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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이러브 황우석! 원문보기 글쓴이: 진실을찾는사람
출처: http://blog.daum.net/pd-diary/17202352
1부 : 9.12(화) 저녁 7시
2부 : 9.19(화) 저녁 7시
방송: FM 99.9 KFM 경기방송
(프롤로그) 라디오 탐사저널리즘, ‘KFM스페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당시 황우석 교수의 연구 활동을 전면 지원한 정부인사들, 이른바 '황금박쥐'의 일원이었고..."
"11년 전의 쇼 오늘 다시 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박기영 사퇴논란을 보면서 11년간의 취재수첩을 펼쳐듭니다.
과연 황우석은 사기꾼이고 노무현의 줄기세포 지원은 사기극에 현혹된 주홍글씨였을까?
"지금은 좀 돕고있습니다. 앞으로 확실히 밀겠습니다." (노무현, 05.10)
이제, 노무현과 줄기세포의 진실을 공개합니다.
"내가 형이 되어줄테니까"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줄기세포가 가짜면 최대 피해자는 황우석"
"아 그때 정말...현이가...아빠 그럼 나 이제 못걷는거야?"
"김선종 연구원을 섞어심기에 의한 (황우석 연구) 업무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
KFM 스페셜 <노무현은 줄기세포로 무얼하려했는가? 2부>
오늘은 10분 더 연장해 7시40분까지 계속됩니다.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MC멘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사999 진행과 연출을 맡고있는 프로듀서 노광준입니다. 김현아입니다.
지난 방송 듣고 많은 분들께서 궁금하다며 질문을 해오셨는데요, 가장 많은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방송 말미에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걱정거리는 과연 무엇이었나요?
"참..그...걱정이 한가지는 있습니다." (노무현, 05.10.19)
2005년 10월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의 문을 열던 그 좋은 날, 전 세계 줄기세포 석학들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솔직하게 자신의 걱정을 토로합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생명윤리에 관한 문젭니다.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가지 논란이 이와같은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관리해나가는 것이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의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바로 만들고 올바르게 운영해나가도록 노력해나가겠습니다." (노무현, 05.10.19)
윤리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윤리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 연구에 대한 윤리적 반대중심에,
이라크를 초토화시킨 세계의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재구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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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19일 인천국제공항. 미국에서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한 황우석팀이 귀국하자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듭니다. 금의환향. 그런데, 이 자리에서 황 박사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난자를 대상으로 한 일체의 복제 연구를 중단하겠다." 황우석, 문신용 교수팀의 귀국 후 일성입니다.
(YTN, 2004.2.19)
연구 중단. 그들은 미국 현지에서 이 연구에 대한 윤리적 반발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절감했던겁니다.
"이미 인간난자를 가지고 직접 복제연구 하는 것은 중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들과 정부의 판단을 기다려보겠습니다." (황우석, 2004.2.19)
대체 그들은 미국에서 뭘 본걸까?
"나는 살아있는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줄기세포 연구에 미국의 연방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한다. (CNN, 01.8.9)
미국의 48대 대통령 조지 w.부시. 그는 취임초부터 배아줄기세포를 생명파괴로 규정하고, 치료목적의 세포복제에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 이전에 수립된 인간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만 연방정부 기금을 지원할 것이다."
(조지 w. 부시, 2001.8.9 밤 9시)
이 시간부로 배아줄기세포 정부지원을 동결함. 이것이 바로 미국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찬물을 끼얹은 '부시 독트린'입니다. 과학자들은 속속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로저 피터슨.
