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는 현동완 총무가 이현필과 그의 제자 일부를 서울로 초청하여 삼각산과 능곡 등지에 머물게 했다. 능곡에는 ‘오원(吳園)’을 창설하고 남녀 청년들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이현필은 탁발 수도단을 만들고자 하여 능곡에서 그 해 정초 개최된 총회를 계기로 전원이 탁발 수행에 나섰다.
추운 겨울날 이현필은 남녀 제자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마을에 탁발을 내보냈다. 추운 겨울인데도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나섰다. 처녀들이 탁발하고 떠난 집에 뒤이어 남자들이 또 들이닥쳐 탁발을 청하니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요즘은 무슨 거지들이 이렇게 많아졌지?” 했다.
이현필도 머리가 조금 모자란 고아의 손을 잡고 탁발에 나섰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천천히 다니며 탁발을 했다. 그 무렵 이현필의 풍모는 완전한 거지였다. 긴 머리는 목에까지 닿았고, 옷은 다 찢어진 옷이었다. 바보 소년과 이현필은 둘이 함께 바보스러웠다.
잘 걷지 못하는 소년을 따라 이현필도 뒤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침에 떠나서 오후 세시 경에야 숙소를 돌아왔는데, 겨우 밥 한 술을 얻어 가지고 왔다. 이현필이 제자들에게 요구한 탁발은 얼마나 자기를 죽이는가를 공부하는 수행의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