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이 창건한 팔영산 능가사,
문득 소록도가 보고 싶어 찾아갔는데, 코로나 19로 출입이 통제 되고, 그래서 찾아간 팔영산 능가사에 코스모스와 배롱나무꽃만 바람에 흔들리고,.....
”능가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 밑에 위치해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로서 한때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사대 사찰 중 하나였으며 사십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 뒤편에 있는 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눌지왕 원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리적인 위치와 뒷받침 할만한 자료가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아도화상의 창건설은 신빙성이 별로 없다. 정유재란 때 보현사는 모두 불타버리고 인조 22년(1644)에 중창되어 능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벽천당 정현대사는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계시가 내려왔다. 보현 대사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폐사된 보현사터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그 뒤 영조 44년과 철종 14년에 각각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능가사 사천왕문을 들어선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내고 왼쪽으로 새로 지어진 종각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69호인 능가사 범종은 강희 37년(숙종24년 1698)이라고 만든 연대와 시주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용뉴는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종신윗면에는 연화문을 장식하고 그 밑으로 범좌대를 둘렀다. 종신 4면에 두줄의 띠를 두른 장방형의 유곽을 배치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돌출 시켰다. 양옆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호형을 각출 하였으며 그 안에 ‘주상전하 만만세’ 라는 양각명문이 보인다. 이종은 특히 가운데 부분에 주역에서 나타나는 건곤 8괘가 있는데 조선시대의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다.
부처의 말씀을 글로 표현한다면 불경이 되고,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 한다면 불상이 되고, 부처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만다라가 되고, 부처의 음성은 범종의 소리라고 한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대낮이라. 부처의 말씀은 들리지 않고, 매미 소리만 요란하게, 경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비에 젖은 풀잎들을 밟으며 부도 쪽으로 향했다. 능가사에는 부도가 10기가 있다. 7기는 대웅전 앞에 있고 그중에 능가사를 중창한 벽천당 정현대사의 비가 있으며, 1기는 응진당 옆에 있고, 2기는 팔영산으로 오르는 길옆에 위치해 있다.
능가사 대웅전(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95호)은 정면 5칸, 측면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웅장한 대웅전은 영조와 철종연간에 두 차례에 걸쳐 고쳐지었으며, 좌우 벽에 칠성탱과 산신탱이 걸려있다. 칠성탱은 송광사 삼일암에서 1902년에 만든 것을 장경각에 모셨던 것이며, 산신탱은 철종 9년에 송광사 대법당 산신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운데의 산신탱인데 세 동자를 거느린 늙은 산신이 소나무 아래에서 호랑이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주역의 팔괘가 차례로 새겨진 사적비
대웅전을 지나 요사채에서 신도들이 권하는 수박 한 조각을 맛있게 먹고, 응진전 쪽으로 향하자 응진전 옆의 부도가 눈길을 끈다. 팔각 원당형인 부도는 보기보다 상처가 많다. 네모난 대좌의 귀퉁이에 동물 형상을 양각 했으며, 대좌위에 놓인 팔각 받침에, 4면의 꽃 봉우리에서부터 활짝 핀 꽃까지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차례대로 새기고, 그 사이 각 면에 용머리와 코끼리, 사자가 조각된 표현을 보면, 이 부도가 능가사의 부도 중 가장 우수한 부도임에 틀림이 없을 듯 싶다. 부도 옆에 능가사 사적비(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69호)가 서있다. 이 사적비는 삼백여년 전에 건립한 것으로 불교의 유래와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우수한 작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비석은 탑 앞에 있었는데 덕목스님이 도술을 부려 절 뒤로 옮겨 놓았다고 전해온다. 돌 거북과 비석, 비석머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고 돌 거북의 등껍질에 범종에서처럼 주역의 팔괘가 차례로 새겨진 사적비에는 이중환이 <택리지>의 “산수”편에 쓴 기록들이 적혀있다.
“능가사는 팔령산 밑에 있다. 옛날에 유구국 태자가 풍파에 떠밀려 왔다. 이 절 앞에서 관음보살에게 일곱 낮, 밤을 엎드려 기도하여 고국에 돌아가기를 청하였더니, 큰 무사가 형상을 나타내어 태자를 옆에 끼고 물결을 넘어갔다 한다. 절에 있던 중이 그 화상을 벽에 그려서 지금도 그대로 있다.”
<신정일의 사찰답사기> 중에서,
어찌하랴, 파우스트에서 린쎄우스가 말했지 않은가?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된다 하더라.‘
하고 돌아서던 고흥의 소록도
2020년 10월 5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