"20세기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정보통신 혁명이 일어났다면 이제 21세기 바이오 혁명은 한국의 서울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배아줄기세포의 겨울왕국이 된 미국을 떠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미국 과학계는 부시의 규제를 풀어달라는 지속적인 청원을 했지만,
황우석 연구가 발표된 2004년 그해,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최종 승자는 또 다시 부시였습니다.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명을 파괴해야합니다." (부시 후보의 미국 대선 TV토론, 2004.10)
당시 부시 행정부는 황우석 줄기세포의 핵심기술인 치료목적의 세포복제까지 전면 금지시키자는 UN 결의안을 적극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중심이 된 배아 복제 전면금지 결의안과 한국과 유럽 등이 제출한 치료목적 복제연구 허용 결의안을 두고 벌이는 UN 토의와 표결을 앞두고..." (YTN 2004.10)
복제는 안된다는 미국. 이에 맞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는,
치료목적의 세포복제는 허용해야한다는 제한적 허용론을 들고 UN에서 맞붙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우리 시각으로 오늘 새벽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치료 목적의 복제연구를 허용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습니다." (YTN, 2004.10.14)
2004년 10월14일, UN 본부 인근에서 열린 황 박사의 기자회견은 노무현 정부 외교라인의 작품입니다.
표결을 앞두고 각국 외교관과 UN출입기자들을 초청한 이 자리에서 한 미국인의 영상이 공개됩니다.
바로 말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영상에서 그는 황 박사 연구 허용을 호소했습니다.
"옳은 결정을 내리길 기대합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과학적인 지식은 전세계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토퍼 리브)
슈퍼맨은 이 영상이 공개되기 사흘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당초 황 박사 연구를 돕기위해서라면 자신이 직접 뉴욕에 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의 사망 이후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이 그의 영상을 공개된겁니다.
"저희 연구를 TV에서 봤다며 그분이 직접 전화를 걸어오셨었습니다."
황 박사측은 인터뷰는 거절했지만 슈퍼맨과의 사실관계는 밝혔습니다.
"내가 설령 당신 연구의 수혜를 입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돕고싶다고. 왜냐하면 당신의 연구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서 삶의 각도를 달라지게 했다고..."
이런 슈퍼맨의 호소가 세계의 마음을 움직인것일까.
결국 UN은 치료목적 세포복제 금지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인간복제금지안만 결의합니다.
그리고 황우석팀은 여덟 달 동안 중단됐던 연구를 재개합니다.
"미국서 열리고 있는 국제 세미나에서 황우석 교수팀은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연구를 잠정 중단한 지 8개월만입니다." (SBS, 2004.10.21)
그 무렵 노무현 정부는 황 박사 연구를 다각도로 돕고 있었습니다.
바이오 외교대사를 파견해 국제협력을 도왔고, 특허청은 특허등록을, 국정원은 연구실 보안을,
그리고 경찰청은 3부 요인에 준하는 24시간 경호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9명이 근무했는데 3명씩...저까지 10명이 근무했습니다. 저는 팀장이고 3명씩 근무하면서 3교대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인원 10명이나 국무총리실 10명이나 똑같은 팀을 구성했습니다.
국무총리, 국회의장, 우리 황박사님 똑같은 수준으로 경호"
취재진은 2004년부터 황우석 박사 경호팀장을 맡았던 서울경찰청 소속 현직경찰 A씨를 만났습니다.
"미국이나 스페인 같이 장거리(비행)인데도 교수님께서는 항상 노트북을 열어놓으시고 연구발표자료를 검토하시고...전혀 눈붙이는 시간이 없으신것 같아요. 밑의 교수들, 강성근 교수나 동행하는데도 시키지 않으시고 본인이 직접..."
그는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황우석팀에 파견했던 지원인력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우리 경찰외에도 국가정보원이나 이런 곳에서 파견나와서 근무하는 직원이 있었고 (근무한지) 1년 되어갈 무렵에는 외무부에서 한분이 나와서 근무..."
이런 가운데 다시 연구를 재개한 황우석 연구팀.
그들의 이번 목표는 10살 난치병 소년의 줄기세포인 2번 줄기세포, NT-2 였습니다.
