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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학명: Colocasia antiquorum var. esculenta]은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토란(土卵)은 글자 그대로 땅 속의 알이다. 우(芋), 우두(芋頭), 토지(土芝), 토련(土蓮), 우자(芋子)땅토란, Taro라고도 한다. 맺힌 알을 거두어 껍질을 벗겨 국으로 끓이면 진짜 생긴 게 조그만 예쁜 하얀 알 같다. 땅속부분의 알줄기를 식용한다. 모구(母球), 자구(子球), 손구(孫球)가 생기는데, 모구는 떫은맛이 강하여 먹지 못하는 것도 있다. 잎자루가 건조하면 어떤 품종이든 먹을 수 있으나 생줄기의 경우는 대부분 떫은맛이 강하다. 식용, 약용, 관상용이다. 이 꽃은 피어난 곳, 혹은 주인에게 행운을 안겨다 줄 뿐 아니라 단순히 본 사람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행운을 안겨다 준다는 속설이 있다. 신빙성은 차치하고라도 여러 가지로 어려운 요즘 화려하게 피어오른 노란 토란꽃 한 송이 들여다보면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것 같다. 꽃말은 '행운,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을’이다.
여포우(荔浦芋: 토란)에 관한 전설(传说)이 있다. 해진(解缙: 서기 1369 년-서기 1415 년)은 명(明) 나라 홍무(洪武) 2 년에 태어나서 한림원(翰林院) 대학사(大学士)를 지냈으며 명(明) 나라 영락(永乐) 초년(初年)에 남방지역(南方地域)에 한재(旱災)가 계속되어 쌀 한 톨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특별히 광서지역(广西地域)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해진(解缙)은 심사숙고 끝에 황상(皇上)에게 광서지구 백성들의 부세(赋税)를 경감(减轻)시켜 달라고 상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해진의 부인이 여포우(荔浦芋: 토란)을 쪄가지고 해진 앞에 대령했다. 해진은 토란(芋头)과 서랑(薯莨)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서랑(Dioscorea)은 마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해진은 유년시절 고향에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할 때 서랑(薯莨)을 쪄서 먹고 배고픔을 달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느 날 해진(解缙)은 명나라 제 3 대왕 성조(成祖: 서기 1403년–서기 1424년) 주체(朱棣)를 자기집으로 특별 초대하여 여포우(荔浦芋)를 맛보일 계획을 세웠다. 성조가 자기 집에 당도하기 2 시간 전부터 여포우를 삶기 시작하여 성조가 당도할 무렵에 여포우 삶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였다. 해진(解缙)은 즉시 잘 삶아진 여포우를 절반을 잘라서 황상(皇上)의 손에 쥐어 주고 또 해진 자신도 황상이 보는 앞에서 한 입에 넣고 먹어 버렸다. 황상(皇上)은 해진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한 입 베어먹었는데 맛이 쓰고 시고 떫었으며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해진은 황상의 먹는 모습을 본 후“ 폐하(皇上)! 맛이 어떻습니까?”고 물었다. 주체(朱棣)는 “해진학사(解缙学士)! 이것이 무슨 음식이길래 당신은 한 입에 넣고 꿀떡 삼킵니까? 짐(朕)은 도저히 삼킬수가 없구려!”라고 말했다. 해진은: “폐하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있군요! 이 음식은 산야(山野)에 자라는 서랑(薯莨)이라고 불리는 식물의 뿌리입니다. 소신(小臣)이 유년시절 고향에 흉년이 매년 들어 먹을 양식이 없을 때 배고픔을 달래주던 음식이옵니다. 그래서 소신은 한 입에 꿀떡 삼킬수 있습니다. 현재 강남지역(江南地域)에 계속되는 한재 때문에 백성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서(广西) 지역이 한재(旱災)의 피해가 제 일 큽니다. 그래서 이 지역 백성들은 서랑으로 매일 연명하고 있습니다.”고 아뢰었다. 주체(朱棣)는 “영락태평성세(永乐太平盛世)가 겨우 이 정도 밖에 않된단 말이냐?”라고 해진에게 말했다. 해진은 “폐하(皇上)! 소신이 감히 폐하께 망언(妄言)을 했나봅니다.”고 아뢰었다. 성조(聖祖) 주체(朱棣)는 광서지구(广西地區) 백성들에게 앞으로 3 년 동안 부세(赋税)를 감면해 주라고 어명을 내렸다. 해진(解缙)의 계모(计谋)가 성공했다. 해진은 서랑(薯莨)과 여포우(荔浦芋: 토란)가 서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하여 계모를 꾸몄는데 성공한 셈이다. 실제로 성조 황제(皇帝)에게 서랑(薯莨)을 드리고 자기 자신은 여포우(荔浦芋: 토란)를 먹었다. 