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좋아요 / 박선애
어느새 6월이다. 벌써 한 달만 지나면 새 학교에서의 한 학기를 보낸다. 황량한 인상을 주던 메타세쿼이아의 앙상한 가지에 부드러운 새잎이 돋더니 자라면서 날로 풍성해지고 짙어 간다. 그 시간에 맞춰 내 마음에도 정이 싹트고 두터워지더니 이제는 이곳이 아주 좋아졌다.
우리 학교는 작은 면 소재지에 있다. 이 동네 중앙로를 따라 초등학교,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이 한 줄로 이어지고 반대편에는 기차역과 복지 회관이 있다. 이 외에도 식당 몇 개와 떡 방앗간, 농약사, 카페 등이 있다. 빛 바랜 간판을 단 채 비어 있는 가게도 많아 쇠퇴해 가는 지역의 얼굴을 보는 듯해서 안타깝다. 그 중심지를 조금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어 400미터쯤 들어가면 우리 학교 교문이 나온다. 거기에서 보면 운동장 너머 맞은편에는 체육관이 있고, 왼쪽으로는 높지막하게 본관 건물이 있다. 그 뒤로는 메타세콰이아 40여 그루가 1미터 남짓의 간격으로 줄 맞춰 서서 학교를 든든히 지켜 주고 있다. 이 나무 덕분에 우리 학교 전경 사진에는 계절이 뚜렷하게 드러나 아름답다.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좋다. 본관 앞뜰에 목련, 향나무, 백일홍, 히말라야시다 등의 나무와 그 아래에는 초록색 풀과 하얀 마가렛이 꽃이 있다. 며칠 예초기 소리가 나더니 그 아래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깔끔하다. 운동장 가에는 은행나무가 빙 두르고 있어 가을이 기대된다. 학교 밖으로는 주로 논이 있다. 넓지 않은 들판이 끝나는 곳에는 길이 이어지고 산이 있다. 둘러보면 가까이 또는 멀찍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학교에 오면 숲 속에 있는 것 같다. 자동차와 사람의 소음 대신 새소리가 들린다. 높은 건물이나 자동차로 꽉 찬 도로가 아닌 나무와 꽃이 보인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이것은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아이들이 여러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고, 운동 경기를 하는 데도 제한이 있다.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기도 하다.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방과후학교 개설 과목도 한정되어 있고, 보건이나 상담 등 특수 영역의 선생님이 안 계셔서 필요할 때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서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 수 있을지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좋은 점이 많다. 같은 반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과 학생, 선배와 후배가 모두 친한 편이다. 교실에서 특별히 힘자랑하는 친구도 없고 그것이 통하지도 않는다. 학생이 많은 교실에서는 몇 개의 무리로 나눠 끼리끼리 놀고, 자기네와 어울리지 않는 친구는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여학생들은 우물쭈물하다 어느 무리에도 들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왕따가 돼 버린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다. 장난치고 놀리다가 말다툼하는 일은 가끔 있어도 욕하며 싸우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선배와 후배 사이도 대부분 다 친하게 지낸다. 1, 2학년 남학생들이 함께 식판을 들고나와 메타세콰이아 나무 아래 탁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발치에서는 고양이들이 저도 달라고 쳐다보며 말을 거는 모습은 우리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올봄에 전학 온 성원이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잘못한 일이 없어도 선배가 무서웠는데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학생자치회가 있어도 문제에 따라서는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결정하고 다 같이 준비하고 활동한다.
선생님들과도 친해서 담임뿐만 아니라 전 교과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서로 소통하며 지낸다는 것, 필요한 조언을 들으며 성장해 간다는 것은 큰 복이다. 우리 반 성은이의 말을 빌자면 수업도 거의 선생님들이 전담 마크해 주신다. 학급 수가 30여 명 되면 학습 능력이 뛰어나거나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지적받는 사람만 눈에 들어온다. 성실하고 조용히 제 할 일 하는 아이는 못 보고 넘어갈 때도 많다. 글쓰기 수업만 해도 학생이 많으면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고, 세세하게 가르쳐 주지도 못한다. 올해는 자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꼼꼼히 읽고, 잘못된 곳 표시하고 고쳐 준다. 다른 학교에서는 영상 보는 것으로 대신하거나 대표로 나선 몇 명이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내는 실험이나 실습도 우리는 모든 학생이 할 수 있다. 수준에 맞춰 거의 개별 지도가 이루어진다.
