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사,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 7번지 정병산 .약수로 유명한 창원시의 전통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
신라시대인832년(흥덕왕 7)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여 후학들을 양성한 곳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언제 폐허화되었는지 알 수 없는 옛 절터가 현재의 사찰주변에 남아 있으며, 절터에는 파손된 탑 조각과 기와조각이 산재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북극전·산령각·요사채·종루 등이 있다.
절 앞에는 창건 당시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높이 30m, 둘레 네 아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고, 사찰 내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다. 창건 시 무염국사가 발견하였다는 이 약수는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절을 안고 있는 정병산은 숲과 계곡이 좋아서 마산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현재 창원시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3곳의 전통사찰이 있다. 즉 불모산 성주사, 비음산 불곡사, 정병산 우곡사이다.
그런데 이 전통사찰의 창건자는 모두 무염화상(801~888)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염화상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인물로,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의 성주산 성주사(聖住寺)를 창건한 무주무염(無住無染)을 말한다. 이 지역의 전통사찰들이 무염국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모두 그를 창건자로 삼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전단산(栴檀山)에 있는 절이라고 나와 있어 그때까지는 우곡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말기의 부호인 구만호(具萬戶)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우곡사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당시의 유명한 화공이 그린 초상화가 있었으나 최근 도난당했다고 한다.
우곡사는 전통사찰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전각이나 성보(聖寶)가 전혀 전하지 않는다. 현재 상주하는 승려의 전언에 의하면, 예전에 사찰을 공사하는 중에 석불이 출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는 하나 그것도 역시 전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정문화재가 단 한 점도 없어 전통사찰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곡선원
종무소를 겸한 요사채
대웅전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공포에 팔작지붕의 모습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봉안되어 있는 신중탱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탱과 금동보살좌상
산신각 산신탱 우곡사공덕비
칠성각
우곡사와 관련된 흥미 있는 이야기의 하나는, 우곡사 도량에 있는 유명한 은행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즉, 경내에 들어서면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의 벼락 맞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지금은 보잘 것 없이 겨우 죽지 않고 살아 있지만, 창건 당시 무염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은행나무이다. 그러나 몇 해 전 화재로 인해 지금은 나무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채 겨우 형체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죽지 않고 해마다 싹을 틔우고 가을이 되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절을 찾는 불자들과 등산객들에게 전통사찰인 옛 우곡사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다른 하나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곡사의 유명한 약수에 관한 설화이다. 이 역시 창건 당시 무염국사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는데, 특히 피부병에 효험이 있는 약수라고 한다. 이 약수는 아무리 큰 장마나 가뭄이 오더라도 항상 일정한 양이 나오며 수량 또한 풍부하여, 창원시는 물론 인근의 부산·양산 등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는다.
약수에는 다음과 같은 발원문(發願文)이 새겨져 있다. “제가 지금 청정한 물을 뜨니 감로의 물로 변하여/삼보 전에 올립니다. 원컨대 어여삐 여겨 받으소서(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