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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89.11월 대북 석유공급가를 현물바터가 아닌 국제시세로 바꾸면서 실질적인
석유금수에 들어간다. 중국도 90.2월에 뒤따라서 이러한 조치를 내린다. 미국은
CIA공작인 87.11월 칼기폭파사건을 빌미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88올림필 이후
북미접촉을 시작으로 북미회담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소련은
베렌츠해에서 2발의 SLBM을 발사하여 북의 동해에 탄착시켜 위협한다. 그리고
S-300기술을 남한, 중국, 이스라엘에 제공하고 미국에는 ABM기술가 VHF레이다
기술을 제공한다.
1991.9.13
(서울=연합(聯合)) 아프리카 콩고주재 북한(北韓)대사관 1등서기관(참사대우)으로
근무중이던 북한외교관 高英煥씨(38)가 지난 5월 우리정부에 귀순해왔다고
관계당국이 13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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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씨는 북한이 소련에 개방정책에 대해서는 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김정일은 지난해
6월 소련에 있는 김희수공사에게 소련내 反고르바초프동향을 보고 하는 한편 군부의
구데타가능성을 타진해 가능하면 측면에서 지원해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소련에
출장갔다 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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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환은 3월에 망명하여 5월에 한국에 들어온다.
북이 반고르비세력을 지원한다는 것을 미국은 러시아에 통고했을 것이다.
ABM-125(고곤/가젤) 를 갖춘 소련이 북을 무력겁박한다.
1991.5.2
(워싱턴=연합(聯合))박정찬특파원=소련(蘇聯)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日本)
방문을 전후해 무력과시를 위해 동해(東海)를 목표로 하는 두차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시험발사를 했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1일 미국(美國)관리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미사일 발사 시험은 고르바초프가 일본(日本)을 방문하기 직전과 직후에 이루어 졌으며
일본정부는 미사일 추락 지점이 일본(日本)본토와 너무 가까왔던 점에 대해 항의를 했다고
워싱턴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 미사일들이 소련(蘇聯) 서북쪽에 있는 바렌츠海에 있는 잠수함에서
발사돼 수천마일을 비행, 동해(東海)로 날아가는 것을 탐지했다고 덧붙였다.한편 방미(訪美)
중인 이께다 유키히코 日방위청 장관은 30일 딕 체니 美국방장관과 회담하는 가운데 북한
(北韓)의 핵개발계획이 이 지역 안정에 가장 위협이 되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끝)
1995.9.7
(서울=연합(聯合)) 러시아와 북한을 동맹국으로 묶어주는 근거가
돼온 `朝.蘇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이 폐기됐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걸림돌로 간주돼온 이 조약이 폐기됨으로써
北-러관계는 물론 韓-러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조약의 폐기자체로 냉전시대 북한과 옛소련 사이에
이루어졌던 동맹관계에 종지부가 찍혔기 때문이다.
1995.11.29
(워싱턴 로이터=연합(聯合)) 미국은 지난 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위반하지 않고도 核미사일에 대한 방어체재를 강화할 수 있는 협정을 최근 러시아와
체결했다고 美고위관리들이 28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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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GPAL이라는 공동의 탄도탄방어체제 구축에 합의한다. 그 당시 미국은 75/76년에
세이프가드(스파르탄/스프린트) ABM을 배치운용했다가 폐기하지만 소련은 ABM-125(
고곤/ 가젤) 시스템을 계속 발전시킨다. 이러한 기술제공에 의해서 94년부터 미국은
THAAD개발에 들어간다. 외몽고 MD 레이다건설 비용도 미국이 지원한다.
북에서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길목에 있는 조기경보 레이다이다.
문제는 96년 러시아 총선을 통해서 공산당과 농민당이 살아난다. 공산당은 30%의석을 차지하며
최대다수당으로 부활한다. 엘친도 대통령에 재선되지만 알코홀성 심장 때문에 허약해진다.
총리자리를 야당에게 양보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는 와중에 북은 98.8월 대포동1호
FOBS미사일을 발사하며 압박한다.
몇 달전 크렘린 인근 다리에서 암살된 넴쵸프는 러시아 그리이스 정교회의 유대인 그룹이고
이들이 소련 붕괴와 자본주의화를 주도하고 국유자산을 나눠갖는다. 러시아 유대자본
그룹에서 대부역할이 바로 베레조프스키이다.
