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삶의 절정이다
옛 어른들이 ‘꽃을 좋아하면 눈물이 많다’고 하더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꽃을 반기는 심성엔 여리고 고운 감성이 깃들어 있기에 그럴 것이다. 나도 근래엔 눈물이 흔해졌다. 햇살이 눈부셔도 가슴이 찡하고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도 감정이 울컥한다.
꽃을 좋아하는 탓인지, 나이 든 탓인지 알 수는 없다.
봄기운이 저만치 있다가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방송마다 개화시기를 예상하며 남도의 춘심을 전한다. 기상 캐스터가 “작년보다 올해는 꽃이 일찍 피었다”라고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들 기준일 테고, 봄꽃은 날짜를 헤아리지 않고 때가 되면 피는 것이다. 일찍 피거나 늦게 피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제때에 필 뿐이다.
여기에서 삶의 순리를 익힌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 그러므로 꽃 피는 시절이 모두 다르다. 벚꽃이 터지는 봄날엔 구절초가 피지 않는다. 국화 만발한 날에는 개나리가 숨죽이고 있다. 이처럼 때를 만나는 것은 각각 시차가 있기 마련이다.
안도현 시인이 <순서>라는 시에서 “맨 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가 노란 기침을 해낸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라고 했다. 이렇게 꽃나무도 나름의 순서에 따라 피고 진다. 복사꽃이 어느 날 후다닥 와서는 제순서를 바꾸지는 않는다. 차례차례 피는 꽃이라서 더 조화로운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한꺼번에, 한날한시에 성공의 때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뜻이 아루어지는 시기가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초년의 성공이 있으면, 중년의 성공도 있는 법. 획일적이고 일률적이지 않으므로 인생은 역동적이면서 무한하다. 따라서 상대방이 봄일 때 나는 겨울의 지점에 서있다고 위로하라. 누군가의 출세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은 자기 때를 만나 활짝 핀 것이라 여기면 된다. 내 능력과 기질을 발휘하는 시점과 기회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심리학에 ‘평균의 자석’이란 용어가 있다.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이 평균에 맞추려는 성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생활하고픈 심리이다.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늘 비교해야 하므로 행복의 지점도 자꾸 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 평균이라는 것이 행복의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철 스님은 평소에 ‘거꾸로 사는 것이 불교다’라고 강조하셨는데, 남들이 사는 방식을 따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웃의 수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은 숨차고 벅차다. 결국에는 그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욕심이 많은 이웃을 만나면, 나는 그와 반대로 살아가는 일이 행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비교하는 삶을 버리고 절대적인 삶을 살라는 조언.
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 때를 달리하여 피기 때문이다.
인생이 신비로운 것도 사람마다 지닌 개성과 재주의 쓰임새가 다른 까닭이다. 누구에게나 절정의 때는 따로 있다.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이채 작가가 쓴 <유월에 꿈꾸는 사랑> 가운데 옮겨 왔다.
인생의 절정은 봄처럼 지나가기도 했을 것이고, 여름처럼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어찌 봄만이 절정이겠는가. 계절마다 축제를 벌이듯 모든 때가 내 삶의 하이라이트다.
분명한 건,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젊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매 순간이 삶의 절정이다.
출처 ; 현진 스님 / 꽃을 사랑한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