(MC 중간멘트) -----------------------------------------------------------------------------------------
들으신것처럼 노무현 정부는 국제적인 윤리논란에 대해 힘겹지만 지혜롭게 대처했습니다.
국내에선 생명윤리법을 제정해 최소한의 법제도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미국과 유럽의 석학들이 한국이라는 제 3지대로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구상이 한순간에 무너진걸까? 이제 줄기세포 사기극의 전말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전에 먼저, 우리의 눈을 흐려온 착시현상 몇가지 바로잡고 가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이런 뉴스 들어보신적 있으시죠.
"황우석이 열 살 난치병 소년에게 다가가 '내가 널 걷게해주마'라고 호언장담했다."
저는 당시 그 뉴스보고 황 박사를 사이비 교주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작 열 살 난치병 소년의 아버님은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그건 맥락을 교묘히 왜곡한 '악마의 편집'이었으며 나는 아직도 황 박사를 믿고 있다고.
"방송을 보면서 상처를 참 많이 받았어요. <PD수첩>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서...10가지를 물어요. 그 10가지 중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있지 않겠어요? 그 중에 원하는 것만 뽑아요. 그러면 내 이야기예요? 아니면 짜집은 이야기예요? 자기들의 이야기란 말이예요. (황우석 박사) 이 분이 한 이야기가 "목사님 제가 빨리해서 올해안에 한번 해봅시다" 이런 이야기가 나를 생각해서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고...그거는 관점이 '한번 해봐자' '하도록 내가 노력해보겠다'라는 건데 부모에 대한 위로인데 그걸 그대로 (기사로) 쳐버리면 황우석 박사는 죽일 놈이 되는거죠.
(소년의 아버지 김제언 목사)
또 이런 말도 들으셨을겁니다. 황우석이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훨체어 댄스를 선보인 가수 강원래씨 앞에서 '내가 저 강원래 씨를 벌떡 일으키겠다'는 말을 했다고. 그건 종교였다고.
과연 그런 말을 했는지, 저희는 11년전 열린음악회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이런 발언이었습니다. 들어보시죠.
아나운서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실 것 같아요. 궁금합니다."
황우석 박사 : "저는 오늘 우리 강원래씨가 출연하는지를 모르고 왔습니다. 아까 여기에서 힘찬 예술의 몸짓을 보여줄 때, 가슴이 너무 메여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끔 만나는 저의 동생과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난치 질병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아직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강원래 군을 벌떡 일으켜 이제 과거 보여주셨던 그 날렵한 솜씨를 KBS 다음 다음 번 열린 음악회에서 다시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아서 온 국민과 함께 같이 가고 싶습니다." (황우석, 2005. 7.31)
과학꿈나무 청소년들 앞에서 열린 열린음악회에 과학부총리와 함께 나와서,
아직은 길을 찾지못했지만 온 국민과 함께 꼭 그길을 찾고싶다는 인간적인 소망을 밝힌 말을,
앞뒷말 딱 잘라버리고 '벌떡 일으켜' 한줄만 떼어내 사이비 교주로 만들어버리는 악마의 편집.
놀라운 것은, 이런 왜곡의 진원지가 다름아닌, MBC PD수첩 최초 제보자, 류영준씨였다는 겁니다.
취재구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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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났는데...젖꼭지 밑으로 쓰지못하는 하반신 마비...손만 쓰는 거예요 목하고 손만..." (아버지 김제언 목사)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신경이 끊어진 소년. 그러나 누구보다 배려심이 깊고 밝았습니다.
"재정부장님이 봉투를 하나 가져오셨더라구요. 보니까 우리 현이가 낸 헌금이예요. '이대로라도 좋아요'라는 헌금봉투가...아이가 감사할 줄 아는 아이였어요."
그 열살 소년의 몸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2004년 하반기.
8개월만에 다시 연구를 재개한 황우석 팀은 빠른 속도로 나아갑니다.