10여 전에 근무한 도시의 신설 학교에서는 운동장이 좁아 축구 좋아하는 힘센 선배들 빼고는 힘없는 동급생이나 후배들은 운동장을 차지할 수가 없었다. 넘치는 힘을 풀 데가 없으니 교실에서 빗자루 들고 야구하고 두꺼운 책 표지 찢어서 탁구하고 장난치다 싸우고 날마다 전쟁터 같았다. 우리 학교는 운동장이나 체육관 등을 마음껏 쓸 수 있다. 건강 증진실, 학생 자치회실에서도 친구, 선후배끼리 쉬고 논다. 큰 학교에서는 자주 있는 체육복이나 필기구, 교과서 등 물건이 없어지는 일도 여기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별다른 불만이 없으니 짜증을 내지도 않아 학생들 간에, 교사와 학생 간에도 갈등이 거의 없다. 학교가 조용하고 평화롭다.
또 체험학습을 많이 한다. 벌써 영어 캠프, 진로 체험, 안전 체험, 우리 마을 숲 체험, 원예 체험 등을 전교생이 함께 했다. 자유학기제인 1학년만 한 것도 여러 개 있다. 앞으로도 2주 후에 할 진로 체험이 있고 2학기에 할 영산강 자전거 체험, 스키 캠프, 독서 토론 캠프 등 많은 활동이 남아 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거의 체험 활동 위주로 교육과정이 계획되어 있다. 이런 특성화된 프로그램 운영은 작은 학교여서 가능하다. 그것을 알고 30분 거리의 남악에서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또 광주에서 읍으로 이사 온 성원이는 작은 학교가 좋아서 왕복 20㎞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한다. 우리 학교 소문을 듣고 1학년 때 전학 온 3학년 규민이는 목포역에서 기차로 다닌다. 규민이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보다 친구와 깊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우리 학교가 참 좋다고 말한다.
우리 면의 유일한 초등학교에 올해 1학년 입학생이 없다. 젊은이들이 없는 농촌을 보며, 혼자 집을 지키는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마을이 텅 비어 버릴 것 같은 불안은 우리 고향이나 여기나 같다. 서글프고 답답하다. 농촌이 소멸될 위기가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 다섯 명이 다 우리 학교에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3학년이 열세 명이니 학생 수가 상당히 줄어들 상황이다. 작은 학교의 장점이 많더라도 친구도 없는 곳에 자녀를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있는 젊은이도 자녀 교육을 위해서 떠나는 것은 막아야 할 텐데, 나라도 어디 나가서 우리 학교를 알리고 싶다.
첫댓글 면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인데도 1학년 신입생이 없군요.
개별지도로 수준에 맞게 수업이 이뤄지는 것도 작은 학교의 큰 장점이네요.
제가 또다시 학부모가 큰 학교보다 작은 학교를 택하겠어요.
정말 좋은 학교일 것 같습니다.
예전에 대안학교도 생각해 봤는데요. 그때 알았더라면....
기적이 일어나 늦둥이라도 낳아 보낼까 봐요. 하하!
그 좋은 학교를 다닐 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많은 학교가 문을 닫게 될 텐데 큰일입니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학교, 멋집니다. 좋은 글도 잘 읽었습니다.
메타세퀘이아 그늘 아래,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선생님이 있어서, 근무하는 학교는 늘 좋은 학교네요. 하하.
농촌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학교 현장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하신 분 같아요. 맞죠?
배웁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알지요, 이런 학교. 너무나 잘 알지요. 한 문장만 읽어도 그려집니다. 이런 눈을 가진 선생님이 얼마나 멋진지.
커다란 풍경화 한 폭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다정하신 선생님만큼이나 그 풍경엔 정다운 느낌이 가득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품앗이운동회로 하는 건 어떨까요? 주변 학교랑 합동으로 해서 올해는 우리학교, 다음해에는 너희학교.
하하하. 실무도 모르는 사람이 엉뚱한 소리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