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재
김순옥
지난해 여름이 폭염의 난이었다면 올해는 홍수의 난이다. 유월에 시작된 굵은 빗줄기가 팔월 중순까지 연일 쏟아져 내렸다. 그 많은 물줄기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하늘에 큰 구멍이라도 난 것일까. 산은 힘없이 무너져 내려 도로와 집들을 덮치고 곳곳의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의 공격에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축사에 있던 소와 돼지들도 눈앞에서 속절없이 급류에 휩쓸려갔다. 산에 있는 시부모님의 산소는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퍼붓던 비가 며칠 잠잠하다. 토요일 오후, 예초기를 차에 싣고 예정에 없던 벌초를 하러 갔다. 다행히 무너져 내린 곳은 없고 여러 잡풀들만이 산소를 에워싸고 있다. 남편은 밑에서부터 예초기로 풀을 깎으며 올라갈 테니 나에게 산소 주변에 있는 큰 풀들을 뽑고 있으라고 한다. 허리까지 올라온풀들을 하나하나 부여잡고 끌어 올렸다. 순순히 뽑히는 놈들보다 완강히 버티며 힘겨루기를 하자는 놈들이 더 많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오기가 난 내 입에서는 “우흡 쓰” 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너도 만만치 않지만 이래 봬도 내가 왕년에 팔씨름대회에 나가서 일등한 사람이야. 우습게 보면 안 되지’ 줄기를 한 바퀴 휘돌려 감아 손안에 꽉 잡은 다음 순간의 힘을 발휘해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텃세를 부리듯 빠득빠득 버티던 놈의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햇빛과의 첫 상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울한 듯 몸을 비틀고 엎어져 있다.
줄기가 내 팔뚝만큼 굵어진 일곱 그루의 영산홍 새순들은 까치발을 들고 삐쭉삐쭉 올라서서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이십 년이 넘어 내 키를 따라잡은 나무의머리숱을 두 팔을 들어 올려서 쳐내려니 어깨서부터 팔까지 뻐근하게 아파온다. 가위를 잡은 손바닥까지도 얼얼하다. 일곱 그루 중 반도 자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앞쪽에 서 있던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엄지 척을 한다. 눈을 흘기며 깔끔하게 단장된 나무를 올려다보니 제법 컸다고 그래도그늘이 되어 준다.
나무가 이렇게 클 동안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아니 한 번도 없다. 매번 명절을 앞두고 벌초만 하러 왔었지, 정작 꽃 피는 사오월에는 찾아온 적이 없다. 미안함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던 전지가위를 다시 집어 든다.
남편은 백 평 정도 되는 곳을 예초기로 다 깎고 그 풀들을 갈퀴로 긁어모은다. 힘에 부치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몇 번을 앉았다가 일어선다. 낼모레면 환갑인 나이를 속일 수는 없나 보다. 옆에서 거들어 주는 아들이라도 있다면 좋았을 텐데…. 모처럼 두 딸이 집에 있지만 따라 나서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벌초는 물론 제사와 전래의 풍습에도 그다지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차후에 산소관리를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납골당이 자주 찾기 쉽고 모든 면에서 편하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홀로 시골 산속에 누워 계시던 친정엄마를 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으로 모셨다. 자그마치 십오 년 만에 이루어진 부부의 상봉이다. 아버지를 아산의 군립 납골당으로 모시면서, 바로 그 다음 해에 윤달이 들어 엄마를 모셔오기로 했었다. 하지만 늘 바쁜 장남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화장 날을 잡지 못했다. 두 분이 만나지도 못한 채 무심히 십여 년이 흘러가 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장녀인 내가 남동생 대신 나서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극구 말린다. 이런 일에는 딸이 나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 장남이 해야 후환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남존여비사상에는 살림밑천이라는맏딸의 권리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얼마 전 큰집에서 산소 옆에 납골당을 지어 돌아가신 분들을 함께 모시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다들 관리하기가 힘이 들어 자식들에게까지 넘겨주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함께 벌초를 한다거나 성묘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자라지 않는 2세들에겐 어쩌면 산소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벌초를 기피하는 세태가 확산되면서 매년 명절마다 벌초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업체는 벌초 날짜를 정해 예약금을 받고 일정을 협의한 뒤 작업 전, 후 사진을 찍어 카카오 톡이나 메시지로 보내면 의뢰인은 확인 후 정산을 해준다. 정기적으로연몇 회로 묘지 관리 및 보수를 해주기도 한다. 그마저도 힘든 이들은 묘지 전체를 아예 시멘트로 싸 바르고 그러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봉분을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서 위장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던 국민적 풍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우리 후손들의 인식이 변하고, 장례문화가 변하고 있다. 이제 매장보다는 화장이 대세인 것이다. 인생의 결말은 한 줌의 재라더니 정말 재로 남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가.
국토는 그대로인데 매장이나 납골에 필요한 묘지 면적은 계속 확대됨에 따라 수목장과 자연장이 등장한다. 수목장은 주검을 화장한 뒤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 장례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소나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사계절 내내 늘 푸르름을 유지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자연장도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나무, 화초, 잔디 주변에 묻는 친환경 장례법이다.
어떤 이들은 살아 있을 때의 삶이 중요한 것이지, 죽어서 무슨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냐고 한다. 하지만 남겨진 자식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찾아가 기대고 쉬어갈 수 있다면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납골당에 계신 부모님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후에 자연과 하나 되는 수목장으로 흔적을 남기며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죽음을 맞은 우리 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해되고 흩어져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닌가.
첫댓글 김순옥 선생님 옥고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벌초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군요.
회장님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세요.
장례문화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팔씨름 대회에 나가 1등 하셨다고요?
역시나. ㅎㅎㅎ
댓글을 열심히 올려주셔서 젊게 봤는데 ...
공감하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큰 대회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직장 체육대회때 이야기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순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문화예술 육성산업 선정에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