"검찰 수사결과 : 2004년 9월17일경 체세포 핵이식 실시, 약 일주일 뒤 복제 배반포 형성"
엄청난 진전이었습니다. 단지 4개의 여성 난자를 써서 1개의 배반포 확립. 성공률 25%.
복제 배반포는 미즈메디 공동연구자에게 넘겨집니다. 마지막 배양단계.
"검찰수사결과 2004년 10월5일경 초기 줄기세포 콜로니 상태 진입"
배양성공. 이후 마치 봇물터져나오듯 다양한 난치병 환자들의 세포가 수립됩니다.
"11월25일 경 3번 줄기세포 수립. 12월10일 경 4번 5번 6번 7번 하루에 네개의 줄기세포 수립"
검찰수사기록에 따르면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25일까지 황우석 팀이 수립해낸 줄기세포는 모두 12개.
독보적인 성공을 확신한 황 박사는 이미 두번째 사이언스 논문작업에 들어가있었습니다.
줄기세포 배양과 검증을 맡은 미즈메디 연구원은 황 박사에게 이렇게 보고합니다.
2번, 3번 줄기세포 DNA 검증 결과, 모두 환자의 체세포와 일치하는 복제 줄기세포라고.
"홍성에서 실험끝나고 오는 중에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아마 통화내역으로 보니까 김선종 연구원같아요.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미즈메디 쪽에 여러가지 통화내용이 있었기에...
(황박사가) '아 그러냐'고 '그래그래 수고했어' 어떤 성과가 또 나온것 같은..."
당시 황 박사 옆에서 경호했던 현직 경찰관은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미즈메디 김선종 연구원의 보고를 받고 너무 좋아 어쩔줄 모르던 황 박사의 표정을...
"아주 반가와하고 '잘돼고 있다' '너무나 우리 김박사 고생했어' 이러면서 이야기할때 (줄기세포가) 계속 나오고있다는걸 제가 알았습니다."
그러나 김선종의 보고는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 (미즈메디) 김선종 연구원을 줄기세포 섞어심기 및 이에 관한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로 업무방해 및 증거인멸 교사죄로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 2006.5.12)
줄기세포는 마지막 배양단계에서 가짜로 뒤바뀌었고 DNA 검증도 조작됐습니다. 공동연구자는 감쪽같이 황 박사와 서울대 연구원들을 속여왔습니다.
"검찰수사결과 : 김선종은 서울대 연구원들에게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조명이 밝으면 세포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클린벤치 조명만 남기고 실험실의 나머지 조명을 모두 소등한 후 작업을 진행함"
줄기세포의 성공을 확신한 황 박사는 10살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을 추진했습니다.
"검찰수사결과 :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은 2006년 하반기로 예정"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 만일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피디수첩 제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년의 목숨을 살리려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황 전교수가 거짓말을 하고 하는 목적은 하나(노벨상)인데, 돈이나 명예정도는 그렇다치는데 사람 목숨까지 위험한...(그러니까 임상실험을 하겠다?) 네. (그런데 2005년 5월 사이언스 두번째 논문은 조작된 논문이었죠?) 네. 그래서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제보자 류영준 강원대 교수, CBS 라디오인터뷰, 2014.10.30)
그러나 임상전문의는 이런 제보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좀....이해가...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고, 당연히 임상실험을 한다는건..."
줄기세포 치료학회 신문석 의학박사는 임상시험전 반드시 전문의들이 DNA 검사등을 통해 줄기세포를 모니터링하기에 가짜세포가 환자에게 주입될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문제가 하나도 생기지 않게끔 준비하는거잖아요...하기전에 균검사를 합니다. 바이러스검사, 독성검사, 그 다음에 HLA 검사도 같이하겠죠. DNA를 가지고 매핑을 다해보면 환자것하고 같은지 틀린지 비교할 수 있잖습니까? 당연히 그런 실험까지 다하고 검사를 다하고...(신문석 의학박사)
검찰 역시 비슷한 결론을 냈습니다.