1999.8.10
1999.8.13
1999.9.10
1999.9.16
러 아파트 또 폭발사고 17명 사망,276명 부상(종합3보)
1999.9.25
1999.10.15
러시아 정부 통신 및 정보국(FAPSI)이 지난 13일 러시아 전역에서 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리마코프 전 총리가 16.6%의 지지를 얻은 것을
비롯해 그 다음으로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가 16.2%,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가 13.7%의
지지표를 각각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달의 21%에서 다소 낮아졌으며 반대로 푸틴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체첸 테러범들에 대한 강경책으로 인해 지난달의 1.7%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1999.11.14
1999.11.28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당시 옐친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불과 6%의 지지를 얻고 있던
옐친을 일약 대통령에 당선시킨 아나톨리 추바이스 러시아 통합전력 시스템(UES) 사장과
대표적인 올리가르흐(과두지배세력)로 당시 역시 올리가르흐들을 규합해 옐친을 당선시킨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전(前) 제1부총리로 `러시아 사유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추바이스는
최근 체첸 제2 도시인 구데르메스를 방문, "푸틴 총리의 지시로 이곳에 왔다"면서 "푸틴
총리가 나를 부른다면 그를 지지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구데르메스 방문은 일단 러시아의 독점 전력업체인 UES의 사장 자격으로 전력공급을
중단해 왔던 구데르메스 지역에 대한 전기 공급을 재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푸틴 지지 발언을
통해 사실상 정치일선 복귀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90년대초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통령 행정실(크렘린) 실장, 제1 부총리 등 요직을 골고루 거쳤던 `젊은 개혁파의 기수'
추바이스지만 지난해 초 실각한 이래 정치무대에서는 거의 뒷전에 나앉아 있었다.
졸부들을 양산해 낸 사유화 정책과 옐친의 재선 등으로 하원 제1당인 공산당은 그를 원수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총리로 입각했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
그에게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제안했으며 그 또한 이를 수락했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 복귀는 금방 재개됐다. 그는 보리스 넴초프 전 제1 부총리 등의 `바른 일' 당 선거
대책본부장 자격으로 지난 7월 우파정당간 통합을 성사시켰으며 이후 우파 정당간
연합체인 `우파연합'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꼽혀 왔다.
1999.12.1
1999.12.16
(모스크바=연합뉴스) 지일우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행보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체첸사태로 인한 국제 사회의 비난은 물론, 이로 인한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가 가시화 되고있는 가운데서도 러시아내에서 푸틴 총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정치권 일각이 크렘린 또는 정부의 `주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그
신빙성에 의심을 품고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인기도는 40%를 넘어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총리,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 등 다른 대선후보들을
일찌감치 먼발치로 떼놓고 있다.
이에 더해 그가 지원하고 있는 `단합당'의 지지도 또한 연일 상승해 독립 여론조사기관인
`로미르'가 러시아내 40개주 1천500명을 상대로 이번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부동의 1위로
여겨졌던 공산당에 맞먹고 있다. 로미르 조사 결과, 공산당이 17.5%의 지지를 얻었으며
단합당이 17.4%를 차지했다. 일부 다른 조사기관은 단합당이 21.9%, 공산당이 17.7%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물론, 자신이 지원하는 단합당의 인기도마저
급격히 올릴 수 있는 푸틴총리의 인기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먼저 지난 8월 총리로 임명된 이후 푸틴 총리가 보여준 행보를 대략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크렘린이 각종 부패 추문에 휩싸여 있던 가운데 그는 체첸에 대한
강공책을 선택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의 체첸 강공책은 각종 추문을 뒤로 돌린 것은
물론, 정치권의 `행동 없는' 갑론을박에 식상해 있던 국민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다.
1999.12.23
199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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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의 회교근본주의 세력에대한 진압은 유대언론을 통해 날마다 세계로 생중계되어
푸틴총리를 영웅으로 만든다. 체첸의 회교반군 세력은 아프간에도 참전하고
최근에는 IS에도 많은 수가 참전한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체첸회교반군 진압을 통해 푸틴은 무명에서 갑자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리고 국유화자산 민영화과정에서 부를 차지한 러시아의 그리이스정교회
유대자본세력의 집중 지원을 받는다. 그 당시 민영화를 주도한 사람이 34세의
유대인 추바이스이다. 베레초프스키는 그리이스정교회 유대인 세력의 대부격인 인물이다.
체젠회교반군이 했다는 연속된 대규모 아파트 폭발 테러는 대중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푸틴의 강한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9월에 1.7%에 불과한 푸틴의 지지율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자체가 미영유대 자본세력과 국유자산을 나눠가진 그리스정교 유대인
그룹의 지원과 기획에 따른 결과이다.
99년은 분명 공산당과 좌파의 득세로 러시아의 친미 자본세력은 큰 위기였다.
하지만 체첸회교반군, 아파트 폭탄테러를 이용해 푸틴을 단기간에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공산당 세력을 북이 지원한다. 아래 뉴스의 시기가 고난의 행군이 한창인 시절이다.
1997.1.29
(모스크바=연합(聯合)) 李炳魯특파원=북한은 열악한 국내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내의 강경공산주의자들에게 조직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고 러시아의
일간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紙가 29일 보도했다.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紙는 이날 러시아공산당의 자금문제를 다룬 기사를 통해 러시아
공산당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분류되는 빅토르 안필로프의 보좌관들이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북한은 국내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공산당은 북한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김일성관련 출판물을 러시아어로 발간하는
사업 등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은 이어 안필로프가
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공산당이 자체 텔레비전방송국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텔레비전 방송에 이용할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위한 자금을 북한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도 상기시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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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고난의 행군 시절임에도 러시아 공산당을 지원하고
공산주의세력과 범사회주의 의 득세로 이어지며 자본세력은 푸틴이라는
파쇼적인 인물을 내세우고 효과적인 전략으로 맞선 것이다.
