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츨라프 선교사
독일의 선교사이고
목사, 의사인 귀츨라프가
조선에 도착한 것은
1832년 7월 17일 이였습니다.
처음 황해도 장산곳에 닻을 내렸으나
전도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이틀 후에 그곳을 떠나
1832년 7월 23일경에
충청도의 작은 섬 고대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쳤고
번역하도록 하였으며
처음으로 감자의 종자를 전했고
재배법을 가르쳤으며,
포도주 담그는 법, 포도 재배법,
그리고 환자 60여명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25일간 채류 하고 조선을 떠나기 전
많은 성경을 나누어 주었고 복음을 기원했습니다.
(귀츨라프 선교사의 행적은 조선 왕조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번역시킨 귀츨라프가 중국 선교잡지 Chinese Repository 1832년 11월호에 소개한 한글)
* 1832년 동인도 회사는
극동의 새로운 통상 지를 개척 탐사하려는 목적으로
타이완을 거쳐
조선 서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는 항해를 계획하고
그 책임자로 린제이를 임명 하였습니다.
린제이는 중국 선교사 모리슨의 추천으로
중국어에 능통한 귀츨라프 목사를 통역관으로 동승시켰다고 합니다.
동인도 회사가 준비한 “암 허스트경호”는 1천 톤급 군함으로
통상개시에 관한 관심을 살피는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귀츨라프는
이를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절호의 선교 기회로 여겼다고 합니다.
조선실록에 의하면
홍주 목사 이 민희와 수군우후 김 형수를 만나
조선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고
국왕에게 통상을 정식으로 청원하는 서한과 함께
다른 선물과 성경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뒤 통상을 거절당하고
육지에 들어가지 못한 체 돌아갔다고 전합니다.
토마스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대동강 변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다 순교한
1886년 보다 34년 앞선 일이고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인천에 상륙한 1885년보다 53년 앞선 일입니다.
카톨릭 선교사인
불란서 신부 모방이 내한한
1836년보다 4년이나 앞선 일입니다.
성과의 유무를 떠나
귀츨라프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써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충청도의 작은 섬 고대도는
한국 기독교의
중요한 순례지로 알려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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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밀알감리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류창원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