"검찰수사결과 : 임상실험 직전에는 반드시 줄기세포 DNA 지문분석 등을 재차 실시하는 검증절차를 거쳐야 되므로 수정란 줄기세포라는 사실이 발각될 수 밖에 없음."
오히려 소년에 대한 임상시험은, 황 박사의 결백을 입증하는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검찰 수사발표에도 나왔는데 황 박사님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라고 믿은 전체하고 현존하는 NT-1 줄기세포 이 전체를 다 캠브리지 대학에 우리가 제공한거예요. 그럼 만일 이게 가짜인줄 알았으면 그걸 국제적으로 망신당하려고 갖다줍니까?"
황우석 박사측 이봉구 변호사는, 황 박사가 당시 미국의 암 연구소에 연구비까지 지원하며 소년의 임상시험을 준비했는데 사기꾼이라면 그럴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미국의 슬로언케터링 암연구소에는 (황 박사가) 30만 달러를 주고 분화방법을 연구하라고 줬어요. 그럼 가짜를 만들어가지고 30만 달러를 주고...다 들통나라고...그렇게 머리 나쁘진 않죠. 서울대 교수가 그렇게 머리 나쁘겠어요?"
그는 당시 MBC 피디수첩의 취재방식에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MBC (피디수첩) 피디가 책을 썼는데 서울대 치과대학에 준거 하나만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건 아마 황 박사가 잠깐 실수로 줬을거다. 지가 가짜를 만들고도 그걸 외부로 내보내진 않을거니까' 그러면서 책을 썼거든요. 그 사람은 언론인 자격이 없어요. 이미 10개 이상 제공했다는게 검찰수사발표로 나왔었어요."
그러나 제보자는 이 모든 조작이 황우석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가설을 피디수첩 카메라 앞에서 펼쳤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추론을 이야기 드리면 황우석 교수님이 원래 미즈메디에 잉여로 갖고 있던 11개의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이대로 썩혀서는 안되겠다고 설득을 해서 김선종 선생님 주도하에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세포로 탈바꿈을 한 거죠."
황우석이 조작을 지시했다?
훗날 검찰수사와 법정에서는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피디수첩 제작진은 이를 확신한것 같습니다.
2005년 10월20일 미국 피츠버그 대학. 피디수첩은 조작의 진범 김선종 연구원을 찾아간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저희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황우석 선생님만 다쳤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그래서...진심으로 이건 진심이거든요. 같은 동년배로서 우리 세대에서 이것이 이럴 일이 아니다. 이건 황우석 박사님만 주저앉히면 된다. 그런 뜻이예요."
"황교수님같은 경우엔 다음주에 저희가 따로 인터뷰를 할거고, 검찰수사가 시작될겁니다."
황우석만 주저앉히면 된다. 검찰수사가 시작될거다.
조작의 진범을 찾아가 황우석에 대해서만 물은 MBC 피디수첩 녹취록 내용이었습니다.
(MC 중간멘트)----------------------------------------------------------------------------------
황우석만 주저앉히면 된다. 검찰수사가 시작될거다.
이후 MBC PD수첩은 취재윤리 위반으로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성난 민심은 MBC에 대한 광고거부로 이어졌고 MBC 사옥앞에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보수언론들은 연일 MBC와 진보언론에 대한 자극적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글을 써서 올립니다.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2005년 11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이 글은 이후 피디수첩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비판하고,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비판하는, 양쪽에서 욕먹는 글이 됩니다.
"나도 MBC의 이 기사가 짜증스럽다. 그리고 취재의 계기나 방법에 관하여도 이런 저런 의심을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꼭 이렇게 가혹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노무현)
노 대통령은 피디수첩의 취재윤리 위반을 짜증스럽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MBC 광고거부에 나선 국민저항에 우려를 표합니다.