이상의 고사는《해진교접우(解缙巧接芋)》에 실려있는 아름다운 고사(故事)인데 현재까지 유전(流传)되어 오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후한 광무제, 추석날 토란 먹고 반군 진압한 전설, 토란국은 송편과 함께 중추절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지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토란국은 송편과 함께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대부분 평소에는 토란을 많이 먹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반드시 토란으로 국을 끓이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06년,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약 200년 후, 한나라 신하였던 왕망이 반란을 일으켜 신(新)을 건국해 14년 동안 존속했다. 유방의 후손인 유수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다시 한나라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인데 그래서 한나라는 왕망을 전후로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후한을 일으킨 유수가 바로 광무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한참 할아버지뻘 되는 인물이다.
광무제가 반란군을 진압하겠다며 군사를 일으켰지만 처음에는 왕망에게 패해 쫓기는 신세가 됐다. 급기야는 산속까지 도망쳐 결국 포위를 당했는데 마침 양식까지 모두 떨어져 병사들이 쫄쫄 굶는 신세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왕망은 이 기회에 숲 속에 숨은 광무제 군사를 섬멸하겠다며 산에다 불을 질러 화공을 펼쳤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서 산불이 꺼졌고 흙속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캐어 보니 땅속에 묻혀 있던 토란이 산불 때문에 마침 알맞게 익어 풍기는 냄새였다. 토란을 캐어 먹고 배고픔을 면한 광무제의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왕망을 공격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이날이 바로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이었다. 훗날 황제가 된 광무제 유수는 토란 덕분에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중추절이 되면 군사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토란을 먹도록 했다. 그리고 한나라 때의 이런 전통이 민간에게도 전해져 추석날이면 토란국을 먹는 것이 풍습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도 추석이면 우리처럼 토란을 먹을까? 모두가 토란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우리처럼 추석날 토란을 먹는다. 도대체 추석날 먹는 토란을 놓고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그 이유를 또 다른 전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옛날 어느 절에 이상한 스님이 한 명 살고 있었다. 해마다 절 주변의 밭에다 온 힘을 다해 토란을 잔뜩 심어 많은 수확을 했다. 그런데 거둔 수확을 삶아서 절구에 빻더니 삶은 토란 반죽으로 벽돌을 만들어 절 주변에 담을 쌓는 것이었다.
이런 괴팍한 중을 보고 같은 절의 중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중이라고, 정신이 돌아버린 것 같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난리가 났다. 전쟁을 피해 많은 피란민이 사찰로 몰려들었고 절에 보관하고 있던 양식도 곧 바닥이 드러났다. 모두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비웃음을 받았던 중이 토란으로 만든 벽돌을 허물었다. 사람들은 토란 벽돌을 다시 삶아 먹으며 굶주림을 면하면서 비로소 그 중의 비범함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실학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실려 있는 일화로 저자인 홍만선은 이 이야기를 통해 토란의 영양가와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전쟁에 빗대어 토란의 영양을 강조한 것이다. 토란은 한자로 흙 토(土)자에 계란 란(卵)자를 써서 토란(土卵)이다. 땅속에서 자라는 달걀이라는 뜻이다. 생긴 모양새가 흙 속에 묻혀 있는 계란을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양이 풍부하다는 의미도 있다.
