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라(빌 4:13)
빌립보서는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였습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복음과 기쁨’입니다. 노년에 감옥이라는 억울함(?)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일평생 사랑했던 복음 이외에도 ‘기쁨’을 고백하며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하늘의 시민권(3:20)’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울한 옥중에서도 기쁨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한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인생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노년의 시기에 기쁨은 자신이 이루어낸 삶의 흔적일 것입니다. 가족과 직장 혹은 학교에서 일군 삶의 흔적들을 되돌아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였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그리고 로마의 박해와 유대인의 핍박 가운데서도 복음에 참여하는(1:5)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생각하고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기대합니다. 물론 교회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러나 단순히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기쁨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랑과 헌신을 상기합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두 번이나 쓸 것을 보내었다(16절)’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텐트메이커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복음을 전하던 자신에게 고된 상황에서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던 빌립보 교회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나 여러 악조건 속에서 복음에 참여하던 빌립보 교회나 풍요로움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기쁨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쓸 것을 보내지 않았다면 실망하거나 낙심을 했을까요?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족하기를 배웠다(11절)는 것을 고백합니다. 사회적, 종교적 신분을 모두 버린 사도 바울은 필연적인 경제적 궁핍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 대해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에게 가장 위험한 도전 가운데 하나는 ‘경제(돈)’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삶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이 아니라 경제적 타협(?)에 취약한 분들이 작은 교회 목사들의 현실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목사의 경제적 힘이 생기면서 마치 졸부처럼 스스로 거만해지거나 인색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자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직면한 상황의 현실적인 요구도 외면해서는 안되지만 복음을 잊은채 힘들고 고된 상황에 매몰되는 우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의 축복합니다.
영화 ‘마스크(1994)’는 우연히 주은 마스크의 힘을 빌어 초인적인 힘을 갖는 주인공(짐 캐리)의 에피소드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평범하거나 오히려 실수 투성이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우리를 옭아매는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13절)’고 고백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이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를 구하는 자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를 구하시며 우리의 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지만 평안은 주시는 예수님으로 담대하여 세상을 이기는(요 16:33) 믿음의 삶을 축복합니다. 울다가도 엄마만 보면 눈물을 그치고 힘을 내듯이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은혜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