"또 다른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용을 모르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노무현)
그렇다면 줄기세포 진실공방속에 대통령이 바라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각자에게 자기의 몫이 있다. 기자들은 기자들이 할 일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2005년 11월27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혹시, 언론은 언론의 영역에서, 과학검증은 과학계에서, 각자 자기의 몫을 충실히 해달라고 호소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이후 상황은 그런 바람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습니다.
취재구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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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12일, 줄기세포가 진짜라고 믿고있던 황 박사는 <PD수첩>검증에 응해 세포를 넘겨줍니다.
"PD수첩과 YTN에게 줄기세포 5개, 환자 체세포 5개, 그리고 영양세포 5개까지 모두 15개의 시료를 넘겨줌"
(검찰수사와 당시 언론보도 종합)
이제 언론사들이 DNA 분석만 의뢰하면 진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미국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황우석 박사와 의형제처럼 지내며 연구성과에 찬사를 아끼지 않던 미 줄기세포 연구의 거장 제럴드 섀튼 박사가 황 박사와의 공동연구중단을 선언했습니다." (YTN, 2005.11.13)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대표저자인 제럴드 섀튼 교수가 황우석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황 박사는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했습니다. 당시 경호팀장을 맡았던 현직 경찰관의 말.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좀 당황해하시는거예요. 연구실의 강성근 교수와 통화하는걸 제가 느꼈어요. 내용은 섀튼 박사가 공동연구 파기하기로 했다...이런 내용을 받고 박사님께서 '아니야 그럴리 없다. 내가 들어가서 확인해보지' 아주 당황하셨시고 섀튼도 자주 왕래할때니까..."
섀튼 교수는 황 교수를 브라더, 형제라고 부를만큼 절친한 사이.
"섀튼 가정집인데요 서울대 연구팀 교수님들하고 섀튼 집에서 파티하는걸 참석해서 같이 있었습니다. 형제같이 우린 영원히 간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던거로..."
그리고 그날밤, 조작의 진범이 약을 먹고 실려갑니다. 수면제 과다복용.
"미국에 머물던 김선종 연구원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것은 11월 중순. 황교수 팀에서 줄기세포 시료를 피디수첩 취재진에게 건네줬다는 소식을 들은 즈음 이었습니다."(YTN)
김선종씨는 자살기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그의 진료기록을 살펴본 전문가들 소견은 달랐습니다.
"검찰수사결과 : 입원 당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의식이 혼미하고 동공이 열린 상태, 당시 복용한 약의 종류 및 분량에 비추어 치료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의료 전문가의 소견"
섀튼의 결별과 김선종의 입원. 이게 모두 같은 날 벌어진 사건입니다. 11월12일, 언론사로 줄기세포가 넘어간 뒤...
"논문에 수록된 줄기세포의 DNA와 다름"
황 박사도 진실을 알게됩니다. 11월18일. YTN의 검증결과가 도착합니다. 줄기세포는 가짜라는.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오늘 아침에도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아..." (YTN, 2005.11.28)
멘탈붕괴. 황 박사는 믿을 수 없는 결과 앞에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합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12월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다시 한번 줄기세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배아 연구에 대한 지원은 계속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며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KTV 2005.12.5)
연구지원은 계속돼야한다. 이 사건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대통령의 입장입니다.
"줄기세포 파동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 황우석 교수가 어제 서울대병원에 입원..." (YTN, 05.12.8)
경기도 모처에 칩거하던 황 박사가 입원합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초췌한 얼굴. 일각에선 사기꾼의 쇼라고 평하지만, 훗날 법정에 나온 서울대 안규리 교수는 당시 황 박사의 상태를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심한 우울증, 다소 극단적인 위험행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저희는 판단되었습니다. 그 때 입원을 권유한 것을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안규리 법정증언 2008년 4월8일)
병실에 입원한 황 박사는 두 가지를 결정합니다. 서울대 조사검증에 응한다. 그리고 서울대 교수직 사퇴.
