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추기경, 로마 밤샘기도회 주례 “순교자들은 신앙의 빛… 그들을 기억합시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둔 4월 3일 트라스테베레의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20세기와 21세기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한 성목요일 밤샘기도회를 마련했다. 이번 기도회 예식을 주례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순교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개하는 한편, 순교자들이 복음으로 정의와 평등을 실현했다고 강조했다.
Michele Raviart / 번역 안주영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4월 3일 산 에지디오 공동체가 주관한 우리 시대 순교자들을 위한 교회 일치 밤샘기도 예식을 주례했다. 로마에서 열린 이 기도의 자리에서 유 추기경은 순교자들을 가리켜 파스카 밤의 불꽃처럼 서로의 곁에서 불꽃을 키우는 촛불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 시대에 “순교자들의 증거가 우리 신앙을 굳건히 하고 우리 안에 사랑의 불을 밝히며 우리가 악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희망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든 신자는 순교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유 추기경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보다 20세기와 21세기에 더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리고 마지막 세대인 우리에게까지 복음의 희망이 전해졌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순교자들은 평신도와 목자, 여성과 남성, 힘없는 어린이와 노인 등이었다며, 예수님의 이름과 인성을 마음에 깊이 새긴 이유만으로 죄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모든 순교자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며, 교회법적 의미가 아닌 매우 폭넓은 의미에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순교자들이 “반대 세력들과 맞서 최전선에서 포기하지 않은” 모범적인 인물들이었다며 “순교자들의 무기”는 “사랑과 연민, 평화와 화해”였다고 설명했다. “순교자들은 우리의 기도와 동행하는 천상 보편 교회의 일부입니다.”
대한민국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땅”
유 추기경은 자신의 출신국인 대한민국을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땅”이라고 말했다. 이어 1만 명에서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순교자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생동감 있는 한국 교회의 역사이자 생명수”라고 말했다. 그러한 순교자들 가운데 1800년대 중반 순교하고 지난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103위 순교자에 속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교리 교사 성 정하상 바오로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다른 순교자 124위를 복자품에 올렸다. 유 추기경은 “19세기 박해가 신앙의 빛을 꺼뜨리지 못했다”며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로를 진정한 형제자매로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반도 역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실천한 순교자들의 증거 덕분에 복음은 평등과 정의를 실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온 세상의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
이날 밤샘기도에 함께한 이들은 유럽 대륙의 선익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한편, 출신지에 관계없이 모든 이주민을 환대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위해 유럽을 시작으로 온 세상의 순교자들을 기억했다. 아울러 20세기 초 전체주의와 마피아, 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비롯해 여전히 시리아와 예멘에서 지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기억했다. 또한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됐다가 피살된 많은 사제들, 모잠비크에서 피살된 마리아 드 코피 수녀, 아이티의 루이사 델오르토 수녀, 로스앤젤레스대교구 보좌주교 데이비드 오코넬 주교의 죽음 등 최근 몇 달 동안 목숨을 잃은 이들도 기도 중에 기억했다.
산 에지디오 공동체에 감사인사
산 에지디오 공동체는 지난 3월 24일 로마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의 지하성당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모든 순교자들을 위한 기념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이와 관련해 “로마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남녀 수도자와 그리스도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이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