옛날 동양에서 토란은 무병장수를 상징했다. 옛 동양화에 토란을 그려 넣거나 각종 장식에 토란 문양을 그려 놓은 이유도 그 때문인데 왜 토란이 무병장수를 의미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 토란의 영양가를 인정하고 전쟁이나 흉년이 들어 양식이 떨어졌을 때, 토란만 있으면 굶주림을 면하고 전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옛날 사람들은 지상에 토란보다 더 좋은 음식이 없다고까지 강조했다. 먹을 것이 워낙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 요즘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소리지만 어쨌든 토란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여겼다는 뜻이다.
11세기 중국 시인 소동파는 향기는 용연(龍涎)과 같지만 희기는 더 하얗고 맛은 우유와 같지만 맑기는 더 맑다고 노래했다. 용연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는 용의 침을 모아 만든 향료로 하늘나라 신선들이 먹는다는 향신료다. 추석날 먹는 토란국을 놓고 하늘 음식에 버금가는 식품이라고 극찬한 것이다.
한방에서는 토란이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의 운동을 돕는 식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은 토란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변비도 고친다고 했다. 그러니 떡과 고기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나기 쉬운 추석날, 토란국을 먹으면 소화를 도우니 명절 음식으로는 제격이다. 과학적으로 추석과 궁합이 잘 맞는 셈이다. 전란을 극복할 만큼 영양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된다니 이런 참살이 음식이 따로 없다.
열대 아시아 원산이며 채소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알줄기로 번식하며 약간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알줄기는 타원형이며 겉은 섬유로 덮이고 옆에 작은 알줄기가 달린다. 잎은 뿌리에서 나오고 높이 약 1m이다. 긴 잎자루가 있으며 달걀 모양 넓은 타원형이다. 잎몸은 길이 30∼50cm, 나비 25∼30cm이고 겉면에 작은 돌기가 있다.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밋밋하다. 잎몸 밑부분은 밑으로 처진다.
꽃은 8∼9월에 드물게 잎자루 사이에서 1∼4개의 꽃줄기가 나오는데, 막대 모양의 꽃이삭 위쪽에 수꽃, 아래쪽에 암꽃이 달린다. 꽃을 싸는 불염포는 길이 25∼30cm, 나비 약 6cm로서 곧추서며 수술은 6개이다. 하얀 꽃의 수려함이 참으로 정숙하고 단아하다.
토란 세밀화 ⓒ 서울대공원 식물원
생약명(生藥銘)은 야우(野芋), 우자(芋子), 토련(土蓮), 토인삼(土人蔘), 토지(土芝)이다. 적용증상 및 효능은 강장, 개선, 견비통, 마풍, 소영, 요통, 우울증, 유선염, 유옹, 인후통증, 종독, 중이염, 지사, 충치, 치핵, 타박상, 태독, 편도선염, 폐렴, 피부윤택, 해독, 혈리, 홍역, 화상, 흉통이다. 토란을 요리 할 때는 토란 알을 먼저 푹 삶아 데쳐서 독성을 뺀다. 토란 껍질을 벗길 때는 독성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으므로 고무장갑을 끼고 해야 한다. 옛말에 얄미운 시누이 국은 덜 삶아진 것을 대접한다고 할 정도로 토란의 독성은 강하다. 토란대는 삶거나 생으로 말려 보관하는데, 나물로 해먹을 것은 생으로 말리고, 삶아 말린 것은 고사리처럼 쇠고기국이나 육개장, 보신탕 등에 거섶으로 넣어 먹으면 좋다. 복용 중에 황금을 금한다.
(참고자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넓은 토란잎이 우데미 집 뒤뜰에 있었어요*
신이 준 선물이라는 계란, 땅 속에서 깨면 계란 같습니다...
땅 속에 계란이란 표현에 공감합니다.
고봉산님
토란 하면 입만부터 다시지만 노란 꽃이 핀다는것도 몰랐고 이 꽃을 보기만해도 행운이 온다니 참 인간친화적인 식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토란에 얽힌 명나라 전설도 재밋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