"12월15일 오전 9시 조금 넘어 학장실에 들어갔는데 황 교수님의 사직서가 놓여있었습니다."
양일석 당시 수의대 학장은 황 교수의 사직서를 받아 대학본부에 제출했다고 말합니다.
"노정혜 처장은 저에게 '총장님이 나오시면 드리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분위기로 봐서는 '잘됐다' 그런 톤이었는데 나중에 10시쯤 전화가 오기를, '총장님이 조사위원회가 구성이 됐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
(양일석 당시 서울대 수의대 학장)
한편 이날 황 박사는 병실로 한 사람을 부릅니다.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 사이언스 공저자인 그에게 모든 세포가 미즈메디의 것으로 나온다는 진실을 말한 뒤 협조를 구합니다. 그러나 노 이사장은 병실문을 나선 뒤 기자들을 부릅니다.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고.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할까요?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은 오늘 MBC와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가 지금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MBC)
노 이사장은 왜 폭로했을까? 2007년 1월30일의 법정증언을 보면,
"책임이 미즈메디로 전가 될 것을 걱정해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함" (노성일, 2007.1.30)
노 이사장은 실제로 미즈메디 김선종 연구원을 두둔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김선종 연구원에게 국제전화로...(중략) 내가 형이 되어줄테니까 걱정하지마라고..."
그러나 김선종의 섞어심기 조작이 명백히 드러나자 말을 바꿨습니다. 그 인간을 내가 모르겠다고...
"그 인간을 내가 몰라..."
2005년 12월15일, 노 이사장의 폭로로 세상은 발칵 뒤집혔고 그날밤 MBC PD수첩이 특별편성됩니다.
"법의학전문가에 따르면 황교수가 준 줄기세포 2번과 논문의 줄기세포 2번은 일치하지 않으며...(PD수첩)
이날 <PD수첩>은 황우석 2번 줄기세포가 가짜라고 폭로합니다.
그 방송을 숨죽여 보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2번 줄기세포의 주인공, 10살 난치병 소년.
"아...현이가...아 그건 진짜로...아..."
소년의 아버지는 지금도 그날, 피디수첩을 본 아이 표정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걸 막 보고난 다음인데요..."아빠, 나 그러면 못걷는거야?" 그랬죠. 그때 그 아이가 절망하는 표정은..."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소년은 이듬해 가을 쓰러져 무의식 상태에 빠졌고, 2008년 8월8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소년의 마지막을 지킨건, 피디수첩도 제보자도 아닌 황우석 연구팀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팀 연구실에 대해 사실상 폐쇄 조치를 내렸습니다. 연구활동도 잠정 중단됐습니다." (YTN, 2005.12.19)
출입을 통제하고 감시카메라 설치. 서울대 조사 첫날 풍경이었습니다. 연구는 중단됐고 반론권도 없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첫날 황우석 교수를 1시간동안 차마시며 면담조사한 것이 전부. 반론기회 및 정보제공 약속했지만 이후 반론권을 주지도, 정보를 알려주지도 않았음. (2009년 2월2일 정명희 서울대 조사위원장 법정증언요약)
황 박사는 책임은 책임대로 질테니 기술을 입증할 재연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국민여러분들께서 이를 반드시 확인하게 되실겁니다." (황우석, 2005.12.23)
그러나 재연기회는 없었습니다. 노정혜 당시 서울대 연구처장은, 재연기회도 검토한다던 당초 언급과는 달리 말끝을 흐렸습니다.
"글쎄요 지금 일정으로 그게 가능한지....조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실거로 생각합니다." (YTN 051230)
연구중단시키고 반론기회도 재연기회도 없는 조사.
당시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대 연구부정조사와 비교하면 달랐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도쿄대 다이라 교수 조사 : 예비조사, 본조사, 재연실험, 반론기회 포함 조사기간 1년.
