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꼭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온다. 술에 취하면 노래를 잘 부른다. 구성진 음성으로 배호 노래를 걸맞게 풀어낸다. 자신의 답답한 성격을 아는 듯, 어느 날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있잖아~” 하며 자작곡을 한 줄 뽑더니 걱정을 내려놓으라 한다.
요즘에는 병원에 가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한의원도 주에 두 번 더 간다. 내가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싶어 힘이 빠질 때 무심코 커피 한잔을 하면, 의사 선생님 지시가 떠 오른다.
신앙을 가져서 그런지 언제 죽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다. 다만 온전치 못한 몸이 되어 가족한테 누를 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남편이 술마시고 노래하는 것도 좋은 약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첫댓글 황 작가님의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선생님 께서도 나 만큼 많은 병명을 달고 지내 시네요. 빨리 완쾌하시기를 빕니다. 아직은 앞날이 창창하시니 너무 심려마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면 쉬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새해를 맞아 선생님의 건강이 날로 좋아시지길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