37년 스페인 내전이후 자본세력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 민족국가주의를 혼합하여
푸틴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공산당의 집권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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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당시 러시아 정치상황에 대한 연합통신의 보도는 미유대 언론의 의도대로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65/66 인도네시아 학살은 100~300만명 학살이 모두 끝난 뒤에 1건만,
그것도 학살을 찬양하는 논설로 보도됩니다.
저는 뉴스를 배포하는 의도와 맥락을 이해할려고 애씁니다.
단편적인 짧은 기간의 뉴스는 기만이 가능하지만,
긴 맥락의 뉴스 흐름을 속이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북의 역습에 비틀거리는 미유대 관련 과거 뉴스는 실체가 많이 드러납니다.
푸틴의 총리 임기가 1999년8월부터 2000년 5월까지인가..??
94년 북미 담판 이후 위쪽의 노력이 러시아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도록 추동한 것은 아닐까요..??
님 말대로라면...
유대가 지원해서 러시아의 체질을 바꾸는 상황도 있었을 수 있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푸틴을 뛰웠을 가능성은 없을지..??
님 말대로라면...북미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푸틴의 낙찰은 유대의 입김이 아니라...윗쪽의 입김일수도 잇는 것 아닐지..??
고스톱이 아니라도...
무력겁박에 의해...푸틴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푸틴은 상징이고...의식을 가진 세력의 부흥이라고 봐야 겠지요...
미제 개들은 토사구팽....
제가 말하는 북미가 짜고치는 고스톱은
2011.10.24일 "일련의 커다란진전"의 제네비 합의,
즉, 미영유대가 무조건 항복한 이후의 상황을 말합니다.
물론 짜고치는게 어긋나면 여전히 신묘한 핵몽둥이로 휘두릅니다.
지난해 연말에 푸틴을 정치적 곤경에 빠트릴려고 야당지도자가 암살당했을 때, 분석관님 말대로라면 야당지도자의 암살은 미 유대와 푸틴이 같이 한 짓이게?
@Doahm 넵초프는 부당하게 붕괴된 80~90년대의 상황을 과거정돈하는 의미라고 봅니다.
넴쵸프는 고르바쵸프의소련 연방을 붕괴시킨 우크라이나 독립선언을 지원한 인물이죠.
@분석관 2011.10.24의 제네바 합의에서 그 내용이 밝혀진 게 있으면 좀 알려주시죠. 대체 뭘 보고 미국이 무조건 항복했다고 보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석관 Doahm, 고구마님/
물리군사적 흐름과 상황에서보면 그렇습니다.
저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지능이 되면 보입니다.
미유대의 언론이 떨궈주는 먹잇감에만 1차원적으로 집중하는 경우,
답이 없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푸틴이 북한과 다시 손 잡게 된 것은 언제인가 2003년인가 2004년경에 푸틴이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악수하러 왔을 때부터입니다. 그 때부터 러시아의 논조가 달라졌지요. 그 이전에는 북한이 시대에 역행한다고 보았지만 ... 그리고 러시아는 지금까지 북한의 핵실험이나 위성발사에 대해 다 성공하였다고 즉각 밝혀주었습니다. 미국과 짜고 무슨 지랄을 했다는 개드립은 틀린 추측 같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실제로 침공할 것 같으면 러시아도 중국도 국경에 대한 경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 틈에 북한을 침공하려는 게 아니라 미국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못 넘게 미리 경계하는 것이지요.
푸틴 러시아의 대북 적대는 2005/2006년에 중립화됩니다.
푸틴이 백마 3필을 선물로 보내고 중장 계급의 단장이 이끄는 중앙군사악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교향시를 연주하던 시기이죠.
러시아국민은 통제 국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언론조작이나 선동에 매위 취약했습니다.
1999년 무명에 가깝던 푸틴이 총리취임한 초기인 9월에 1.7%의 지지율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폭탄테러와 체첸 알카에다 쇼를 통해 압도적인 대통령 후보가 됩니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는 체첸게릴라들의 극장인질점거를 살인가스를 이용해
제압하고 경제에서 박정희이미지를 차용해 압도적인 지지율과 권력을 형성합니다.
ABM 조약 폐기를 반대하는 의회의 공산당 세력은 곁가지로 무력화됩니다.
@고구마 2004년 이전까지 푸틴은 미영유대세력의 프락치 정권이라고 봅니다.
2004~2006년의 북의 압도적인 무력시위에 의해서 충격을 받고 독자노선, 또는 중립화로 전이됩니다.
고구마님/
테레비나 언론에서 보여주는 경우만 믿는 사람은 그렇게 믿으면 됩니다.
65/66년 100~300만 인도네시아 학살 때 대량양민학살에 대한
뉴스는 딱 1건, 학살이 모두 끝난 후에 한국에 보도 됩니다.
물론 학살을 찬양하는 기사입니다.
북러 관계는 2006.7월 미사일 발사에서 나훗카 항구의 일반 시민이 육안으로 볼 정도로
미사일을 연안에 탄착시킬 정도로 북러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란과 북을 포위하는 MD레이다들은 모두 미-러의 협조에 의해 건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