반면 서울대 황우석 조사 : 예비조사, 재연실험, 반론기회 없이 조사기간 휴일포함 28일"
재연기회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된 서울대 검증은 훗날 더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조사위원회 상당한 과학적 업적이 황교수가 제작한 1번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이란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정명희 조사위원장은 황우석 1번 줄기세포가 복제된게 아닌 처녀생식 줄기세포임을 밝힌게 서울대 최대업적이라고 자평했지만...
"사실 처녀생식 가능성이 있단것을 조사위원회가 크게 삼지 말았어야 하는거야.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이 정체를 잘 몰라. 정말 정체를 잘 몰라 우린 모르겠다라고 했으면 제일 나았을지 몰라" (2009.2.2 법정공개된 추적60분 내용중)
훗날 법정에서는 1번 줄기세포 정체를 잘 모른다고 하는 그의 인터뷰영상이 증거자료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 당시 흥분해서 단정적으로 말한 측면이 있다며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가능성만 제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흥분해서 그런지 단정적으로 이야기한것은 맞습니다. 잘못됐다고 인정합니다." (2009.2.2. 정명희 증언)
황우석과 대립했던 미즈메디 출신 연구자들이 서울대 조사에 임할때 서로 주고받은 대화도 공개됐습니다.
"서울대 조사에서 한 방에 끝내자."
"어차피 서울대는 황을 죽이려고 하더라. 조사위원들 분위기는 확고하다"
지난 2007년 8월28일 법정에서 공개된 당시 미즈메디 연구원들간의 통화녹취내용입니다.
"줄기세포가 수립되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전혀 찾을수없다." (2006.1.10)
그러나 2006년 1월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조사의 마침표를 찍었고, 이후 세계줄기세포허브는 폐쇄됩니다. 경기도에 착공된 바이오장기센터도 올스톱. 그리고 대통령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MC 에필로그) -----------------------------------------------------------------------------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황우석 박사는, 김선종의 업무방해 혐의를 밝혀냈으면서도 황우석을 사기죄 등으로 기소한 검찰과 9년간의 법정공방을 벌였고, 노무현은 황우석을 기소했던 홍만표, 이인규 수사라인의 수사를 받던 중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찾아봤습니다.
혹시 노 전 대통령이 2017년 현재를 살고있다면 줄기세포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혹시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누구나 홍역걸리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홍역에 기뻐합니다. 그렇듯 이번 이 불행하고 부끄러운 일도 우리가 홍역 앓는 일처럼 그렇게 우리가 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이 또한 우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밑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2006.1.5. 과학기술인 신년하례회)
2006년 과학기술인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화두였던 '책임소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책임도 좀 과학적으로 물어야겠다. 분위기로 그냥 사전부터 너 책임이지 너 책임이지 서로를 쳐다보는 분위기보다는 하나하나 사실에 근거해서 또 증거에 근거해서 구체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에겐 분명하게 책임을 묻고 막연한 분위기로서 너너 하며 책임을 몰아부치는 이런 일은 없도록..."
진실은 철저히 밝히되 책임은 정확하게 물을것.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교훈을 찾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
그것이 아니었을까?
현재 어떤 여론조사기관을 막론하고 70%가 넘는 국민들께서는 황우석 박사에게 줄기세포 연구기회는 줘야한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자리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야할 때입니다.
KFM 스페셜 노무현은 줄기세포로 무얼하려했는가.
지금까지 나레이션 소영선, 아나운서 김혜진, 취재 노광준 김현아였습니다.
(Michael Bubble / Home)
첫댓글 그냥 혼자만 듣고 말것이 아니라
손가락 운동겸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퍼날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의 경우 팔로워가 3000명일경우 방송사 한개 정도의 전파력을 갖는다고 하네요
저도 그렇게 따져보면 방송국 1.5개 정도의 전파능력이 있는거가 되어서 잘 활용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