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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예산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그렇지만 국채 발행을 통한 지출 확대는 미래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고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기업 활동과 민생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 확보를 위해 “총 23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도 했다. 다만 건전재정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와 달리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돈 풀기’를 멈추고 여당 입장에선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긴축 재정’을 선택한 것이어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진정한 약자복지 실현, 국방·법치 등 국가의 본질 기능 강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3대 핵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예산을 “선거 매표 예산”이라고 지칭하면서 그 대신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예산안 곳곳에 윤석열 정부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연구개발(R&D)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문한 R&D 예산은 25조9000억원으로 올해(31조원)보다 16.6% 깎였다.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현금 살포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일자리 예산도 같은 기간 30조3000억원→29조3000억원으로 3.5% 줄였다.
윤 대통령 “나눠먹기 예산 재검토” 주문…R&D서 16.6% 삭감
반면에 역대 최대 폭 생계급여 인상(13.2%), 육아휴직 기간 12개월→18개월 확대, 만 0세 아동 부모급여 월 70만원→100만원 인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복지 예산은 같은 기간 226조원→242조8000억원으로 7.5% 늘렸다. 정부가 ‘국가의 본질 기능’으로 강조하는 국방 부문은 전력 강화와 간부 처우 개선 등 57조원→59조5000억원으로 4.5% 확대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절 크게 늘린 노인 관련 예산과 도로·공항·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이번에도 늘렸다. 일자리 예산은 줄었지만 노인 일자리 관련 예산은 1조5000억원→2조원, 기초연금 예산은 18조5000억원→20조2000억원으로 각각 확대했다. SOC 예산도 24조9000억원→26조1000억원으로 4.6% 늘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재정을 투입해 인기를 얻고 싶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미래세대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말했다.
다만 과도한 재정 긴축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 추세로 통화 정책의 여력이 크지 않은데 ‘최후 보루’인 재정 집행마저 줄일 경우 경기 반등이 더딜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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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중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는 등 외부 상황도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성장을 북돋는 예산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경제 먹거리인 인공지능(AI)과 반도체·미래차·바이오 등 12대 국가 전략기술에 대한 투자를 올해 4조7000억원에서 내년 5조원으로 6.3% 늘렸다. 반면에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기초연구 예산은 6.2% 깎은 2조4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기재부는 내년 국세 수입(세수)을 올해(400조5000억원) 대비 33조1000억원 줄어든 367조4000억원으로 전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보다 1.3%포인트 증가한 3.9%에 달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같은 기간 50.4%→51%로 늘어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 증가 폭을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61조8000억원으로 줄이는 등 ‘명분’을 살렸지만, 세수가 부족해 예산 지출을 크게 늘릴 수 없는 ‘현실’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 심의 과정에서 선심성 예산 증액 요구라는 복병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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