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산성 동문 너머로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장맛비가 주춤한 틈새 칠월 둘째 수요일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외등이 켜져 있고 가로등이 길을 밝힌 거리에는 오가는 차량이 없었다.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으로 나가 도청 뒤를 돌아 창원중앙역으로 오르니 그제야 주변의 사물이 식별될 정도 날이 밝아오는 여명이었다.
철길 굴다리를 지난 용추계곡으로 드니 산새들도 잠을 깨지 않은 시각이었다. 장마철 강수량이 적어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말라 물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계곡 들머리에서 용추정을 지날 무렵 다람쥐 한 마리가 보여 폰 카메라에 담으려니 바위틈으로 숨어 피사체로 삼을 수 없었다. 용추1교에서 차례로 놓인 개울이 말라붙은 목책 교량을 건너니 산새들의 조잘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용추5교에 이르러 냇바닥에 드러난 바윗돌에 붙어 자란 참나리가 주황색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뜰에 꽃을 가꾸며 유튜브에 소개하는 꽃대감 친구는 나리류 꽃들은 모두 백합(百合)이라 했다. 이때 백 자는 희다가 아닌 많다는 뜻으로 구근에 해당하는 비늘줄기가 양파처럼 까도 까도 자꾸 나온다고 했다. 나리의 비늘줄기는 여러 곳에 효험을 본다는 약재였다.
출렁다리를 지나니 창원대학 뒤에서 오는 숲속 길이 합류해 날개봉 산허리를 돌아 고산 쉼터로 나아갔다. 인적이 끊긴 우곡사 갈림길에서 배낭에 넣어간 얼음 생수를 꺼내 비우면서 잠시 쉬었다. 갈림길에서 우곡사로 향하지 않고 포곡정이 위치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개울 바닥은 물이 말라 너럭바위가 드러났다. 길섶에서 여름 야생화인 하늘나리와 노루오줌이 피운 꽃을 봤다.
공룡 발자국 화석 근처 개울가는 물봉선이 잎줄기를 한창 불려 갔다. 용추계곡엔 초가을이면 선홍색 꽃을 예쁘게 피우는 물봉선이 흔한데 일부는 생장점에 해당하는 멱이 잘려 있었다. 숲속의 고라니나 노루가 물을 먹으러 내려왔다가 보드라운 잎줄기를 먹이 삼아 따 먹은 듯했다. 포곡정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를 향해 오르니 반바지 차림으로 산행을 나선 두 처녀가 스쳐 지났다.
진례산성 동문지에서 배낭에 넣어간 삶은 옥수수를 꺼내 간식으로 먹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동문 너머 가파른 비탈로 내려서면서 등산로를 벗어난 숲속을 두리번거려 참나무가 삭은 그루터기를 살폈다. 눈길을 예의 주시한 성과는 있어 노랗게 갓을 펼쳐 자라는 영지버섯과 하얀 테두리가 생성된 말굽버섯을 찾아냈다. 숲속을 빠져나가니 송정에서 신월로 이어지는 길고 긴 임도였다.
길바닥에 점점이 피어난 노란 꽃이 무슨 꽃일까 궁금해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더니 짚신나물의 꽃이었다. 내가 지나간 이른 봄날 전호나물과 함께 캤던 짚신나물이었는데 꽃은 처음 보게 되었다. 짚신나물의 특성은 질경이처럼 길섶이 아닌 길바닥에 자라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길 좋아했다. 실제로 꽃이 피어 씨를 맺은 꼬투리는 신발에 달라붙어 어디론가 번져 퍼지게 된다.
임도를 따라가니 예초기를 둘러맨 사내 둘이 제초 작업에 열중했다. 경제림으로 수종을 바꾼 산비탈에도 어린 편백을 가린 풀숲을 자르는 아낙들도 있었다. 산중 백숙촌으로 유명한 평지마을에서 진례 저수지 산책로를 따라 신안마을로 내려가다 길섶의 왕고들빼기를 채집했다. 왕고들빼기는 상추처럼 잎줄기에서 하얀 진액이 나왔는데 전립선 기능을 개선 시키는 약성으로 알려졌다.
비음산터널을 빠져나온 경전선 철길이 진영을 향하면서 원호를 크게 긋는 신안마을 앞에서 신월마을로 가서 중국집 짬뽕으로 점심 요기를 때우고 장유로 갔다. 장유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법원 앞을 지날 때 내려 축구센터 곁의 텃밭으로 올라가 봤다. 쥐눈이콩과 고구마는 잡초를 이겨내는데 다른 구역은 잡초의 기세가 대단했다. 열무와 팥 이랑의 김을 매주고 내려왔다. 22.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