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을 가다 - 벤타잉 시장 개혁개방 정책의 산 증인[ chợ Bến Thành ]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7. 5:44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세계의 시장을 가다
벤타잉 시장
개혁개방 정책의 산 증인
[ chợ Bến Thành ]
벤타잉 시장의 역사
베트남에는 큰 시장이 3개가 있다. 수도인 하노이에 있는 동수언(Đông Xuân) 시장과 남부 호찌민시에 있는 벤타잉(Bến Thành) 시장과 빙떠이(Bình Tây) 시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벤타잉 시장은 호찌민시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며, 시의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 시장이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의 근현대사와 같이 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변동 속에서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타잉 시장은 식민지 시대에 건축되었고,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남베트남 최대의 시장이며 유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베트남이 통일 된 후에는 시장경제 체제로 편입되어 중앙집중식 배급경제 체제 하에서 유통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1986년 12월 베트남이 도이머이 정책 (1986년 말에 발표된 개혁개방 정책)을 선언하고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이 벤타잉 시장은 다시 자본주의식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변고를 거치는 동안에도 벤타잉 시장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남부 베트남 특히 호찌민시 사람들에게 이 시장은 경제적 성장과정의 산 증인처럼 인식되었고, 호찌민시의 상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판매되는 많은 기념품들이 이 시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수에서부터 그림, 동으로 만든 부조상, 액자 등이 바로 벤타잉 시장의 정면(남쪽)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현재의 벤타잉 시장 정문(남문)
벤타잉 시장의 어원을 보면, 벤(Bến)은 ‘나루터’라는 의미이고, 타잉(Thành)은 ‘성(城)’을 의미한다. 따라서 벤타잉(Bến Thành)은 ‘성 나루터’라는 의미이다. 즉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나루터라는 의미였고, 바로 그 나루터 근처에 있던 시장을 ‘벤타잉 시장’이라고 불렀다.
프랑스가 베트남 남부지역을 점령하기 전, 벤타잉 시장은 쟈딩(Gia Định) 성(지금의 호찌민시 근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가는 장소였다. 강을 따라 줄지어 선 가게와 배들로 북적댔다고 한다. 1859년 2월 프랑스 군이 쟈딩성을 점령했고, 이틀 뒤에 베트남 병사들이 시내를 불태우는 작전을 수행했고, 이 때 그 벤타잉 시장도 불탔다. 1860년 베트남 남부지역을 장악한 프랑스는 옛 시장터에 새로운 시장을 건설하도록 했고, 벽돌과 목재, 나뭇잎 지붕을 이은 시장이 지어졌다. 1870년 일부 지역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벽돌기둥에 기와를 얹어서 새로 지었다. 식품과 생선, 육류, 간이식당과 잡화의 5구역으로 나뉘어졌다. 그중에서 육류 코너는 양철지붕에 파란색 타일 바닥을 깔았다.
당시 시장 앞쪽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광동로(Rue de Canton)라고 불렀다. 이는 그곳에서 장사하던 화교들 대부분이 광동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887년 프랑스는 그 하천을 메워서 큰 도로를 냈고, 시장은 날로 번창하게 되었다. 당시 상점의 주인들은 대부분 화교와 인도인 그리고 프랑스인이었다. 1911년 중반에 시장이 너무 낡아서 붕괴의 위험이 있어, 양철지붕을 이은 육류 코너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했다. 그리고 프랑스 당국은 더 크게 시장을 짓기 위해 장소를 미토(Mỹ Tho) 기차역(현재는 사이공 터미널) 근처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