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내 영혼이 피곤합니다.
어제 장로임직식을 하였는데 심령이 너무 불편하고 괴롭기까지 하나이다.
아버지의 뜻과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로 하여금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주시고 죄의 몸은 거룩한 불구자가 되게 하소서.
영혼이 심히 곤한 나를 주의 보혈로 덮으사 주의 품안에서 평강과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나를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나 1:1-5
제목 : 어제 장로장립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 나의 묵상
나훔서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성경이다.
나훔은 엘고스 출신으로써 남유다에 속한 어느 지역을 말한다.
성경의 본문에 의하면 이 성경이 기록된 시기는 약 BC 663~612년 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앗수르는 고대근동에서 가장 강력한 대제국을 이루었으며 주변에 있는 약소국가들을 침략하여 자기 제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무자비한 살육과 피를 통한 공포의 제국이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앗수르에 대한 학대와 착취로 인하여 마음을 놓고 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이미 멸망하였고 지금 남유다를 끊임없이 넘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심판하시겠다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보복 곧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나타내시고 주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에게는 보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권능이 크시고 진노하시기를 더디 하시며 많이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벌을 받아야 할 자는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에는 회오리바람과 폭풍이 일어나 주의 능력을 나타내고 구름은 주의 발에 밟혀 날리는 먼지와 같다.
하나님의 권능은 바다와 강을 꾸짖어 말리시며 바산과 갈멜 지역이 메마르고 레바논의 꽃들이 시든다.
그로 인하여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은 녹아내린다.
주께서 오시면 땅이 흔들리고 모든 것들이 두려워서 벌벌 떤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하시다.
심판이 임하기까지는 오래 참으시지만, 심판의 칼날이 임하면 가차 없이 단행하신다.
어제 포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약 1년 전에도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났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진도는 약간 낮지만 그 결과는 훨씬 컸다.
아파트 외벽에 금이 가거나 건물 외벽이 무너지기도 했으며 도로에 갈라지고 항만의 부두가 갈라져 층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대입수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 정도로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 벌벌 떨고 있으며 밤이 깊은데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나 차 안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있다고 한다.
불과 며칠 전에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에 진도 7.2의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면서 커다란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그 건물에 깔려서 죽거나 한 사람이 무려 400여명에 이른다.
2008년도에 있었던 중국 쓰촨성 지진에는 무려 8만 명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 번 흔드시면 아무리 날고뛰는 인간이라도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자연현상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손길이 아닌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연적인 재해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훔이나 여러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때 그 말씀을 듣고 주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아모스서를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하신 말씀이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지나치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였다.
지금 임하는 지진과 같은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의 맛보기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하실 심판은 긍휼이 없으신 완전한 심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질투하시거나 보복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좀 헤아려야 할 것이다.
어제 우리 교회에 장로를 세우는 임직식이 있었다.
장로 임직식은 해당 교회가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그 교회가 속해 있는 시찰회의 목사 장로들을 초청하여 거행한다.
그런데 나는 어제 아모스나 나훔 선지자와 같은 마음이었으며 감히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설교 말씀이나 축사 권면 등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임직하는 장로들에게 담임목사를 잘 돕는 도우미가 되라는 권면이었다.
심지어 어떤 장로는 부자가 되라는 말까지 하였다.
장로회 직전회장이라는 사람이 말이다.
록펠러의 말, 어느 목사의 말을 인용하여 축사를 하는데 정말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한 분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분이 없었다.
그저 만물 안에 속한 것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었다.
축사를 하신 장로 한 분은 사실 우리 교회가 초청한 분이 아니었다.
장로로 임직을 받을 때 노회에 속한 장로회 임원들이 와서 축하를 해주고 장로뺏지를 달아준다고 하여 오라고 했다.
그런데 회장이 오니까 축사를 한 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기왕 오시는 것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내가 초청한 3분의 목사들에게만 사례를 드리고 그 장로에게는 사례를 안 드렸다.
그런데 식이 끝나자 우리 교회 장로를 부르더니 왜 자기는 사례를 안 주냐고 하더란다.
그래서 재정 장로가 죄송하다고 보내드리겠다고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단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정말 답답하다.
정말이지 이제 이런 행사는 그런 외부 손님들이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지진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엄위하신 손길이 무섭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자리에 와서 자기 몫을 챙길 수가 있단 말인가?
기대를 하고 왔다 할지라도 안 주면 그냥 안 주는가보다 하고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분이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큰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간밤에 잠을 자면서 나는 꿈속에서 이 묵상을 하였다.
마음이 걸려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마음을 꿈속에서조차 묵상하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하신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는 이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이런 임직식은 행사의 하나로 치부하고 말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기보다 행사였던 것이다.
사실 내가 누구를 판단하고 헤아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은 나 역시 돈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인기나 칭찬을 좋아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자였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설교를 하러 가도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례였다.
사례를 얼마나 주는지에 대한 생각이 앞서서 나 자신이 속물임을 스스로 증명하곤 했던 것이다.
영생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그저 죽어서 가는 천국에만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자가 아니었겠는가?
하나님은 당신보다 다른 그 무엇을 좋아하는 자를 질투하신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 심판하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싫어하였다.
왜냐하면 심판이라는 어감 자체가 싫었고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를 믿는데 뭐” 하면서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살면서도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고 결국 복음을 통하여 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설교를 해도 사례를 받지 않는다.
결혼 주례를 하거나 장례를 집례해도 사례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목사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을 했다고 해서 따로 사례를 받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례를 받는 이들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살고 싶은 뿐이다.
비록 어제는 심령이 너무 곤고하고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분자는 사람을 통하여 주님이 세우시기에 거기에 머리를 조아리며 겸허히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오늘 하루가 주의 품안에서 새롭게 사는 한 날이 되길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행자지했던 지난날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내가 바로 부자 되기 원했던 자요, 세상에서 성공하기 원했으며 그것으로 풍요를 누리기 원했던 자였나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고 주님의 참 뜻을 알 수 있게 하셨사오니 그저 감사와 찬양을 드리나이다.
주님...
이 땅에 영적 지도자로 세우신 목회자들이나 장로들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저들은 알지 못하고 행하오니 주님의 뜻을 알게 하사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 태어나 만물 안에서 모형과 그림자와 같은 헛것만 붙들고 사는 허망한 인생이 아니라 참 것인 주의 나라 곧 영생을 누리며 사는 이들이 되게 하옵소서.
장로로 세움을 받은 두 분의 장로들이 주님의 뜻을 잘 알아 날마다 그 나라를 경험하며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