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아침마다 문을 활짝 열고 봄소식을 듣는다. 겨울의 긴 침묵에서 나무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이제 기지개를 켜며 생명의 신비를 유감없이 드러낼 것이다.
나도 그날이 오면 그들이 풀어내는 연초록 물감에 동참하여 봄날의 찬가를 목 놓아 부르리라.
오늘은 따스한 봄날에 기대어 옛 선사가 남긴 법어를 읽었다.
중국의 어떤 스님이 도보 여행 중 하룻밤 묵을 곳을 찾다가 산 위에 오래된 절이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착해 보니 그곳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폐가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로 결정하고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웠는데 불꽃 위로나뭇잎이 춤을 추며 떨어졌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자리로 달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참으로 초라하고 비참했을 상황이었지만 ‘달빛까지 이곳과 나를 축복해주는구나. 이런 멋진 곳에 하루를 묵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하며 기뻐했다. 눈물 날 것 같은 울적한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그보다 더 웃음나는 상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일본의 선종 사찰에 ‘수소쾌활’이라는 선어가 적혀 있었다.
어떤 곳에 있더라도 주눅 들지 말고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 상황에 끌려가지 말고 당당하게 이끌어 가는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의 법문과 다르지 않다.
언제나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이 선의 지향점일 것이다.
어떤 변수와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사건의 본질을 잘 파악하면 고민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명상 수행에서는 피해자의 의식에서 깨어나라고 주문한다.
즉,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라는 것이다. 자신의 힘이 마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는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가는데 중간에 사고로 연착되었을 때 ‘왜 하필 오늘 이 열차를 타 가지고...’ 하며 짜증낸들 무슨 소옹이 있겠는가. 그 시간에 독서를 즐긴다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되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니지 말자는 것이다. 피해자라는 생각이 현재의 불편한 상황에 대해 짜증내고 원망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고 주인이 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만의 어느 노교수가 “오해하면 결혼하고 이해하면 이혼한다”는 말을 했는데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 뜻을 곰곰이 따져보면 상대방을 적당히 알면 사랑하게 되지만, 속속들이 다 알면 헤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저 사람 잘 생겼다.’ ‘말을 너무 잘한다.’ ‘말이 없어 과묵하다.’ ‘저 사람 매너 좋다.’... 이런 식으로 오해해서 좋아했는데,
살아보니 ‘잘 생겨서 누구나 탐을 내는구나.’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럽다.’ ‘말이 너무 없어 답답하네.’ ‘누구에게나 친절하네.’ 하며
매력이 없어져 이혼을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의 눈높이나 편견은 바꾸지 않고 상대방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 탓만 하는 습관이 권태나 피로를 만들지도 모른다.
이럴 땐 오히려 “고맙습니다. 이미 충분합니다”라고 하면 마음의 안식이 찾아올 수 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지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늘 부족하다 하니까 자꾸 모자라게 느끼는 거다.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행복이 성큼 가까워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법당 뒤 화단 주변을 서성이다 들어왔는데 지난 이맘 때 제주도에서 수선화를 여러 포기 옮겨와 심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자리를 잡아 청초한 신비를 보여줄 것 같아 매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며칠 안으로 수선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우리 곁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하므로 봄이 왔다는 것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 따스한 봄기운을 깊이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모성의 샘물이 말라버릴지 모른다.
새순에 눈을 맞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활동보다 훨씬 절실한 삶의 보람으로 여겨져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하여도 봄 풍경을 백 번 이상 되풀이 하여 보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올해 봄날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감격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봄 손님을 맞이하시라.
출처 ; 현진 스님 / 꽃을 사랑한다 中
첫댓글 귀감이 되는글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현진스님 절에 다녀왔답니다 스님두뵙고 책도 구입하구요...
첫눈소식이 있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저는 사진으로만 뵙고 책은 몇 권 사서 갖고 있고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책은 <삭발하는 날>입니다. 오래 전에 병원법당에도 보내드렸고 아는 분들한테도 선물했었습니다. 오늘 첫눈치고는 많은 눈이 와서 좋긴 한데 미끄러워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