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549장 (구 431장) / 고린도전서 3 : 1 - 1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49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3장 01절 – 1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아멘!
다섯 살짜리 아이와 일곱 살짜리 아이가 엄마의 생일에 선물을 샀는데, 7살짜리 아이는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루즈를 샀는데, 5살짜리 아이는 장난감을 삽니다. 자기가 좋아하니까 엄마도 좋아할 줄 압니다. 이것이 미숙입니다. 약한 것과 미숙한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까지 미숙아로 남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다 자라가야 합니다. 자라지 못함은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언제나 우유와 젖을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대하는일에 있어 밥으로 대하지 못하고 젖으로 대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서,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사람” 이라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여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자들이지만, 계속 성장하기를 멈춘 신앙의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되면, 신앙의 초기에는 이해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육신에 속한 사람” 이라고 판단하게 된 근거는 무엇이었습니까?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도들 간의 시기와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에게 복음을 직접 전했거나, 세례를 직접 주었거나, 인간적으로 더 끌리는 복음의 일꾼들에 따라 분파를 나누어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영적으로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이라고 책망합니다.
고린도에 복음을 전했던 바울과 아볼로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 또 그 외의 복음전도자들을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택하신 일꾼이요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의 유일한 초점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같은 목적으로 부름 받아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과는 상관없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지도자가 최고라면서 서로 파를 갈라서 교회 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1960년대 유명한 복음주의자이며 교회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한 토저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1)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살만 찌는 것, 2)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참관만 하는 것, 3)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이 잘못된 교회들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토저 목사는 이것을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신앙의 나이가 들수록 나아갈 방향과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고자 하시는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줄도 알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세워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이며, 영적 성장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라가야 합니다. 자라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구원받은 것 하나로 만족하고 거기서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서 구원받은 하나만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것만 가지고 기뻐하려고 하지 말고 성숙해 가라고 우리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은 취미삼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으로만 해서도 안 됩니다. 지식으로만은 더 더욱 아닙니다. 체험만으로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풍성함이며, 실재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겨우, 근근이 하는 승리가 아닙니다. 넉넉하게 충분하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만사를 중단하고서라도 이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합니다.
진짜 은혜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 때문에" 의 은혜가 아니라, "그럴지라도" 의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다. 들어오는 은혜와 솟아나는 은혜의 힘으로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겨우, 겨우 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집중해서 사명으로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소리보다, 내 속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더 크게 들리며 외부의 환경보다, 솟아오르는 내면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살아있는 한 자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살아 있다면 매일 매일 자라가야 합니다. 매일 젖만 먹는 어린아이가 아닌 밥도 먹고, 딱딱한 것도 능히 소화 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육신을 입고 살지만, 육신에 속한자로, 육신에게 져서, 육신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어느 사람에게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칭찬을 듣기 위해, 내가 영광을 얻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내가 어떤 일에 많이 심기도 하고 물도 주는 수고를 하였을지라도, 우리는 다만 피조물일 뿐 더 잘나거나 특별할 수 없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시라는 겸손함으로 성숙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